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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담 Apr 28. 2024

프랑스 리옹,
"다양한 인간 군상"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31 _ Lyon, France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프랑스 리옹,

첫 번째 이야기: 다양한 인간 군상.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출발해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들어왔다. 지중해 연안을 따라 몽펠리에, 님스, 아비뇽을 거쳐 리옹으로 가는 열차였다. 처음 여행을 기획할 당시, 남프랑스 지역을 포함한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마르세유, 니스, 액상프로방스' 도시들을 방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위스로 가는 동선이 꼬일뿐더러, 프랑스에서만 유난히 '유레일 패스 예약금'을 요구하는 구간이 많았기에 포기하게 되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방문해 렌터카를 빌려 남프랑스를 여행하겠다고 다짐하였다.


    프랑스를 가로질러 가는 중, 초원 위로 허름하고 지붕이 다 무너진 집이 보였다. 이름 없는 누군가의 소유물 같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되었을지 모를 집에 괜히 눈길이 갔다. 저 집도 예전에는 새 집이었고 한 가족의 행복한 보금자리였다. 한평생 누군가를 따뜻하게 품어주며 본연의 목적을 다 하고, 어떤 가족들의 예쁜 기억을 함께 만들어준 집이다. 지금은 다 무너지길 기다리고 있지만, 과거를 추억하며 행복해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에게는 스쳐 지나가는 보잘것없는 집이겠지만, 나에게 저 집은 흔적을 지닌 아름답고 특별한 건물처럼 느껴졌다.


    남프랑스 풍경은 기대했던 것처럼 매우 아름다웠다. 기차 창문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햇빛의 온도와 지중해 풍경에서 오는 시원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 내륙으로 조금 더 진입했을 때는 싱그러운 푸른 빛깔의 남프랑스 '바인야드 (vineyard)'를 볼 수 있었다. 풍경을 감상하며 졸기를 몇 번 반복했을까 어느덧 7시간이 훌쩍 지나 리옹 파듀(Lyon Part-Dieu) 역에 도착했다. 





리옹의 첫인상



    프랑스 리옹의 모습은 스페인, 포르투갈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프랑스 특유의 테라스 디자인, 지붕의 모양, 그리고 모서리가 둥근 곡선 형태의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불어'만으로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나라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프랑스'에 환상이 있었고, 꼭 방문해보고 싶었던 만큼 마음속 설렘을 감출 수 없었다.



    프랑스의 첫인상은 다행히 내가 상상하고 기대한 그대로였다. 어쩌면 "파리"가 아닌 "리옹"이기에 이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사람이 많지도, 거리가 지저분하지도, 도시가 분주하지도 않았다. 프랑스 제 2, 3의 도시이자 여유 있는 현지인의 삶을 구경할 수 있었다. 특히, 길 위의 리옹 시민들에게 대체적으로 비슷한 인상을 느꼈다. 시크한 듯 무표정을 지었지만 그렇다고 불행한 얼굴은 아니었다. 친절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시하는 태도는 아니었고, 단정하면서도 개성 있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벨쿠르 광장 (Place Bellecour)





리옹과 생택쥐페리, 생택쥐페리와 어린 왕자



    리옹은 프랑스에서 파리, 마르세유를 이어 3번째로 큰 도시이다. 프랑스 남쪽 지방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며, 스페인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 길에 반드시 지나게 되는 곳이다. 그러나 이 도시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굳이 이틀을 머물기로 한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 유명한 '어린 왕자' 문학작품을 집필한 '앙트완 드 생택쥐페리'가 태어난 고향이며 도시 곳곳에 어린 왕자의 흔적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리옹이라는 도시에 '생택쥐페리'의 존재는 많이 특별한 듯하다. 아무래도 전 세계적으로 널리 칭송받는 문학인 '어린 왕자'의 영향력이 클 것이다. 특히, 리옹의 대표 공항 이름이 '리옹 생택쥐페리 공항'인 만큼 생택쥐페리는 리옹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표적 인물 중 하나이며, 리옹 사람들의 자부심을 드높이는 영향력을 지닌 인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린 왕자'의 오랜 팬으로서 영광스러운 순간이었다.


    소설 '어린 왕자'가 시대를 초월한 명작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인물들의 대화 속 공감과 위로를 불러일으키는 주옥같은 문장들이 많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의 순수 시선에서 보는 어른들의 모습, 그리고 여행 중 만난 친구들과의 작은 대화들을 통해 우리를 돌이켜보게 만든다. 작가 생택쥐페리는 각 등장인물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부드럽게 녹여냈고, 작품을 읽다 보면 어느새 어릴 적 나의 시선으로 돌아가 순수했던 내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마주한다. 때때로 그들에게 많은 상처를 받기도 하고, 연민을 느끼기도 하며, 이해하지 못할 일들을 경험하며 분노한다. 이에 인생을 깊이 경험할수록, 나이가 들어 사회적으로 성숙해질수록 '어린 왕자'를 읽을 때 드는 생각과 감정이 매번 달라지게 된다. 인생을 바쁘게 살다가 어느덧 앞만 보고 먼 길을 달려왔다는 생각이 들 때, '어린 왕자' 책을 펼치게 된다.






다양한 인간 군상들



    사람들은 '범주 안에서 분류하는 것(Categorizing)'을 좋아한다. 사람들을 파악함과 동시에 그들을 대하는 방법, 갈등을 피하는 방법 등을 활용해 관계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예측불가능한 위험 변수들을 최소화하려는 본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혈액형'이나 '별자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름 이성적이고 통계적 특성을 지닌 'MBTI'가 꽤나 오랫동안 유행하고 있는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르다. 각자만의 개성과 철학을 가지고 있고, 인생 경험과 지식이 있다. 따라서 사람들을 분류하려는 시도 자체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인생에서 겪은 많은 사람 경험을 통해 나만의 데이터를 쌓고, 비슷한 특성과 느낌으로 사람 유형을 분류하게 된다. 사회 경험을 하다 보면 새로 만난 사람이라도 그들의 성격과 취향, 관심사를 금세 파악할 수 있고, 나와 결이 잘 맞는 사람인지 쉽게 구별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도 왠지 모르게 살아오며 만난 적 있었던 사람들처럼 익숙하게 느껴진다.


다양한 인간 군상

        어린 왕자의 시작은 상상의 의미를 담은 코끼리로 시작한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이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시선을 담아내며 상상력의 아름다움, 단순히 보이는 것 너머 그 이상의 중요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시간이 한참 지나 그 아이는 '비행기 조종사'가 되었고, 어느새 그조차 예쁜 상상력을 잃어버린, 세상의 현실을 받아들인 고리타분한 어른이 되어있다.

어린 왕자가 여행을 하며 만난 다양한 어른들이 있다.

'왕'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을 본인의 신하로 생각한다. 권력과 존경을 열망하지만 그렇게 능력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무능력하지만 타인의 위에 있으려는 사람.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 사람. 겸손할 줄 모르는 사람. 진정한 권력과 존경을 얻기 위해서는 오히려 본인이 먼저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허영심이 많은 남자'는 늘 타인의 관심과 환호를 원한다. 삶의 중심, 자신의 행복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에 맞춰지다 보면 정작 그 중심에 자기 자신이 없는 느낌이다. 주관이 없으며 타인의 시선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법을 모르며, 다른 이의 관심을 갈구할 때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만이 남을 것이다.

'술꾼'은 가장 마음이 갔던 어른이다. 부끄러운 것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지만, 부끄러운 것이 뭔지 물었을 때는 자신이 술을 마시는 것이라 했다. 과거의 실수들에 벗어나지 못해 고통스러운 기억에 무한히 갇혀사는 사람 같았다. 끊어낼 수 없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의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지만 스스로 고통 속에 가두어 행복할 기회조차 포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가'는 별을 소유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작 왜 소유하려는지에 대한 이유는 찾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저 더 많이 가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 보게 만든다. 욕심과 과한 소유에 대한 허무함을 생각하게 되었고, 속물적 생각에 대한 경계심을 느꼈다. 삶에는 그저 물질을 소유하는 것보다 분명히 더 많은 가치가 있다.

'가로등을 켜는 사람'은 끝없이 가로등을 껐다 켰다 반복하는 사람이다.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이유는 알지 못해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꾸준함과 성실에 대한 가치를 배울 수 있게 되었다.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한다는 것은 쉽게 가질 수 없는 고귀한 미덕임이 분명하다.

'지리학자'는 정작 자기 별에는 뭐가 있는지 모르면서 다른 별들에 관심이 많다. 정작 앞에 놓인 중요한 것은 무시한 채 다른 의미 없는 것들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어른같이 느껴졌다. 또한 저 넓은 세상을 직접 탐험하고 경험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의해서만 자신의 세상을 꾸려나가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용기 또한 쉽게 가질 수 없는 가치이다.

'별을 세는 사람'은 끊임없이 별의 숫자를 세는 사람이다. 너무 바쁘게 별을 세다 보니 자신의 삶은 온데간데없고 일에 지배당하는 어른의 모습으로 비친다. 일에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며 인생을 즐길 줄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반대로 여행을 하며 만난 소중한 친구들도 있다.

'뱀'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독을 가지고 있지만 그 누구도 쉽게 헤치지 않는다. 어쩌면 지혜와 자비심을 가진 사람을 대표하는 듯했다. 어린 왕자가 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친구로서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는 캐릭터다. 힘이 있지만 그 힘을 숨기고 진정으로 상대방을 이끌어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

'여우'는 타인에 대한 경계가 심하지만 속으로는 진정한 관계를 원하며 신뢰에 대한 깊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이를 대변하는 캐릭터가 아닐까 생각이 들고, 상처받기 무섭기에 그 누구와도 쉬이 관계를 이어나가지 않으려는 방어적인 사람이다. 쉽게 떠나갈 사람이라면 쉽게 맘을 주지 않는 내가 투영되기도 했고, 헤어짐의 슬픔이 싫어 소중한 인연들을 떠나보내는 미련함을 느끼기도 했다.

'장미꽃'은 어린 왕자가 사랑한 사람이다. 그녀는 자신의 연약함과 섬세함을 숨기며 어린 왕자의 관심과 돌봄을 필요로 한다. 사랑 감정에 대한 복잡성과 어려움을 배울 수 있었고, 사랑하는 이에 대한 특별함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사랑 앞에서 때론 유치해지기도 하고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그 뒤틀어진 감정 속 진정한 속마음은 상대방을 너무 사랑하기에 상대방의 관심을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조금 더 성숙한 사랑 표현 방법에 대해 배우고 진정한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시간이 한참 흘러 지금 쓴 글을 볼 때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미래 그때의 달라진 생각과 감정들을 기대하게 된다. 그때의 내 모습과 삶의 경험치를 기대하게 된다. 나는 과연 어떤 인간 군상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나는 과연 때 묻지 않은 어른이 되었나 돌이켜 볼 것이다. 아이들을 진정으로 지켜줄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이 되었는가, 주변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 나이에 맞게 마음의 깊이도 성숙하고 있는가 되물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뭔지 아니?"

"흠, 글쎄요. 돈 버는 일? 밥 먹는 일?"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가령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4시가 가까워 올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4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일인가 알게 되겠지"


"다른 사람에게는 결코 열어주지 않는 문을 당신에게만 열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친구이다"


"사람들은 어디에 있어? 사막은 조금 외롭구나"

"사람들 속에서도 외롭기는 마찬가지야"


행복노트 #28

각박한 현실 속 중요한 가치들을 잃어버리지 않는 성숙한 어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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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스타그램: @domdomkim_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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