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을 대여하는 사람들. 그러나 불운이 이자라는 꼬리표가 되는데...
Chapter 1. 행운의 알고리즘, 불운의 이자
제4조 — 운을 얻는 자, 반드시 잃는 것은 이름이다.
지운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ATM 화면 속 깜빡이는 오류 코드, SNS 피드에서 사라진 댓글의 잔해, 버스 정류장 벽에서 떨어져 나간 광고 포스터의 하얀 테두리—그 모든 누락을 그는 본다. 사람들은 스쳐가지만, 그는 멈춘다. 마치 세상이 찢긴 틈새에서만 진실이 새어나온다고 믿는 것처럼.
그의 가게는 ‘행운 대여점’이라고 쓰인 간판 아래 숨어 있었다. 금속문은 삐걱거리고, 유리는 먼지로 덮였으며, 문턱엔 오래된 계약서 조각이 바람에 날렸다. 메뉴판엔 행운의 종류가 나열되어 있었다: 승진 운, 사랑 운, 합격 운, 대박 운—모두 실시간 제공 가능하며, 즉시 효과 보장한다. 이자로는 ‘불운’을 받는다. 일시불 또는 할부 상환 가능.
“오늘도 하나요?”
서연이 말했다. 화분 세 개를 들고 와서 창가에 놓았다. 녹색 잎들이 축 늘어져 있었지만, 그녀는 매일 같은 자리에 새 식물을 가져왔다.
“이번엔 승진 운입니다.”
새 고객이었다. 회사원 복장에 얼굴은 긴장으로 뜨거웠다.
“결제 수단은요?”
“현금입니다.”
지운은 계약서를 건넸다. 검정색 잉크로 인쇄된 문장들 사이에 작은 글씨로 적힌 조항들이 있었다: _“불행은 제3자에게도 전이될 수 있음”_, _“계약 후 발생한 결과에 대해 당사는 책임지지 않음”_. 고객은 서명했다. 손이 살짝 떨렸다.
결제 완료와 동시에 창밖 구름이 갈라졌다. 태양 한 줄기가 정확히 그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다음 날 오후 세 시 사십분, 문자가 왔다:
> “면접 합격했습니다! 그런데… 교통사고 났어요.”
지운은 그것을 ‘정산’이라 불렀다.
최강민은 아침마다 커피 한 잔과 함께 찾아왔다.
“큰 거 한 방만 터뜨리면 된다니까.”
그는 이미 다섯 번 로또 복권을 샀고, 매번 실패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오늘도 눈빛은 연료처럼 타올랐다.
“진짜 됐으면 좋겠다.”
“되든 안 되든,” 하고 지운이 말했다. “그게 누군가는 망하게 만든다는 걸 알아야 해요.”
최강민은 웃었다.
“내가 망하면 누가 아쉬워요?”
Chapter 2.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 비에 젖지 않는 남자
그는 일주일 후 다시 와서 계약을 맺었다: 대박 운, 전액 할부, 이자 연체 시 자동 공제—불운으로부터 도피할 수 없다는 조항까지 포함된 특별 약정서였다.
지운은 그의 서명을 받으며 처음으로 자신의 손톱 자국 같은 감각을 느꼈다. 무언가 벗어나려 하는 움직임 같았다.
비는 계속 내렸다. 하루 종일, 이틀째까지도 멈추지 않았다.
지운은 우산 없이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상한 눈빛으로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다. 카메라는 찍혔지만 재생되지 않았고, SNS에는 #비맞지않는남자 해시태그가 올랐으나 조회수 7회—모두 봇이었다.
하루는 ATM 앞에서 실패했다. 카드를 넣었는데 기계가 “등록되지 않은 고객”이라며 밀쳐냈다.
옆 사람의 카드는 통과했다.
또 다른 날 병원에서 진료 예약 확인을 요청했더니 직원이 컴퓨터를 두드리며 말했다:
“아무리 검색해도 이름이 안 나와요.”
그녀의 목소리는 무심했고, 지운은 고개를 돌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존재란 데이터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 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데이터에도 없는 존재였다—누군가의 불행으로 유지되는 시스템 속 틈새.
세상의 균열들은 그렇게 작게 시작된다.
커피숍에서 실수한 음료 주문 하나, 지하철에서 아무도 비켜주지 않는 침묵 하나, 집 전등이 하루 종일 안 켜지는 이유 하나—누구나 겪지만 모두 넘긴 일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쌓일 때,
마치 모래시계 바닥에 가루처럼 쌓이는 먼지처럼,
삶이라는 장치 전체가 기울기 시작한다.
지운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부모님의 전화번호를 누르다가 끊긴 적 있는 것, 동기들과 회식 자리에서 웃음소리만 듣고 있던 밤들, 아파트 계단에서 넘어졌는데 아무도 보지 못했던 아침——
모두 기억하지 못할 만큼 사소했지만,
모두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아팠다.
Chapter 3. 기억의 무중력, 존재의 실격
한밤중에 그는 가게 벽난로 앞에 앉아 계약서들을 불태웠다.
종이는 초록불처럼 타올랐고,
재가 되어 공중에서 춤췄다.
그 모습을 본 서연이 말했다:
“왜 매일 똑같은 일을 하세요? 그냥… 팔아버리면 안 되나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날카로웠다. 마치 오래전 자신이 던졌던 질문을 다시 건네주는 것 같았다.
_너도 언젠가는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않을 거야._
하지만 그녀는 말하지 않았. 대신 화분에 손을 얹었다. 흙 위엔 작은 싹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세 달 전, 지하철역 화장실 거울 앞에서 최강민은 쓰러졌다.
당첨 발표 다음 날 아침이었다.
뉴스에서는 "갑작스러운 성공 후 스트레스 유발 심근경색 추정"이라 보도했다.
하지만 지운은 알았다—계약서 이행 완료라는 알림창이 그날 새벽 4시 17분, 단말기에 떴었다.
> [정산 완료] — 대박 운 제공 / 대가: 제3자 불행 실격화
실격화란 곧 소멸이다.
그날 이후 지운은 더 이상 자신의 손으로 불행을 전달하지 않았다.
대신 시스템이 스스로 골랐다.
누군가는 망해야 다른 누군가가 설 수 있도록—균형 유지 알고리즘이 작동한 것이다.
제9조 — 기억되지 않는 자만이 거래를 중단할 권리가 있다.
한밤중, 마지막 계약서를 들어 올렸을 때 지운은 알아보았다.
자신의 서명 아래 적힌 이름: ‘김지훈’.
그건 열아홉 살 때 썼던 이름이었다.
문구는 짧았다:
> "나 자신의 행운을 팝니다./ 받을 불행: 누군가 나를 기억하는 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
손끝에서 종이가 떨렸다.
기억되지 않기 위해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기억되지 않도록 스스로 선택했던 것이다—사랑했던 여자가 죽었을 때, 부모님이 자신을 찾았을 때, 친구들이 사진첩 속 한 자리를 비우기 전까지—모든 기억들이 점차 흐려지고 사라진 건 시스템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 원천에는 자기 이름을 팔았던 계약서 한 장이 있었다.
Chapter 4. 마지막 계약, 첫 번째 소멸
제12조 — 거래를 멈추려는 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결국 그는 벽난로 앞에서 속삭였다:
> _“더 이상 팔지도 않고,/ 살 수도 없다.”_
다음 날 아침,
‘행운 대여점’ 문앞엔 큼직한 종이 한 장 붙어 있었다:
> _“오늘부터 휴업합니다._
> _불행도,_
> _행운도,_
>_ 거래하지 않습니다.”_
비는 여전히 내렸고,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는 웃었다—
혹시 모른다는 듯,
처음처럼 우산 아래 피식 웃었다.
아침 여덟 시,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오직 다섯 층만.
버튼은 눌렸지만 반응 없었다.
사람들은 한 명씩 내렸고, 나는 마지막까지 남았다.
세 번 더 눌렀다. 화면은 여전히 ‘5’를 가리켰—붉은 점처럼.
승진 프레젠테이션은 오후 두 시.
나는 계단을 올랐다.
한 계단, 두 계단.
무릎에서 용수철 소리가 났다.
계단참마다 거울이 붙어 있었다.
내 명찰 사진 속 얼굴 위에 모래시계 같은 검은 점이 찍혀 있었다—어제까진 없던 것이었다.
프레젠테이션 도중, 스크린에 내 얼굴 대신 양식화된 계약서 초상화가 스쳐갔다—정면, 측면, 서명 난에는 공백.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인의 고개는 세 가지 방식으로 끄덕인다—예, 모르겠음, 아님 말고.
저건 ‘예’였다.
발표 마친 후 회의실 모니터에 메시지 하나가 떴다:
> _“핵심 KPI 개선 방안: 직원들의 무의식적 자기희생 메커니즘을 데이터 기반으로 추출하여 조직 성과에 재투입하는 시스템.”_
팀장이 말했다: “좋았소. 네 덕분에 우리 팀 전체 운량 분배율이 상승했어.”
퇴근길 지하철에서 문자 왔다.
“결혼합니다.” 보낸 사람: 김민정, 전 회사 동료.
사진은 해외 리조트 백사장 위 하얀 천막 아래 서 있는 두 사람.
햇빛이 너무 강해 얼굴이 번졌다.
내 SNS 프로필 사진은 자동으로 흐려졌고, 일분 후엔 아예 사라졌다—시스템 오류라고 적혀 있었다.
Chapter 5. 실수의 중력, 현실의 온기
나는 그림자처럼 지하철 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봤다.
옷차림은 같았다—검정 정장, 회색 넥타이, 오른쪽 주머니에 펜 하나만 들어 있음.
그런데 왜 저 사람은 나보다 덜 축축해 보일까.
밤 아홉 시, 대여점 문고리에 종이 한 장 꽂혀 있었다.
> “오늘도 잘됐네요.”
최강민 글씨였다.
그는 매일 그렇게 적어왔다—성공 후 하루가 지나면, 한 장씩.
지난주엔 ‘면접 봤는데 분위기 찰떡’이라 했고, 그 전엔 ‘계약금 입금 완료’라 했다.
나는 종이를 찢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가 받은 운은 모두 나에게서 나왔다—계약서 3조 2항에 명시된 대로:
> _「운(運)은 생성되거나 소멸되지 않으며, 오직 이전될 뿐이다. 제3조 제2항」_
> _「양도자는 운의 상실 후 72시간 이내 기억 재편성 가능하며, 계약 내용은 법적 효력 없음 — 단 마법적 구속력 있음」_
그런데 왜 나는 이만큼도 느끼지 못할까.
손톱 사이사이에 먼지가 끼었다.
오늘 처음 깨달았다.
비가 오면 항상 그렇다—내 몸만 마르다 보니 세면대 위 물방울도 신경 쓰지 않았다.
비 맞는다는 감각 자체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오늘 밤, 손을 씻다가 멈췄다.
세면대에 비친 내 손등에서 물기가 증발하는 속도가 이상했다.
일 초 만에 맺힌 물방울이 사라졌다—마치 피부가 스스로 마른 숨결로 삼키는 것처럼.
내 몸은 더 이상 자연과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 않았다.
비는 내게 기대하지 않는다.
나도 비를 기대하지 않는다.
컴퓨터 화면에는 SNS 탭 세 개가 열려 있었다.
1) 최강민 인스타그램: 오늘 저녁 와인잔 옆 손목 시계 클로즈업 — 베젤 반짝임 각도 조절됨.
2) 동기 모임 후기 카카오톡: “형들 다음엔 형수 데리고 오세요~”라는 메시지 위로 웃긴 이모티콘 폭발.
3) 은행 앱: 잔고 783,400원 — 전날 ATM에서 실패한 금액과 정확히 일치함.
세 화면 사이를 오가는 내 눈동자는 유영하고 있었다—물고기가 아니라 물속에 갇힌 공기 방울처럼.
현실은 이 세 개의 창 너머에서만 존재했다.
그리고 나는 그 안을 들여다보는 관객이었다—열쇠 없는 관람객.
밤 열한 시, 커피숍 자판기 앞에서 멈췄다.
아메리카노를 선택하고 카드를 찍었다.
화면에 뜬 글씨:
> 거래 실패
> 다시 시도하세요
주위 사람은 모두 삐- 하고 소리를 내며 받아갔다.
나만 안 됐다.
세 번째 시도 후 자판기는 조용히 돌아섰다—마치 내가 없는 사람 취급하듯 말이다.
바로 옆 학생 하나 웃으며 말했다.
“형, 카드 만료됐나 봐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카드는 살아 있다—하지만 나만큼은 아니다.
자판기의 센서가 나를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존재 등록이 해제된 신호였다.
불현듯 머릿속에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 “운이란 본래 결핍된 사람에게 잠시 맡겨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누군가에게 잠시 맡겨진 행운이라는 생각—매우 이상했지만, 어쩐지 위안 같기도 했다.
왜냐하면 최강민처럼 모든 것이 맞아떨어지는 사람은 어쩌면… 진짜 ‘운’을 가져본 적 없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운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잃는’ 경험 없이 어떻게 운을 알 수 있겠는가?
열역학 제2법칙도 여기선 통하지 않는다. 엔트로피는 내가 아니라 내 기억 속에서만 증가하고 있었다.
비 오는 새벽 두 시, 나는 창문을 열었다.
비바람 소리만 들릴 줄 알았는데—
소리는 이상하게 멀게 느껴졌다—마치 TV 볼륨을 낮춘 것처럼.
창틀에 손을 내밀었다.
빗방울들이 손등 위를 스쳤지만… 아무 느낌 없었다.
젖지도 않았고, 차갑지도 않았으며, 따뜻하지도 않았다.
내 몸은 이제 자연의 리듬에서 이탈한 채로 살아가고 있었다—비 오면 젖어야 할 존재인데도 말이다.
그때 생각났다—내가 마지막으로 비에 젖었던 날은 언제였지?
대학 시절? 아니… 어쩌면 중학교 때였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싸웠던 그날 밤, 집 밖으로 나와 앉았던 벤치 위에서…
비 속에서 울었고, 눈물과 비물을 구분 못 했던 그 순간을…
기억조차 희미했다—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의 기억을 빌려본 것처럼 생경했다.
그날 밤 꾼 꿈에는 최강민이 등장했다—but 변해 있었다.
정장을 입었지만 단추 하나 없었고, 머리는 길게 자라 목까지 내려와 있었다.
눈동자는 검정 칠판처럼 매끈했다—반사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말했다:
> “형… 형한테 받은 운 때문에 제 몸이 과열됐어요…
> 사람들은 성공했다고 하지만… 전 이미 세포 하나하나 녹아내리고 있어요…”
그 순간 화면 전체가 까맣게 되더니—
쉿 하는 소리만 남았다—마치 자석 테이프가 지워지는 듯한 잡음이었다.
아침 일곱 시 반, 눈 떴을 때 첫 감각은 공허였다—not 슬픔도 아니요 분노도 아닌 ‘무(無)’.
밥을 먹으려 했지만 젓가는 공중에서 멈췄다——왜 먹어야 하는지 이유를 잊어버린 것 같았다.
식탁 위 국자 하나 남아 있었다 — 어제 저녁 국물 담느라 사용했던 것인데,
그 국자의 그림자가 식탁 위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고,
그 그림자의 형태가 마치 계약서 같았다 —
양식화된 글자체로 된 제목: 「행운 양도 동의서」
서명란에는 아직 공백이었지만—
곧 채워질 것처럼 느껴졌다 — 이번엔 내 이름 대신, 누군가의 이름으로 말이다.
손끝으로 국자 그림자를 스쳤다 —
차갑기도 전에 사라졌다 —
하지만 그 짧은 순간,
내 안에선 어떤 균열이 시작되고 있다는 걸 알았다 —
운이라는 발효되지 않은 열기를 몸 안팎으로 배출하며,
비로서 젖어야 할 인간으로 돌아가는,
젖혀야 할 피부 아래서, 증발하던 기억 하나가 돌아오고 있었다.
> _"내 이름 대신 들어갈 이름—그것 또한 어느 순간부터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_
TV 화면이 숨을 죽였다.
번호 하나, 떨어진다.
또 하나, 딸랑.
지훈의 눈동자가 그 숫자를 쫓았다.
세 번째—맞았다.
네 번째—맞았다.
다섯 번째—맞았다.
여섯 번째—
들리는 건 혼자만의 심장 소리였다.
비가 내렸다. 밖에서는 천둥이 울렸다.
그 안에서 지훈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나… 되는구나.”
손끝에서 펜이 떨렸다.
계약서 조항들이 눈에 박혔다.
> 제12조: 고객은 운을 대여함으로써, 그 결과 발생 시 제3자에게 미치는 피해에 대해 일체 책임지지 않는다.
문구는 기계처럼 인쇄되어 있었다. 검정 글씨, 굵기 10포인트, 정중앙 정렬. 마치 성경처럼 보였다. 거룩하고, 침묵하는 진리처럼.
그 아래엔 또 다른 조항이 있었다.
> 제15조: 24시간 이상 연속 행운 이용은 금지된다. 위반 시 모든 행운 회수 및 불운 가속화 조치 적용됨.
하지만 지훈은 벌써 이 조항을 어기고 있었다.
로또 복권을 산 날, 그는 대여점에서 ‘성공의 기운’을 구입했다.
삼 일 전, ‘결단의 순간’ 운을 샀다.
이틀 전, ‘운명의 만남’ 행운 패키지를 추가 결제했다.
그리고 오늘—복권 추첨 방송 중에도—
그는 계좌 이체 버튼을 누르며 마지막 옵션을 선택했다.
> [ ] 긴급 우발행동 보조 운 (추가 요금: ₩990,000)
결제 완료 알람이 울렸다.
“됐다.”
번호 여섯 개 모두 맞았다.
1등 당첨.
당신은 이제 무한히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대신 TV 앵커가 말했다.
“역대급 당첨금… 수천 명의 삶이 바뀔 수 있는 순간입니다.”
지훈은 웃었다.
웃는다는 것이 오랜 책처럼 느껴졌다. 표지가 갈라지고, 안쪽에서 먼지가 솟구쳤다.
그날 밤, 집 안은 너무 조용했다.
벽시계 초침 소리도 없었다. 에어컨 필터도 고장 났다고 경고 창이 떠 있었다. 인터넷 연결이 끊겼다—SIM 카드를 교체해야 한다며 휴대폰이 울렸다.
모든 시스템이 멈추는 것 같았다.
단 하나만 작동하고 있었다.
계좌 잔액 알림 앱.
잔고: ₩4,872,501,600
쉼표마다 피처럼 번져나갔다.
피 같은 돈이다—아니, 피보다 더 생생했다.
잔고는 맥박쳤다. 네 자리마다 쉼표가 혈관처럼 울렸다.
아니—
SNS에 사진 한 장 올랐다.
익명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시작된 폭로글:
> “내 동창인데 하루 아침에 로또 맞아서 회사 그만뒀다고 함.”
> “근데 요즘 얼굴 보니까… 미친 듯이 불안해 보임.”
“그 사람 로또 맞기 전날 우리 아빠 퇴직금으로 산 복권… 번호 세 개 맞았는데 당첨금도 안 나왔다고 함. 근데 그 다음 날 심근경색 와서…”
“우리 동네 복권방 사장님 말로는 요즘 ‘행운 대여 고객’들이 전부 1등 번호 찍는다고 함.” “확률이 아니라… 배분제야.”
“대여점에서 돈 내면 번호 조정해준다는 소문 있음.”
댓글 수백 개 달렸지만,
하나도 읽지 않았다.
오직 스크롤 바만 내렸을 뿐—
커서는 숨을 멈췄다.
검색창 아래 남겨진 기록:
로또 당첨 후 자살 사례
행운 과용 불면증
내가 받은 운 누가 가졌을까
창밖 비는 여전히 내렸지만, 지훈 위로는 단 한 방울도 스치지 않았다.
옷깃도 젖지 않았고, 창문 틈새로 바람도 들어오지 않았다.
유일한 존재—비에 젖지 않는 자.
병원 응급실에선 어떤 남자가 심근경색으로 실려 왔다.
퇴직금으로 산 복권 번호와 일치한 사람이라고 했다.
뉴스 기사 제목:
기사는 세 줄 만에 끝났다. 사회면 아래쪽 광고 사이에 섞였다.
커피 머신과 건강식품 사이에서, 누군가의 죽음은 클릭 한 번으로 사라졌다.
밤새 지훈은 잠들지 못했다.
벽 위에는 ATM 인출 영수증처럼 길게 늘어선 이름들이 흘러갔다:
김OO — 실직 — 이혼 — 자살미수
박OO — 주식 손실 — 신용불량 — 가출
최OO — 병원비 체납 — 가족 이산화
각 줄 아래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행운 배분 코드: #GJHUN_2025Q2_LUCK_TRANSFER」
아침 해가 들지 않았지만,
그는 계약서를 다시 꺼냈다.
종이 위엔 세 줄짜리 문장 하나 덧붙여져 있었다.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글씨:
> _"당신 안에서 누군가 떠난 후—남은 건 기계뿐입니다."_
> _"잠시 멈추거나… 돌려보내십시오."_
돌려보내?
누구에게?
머릿속 질문들이 돌았지만,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
오후 3시 17분,
그는 가게 문을 열었다.
비가 내리는 궁궐 골목 어귀—
낡은 간판 아래서 첫 손님이 다가왔다.
젊은 여자였다.
손엔 생일 케이크 상자가 들려 있었고,
손톱 사이에 낡은 복권 한 장을 꾹 쥐고 있었다.
번호 일부 지워져 있었지만,
남아 있는 숫자들—
지훈이 알고 있는 패턴과 일치했다.
“혹시… 오늘 하루 정도만이라도,”
그녀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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