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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갈등의 딜레마"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65 _ Zagreb, Croatia

by 김예담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두 번째 이야기: 갈등의 딜레마.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의 이른 아침, 내가 머무는 방에 바닥부터 빛이 조금씩 스며들어왔고, 거리에서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도시의 소음이 조금씩 들려올 때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대략 19세기말 혹은 20세기 초에 지어졌을 것 같은 오래된 숙소에는 에어컨이 없어 열대야를 버텨내기 위해 방에 있는 큰 창문을 열고 잤다. 밤에는 다행히 선선한 바람이 불어 시원한 공기가 방 안으로 들어와 내부 온도와 습도를 쾌적하게 낮춰주었고, 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창문이 바람에 이며 들려주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이제는 습관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를 탐험하는 나는 자그레브에서도 사람이 없는 낯선 거리를 활보하며 지극히 나만의 방식으로 도시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대략적인 방향만 정해놓고 무작정 돌아다니며 발견하는 장면들을 하나씩 담았고, 오후에 있을 헝가리행 기차를 타기 전까지 최대한 많은 기억을 남기고자 내가 인식할 수 있는 도시의 모든 요소들에 최대한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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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크로아티아



내가 크로아티아를 방문했던 2022년 당시, 크로아티아는 유럽연합(EU)에 속한 명실상부 유럽 국가였지만 우리가 익히 아는 여타 다른 유럽 국가들과 결이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이유인즉슨, 당시 '유로존'이라 불리며 '유로(EURO)' 화폐를 쓰는 국가에 포함되지 않아 자국 통화인 '쿠나(Kuna)'를 사용했고, 유럽 내 이민국 통제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솅겐 협정(Schengen Agreement)'에도 가입하지 않았기에 국경을 통과할 때 입국심사가 필수였다.


2023년이 되어서야 크로아티아는 공식적으로 유로존과 솅겐 협정에 가입하며 지금은 여행에 있어 접근성과 편리함이 개선되었고, 지금은 익숙한 유럽여행 방식과 느낌으로 크로아티아를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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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럽여행을 처음 계획할 당시 욕심이 많아 여행하고 싶은 국가들이 많았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처음에는 발칸반도에서의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외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등 도시들도 둘러보며 여행 일정을 하나씩 추가했었다. 다만 계획을 검토하고 수정하는 과정 속 시간과 자금이라는 현실적 벽에 부딪히며 아쉽게도 제대로 된 발칸반도 여행은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발칸반도 여행을 계획하며 해당 지역을 조사하던 과정 중에 깨달았던 부분이 있다. 생각보다 이 지역에 대한 여행정보가 많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사람들에게는 특히나 생소한 지역이며 잘 방문하지 않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한국사람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심지어 유럽인들도 잘 방문하지 않는 곳들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버스나 기차, 관광명소에 대한 정보 등에 있어 직접 공식 웹사이트나 우리나라로 치면 '관광공사'와 같은 정부기관 웹사이트를 방문하며 여행정보를 수집했다.


'왜 사람들이 발칸반도는 많이 방문하지 않을까'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발칸산맥과 아드리아해로 인해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저렴한 물가로 여행 수요가 꽤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언어적으로 잘 통하지 않는 점, 그리고 문화적으로 가톨릭과 이슬람이 만나는 접점에 위치하기에 우리가 평소 생각한 유럽과는 분위기가 조금 상이한 점을 고려해 인기가 적을 수 있다고는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점들을 차치하고도 사람들이 발칸반도를 잘 방문하지 않는 점은 단연 치안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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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최근 일어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전, 유럽 내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벌어졌던 전쟁이 바로 이 발칸반도에서 일어났다. 20세기말 1990년대에 일어난 '유고슬라비아 전쟁'이다.


'유고슬라비아'는 '남슬라브인들의 땅'이라는 뜻으로 과거 1차 세계대전 이후 슬라브인들의 단합을 부추긴 민족주의 '범슬라브주의' 이념 아래 탄생한 국가다. 처음에는 왕국의 형식으로 지금의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를 연합한 거대 국가였다. 발칸반도의 슬라브인들은 세르비아를 필두로 하나로 단결했으며,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요시프 브로즈 티토'라는 역사적 인물에 의해 국가 기반을 다지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티토의 집권 당시에는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영향력이 큰 국가였다. 물론 국가 내부적으로 독립운동, 민족갈등과 같은 크고 작은 문제들은 꾸준히 존재했지만, 표면적으로는 진정한 하나의 국가로 자리 잡기 위한 과도기로 보였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의 중심을 단단히 잡고 있던 티토의 사망 이후 유고슬라비아는 급진적인 변화를 겪으며 과하게 세르비아 중심으로 정책이 흘러갔다. 해결되지 않는 지속적인 갈등이 이어지자 불만을 제기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하는 과정에서 내전이 시작되었고, 범슬라브주의는 와해되었다.


순식간에 무력 충돌이 발생한 발칸반도는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며 상황이 심각해졌다. 상대적으로 지리적 거리가 멀었던 슬로베니아의 경우 금방 독립했지만, 인접국가였던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사이의 전쟁은 4년 이상 지속되며 쉽게 끝나지 않았다. 과거 2차 세계대전 당시 크로아티아 내에서 있었던 세르비아인 학살 사건을 빌미로 유고슬라비아 내 세르비아인들을 단결시켰다. 반대로 민족이 달랐던 크로아티아인들의 경우 전쟁 초기 열세에도 불구하고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격렬하게 저항했고, 당초 목표했던 국토를 성공적으로 수복하며 끝내 독립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민족과 종교가 복잡하게 얽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코소보에서도 전쟁이 일어났고 끔찍한 참사로 이어져 UN 평화유지군이 투입될 만큼 이곳의 갈등은 심화됐다. 결론적으로 2001년이 돼서야 공식적인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유고슬라비아는 해체됐으며, 발칸반도 내의 긴 전쟁은 종식되었다. 문제가 아직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기에 지금도 간혹 위기의 순간이 있지만, 과거의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분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유럽과 국제사회의 개입으로 중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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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자그레브를 여행하는 내내 전쟁의 상흔을 전혀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지만, 분명 아직까지 그들 마음 한편에는 상처가 남아있을 것이다. 21세기까지 지속된 이곳에서의 역사적, 시대적 과도기로 인해 지금껏 많은 이들이 방문하지 않은 게 아닌, 방문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발칸반도 여행은 다음을 기약했다.





갈등의 딜레마



최근 나는 사진에 흠뻑 빠져 살아가고 있다. 처음 카메라를 사고 본격적으로 사진 취미생활을 시작한 지 5년 되었다. 여행 중 사진을 찍으며 사진 실력을 점차 늘려가고, 나름 사진으로 돈도 벌어보며 사진에 대한 자신감이 어느 정도 차오를 때쯤 생각보다 사진의 세계가 훨씬 깊고 전문성이 더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이에 최근 들어 사진의 역사와 유명한 사진작가 그리고 카메라에 대한 기능적, 기계적 이해도를 높이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특히 사진을 공부하다 보면 사진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인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설립한 '매그넘 포토스' 그리고 언론적 공로로 수여되는 '퓰리처상'과 관련된 자료들을 종종 접하게 된다. 이들의 특징은 '르포르타주(reportage)' 즉 다큐멘터리 형식의 보도 사진이며, 과거 종군기자 혹은 사설 사진작가들이 국제적으로 굵직한 사건의 현장에서 기록한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과거 90년대에 찍은 사진들 중에는 유고슬라비아 전쟁과 관련된 사진들은 꼭 등장하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하고 비극적인 장면들은 마음을 아리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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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들의 갈등 안에는 범슬라브주의로 해결되지 않는 깊숙한 민족적 갈등이 있었다. 이전 언급했던 것과 같이 2차 세계대전 당시 크로아티아 독립단체들이 세르비아인들을 학살했던 사건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세르비아 정치인들이 전쟁을 독려하기 위해 활용한 정치적 장치일 수 있지만, 어쨌든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세르비아인들이 분노를 느낀 것은 사실이며, 그로 인해 두 진영 간의 더욱 큰 갈등을 유발했다.


이를 통해 비춰볼 수 있는 것은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이후에 벌어질 수 있을 수많은 사건들을 예방하거나 촉진한다는 사실이다. 과거 발생했던 폭력과 피해, 죄를 어떻게 정의하고 기억할 것이며 어떤 행동을 취할지는 순전히 개인의 선택에 달려있다. 당한 것을 되갚아줘야 한다는 복수의 선택지가 있고, 오래된 아픔은 역사로 묻은 채 서로 화해 및 새 출발의 선택지도 있다. 과거의 사건과 흔적을 누가 어떻게 정의하고 해석하며 이끄는지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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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건은 큰 상흔을 남긴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일으킨 심한 폭력은 당한 사람에게 상처와 흉터,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남기기 마련이다. 침략국이 벌였던 끔찍한 비인륜적 행위는 피해국 민족에게 저항심과 독립운동 그 이상의 복수심을 낳기 마련이다. 큰 피해를 입을수록 정서적인 반감으로 인해 용서 혹은 화해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혹여나 충분한 보상과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 씌워진 혐오감이나 편견은 좋게 덧씌워지기 어려워 만성적 갈등이 되기도 한다. 자칫 잘못 선동될 경우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세를 잃게 되는 것은 물론,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분노와 복수의 사슬을 끊지 않는 이상 피해자는 계속 생겨 갈등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분명 역사를 기억하고 역사로부터 얻은 지식을 배우는 것이 맞지만, 경계 이상으로 후손에게 분노도 함께 물려주는 것이 옳은 건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이 든다.


이렇게 갈등과 복수, 용서는 딜레마를 남긴다. 나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다치게 한 이를 용서한다는 것이 쉽지 않으며, 반대로 피의 복수를 자행할 경우 또 다른 복수가 되어 돌아올 것이 뻔하다. 용서할 경우에도 상대방이 변하거나 뉘우치지 않는 이상 갈등이 반복될 수 있으며, 보통 이런 점 때문에 갈등은 끝나지 않는다. 우선순위와 가치관에 따라 선택지는 달라지겠지만, 결국 정답은 없고 선택과 결과 그리고 책임만 있을 뿐이다.


행복노트 #62

이상적인 정답과 이상적이지 못한 인간이 있다.


이상적인 정답은 정해져 있다. 지난 과거의 아픔을 가슴에 묻고, 더 이상 새로운 아픔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우습게도 우리는 어릴 때 싸우지 말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을 당연한 미덕으로 배웠다. 모두가 아는 정답이다. 그러나 어른들 세계에서의 현실은 이기적이고 부족한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들보다 더한 갈등과 복수, 끝없는 분노와 혐오가 가득하다. 이는 나이가 들어도 아이들보다 나은 게 없다는 걸 반증한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에게 화해의 미덕을 가르치는 씁쓸한 현실이 야속할 뿐이다. 모든 사람들이 불완전한 인간으로 갈등을 지니고 살아가는 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보통의 현상이며, 화해는 가장 '이상적인'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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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를 떠나며



이른 아침부터 오전 내내 자그레브의 모습을 최대한 눈에 담았다. 자그레브 기차역을 마지막으로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 행선지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다. 비록 크로아티아에서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철학적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었음에 즐거웠고, 잠시나마 자그레브에서 크로아티아의 매력을 느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다음에는 스플리트와 두브로브니크 그리고 평화로 가득한 발칸반도 여행을 꼭 할 수 있기를 기약했고, 기차에 몸을 실어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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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솅겐협정 가입 전의 크로아티아였기에 헝가리로 들어가는 국경에서 간단한 입국 심사가 있었다. 기차가 잠시 멈추고, 내가 탄 칸에 이민국 직원들이 들어와 여권과 티켓을 확인했다. 행선지와 내 여행 일정을 물었고 혹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로 가는 것이 아닌지 확인하는 느낌이었으며, 헝가리 여행 후 다시 유럽 위쪽으로 갈 것이라는 답변에 직원들은 입국 도장을 찍어주었다. 국경을 육로로 통과한다는 것은 지정학적으로 섬과 같은 한국에서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이었기에 여행에 대한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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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혼자 부다페스트로 가는 기차 안, 스쳐 지나가는 헝가리의 평화로운 풍경을 보며 세상에 평온함만이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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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스타그램: @domkim.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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