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포토에세이 #68 _ Bratislava, Slovakia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의 셋째 날 새벽, 하늘은 다시 밝아지고 있었고 창문 밖에는 새들이 지저귀며 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고 알려주었다. 전날 밤 다뉴브 강변에 앉아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몽롱해질 때까지 즐겼고 정신 차리고 보니 갑자기 아침이 찾아온 느낌이었다. 숙소는 꼭대기 층의 다락방, 조금씩 천장에 있는 창문을 통해 햇빛이 스며들어왔다. 나와 함께 방을 쓰던 3명의 다른 여행객들은 아직 꿈에서 부다페스트 야경을 즐기는 듯했고, 나는 그들의 깊은 단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어두운 방 안 조심스럽게 마치 몰래 도망가듯 짐을 챙겨 숙소 밖을 향했다.
해가 미처 다 뜨기 전 일찍 하루를 시작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오늘 하루 국경을 두 번 넘어야 하는 긴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동안 3개 나라를 걸친 여정은 진귀한 경험이지만 동시에 매우 부담스러웠다. 서둘러 기차역으로 향한 나는 그렇게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행 기차에 올라탔다.
동유럽 여행이 서유럽에 비해 조금 더 난이도가 높은 이유는 아마 다소 부족한 인프라 때문일 것이다.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 전 미리 계획을 숙지하고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준비하는 성격으로 인해 미리 브라티슬라바행 기차 편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나 유레일 어플도, 인터넷도, 심지어 기차역 안에서도 자세한 기차 일정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분명 부다페스트-브라티슬라바 열차 구간이 존재한다는 걸 알지만 그에 대한 정보를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역무원에게 문의했고, 그는 그가 가진 종이로 된 한 기차 시간표를 보여주었다. 다행히 계획한 일정에 맞는 기차 편은 있었지만, 탑승할 기차역은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고 또한 연착이 있을 수 있어 시간표를 전적으로 믿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해주었다. 아날로그 방식이 보기에는 낭만 있어 보여도 여간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나름 재밌기도 했지만 변수가 발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혹시 몰라 '부다페스트 켈레티'역에 출발시간보다 조금 일찍 갔다.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행 기차는 다행히 시간에 맞춰 출발했다. 일출과 함께 북쪽으로 향하는 풍경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기차는 푸릇한 초원과 아직 하루를 시작하지 않은 작은 마을들 사이를 지나갔다. 정보가 하나도 없는 낯선 지역을 구경하는 그 순간 하나하나 모두 신기한 경험이었고,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여행에 점점 더 몰입하고 있었다. 꼬박 2시간을 달렸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열차는 국경을 넘어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해 있었다.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불안했다. 계속해서 지도를 보며 내가 브라티슬라바로 가는 게 맞는지, 역무원에게 물어보며 브라티슬라바에 정차하는 것이 맞는지 지속적으로 문의했던 기억이 난다. 기차는 다행히 브라티슬라바 중앙역에 정차했고, 짐을 챙겨 하차해 슬로바키아 여정을 시작했다.
이날 슬로바키아 일정은 여행 시간이 반나절채 되지 않을 만큼 간단했다. 도시 북쪽에 위치한 브라티슬라바 중앙역에서 내려 도심에 위치한 대통령궁과 구시가지를 구경하고, 점심을 먹은 뒤 다뉴브 강을 건너 도시 남쪽 '브라티슬라바 페트르잘카'역에 도착해 다시 기차를 타고 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일정이었다. 짧지만 아쉽지 않게끔 매 순간 온 진심을 다해 여행을 즐길 생각이다.
기차에서 내려 역을 빠져나와 브라티슬라바를 맞이한 첫인상은 '당혹스러움'이었다. 영어 표지판이 하나도 없었고, 하필 공사 중이라 길이 미로처럼 복잡했다. 중앙역을 빠져나오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다행히 사람들을 따라 이동하다 보니 여차저차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지도와 통역 어플에 의존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도시의 전경은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와 많이 닮아 있었다. 다만 외벽이 손상되거나 덧칠이 벗겨진 관리되지 않은 오래된 건물들이 많이 보였고, 이러한 첫인상은 '국가 재정이나 국민 소득이 충분치 못한가'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지만 직관적인 편견이나 선입견에 취약한 것은 사실이므로 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낯선 풍경에 더해 갑자기 하늘에는 먹구름까지 끼기 시작하며 왠지 모를 긴장감이 들었다.
슬로바키아의 수도인 브라티슬라바는 작은 도시다. 하루 정도면 도시 구석구석 다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작은 도시이며, 내가 방문한 반나절만으로도 도시의 주요 관광지는 다 볼 수 있었다. 슬로바키아는 확실히 관광객이 많은 국가는 아니다. 드문드문 백인 여행자들이 보이는 것 같았으나, 도시 내에서 동양인은 내가 유일한 것처럼 느껴졌다. 거리를 걷다 보면 나를 보는 현지인들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다. 조금은 부담스러웠어도 그 눈빛이 차별적이거나 배타적인 느낌이 아닌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눈빛임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처음 유럽여행 계획을 세울 당시에는 브라티슬라바는 일정에 없었다. 슬로바키아라는 나라가 생소했고 비용과 시간을 써가며 무리하게 여행을 진행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숙박을 하지 않기에 도시를 여행하는 내내 무거운 짐을 들고 다녀야 했고 체력적으로 부담이 느껴질 것을 알고 있었다. 이에 부다페스트를 떠나기 직전까지 지속해서 브라티슬라바를 여행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늘 최대한 많은 곳을 탐험하고 싶은 욕심과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방문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전날 밤 오스트리아행과 슬로바키아행 기차 중 결국 슬로바키아행을 타기로 결정했다. 돌이켜보면 잠깐이라도 슬로바키아를 경유하기로 한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브라티슬라바 여행 내내 도합 40kg이 넘는 짐을 들고 움직이는 고난의 행군이었지만, 여행하며 보고 느낀 경험은 마음속에 평생 남아있기 때문이다.
브라티슬라바의 구시가지에는 유럽 특유의 고즈넉한 건물들이 거리에 아름다운 미관과 분위기를 만들어주며 여행자의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구시가지의 랜드마크는 웅장하거나 아름다운 건축물이 아닌, 한눈에 봐도 하찮고 익살스러운 동상들이었다.
이런 동상들이 구시가지 곳곳에 위치해 있다. 과거 원래부터 있었던 구조물이 아닌 지난 1990년대에 새로이 설치된 조형물이다. 맨홀 뚜껑을 열고 어깨만 드러낸 채 거리의 지나가는 사람들을 훔쳐보는 동상, 모자로 눈을 가린 채 옅은 웃음을 지으며 벤치에 기대어 있는 동상 등 웃음을 유발하는 재치 있는 모습으로 여행자의 시선을 끈다. 동상의 존재를 모르고 지나가던 사람들은 동상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함께 사진을 찍는 등 여행에 있어 즐거움을 더해주는 브라티슬라바의 관광명소다.
브라티슬라바 시에서 구시가지에 이런 동상들을 일부러 설치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이도 과거 공산주의와 관련이 있다. 1990년대에 소련이 무너진 직후 과거 공산주의 체제였던 슬로바키아에서 특유의 차갑고 삭막한 도시 경관과 분위기를 탈피하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었다. 기존의 경직된 사회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들어오며 브라티슬라바 시정부는 사람들에게 가벼운 웃음과 자유로움을 선사하고 싶었고 관광객도 유치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해당 동상들을 설치하게 되었다.
브라티슬라바 특유의 칙칙하고 색 바랜 건물들과 갑작스럽게 드리운 짙은 먹구름 날씨 때문에 도시 전체가 회색빛으로 가라앉고 우울하게 느껴졌지만, 확실히 이런 유머러스한 동상들 덕분에 그 분위기가 많이 중화된 건 사실이었다. 또한 여행에 있어 즐거운 기억을 만들어주었기에 슬로바키아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슬로바키아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범슬라브 계열의 국가다. 슬로바키아는 슬로베니아와 이름이 비슷해 많은 외지인들이 두 국가를 종종 헷갈려하지만, 이 둘은 범슬라브 민족임을 제외하고는 문화도 언어도 차이가 있는 엄연히 다른 국가다. 슬로바키아는 지리적으로도 동쪽에 있어 과거부터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근대 공산주의가 무너지기 전까지 사람들이 잘 방문할 수 없었던 신비로운 국가였다. 특히 국토 대부분 산지와 자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러한 부분 또한 이 국가를 더욱 신비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또한 많은 유럽 국가들이 그렇듯 슬로바키아도 체코 및 다른 국가들과 합병되었다 분할되는 등 숱한 전쟁과 교류로 서로 많은 영향력을 주고받았다. 이 때문일까 브라티슬라바 내에서 헝가리, 폴란드, 크로아티아 등 다른 동유럽 국가들의 모습이 도시 내에서 조금씩 보이는 듯했다. 조금 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자연이 아름다운 슬로바키아 동쪽 지역도 여행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음에 큰 아쉬움이 남았다.
슬로바키아에도 영화와 관련된 조금 슬픈 사연이 하나 있다. 2005년 할리우드에서 영화 한 편이 개봉한 후 슬로바키아를 방문하는 관광객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사건이 있었다. 해당 영화는 끔찍한 범죄영화였고, 영화 내 배경장소가 되는 곳이 슬로바키아였다. 은연중에 사람들은 슬로바키아 치안에 대한 안 좋은 편견이 생겼고, 동시에 슬로바키아를 향하는 발길도 줄었다. 국가 이미지와 경제에 큰 타격을 받은 슬로바키아 정부는 영화에 공식적으로 항변하며 관광객 유치를 위해 직접 움직일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실제로 슬로바키아를 여행한 후기로는 그 어디에서도 범죄에 대한 위험을 느낀 적이 없었다. 실제로 유럽 내 영국, 프랑스, 스페인보다 더 치안이 좋은 것으로 나타나며, 특히 여행객들에게 매우 호의적이고 친절하다. 비록 여행지로써의 매력이 다소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작 영화 한 편 때문에 국가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변했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깝게 느껴졌다.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브라티슬라바를 걷다 보니 어느덧 계획했던 여행 일정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작은 도시였기에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대략적으로 모두 다 둘러볼 수 있었다. 특히 브라티슬라바가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시끄럽지 않은 도로, 복잡하지 않은 거리, 여유로운 현지인들의 삶이 부럽게 다가왔다. 어느덧 다뉴브 강에 다다라 저 멀리 언덕 위 브라티슬라바 성 그리고 또 다른 랜드마크 UFO 타워를 한참 동안 응시한 뒤 다음 일정을 위해 '페트르잘카'역으로 향했다.
구시가지를 지나 다뉴브강을 건너니 지금껏 봤던 모습과는 또 다른 도시 경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왠지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 풍경은 어딘가 모르게 한국과 닮아 있었다.
구시가지의 도로와 건물들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비교적 근대에 지어진 건물들이었지만, 다뉴브 강을 건너니 현대적인 아파트가 즐비한 동네가 나타났다. 아파트 형태의 주거건물과 그 주변에 있는 작은 상업건물을 보고 있자니 그 모습이 마치 서울의 어느 한 동네에 와있다고 착각할 만큼 우리나라와 닮아 있었다. 차이점이라고는 길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백인이라는 점이었다.
기차역으로 가기 위해 아파트 단지를 가로지르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모습이 우리나라와 더욱 닮아있었다. 아파트 옆 놀이터와 그 놀이터에서 장기 대신 체스를 두는 어르신들, 러닝 혹은 자전거를 타며 운동하는 사람들, 청소하는 경비 아저씨 등. 심지어 아파트 건물 입구를 지나갈 때면 한국 아파트에서 맡던 냄새까지 나는 듯했다.
그러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최근 '아파트'라는 노래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며 모든 사람들이 '아파트'를 외쳐댔고, 특히 우리나라는 주변을 둘러보면 '아파트 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이렇게 아파트 수가 많은데, 왜 우리 집은 없을까.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은 정말 꿈일까. 왜 사람들은 부동산 투기를 해서 가격을 부풀리고 모두 살기 힘든 세상을 만들까.
집. 주거지. 안식처.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집'이라는 것이 언제부터인지 '돈'으로만 보이기 시작한 것 같다. 아무리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 경제이지만, 부풀려진 집 가격만 보면 암울한 미래에 대한 걱정이 먼저 들기 시작한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아기는 낳아서 키울 수 있을까, 노후는 어떡하지'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점점 사라지는 듯했다.
많은 생각과 함께 사유하며 걸으니 금세 '브라티슬라바 페트르잘카'역에 도착했다. 브라티슬라바 중앙역에서 내린 후 정확히 5시간이 지나 있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라도 아쉽지 않게 잘 여행했다는 생각과 조금은 복잡한 잡념이 들었던 브라티슬라바 여행이었다.
다음 여행지는 '오스트리아 비엔나'다. 브라티슬라바와 비엔나는 각각 슬로바키아와 오스트리아의 수도이나 서로 65km 떨어져 있어 매우 가까운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과 개성 정도의 거리다. 비엔나로 가는데 고작 1시간이면 갈 수 있고, 버스, 기차, 페리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다. 나는 기차를 타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오스트리아 비엔나행 기차에 올라탔다.
고작 한 편의 영화 개봉 이후 슬로바키아에 대한 오해가 쌓여 여행 관광 수요가 급감했다는 사연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사실이 아닌 소문과 오해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슬로바키아가 어딘데? 아 그 영화에 나왔던 위험한 나라?', '슬로바키아 가면 납치되는 거 아니야?', '거기 왠지 꺼림칙해서 못 가겠어'. 진실과 동떨어진 부정적인 잘못된 거짓이지만, 이러한 인식은 사람들에게 보다 더 오래 뇌리에 남고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끼쳐 큰 피해를 야기했다. 이토록 소문과 오해가 무섭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쉽게 한다. 특히 그 이야기가 부정적이고 자극적일수록 소문은 더욱 빠르게 돌기 시작하고, 결국 그 소문의 당사자를 난처한 상황으로 몰아간다. 인간의 오래된 본성이기에 동서양 관계없이 험담 및 소문과 관련된 명언과 속담은 즐비하다. 현명한 우리의 조상들은 '어디 가서 다른 이의 얘기를 함부로 하지 말며, 오해받을 행동조차 하지 말라'는 진심 어린 조언을 후손들에게 전했다. 이는 과거부터 소문과 험담이 사회의 큰 문제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람은 왜 소문과 험담을 좋아할까'에 대한 질문은 철학과 사회학, 과학 등 다방면에서 연구가 이루어졌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냥 혹은 외부적 위협 대응을 위해 예로부터 협력이 중요했다. 알게 된 어떤 한 사실을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빨리 전하고 알리는 게 필요했고, 이는 그 공동체와 사회가 위험에 대비하고 예방하는데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의 유전자에는 '소문'을 좋아하는 인자가 각인된 게 아닐까.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경험하거나 당하는 것보다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미리 대비하는 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소문과 뒤에서 하는 험담은 많은 역할을 했다. 현대에 들어 모두가 평등하다지만 지금도 알게 모르게 사회적 위치가 다르고 권력과 힘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혹여나 앞에서 들이박아 직접적인 갈등을 빚었을 경우 더 손해 보는 쪽은 늘 있기 마련이다. 이럴 때는 뒤에서 몰래 여론을 조장해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는 것이 생존에 있어 더 효율적이었다. 대표적인 예시가 지배층에 대한 저항과 혁명이다.
이처럼 공동체와 자신의 생존을 위한 소문이 긍정적 결과를 이끌어낼 때도 있다. 다만, 이런 본능이 엉뚱하게 발현될 경우 험담이 된다. 그리고 이런 험담은 사회와 공동체를 병들게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험담 본능은 종종 정치에 활용되어 자신의 정적, 원수, 사회적 약자를 제거하는데 많이 사용된다. 현대에는 '여론몰이'라는 단어로 불리며 상대방을 부도덕한 사람, 잘못된 사람, 해가 되는 사람 등의 프레임을 씌워 공동체 내에서 인격을 말살한다. 이런 험담 행위가 광기에 휩싸일 경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없던 일도 사실로 만들며 상상력과 왜곡이 더해져 그저 상대방을 죽이는 도구로 쓰인다. 이런 정치적 험담은 생존을 위한 치킨게임이기에 윤리적 지탄을 받을지언정 인간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행위는 아니다. 그러나 그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죽는 것에 있어서는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진짜 악질은 단순 오락거리로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거나 이상한 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이다. 어딜 가도 남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함부로 하는 동시에 그런 말에 있어 어떠한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는 본인이 내뱉는 말의 파급력과 후일들을 생각하지 않고 그 순간의 단순 재미를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양 삼고, 진실과는 상관없이 그저 웃고 떠들기 위한 목적이다. 이렇게 한 번 퍼진 잘못된 소문은 정정되기도 어렵고, 계속해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소문의 당사자를 사회적으로 고립시킴과 동시에 결국 벼랑 끝으로 내몰게 된다.
'내가 어디서 들었는데', '내가 재밌는 이야기 해줄까?' 학교와 직장 등 모든 공동체에서 많이 들었던 소문의 도입부다. 이런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피로를 느끼며 말하는 당사자와 거리를 둔다. '이 사람은 다른 데에서는 내 얘기를 하겠구나' '이 사람 앞에서는 말조심해야겠다'는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며 말을 아끼게 된다. 그리고 '저 인간은 왜 저럴까'하는 분석에 들어간다.
험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종국에는 불쌍하게 느껴진다. 보통 험담 뒤에 무료함 혹은 자신의 열등감이 숨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생이 너무 심심하고 재미없는 사람들이 보통 다른 이들에게 관심이 많다. 타인을 놀리고 욕하는 것에서 재미와 도파민을 찾는 부류이나 이런 부정적인 에너지가 자신의 품격을 낮추고 결국 자신에게 화가 되어 돌아올 거라는 생각을 못하는 지능이 낮은 부류다. 두 번째로 열등감의 부류는 자신이 가지지 못한 부분에 있어 험담을 통해 그 가치를 낮추는데 집중하며 이는 질투와 선망에서 비롯된 자존심 세우기다. 마지막으로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용기가 없어 뒤에서 욕하는 전형적인 강약약강의 인간들이 있다. 이 모든 부류가 스스로 이런 인간임을 모르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보통 사람들은 다수의 말을 믿는다. 소문은 진실보다 빠르다. 소문은 한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릴 수 있다.
행복노트 #65
말을 아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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