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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랜덤 Dec 20. 2022

증류식 소주에 손을 뻗치다

고급 술을 찾는 여러분들에게 새로운 맛볼 거리가 생겼다

1. 소주가 센세이셔널 한 날이 올 줄이야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이제 슬슬 오픈런에도 익숙해져 가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는 포켓몬 빵 아니 대체 그게 뭐라고  오픈런이 성행하더니, 이제는 술 사러 줄을 선다. 한정판도 아닌데 단순히 공급량이 적다는 이유에서다. 이미 허니버터칩 때부터 이 민족의 참을성 없음과 들끓는 냄비력을 알아봤으나, 마치 황충이 창궐하듯 폭발적으로 공급 물량을 소진해버리는 기세는 언제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최근이라기에는 시간이 좀 지났지만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대상은 박재범이 런칭한 WON소주(원스피리츠 주식회사 농업회사법인)다.

근무 중 임직원 혈중 알코올 농도 측정이 필요해 보인다


좀 재미있는 탄생 비화가 있는 제품으로는 빡치주와 개빡치주(왓챠, 농업회사법인 술샘))가 있다. 아니 뭔 이름이 이래 장난이 아니라 진짜 이름이 저거다. 좋은 IP를 활용하는 모범적인 예시인데, 컨텐츠 크리에이터들이라면 누구나 꿈꿀, 그 어렵다는 컨텐츠의 실상품화를 이룩해냈다. 술샘이 기존에 생산하던 증류식 소주인 미르의 스핀오프 리레이블링이 아닌가 싶지만 아무래도 좋다. 재밌잖은가.

제가 알던 양키 감성과는 많이 다르군요


웬 양키들이 소주의 세계회를 부르짖으며 런칭한 애들도 있는데, 토끼Tokki(Tokki Soju Corporation)와 KHEE(KHEE LLC.)가 대표적이다. 둘 다 미국인이 현지에서 런칭했고, 토끼는 충청도에 아예 증류소를 짓고 본거지인 브루클린을 탈출하여 정착했으며 귀화한 재미교포, 키는 창시자인 에바 차우Eva Chow가 굉장히 성공한 문화계의 아이콘 중 하나성공한 재미교포다. 토끼는 제품력으로, 키는 굉장한 유명인 동원력으로 업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고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아, 물론 키의 제품력이 떨어진다는 건 아니다. 광주요 ODM이니까 기본은 할 것 아닌가.

살다 보니 소주가, 그것도 20대-30대의 젊은 계층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는 날이 다 왔다. 희석식 소주의 영향이긴 하지만 기존의 ‘소주’라는 이름이 가지던 인생의 애환을 담은 쓰디쓴 한 잔은 떠나간 너를 위하여 한 잔은 너와 나의 영원했던 사랑을 위하여 한 잔은 이미 초라해 진 나를 위하여 혹은 아저씨의 술이라는 이미지가 점점 희석되어 가는 것일까.

 

2. 이 것들은 인기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몇 가지 친숙한 단어들을 통해 왜 이 브랜드와 상품들이 성공 했는지를 수박 겉핥기 처럼이라도 살펴보자.

합당한 프리미엄: 모두 해당

고급화와 멋들어짐이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던 적은 없겠으나, 소비 양상이 개성을 표출하는 수단 중 하나로 인식되는 지금에 이르러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비싼 것을 무차별적으로 소비 가능하다는 것을 뽐내는 돈지랄 것이 아닌데, 경제 침체와 COVID-19로 인한 전반적인 사회 위축으로 인해 가용 자원(=돈)이 상당히 부족해진 Z세대의 경우에는 그런 상황에서도 이런 경향을 추구하기 위해 더해진 기준 하나가 합리성이다.

화제가 되는 증류식 소주 제품군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접근 가능한Affordable 가격대라는 특징이다. 원이나 키 같은 경우 비슷한 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망 드 브리냑과 같이 특수함을 지향하여 높은 가격대를  책정했다면 항간의 화제는 되었을지언정 지금과 같은 폭발적 인기를 구가하진 못했을 것이다. 누가 그 돈 주고 소주를 마시냐

이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전통의 증류식 소주를 나름의 기법으로 재해석했다는 것인데, 희석식 소주가 만연한 현실에서 전통을 어레인지 한 기법으로써 고유의 향취를 살린 것, 그리고 기존의 희석식 소주들과는 다른 상위 제품군으로서의 브랜딩을 지향한 것이 고급스러움을 더하면서 특별히 이를 선택할 빌미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아티스트 브랜드: 원, 키

로고는 알겠는데 사람은 모르겠다고? 그럴 수 있다
생소할 수 있는 개념인데, 아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 브랜드는 비츠 바이 닥터 드레Beats. By Dr.Dre일 것이다. 물론 닥터 드레의 아티스트로서의 능력보다는 디자인이 예뻐서 잘 팔렸다는 것은 한국에 국한된 것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공공연한 비밀이겠지만, 어쨌든 대중적으로 아티스트 브랜드라는 개념을 널리 알린 공헌은 지대하다. 아티스트는 이미 실질적인 대중적 영향력이 막강한 상태이므로 이런 브랜드 런칭 작업이 훨씬 수월한 편이긴 하다

주류로 시야를 좁혀보면 비슷한 사례를 좀 찾을 수 있는데, 돈도 많고 부인도 예쁜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 제이지가 클럽용그리고 연예계 행사 납품용으로 런칭하고 의도대로 전 세계 유흥가를 휩쓴 아르망 드 브리냑Armand de Brignac, 조지 클루니가 친구들 하고 지네 취향 술 구하려다 얼떨결에 만들어 의외의 성공을 거둔 카사미고스 데킬라Casamigos Tequila친구네 데킬라 등등. 실제로 인터뷰에서 박재범이 밝힌 것으로, 한국에는 이런 아티스트 브랜드가 거의 없어서 아쉬웠다고 한다. 없긴 왜 없어 역사와 전통의 유퉁의 국밥집이 있는데 임창정의 소주 한 잔도 있다 이 말이야

원소주의 경우 일단 연예인이 런칭해서 그런지, 관련지에 유료기사 한 편 실리고 포스터로 승부하는 일반적인 고급 증류식 소주들에 비해 그 파급력은 확실히 굉장했다. 만약 기존 양조회사와의 단순한 콜라보레이션 이었다면 박재범이 포즈를 취한 포스터 한 장 나오고 끝났을 일이다. 그리고 남자 모델인 만큼 재고가 쌓였겠지 키의 경우도 같은 맥락인데, 한국인인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미국 예술/영화계에서 무시 못할 경력과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 출시한 것이니 만큼 일단은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분위기가 형성됐나 보다

 

트렌드의 선도: 모두 해당

좌측은 원 소주 런칭 파티, 우측은 키 소주 런칭 파티. 각각의 브랜드의 지향점을 엿볼 수 있다


빡치주&개빡치주의 티저 포스터(좌)와 라이즈 호텔에 문을 연 토끼 바(우)
원의 경우 대놓고 브랜딩에서부터 아르망 드 브리냑을 벤치마킹 한 파티 스피릿Party Spirit으로 출발한 경우라 타이틀로 내세운 이미지 자체가 힙함과 스타일리쉬함이다. 라벨 디자인부터 이게 소주인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외국의 파티 스피릿들을 연상케 하는 색다른 형태였다. 앞서 언급했던 셀러브리티 브랜드, 희소성 등의 요소들이 원의 성공과 트렌디함을 대변한다 하겠다.

키는 좀 다른 차원의 셀러브리티 마케팅을 적용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재계의 아이돌 이재용을 통해 간접적으로 노출시킨 적이 있으며, 미국 본토에서는 영향력 넘치는 창립자의 파티를 통해 연예인 위주로 공급중이다. 당연히 낙수효과를 노린, 진짜 할 수 있는 사람만 가능한 종류의 간접 마케팅이라 하겠다. 어떤 회사가 연예인 모아놓고 주기적으로 파티 할 수 있는 상황이 되겠는가.
덕중 덕은 양덕이라
빡치주와 개빡치주는 OSMU(One Source Multi Use)의 훌륭한 사례로, 이미 항간에서 화제가 됐던 컨텐츠의 구성요소를 실체화 시킨 것으로,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고 재미 부분에서 이미 강력하기 그지없다. ‘가려’라는 이름의 커버 팩트나 ‘자라나라 머리머리’ 같은 이름의 탈모방지 샴푸가 나왔다면 어떤 느낌일지 감이 오는가? 물론 이런 시도가 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시들은 대부분 굿즈를 양산해내기 좋은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는데, 엄청난 수익으로 아이슬란드의 국영사업 취급을 받고 있는 이브 온라인EVE Online(CCP) 게임 내 유명 탄산음료인 퀘이프Quafe는 팬 페스타Fan Festival에서 제공된 바 있으며, 미국의 유명 RPG인 폴아웃Fallout 시리즈(Interplay, Bethesda)의 누카 콜라Nuka Cola는 종종 출시되곤 한다. 아니 근데 이건 주요 성분이 핵물질인데…. 이벤트성으로 잠시 출시되어 화제몰이 했던, 목적이 본 컨텐츠의 붐업에 있었던 제품들이지만 어쩄든, 컨텐츠의 실체화라는 건 팬 입장에서는 꽤나 흥분되는 일이므로 당연히 화제성을 잠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토끼는, 마케팅 하는 사람으로서는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부러운 짓을 하고 있다. 외국인이 만들었음에도 한국의 것들보다 더욱 한국적인 레이블링을 채택하고 있음은 물론이요, 음료의 체험을 극대화하기 위한 공간을 만들어 아예 본인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직접 입을 열고 퍼부어주고 있다. 홍대에 오픈한 토끼 바는 꼭 한번 가보길 권한다.


여기서 각 제품과 브랜드의 성공을 설명하기 위해 언급한 모든 단어들은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것들이다. 하지만 그 실질적 의미를 이해한다면, 평소에 피상적으로 듣고 흘려 넘겼던 단어들이 그리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매우 상식적인 의외의 사실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 그 양상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각 인생 유형을 정의하는 단어의 의미가 몹시 무겁다.

 

3. 맥키스는 왜 실패했을까

정말 야심찼는데... 그랬는데....


증류식 소주는 아니지만 이런 힙함과 파티 스피릿을 추구했던 국산 제품이 처음은 아니다.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신동엽을 내세워 트렌디한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했던, 하지만 실제 제품은 본 적이 드문 맥키스Mackiss(금관주조주식회사→선양주조주식회사→맥키스컴퍼니)를 아는가? 의도는 훌륭했으나 결과는 영 좋지 않았던 경우다. 린 소주로 충청권에서 재미좀 보던 선양주조는 2013년에 맥키스를 런칭하며 야심차게 회사명 까지도 맥키스컴퍼니로 바꾸는 희대의 실책 의지 표명을 보여주었으나…. 맥키스는 러닝 3년만인 2016년에 단종되고 말았다. 사명은 다시 바꾸기 무안했는지 지금까지 맥키스컴퍼니다. 맥키스 없는 맥키스컴퍼니

사실 맥키스의 마케팅 전략 자체는 꽤나 신선했고, 젊은 계층을 목표로 한 시장 판도 변화의 의지는 높이 살 만하다. 당시 스피릿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던 앱솔루트 보드카Absolute Vodka(The Absolute Company)를 참고하여 레이블과 로고를 제작했으며, 병도 새로 금형을 파서 상당히 인상적인 형태로 만들었다. 더불어 당대에 급격히 발달하던 성평등을 반영한 LGBTQIAPK(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Questioning, Intersex, Asexual, Pansexual, Kinky. 너무 길다면 범성론담에 대한 수용 정도로 이해하자)코드까지 수용하고자 하는 대범함을 보여줬다. 영상 광고에서도 맥키스가 지향하는 바를 여실히 보여줬는데, 파티 스피릿으로서의 입지를 노린듯 광고 배경은 클럽이었고 남녀의 상호관심 촉매제로서 활용하라는 직간접적인 메시지를 마구 표출하기도 했다. 더불어 칵테일의 기주忌酒Base Spirit로 활용하길 적극 권장하기도 했으니…. 가히 당대의 힙함을 모두 때려넣은 야심찬 시도였으며, 주류 기획자로서 하고 싶은 거 다 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회사 연혁에서도 지워진 버림받은 자식이 되었다

이런데도 시장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이유는, 제가 보기엔 이렇다.


고만고만했던 상품성

어마어마한 기획에도 불구하고 실제 내용물은 결국 담금주에 가까운 희석식 소주여서, 상품이 발산하는 실제 가치가 의도했던 것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던 경우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당대에 파티 스피릿으로 강세를 보였던 여러 술 중 가장 비슷한 특성을 가진 앱솔루트 보드카나 스미노프Smirnoff(Smirnoff) 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점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일단 두 제품 모두 프리미엄 보드카를 지향하고 있고, 그에 따라 자연스레 최상급 보드카의 덕목인 무색, 무취, 무향의 3기조를 착실히 따르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알코올 함량에 비해 무척이나 마시기 쉽다는 것. 그에 반해 맥키스는 파티 스피릿을 추구하지만 스트레이트로 마시기엔 적잖은 난관이 있는데, 이는 맥키스가 근본적으로 희석식 소주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름의 프리미엄을 추구하기 위해 실패했던 전작인 보리소주 맥의 원액 재고 처리 겸 보리를 기반으로 한 증류주 원액을 블렌딩 하는 등 신경 썼다고는 하지만 결과는 녹색 병 희석식 소주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칵테일 기주로서 홍보 했다고는 하지만 무척 맛이 없었다.

더불어 애매한 가격대도 한 몫 했는데, 출시 당시 맥키스는 333ml 한 병에 4,900원 이었다. 이게 소매가였으니, 평균 주점 비용 환산율을 적용해보면 적어도 8,000원은 한다는 얘기다. 실제 업장 판매가는 10,000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여타 희석식 소주가 일반소매가 1,200원, 업장 판매가로 3,000원 남짓 하던 시기였는데 일반적인 관능 평가상 큰 차이가 없음에도 이런 가격 책정을 했다는 것은…. 출시 첫 해 60만병의 판매 기록이 이듬해 20만병으로 50% 이상 하락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물론 경영 관점에서야 금형과 마케팅 등등 비용을 제품가에 녹여내야 했겠지만서도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건강과 숙취 해소라는 반反 정체성 행보

제가 아는 꺳잎과 트렌드의 접점은 깻잎머리 뿐이었는데
온 세상 힙함을 모두 수용하고자 했던 상품답지 않게 실책을 저지르기도 했는데, 1차라고 쓰고 마지막 이라고 읽는다 리뉴얼 때 성분 강조 마케팅을 해버린 것.

첫 출시가 13년 3월이었던 맥키스는 초반 3개월간의 폭발적인 판매량이 역시 폭발적으로 감소추세에 들어서자 뭔가 변화가 필요함을 직감하고 14년 들어 좀 이른 리뉴얼을 감행하는데, 여기서 하필 그놈의 꺳잎이 등장하고야 만다. “최고급 무공해 깻잎 추출물을 첨가하여 맛이 부드럽고 상쾌하며, 다음 날 숙취가 덜하고 노인성 치매나 각종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항산화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건강을 생각하는 애주가들에게 적격인….” 몹시 구차하다

힙함을 추구함에 있어서는 몇 가지 불문율이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쿨Cool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분이 어쩌고 정성이 어쩌고 하며 이를 구구절절히 소구하는 것은 쿨하지 못하다. 물론 극강의 차별점이라면 반드시 언급해야겠지만 그것도 홈페이지나 상품 설명에 한두줄 넣고 마는 거지, 푸드 패디즘의 나라 아니랄까봐 이걸 대표 홍보문구로 써버린다는건 일종의 브랜딩 실책이다. 그러면 강조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우리에겐 간접광고라는 아주 훌륭한 대안이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명 업계 관계자나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물론 뒷광고 소리는 듣지 않게, 그리고 단순 홍보기사가 아니라 고급스러운 메타포로써 잘 포장해야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어쨌든, 성분과 효능이라는 요소는 건강기능식품이나 진짜 효과성을 기대하는 분야가 아닌 이상에야 사족에 불과한 것이다. 스트레이트로 마실 것도 아닌데다가 애초에 칵테일 기주로서 포지셔닝을 해놓고 깔끔함을 강조하는 것도 웃긴 처사다. 숙취를 유발하는 주요 요인이 당분인데, 콜라든 주스든 섞어 마시면 어차피 숙취는 오게 되어있다.

또한 맥키스는 자신들이 목표로 했던 20-30대의 젊은 계층은 숙취와 건강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내일 없이 마신다는 점을 간과했다. 아주 단순한 명제인데, 본인이 술 마시는 상황에서 주종 선택에 있어 건강과 숙취가 주요 고려요소인지 한 번 생각해보면 좋다. “술 마신 다음날의 컨디션과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 이라는 문장에서 대중적인 관점의 젊음과 힙함과 트렌드를 인식할 수 있는가? 대개 저 문장이 들어가는 것은 숙취해소음료일 따름이다. 더군다나 술 좋아한다는 사람 치고 술에서 건강 찾는 사람 본 적 없으며, 맛이 중요하지 성분 찾아가며 먹는 사람 또한 찾기 힘들다. 건강 중시의 경우 이미 약주 카테고리로 따로 분류되고 있으며 산삼주, 뱀주, 오미자주 등 커스텀 핸드브루 담금주가 주류다. 요컨대 사족에 불과한 항목이라는 것이다.
이게 깻잎과의 투트랙이었다
물론 성분 마케팅이야 식품 업계에서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트렌디한 시장에서 이를 강조하는 것과 방식이 올바른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문제다. 다만 14년 7월 즈음 맛은 그대로였지만 그래피티 아티스트와의 콜라보레이션 디자인의 상품이 출시됐던 걸 고려하면, 아마 런칭 이후 담당자가 변경됐거나 복수임명, 혹은 높으신 분의 제안으로 브랜딩에 혼선이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차라리 향 배리에이션을 출시 해보지….

 

소비자는 귀찮아하고, 설득할 수 없다



애들 쓴다 진짜
고객 경험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실책도 있을 것이다. 물론 2012-2013년은 사람들이 술에 무언가를 타먹기 시작하고 이가 꽤나 유행했었던 것도 맞다. 하지만 맥키스가 간과한 점은, 사람은 생각보다 그렇게 부지런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앰플이나 과립 형태의, 꽤 많은 술에 타먹는 제품들이 나타났다 소리소문 없이 스러져갔다. 홍초부터 시작해서 무슨 건강 유산균, 숙취 해소제 등등.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이런 상품의 이름이 있다면, 당신은 해당 분야 고관여자(e.g. 해당 상품 기획자)거나 일반적인 부류의 음주자는 아니다. 왜 이런 종류의 제품이 인기가 없는지는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 번거로워서다.

술은 대개 맥락의 음료다. ‘오늘은 혈중 알코올 농도를 몇%까지 높여봐야지’라는 목적으로 술을 마시는 경우는 없다시피 하며,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사람들도 대개는 술을 마시는 상황, 분위기, 상대방과 더불어 취기를 즐기는 것이 목적이다. 정말 목적성이 강한 경우, 예컨대 특정 술을 마셔야 겠다는 결심을 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들어갔던 술집에서 철수하는 경우도 많지 않다. 그런데 이런 저런 정황에 따라 술 마시러 가는 상황에서 “아 맞다, 그거 타 먹으니까 맛있던데” 라는 생각을 떠올릴 경우가 얼마나 있겠으며, 굳이 편의점에 들러 그런 앰플 형태의 제품을 사거나 집에서 챙겨오는 경우는 또 얼마나 흔하겠는가. 이는 주류회사(주로 희석식 소주 판매자)들이 소비 촉진을 위해 그처럼 많은 종류의 레시피를 보급 함에도 불구하고 그 준비물의 방대함으로 인해 웬만한 술자리에선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술자리에서 ‘제조’되는 주종을 살펴보면 인간의 준비성이 생각보다 대단찮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사소한 배리에이션을 제하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술자리 제조 레시피로는 오십세주(백세주+소주), 매화주(매화수 or 설중매+소주), 소맥(맥주+소주), 고진감래(콜라+맥주+소주)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들의 공통점은, 따로 준비할 필요 없이 웬만하면 앉은 자리(술집)에서 시킬 수 있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거다.
보장된 성공을 내포한 녀석들이었다
괜히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그리고 항상 일정한 맛을 내주는 순하리 처음처럼(롯데주류),자몽에 이슬(하이트진로),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무학)이 출시 후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한 것이 아니다. 사람은 굉장히 단순한 행동일지라도 추가되는 것을 몹시 부담스러워 하며 귀찮아 한다.

 

업장을 대상으로 하려 해도 난관이다

맥키스가 들고나온 칵테일의 기주 로서의 역할도 예상했던 난관에 부딪치게 되는데, 사실 맥키스는 기주로서의 매력이 굉장히 떨어지는 편이다.
칵테일의 기주가 갖춰야 할 덕목은 이미 오래 전에 정립되어 있었다.


① 섞는 재료의 향취에 영향을 주지 않는 알코올 부스터 역할
② 혹은 기주가 가진 특성이 표현하고자 하는 음료의 질감을 북돋아줄 것
③ 또는 기주 자체가 매우 훌륭하고 더하는 부재료는 이 기주의 풍미를 돋우기 위한 보조일 것
①과 ②는 가장 흔한 칵테일의 형태로 주로 보드카와 진이 각각의 위치를 담당하며, ③은 술 자체의 풍미를 강조하는 기조가 생긴 2010년대에 비로소 세계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했지만 아직 강세는 아니다. 흔히 클래식 칵테일이라 불리는 목록에서 보드카와 진 베이스의 칵테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육박한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앞서 말했듯 맥키스는 희석식 소주에 증류식 소주와 깻잎 추출물, 기타 감미료를 혼합한 물건이다. 그 자체로서 미약하나마 향취를 가지고 있는데, 이게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뭐 풍미야 부재료로써 마스킹 할 수 있다 해도 그 맛이 좋은 편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가 된다. 일반적인 희석식 소주 보다야 낫다 쳐도 뭔가 걸리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쉽게 말해 결과물이 좋은 칵테일은 못된다.

가격은 사실 경쟁력이 없지 않았다. 가정 혹은 업소를 대상으로 한 750ml짜리 대용량이 있었는데, 출시 기준으로 공장 출고가가 6,570원 이었다. 일반 소매가는 9,000원 정도가 된다.

맥키스가 잠정적 대체재로서 사용될 수 있는 기주는 단연 보드카인데, 스트레이트로 마시는 경우는 물론이고 제대로 된 칵테일의 기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단식 증류한 것이거나 프리미엄급을 사용해야 한다. 길베이Gilbey(디아지오 코리아같은 걸 쓰는데는 바로 발길을 끊도록 하자 대중성 있는 브랜드로는 앱솔루트, 스미르노프, 단즈카Danzka(Besvedere Scandinavia), 핀란디아Finlandia(Altia) 정도가 있는데, 이 정도급이면 보통 750ml 기준 소매가가 2만원을 넘어가고, 업장 공급가로 봐도 1만원대 초중반에 이른다.

진정한 문제는 레서피였는데, 맥키스는 ABV 21% 정도로 그냥 소주에 가까운 도수다. 보통 프리미엄급 보드카가 대개 40%를 고수한다는 것을 감안할 때, 기존 칵테일 레서피와 ABV를 맞추겠답시고 2배의 양을 넣으면 맛이 몹시 해괴망측해진다. 그렇다고 기존 레서피대로 만들면 그 맛이 안나고…. 업장으로서는 몹시 난감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맥키스가 새로운 레서피를 함께 공급했느냐하면 그것도 아닌데다가, 공급했다 쳐도 거기에 맞춰 새로 익히기에는 업계 관성이 너무나도 강력했다. 차라리 깔끔하게 ABV 40%으로 셋팅했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지만, 40도 짜리 희석식 소주라니 생각만해도 속이 메스꺼워 진다.

더 복잡한 업계의 사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제가 보기엔 대충 이런 연유로 인해 맥키스는 기존 주류를 대체하고 시장에 격변을 일으키는 데 실패했다. 시작이 매우 거창해서 기대할 만했지만 그 실상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4. 기존 증류식 소주들과의 차이점은

90년대의 럭셔리를 목도하라

대중적인 프리미엄급 소주의 태동은 1990년대 후반부터 있어왔다. 경제 성장에 따라 조금씩 프리미엄 소주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며 증류식 소주를 섞거나 여러 몸에 좋다는 것들을 잔뜩 집어넣은 황진이, 영의정, 청산리 벽계수, 암행어사, 태백이, 이몽룡, 곰바우 뭐 이런 고오급 소주들이 우후죽순 나타나다 IMF 빔 한 방에 사그라들었다. 연식이 좀 있는 분들이라면 그 당시 쏟아져 나온던 검은 병 소주를 기억하실 것이다.

소주계의 포스트 모던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프리미엄 소주 붐은 사라져버린 줄 알았는데, 고급스러운 것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음식에 진심인 도자기 회사 광주요에서 뜬금없이 2005년 쏘아 올린 화요를 필두로 하이트진로의 IMF 이전 재고 처리용 급조품 일품진로시대를 거꾸로 가는데 탁월한 재능을 지닌 롯데주류의 대장부 하지만 롯데답게 단종 크리보통은 있는지도 모르는 금복주의 제왕, 국순당의 동명의 모 샴푸가 생각나는  등으로 다시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의 라인업이 갖춰지고 있다. 대부분 가격대가 좀 나가는 음식점 메뉴판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생각해보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닌 것이다.

얘네가 또 의외로 대존맛인 것이다

그 이전에 프리미엄급 증류식 소주가 없었는가 하면 또 그런 것도 아니다. 애초에 소주는 고려 때부터 이어온 유구한 전통의 술이고, 삼해소주, 남한산성소주, 안동소주, 문배주와 같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들이 있을 정도로 우리만 모르게 존재하고 있었다. 다만 우리가 잘 몰랐으며 쉽게 접할 수 없었을 뿐이다.

원소주를 필두로 한 이런 3세대 프리미엄 소주를 관통하는 단어는 대중적 특이성이라 할 수 있다. 혹은 다른 말로 이젠 좀 지겨운 전통의 재해석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증류소나 제작자마다 조금씩 상이하지만 증류식 소주의 제법 자체는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것인데, 이 상품들은 기존의 제품들과 추구하는 바가 몹시 다르다.

화요, 일품진로를 위시한 2세대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들이 추구하는 시장은 사실상 희석식 소주와 사케가 차지하던 위치다. 앞서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실제로 이 제품들은 가격대가 높은 음식점들에서 주로 볼 수 있으며, 술 자체를 단독으로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는 잘 음용되지 않는다. 예컨대 바 메뉴에 일품진로 스트레이트가 올라가 있다거나, 병 째 시킨 화요를 핑거 푸드와 함께 음미하는 모습은 흔치 않다는 말이다.

3세대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들의 차별점은 여기서 두드러진다. 이들은 마치 위스키, 브랜디, 꼬냑 등 고급 주류 마냥 그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며, 이 같은 맥락에서 술 그 자체로서As a spirit itself즐기기를 권하고 있다. 원의 런칭 행사장의 풍경은 여타 유명 브랜드 스피릿의 그것을 방불케 하며, 실제로 창업자인 박재범이 관여했을 티저 영상이나 술자리 장면도 소위 말하는 양주 셋팅이다. 키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런칭 자체도 유명인들을 모아 파티 형식으로 진행했으며 행사주로 사용했고, 국내 티저 또한 바에서 소주를 즐기는 모습을 담아낸다.

토끼의 경우는 그 맥락을 짚어볼 필요가 있는데, 처음 브루클린에서 출시됐을 때는 주로 바에 스피릿으로서 공급됐으며 한국에서도 알음알음 구한 바에서 프라이빗 리스트에 올려놓는 상황이었으나, 한국으로 증류소를 옮긴 이후 공급이 원활해지고 가격이 무척 착해져 일반음식점에도 공급되기 시작했다는 배경이 있다. 시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얘기다. 애초에 토끼의 증류장Master Distiller이 독주로서의 소주에 매력을 느껴 창업을 마음먹었으니, 그 의도를 보면 원, 키와 같은 맥락임을 알 수 있다.

 

5. 이젠 맛까지 봐야 한다

한국의 소주로서 이례적인 입지를 취하고자 하는 이들이 사회적 호응을 얻는 양상은 예측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맛있는 술에 대한 요구, 그리고 술을 그 자체로서 즐기려는 시도는 이미 다양한 형태로 시도된 바 있다. 우리는 이미 웨스턴 바들이 난립하게 된 칵테일 파동(2000년대 초반), ‘신의 물방울(아기 타다시&오키모토 슈)’이 기폭제가 된 와인 파동(2004-2007년), 규모는 작았지만 오늘날 굴지의 위스키 바들이 탄생한 계기였던 싱글 몰트 파동(2007-2010년)을 겪었으며, 2차 와인&위스키 파동(2020년-현재)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 현상들의 공통점은 술이 주는 취기가 아닌 맛에 대한 호기심이었고, 이가 증류식 소주에 대해 발현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다만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일상과 분리된 전통에 속한 것이었던 증류식 소주가 트렌드의 옷을 입고 다시 등장했을 뿐이다. 일종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

취기를 배척하고 맛만 즐기는 고고한 음주문화를 이룩하자는 청교도적 관점에서의 이야기는 아니다. 고대로부터 술이 주는 취기는 많은 역사와 업적을 이룰 수 있게 한 원천이고, 마법과 같은 순간을 선사했던 요소였다. 오죽하면 생명의 물AQUA VITAE이라고 불렀을까. 더불어 희석식 소주에 대해서도, 이젠 그 역사로 말미암아 일종의 전통주로 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희석식) 소주는 한국의 술이라는 인식이 팽배하기도 했고, 역사의 격류 속에서 이가 대중에게 선사한 위안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국내 희석식 소주의 출하량 축소, ABV 0% 맥주와 위스키를 위시한 진, 럼, 데킬라, 꼬냑 등프리미엄 스피릿 시장의 전 세계적인 성장 같은 현상을 볼 때 주류 시장에서 일종의 패러다임 변화가 발생하고 있는 것 만은 틀림없다. 그리고 그 변화의 원동력은 가치 소비로 명명된 소비 행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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