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니 다 지나왔더라고요.
얼마 전 회사 친한 동생이 8년 전 오늘이라며 클라우드에서 푸시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아들 쌍둥이를 낳은 친구 집에 모두 모여 오늘 하루 힘들었을 엄마를 대신해 아기 한 명씩을 맡아 안고 우유병을 물려주고 있는 사진이었는데 퇴근 후 어린이집에서 픽업해 함께 갔던 3살 린아도 거기에 있었다.
낯선 집, 낯선 사람들, 작고 낯선 아기 사이에서 내 옆에 딱 붙어 아마도 사진을 찍고 있는 이모를 바라보며 불안한 눈빛으로 엉거주춤 서 있는 보송보송한 3살의 딸아이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오랜만에 회사 친구들이 다 같이 모여 웃고 떠드느라 정신없는 와중에 혼자만 카메라와 눈 맞춤하고 있는 사진 속의 아기아기 한 모습은 지금의 린아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어 그립기까지 하다.
8년 전의 사진 속 쌍둥이 아가들은 이제 씩씩한 초등학교 2학년 형님들이 되었고, 사진을 보내준 동생은 100일의 기적을 간절히 바라는 또 다른 뉴비 쌍둥이 아들 엄마가 되었다. 그래도 동생은 10년 가까이 육아 전쟁을 치르는 언니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겪어봐서인지 100일이 지나면, 돌이 되면 좀 더 나아질 거라는 언니들의 응원을 기운 삼아 잘 버티고 있는 듯하다.
'워킹맘 0년 차 더는 못 하겠어요.'라는 어느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우연히 보고, 기나 긴 겨울방학을 또 돌봄 교실에서 보내며 차가운 도시락 밥을 먹을 아이 생각에 더는 못 버티겠다는 엄마의 애절한 마음이 너무 느껴져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그래도 그 세월 다 보낸 산증인이 여기 있다며 좋은 날은 곧 오니 조금만 더 버티라는 선배 엄마들이 남긴 수십 개의 댓글에 다시 힘을 얻는다는 0년 차 워킹맘에게 나도 작은 응원의 마음을 보태본다.
돌아보니 순식간에 그 시간이 지나있더라.
세상 민감한 '등센서'를 타고난 린아는 바닥에 등이 닫는 순간 깨버리는 통에 돌 전까지 낮잠을 잘 때는 2시간이고 3시간이고 안고 있어야 했고,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 다가오면 "네가 가라 어린이집!" 하며 남편과 투닥투닥 메신저로 하원 순번을 정하던 그런 때가 있었다.
불과 작년까지도 우리 부부가 동시에 잡는 저녁 일정은 생각도 할 수 없었고, 학원 스케줄에 따라 나의 스케줄을 고스란히 맞춰야 하는 원치 않는 헬리콥터 맘의 일상이 따로 없었는데 이제 학원 셔틀버스도 알아서 타고, 급할 때는 컵밥도 돌려먹을 줄 아는 초등 고학년이 된 린아를 보며 그 시기를 지나 온 나도 딸아이도 그렇게 대견스러울 수가 없다.
아이들은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어느 날 문득문득 자라 있고 엄마가 방과 후 교실 발표회에 왜 오지 않았는지, 왜 나는 돌봄 교실에 가야 하고 이 학원, 저 학원에서 종일을 보내야 했는지 그런 것들을 되묻거나 기억하지 않는다. 지난주에 친구랑 다퉈서 속상했던 이야기를 엄마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지, 내가 좋아하는 친구의 이름을 알고 있는지, 오늘은 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줬는지 자신을 정말 사랑하고 있는 엄마, 아빠의 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자신이 사랑받고 있음을 스스로 충분히 알 수 있는 그 마음을 더 더 오래오래 되새기고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는 나도 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어느 기자님이 남긴 말이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요즘, 중요한 것은 정말 그 마음이다. 온 마음을 다해 아이를 사랑하고 내 삶을 사랑하며 그 시간을 함께 지내온다면 어느새 아이도 엄마, 아빠의 삶을 존중해 줄줄 아는 이타적인 마음을 지닌 아이로 훌쩍 자랄 테다. 내가 행복해야 내 아이도 행복하다는 그 마음, 나의 삶을 사랑하며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그 마음을 꺾지 말기를. 내 딸이 살아갈 미래에는 더 나은 세상이 오길 바라며,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엄마들과 또 나에게 토닥토닥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