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포토에세이 #72 _ Halstatt, Austria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새벽 4시 붉은 탁상에 놓인 은색의 자명종 시계는 쩌렁쩌렁 울리며 나의 잠을 급히 깨웠다. 혹여나 시끄러운 알람종 소리가 호텔방 밖으로 새어나갈까 조속히 일어나 시계를 진정시켰다. 꿈과 현실 사이를 계속 방황하며 비몽사몽 상태로 짐을 꾸렸으며, 늘 그랬듯 다음 행선지를 향해 꼭두새벽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평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오전이 지나도록 잠에서 깨지 않는 게으른 사람이지만, 여행 중에는 유난히 일찍 일어나 움직이는 부지런한 여행자가 된다.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긴 여정을 모두 마치고 다음 행선지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향하는 길이다. 다만, 잘츠부르크로 향하는 길에 오스트리아 유명 관광지인 '할슈타트'를 경유할 수 있는 것을 확인했고, 오전에 잠깐 할슈타트를 방문하는 일정을 세웠다. 일찍 움직이기 시작한 것도 할슈타트를 조금이나마 더 즐기기 위함이었고 사람이 없는 여유로운 할슈타트를 혼자 만끽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오스트리아 빈 서역에서 출발하는 첫차를 타고 할슈타트를 향해 열심히 달렸다. 오스트리아를 좌우로 횡단하는 길은 스위스 못지않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볼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 서쪽에도 높은 알프스 산맥이 위치해 기차밖 풍경을 감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조금씩 깊은 산속으로, 깊은 골짜기로 들어갈수록 현대 문명과 동떨어진 그림 같은 절경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안개가 자욱이 낀 날씨 덕분에 몽환적인 분위기가 더해져 꿈속 이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산들을 넓게 뒤덮은 하얀 비구름이 아침해를 가려준 덕분에 할슈타트로 가는 기차 안 못다 한 잠을 편하게 잘 수 있었다. 여명은 아주 부드럽게 아주 서서히 주변을 밝혀주며 근처 사물의 부드러운 테두리를 겨우 알아볼 수 있게끔 비춰줬다. 중간에 다른 기차로 한 번, 페리로 또 한 번 이렇게 총 두 번의 환승을 거친 후에야 할슈타트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적막 가득한 아무도 없는 페리 안, 저 멀리 창문 너머 산 쪽을 응시하니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할슈타트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빈을 벗어나 알프스 산맥의 동쪽 끝자락에 닿은 순간부터 비현실적인 풍경으로 인해 다른 세상에 도달한 느낌이었다. 할슈타트 마을은 이 넓은 이세계(異世界)에 위치한 극히 작은 일부분이지만, 마을이 지닌 특별한 아름다운 덕분에 이세계를 완성하는 하나의 종착점 같은 느낌이었다.
알프스 산맥 꼭대기 영원한 추위를 버텨낸 만년설에 온기가 닿아 한 방울씩 천천히 저지대로 흘러 들어왔다. 유럽 가장 높은 곳 별과 가장 가깝게 지낸 물방울은 입자 하나하나에 마치 묘한 마법이 깃든 것 같다. 물방울이 모여 끝이 안 보이는 하나의 응집된 거대한 물방울이 되었을 때 여태껏 본 적 없었던 청량한 빛깔을 드러낸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 걸쳐 넓게 펼쳐진 알프스 산맥에는 수많은 호수들이 존재하며, 이방인들로부터 비밀을 감추듯 호수 주위는 깊은 골짜기와 높은 산들이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할슈타트 마을은 수많은 알프스의 호수 중 인간의 사소한 미적 취향과 자연이 함께 만들어낸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이다.
할슈타트는 본래 오스트리아인과 유럽인들 사이 알려진 유럽 내 하나의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알프스 자연을 감상하기 위해 유럽인들이 방문하는 휴양지들 중 한 곳이었다. 비교적 최근 전 세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한적하고 여유로운 곳이었지만, 남자들이 아름다운 여성을 가만히 두지 않듯 할슈타트가 지닌 비범한 아름다움에 반한 사람들이 미디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홍보한 결과 현재는 오스트리아에서 꼭 방문해야 할 대표 관광지로 변모했다.
할슈타트는 종종 할리우드 영화의 촬영지로 활용되거나 배경 모델이 되는 등 마을이 지닌 아름다운 풍경들 덕분에 전 세계 사람들에게 시각적 위안을 준다. '지구상에는 아름다운 곳들이 많이 있다'는 말 중 아름다운 곳 한 곳을 담당하고 있으며, 가본 적 없어도 정체 모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묘한 장소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이런 할슈타트 마을을 그대로 베껴 만든 '짝퉁 할슈타트 마을'이 중국 내에 생겼으며, 오스트리아가 멀어 여행할 수 없는 중국인들이 차선책으로 방문하는 이상한 관광지도 존재한다.
오전 일찍 거의 첫차를 타고 움직인 덕분에 할슈타트에 도착했을 때에는 마을에 사람들이 없었다. 그저 나와 빗방울만이 고요하게 잠든 할슈타트 마을의 정적을 깨는 존재가 되었다. 사람이 없는 골목길을 걷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다른 어떠한 자극 없이 할슈타트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한적함과 여유, 소음으로부터 자유, 나를 둘러싼 거대한 자연, 그리고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운 장소 등 내가 순간적으로 느낄 수 있는 행복의 모든 요소를 갖춘 곳이었다. 오랜만에 느낀 정서적 해방이었다.
할슈타트 마을은 작았다. 빠른 걸음으로 한, 두 시간이면 마을의 구석까지 볼 수 있을 만큼 작은 마을이었다. 많은 여행자들이 마을을 둘러싼 전체적인 풍경에 반해 할슈타트를 찾았겠지만, 이곳의 진정한 매력은 거대한 풍경이 아닌, 마을 속 발견되고자 하는 아주 사소한 존재들이었다. 건물 귀퉁이에 놓인 작은 장식들부터 오래된 지붕에 서린 각 사연들 등 마을의 온갖 이야기를 간직한 사물들로 마을이 완성되는 느낌이었다. 실제 할슈타트 구경은 한 시간 만에 끝이 났지만, 할슈타트 여행은 반나절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
할슈타트 마을에 사는 주민들의 인구는 1,000명 채 되지 않는다. 지금껏 이렇게 목가적 평화로움 속 살아간 주민들이었지만, 할슈타트가 하루아침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어 지구 각지에서 관광객 무리가 찾아와 주민들의 평온을 깨고 말았다. 현재 관광객들에 대한 반감이 내부적으로 커진 상황이며, 또 마을이 훼손되는 것을 우려해 마을 내 포토스팟을 없앤다거나 관광객 입장수 제한 법안을 제시하는 등 그들만의 저항을 시작하고 있다. 사실 나조차도 그들 삶의 터전을 침범한 관광객 무리 중 한 명이지만, 오랜 시간 그들이 고이 지켜온 알프스의 비밀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드러났을 때의 상실감 그리고 마을을 지키고자 하는 사명감을 충분히 이해한다.
할슈타트 마을 중심에 위치한 교회는 명실상부 할슈타트의 대표 랜드마크이며 그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이 교회의 존재로 인해 할슈타트가 지금과 같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아름다운 건축적 디자인이 할슈타트를 둘러싼 자연환경과 너무나도 잘 어우러진 덕분에 풍경을 마주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그 입소문이 점점 퍼지면서 하나둘 할슈타트에 방문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특히 고딕 형식의 하늘을 찌를듯한 뾰족한 시계첨탑은 마치 할슈타트 주민들이 지닌 높은 자부심과 기개가 그대로 반영된 것 같다.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도 있는 것이 할슈타트 사람들은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이고, 자연을 충분히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자연에 녹아들어 그들 본인조차도 자연과 함께 스스로 예술 작품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로서 할슈타트 마을 중심에 위치한 곧은 첨탑은 할슈타트 주민들의 마을을 사랑하는 곧은 마음을 그대로 상징하는 듯하다.
사람이 없는 할슈타트를 홀로 여행할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가장 큰 행운이었다. 또한 비가 오는 할슈타트를 여행할 수 있었던 것도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몽환적인 분위기와 운치를 지닌 마을 속 낯선 이방인으로 머물며 빗방울처럼 한 톨 적셨다 사라지는 존재, 그런 존재로 할슈타트 마을에 잠깐 실재했다는 사실이 내 유럽여행에 있어 큰 행운이었다.
몇 시간 동안 여유를 만끽하고 점심쯤 되어 다시 페리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향했다. 마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끝단까지 다녀온 후 중심부로 돌아오자 그제야 마을에는 서서히 관광객들이 모습을 비추기 시작했다. 와중에는 한국인도, 인도인도, 중남미 사람도 마주하며 돌아가는 길 내내 수많은 언어가 귀를 스쳐 지나갔지만, 할슈타트를 사랑하는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진정으로 할슈타트의 여행자가 되겠다면, 침묵의 언어로 작은 일부가 되었다 사라지는 것, 이것이 할슈타트를 사랑하는 여행이라 생각한다.
일반적인 여행객들은 잘 방문하지 않을 것 같은 할슈타트의 은밀한 곳들을 샅샅이 돌아다니며, 할슈타트의 비밀을 속속히 파헤쳐가던 나는 어느 한 계단을 발견했고, 혹여나 또 좋은 풍경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성큼성큼 상단부를 향해 올라갔다. 고도가 조금씩 높아질수록 할슈타트의 짙고 어두운 지붕들은 점점 발 밑으로 내려갔고, 할슈타트 호수의 가장 가까운 부분은 점점 더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 걸음씩 올라갈 때마다 새로운 지붕을 하나씩 발견하던 찰나, 어디선가 '야옹'하는 소리와 함께 어떤 낯선 존재가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 '야옹이'였다. 그는 마치 할슈타트의 문지기를 자처하듯 더 이상 내가 위쪽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길을 막았다. 아니 '귀여움을 무기로 나의 발걸음을 사로잡았다'가 맞는 표현인 것 같다. 내가 더 이상 할슈타트에 깃든 비밀을 알지 못하게 하려 찾아온 수문장인 게 분명했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한동안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했다. 그러나 귀여움에 못 이겨 내가 먼저 공경하게 손을 내미니 그제야 이 수문장은 마음의 문을 열고 나를 받아주었다.
할슈타트를 여행하며 만난 친구였다. 행색을 보아하니 할슈타트 모든 주민들에게 쓰다듬을 당한 예쁨 받는 고양이임이 분명했다. 그는 경계하며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겁 많은 친구였지만, 낯선 이방인인 내가 불편하지 않도록 격식을 갖춰 정중히 다가온 고양이였다. 그의 친절에 내가 화답을 할 때면 또 부끄러움에 딴청을 피우다 내가 물러서면 또 관심 가지기를 원하는 자기 마음에 솔직하지 못한 고양이였다.
나는 고양이도 강아지도 너무 애정한다. 인간이 가장 사랑하는 이 두 생명체는 각자 너무 상반된 매력을 지녀 서로 자주 비교되기도 한다. 각자의 취향과 선호에 따라 다르겠지만 의심할 여지없이 이 두 생명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천사들인 것은 확실하다. 이분법적 관점에서 고양이와 강아지는 사람이 매력을 느끼는 가장 대표적인 두 특징을 극단적으로 잘 보여준다. 먼저 강아지의 경우, 주변 모든 생명체에게 끝없는 관심과 애교를 보여주는 천사라면, 반대로 고양이의 경우, 도도하고 엉뚱한 매력으로 타인의 관심과 호기심을 자아내는 천사다.
어릴 때 친구들끼리 '강아지가 좋아? 고양이가 좋아?' 하는 질문을 많이 한다. 이 질문은 나에게 거진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와 동급 수준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도 매번 달라졌다. 어떨 때는 강아지가 좋았다가 또 어느 때는 고양이가 더 좋아졌다. 그냥 둘 다 선택할 수 없는 것일까 하는 딜레마에 쉽게 빠졌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어느 하나를 굳이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굳이 내 선택과 생각을 질문의 틀에 가둘 필요는 없었다.
오늘 만난 야옹이는 경계심을 풀자 오히려 나를 계단 상층부로 안내해 주었고, 어느 순간 자신이 머무는 집에 도착한 듯 더 이상 나와 동행해주지 않았다. 여행 중 우연히 만난 연이 아쉬워 한동안 나는 야옹이 곁에 머물러 짧은 추억을 쌓았다. 통성명도 하지 않아 서로의 이름도 몰랐지만 서로 좋은 친구임은 아는 듯했다. 충분히 함께 시간을 함께 보낸 뒤, 이제 서로가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우리는 서로를 배웅하며 아름다운 작별을 맞이했다.
나는 고양이를 참 좋아한다. 이유인즉슨, 내 성격 어딘가 고양이와 매우 닮아있기 때문이다. 고양이의 모든 행동을 인간이 이해하기 힘들다고 하지만, 나는 가끔 그들의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공감되는 듯하다. 엄청 낯을 가리는 동시에 예민하고, 깜짝 잘 놀라며, 뒤끝도 길고, 기분이 상하면 성질부리고, 관심 있어도 자존심 때문에 관심 없는 척하고, 근데 먼저 말을 걸어줬으면 좋겠고, 한 번 마음을 열면 허물없이 애교가 많은 사람이 됐다가 또 상처받아 마음의 문을 닫는 그런 요상한 성격 말이다.
이 글의 주제는 내가 고양이의 삶을 더욱 닮아가고자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정신 승리이며, 스스로 많은 진지한 고민 끝에 인생을 왜 고양이처럼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쓸데없는 사유를 열거한 글이다. 이런 고양이의 세계에 호기심과 매력을 느끼는 방문자라면, 이 괴랄하지만 천사 같은 생명체에 대해 함께 연구해 보자.
고양이는 하루를 대부분 잠을 자며 보낸다. 벌써부터 부럽다. 하루 중 평균적으로 약 15시간을 자는데 쓰며, 특별히 할 일이 없거나 지루할 때마다 발라당 누워 자는 것이 어찌 보면 고양이의 여가생활이다. 요즘 하루 평균 6, 7시간밖에 자지 못해 늘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나는 이런 고양이의 자유로운 수면 패턴이 부러울 따름이다.
어릴 때는 조금 더 긴 하루를 보내고 싶어 늦게까지 깨어있던 것에 반해 나이가 점점 들수록 수면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는 중이다. 질 높은 수면을 통해 기본적인 체력과 집중력, 기분과 컨디션 등 더욱 활기차고 효율적인 하루를 보낼 수 있다. 대한민국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만성피로를 달고 산다는 것과 동의어 같다. 출퇴근 지하철 손잡이를 간신히 잡고 감기는 눈을 겨우 치켜뜨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나라 평균 수면시간이 OECD 국가 중 하위권인 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면부족과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평소 예민하고 여유가 없어 보이는 것도 끝없는 경쟁 사회 속 위와 같은 체력의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여기서 고양이의 성격에는 오류가 있다. 고양이는 하루 대부분을 잠만 자는 데 사용하면서 고양이의 성격은 왜 예민할까. 고양이가 사소한 소리에 깜짝 놀라 방방 뛰며 쏜살같이 도망가는 모습을 본 적 있다. 또한 혹시나 누군가 자신의 꼬리를 실수로 밟았다면, 화를 푸는데 며칠씩 걸릴 만큼 엄청난 성깔을 보여준다. 외에도 신경 거슬릴만한 무언가가 있다면 일단 때리고 보는 습성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보다 거대하고 힘 있는 존재와 대치할 때도 겁내지 않고 하악질을 하는 깡다구를 보여준다.
근데 보통 이런 예민한 성격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예민한 감각과 연관되어 있다. 고양이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의 오감이 발달해 작은 자극도 크게 느낀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유기적이고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며 크고 작은 수많은 자극을 만들어낼 때에 예민한 오감을 가진 이들은 뇌에 보다 더 많은 정보가 들어오고, 불편한 작은 자극에도 크고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예민한 신경을 가진 고양이는 각종 자극에 연약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우리들 눈에는 공격적이지만 또 다소 엉뚱하고 엽기적인 행동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감이 발달한 것, 더 많은 정보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자 저주다. 가끔은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보게 되고, 느끼기 싫은 것도 느끼게 된다. 지속적인 불필요한 자극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게끔 만들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사람들 시선에서 사소한 자극일지라도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이 자극이 자신을 흔들 수 있기에 본능적인 방어기제가 나오는 것이다.
세상을 살며 깨닫게 된 진리 중 하나는 '강한 부정은 긍정이다'는 말이다. 대체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어떤 연약한 부분을 숨기기 위해 반대로 행동하는 성향이 있다. 없는 사람이 오히려 더 과시하고, 두려운 사람이 오히려 더 허세를 부린다. 이는 자신의 열등감과 결핍 혹은 연약함을 가리거나 극복하기 위해 최전선에 자신의 방어체계를 구축하는 본능이다. 예민한 사람도 이같이 자신의 어지럽고 복잡한 신경계를 극복하기 위해 주변을 더욱 경계하고, 거리를 두며, 의도적인 무관심을 노력하고, 알아도 모르는 척하고, 필요 없는 자극을 회피한다. 내가 그렇다.
예민한 신경을 가진 것이 살아가는데 독이 될 때가 더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복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세상을 보다 다채롭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뇌로 들어오는 더 많은 자극과 정보 덕분에 남들과는 다른 시선, 악기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소리, 은은하게 풍겨오는 향, 비를 맞는 촉촉한 느낌, 입안에 퍼지는 위스키, 여기에 더해 가끔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까지 느껴져 보다 더 풍부한 경험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고양이는 거만하다. 자신이 가장 우월한 생명체인 것으로 착각하며, 인간을 '집사' 혹은 '캔따개' 정도로 보는 것 같다. 인간한테 종종 하기 싫은 목욕(냥빨)을 당하거나, 인간들만 맛있는 음식 먹는 게 거슬리긴 하지만, 그래도 고양이가 원하는 많은 것들을 인간이 들어주기에 그냥저냥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 고양이가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 아주 중요한 태도다. 우리는 감정과 자아를 지니고 태어난 사람이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과 가치, 삶의 방향이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일상에서도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한다면, 나는 이를 자신의 존엄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현실적으로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자기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위해 나아가는 삶과 다른 이의 가치관에 흔들려 중심 없이 살아가는 삶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주도적인 삶의 태도는 분명 고양이에게 충분히 배울 점이다.
고양이를 보며 많은 삶의 태도를 배웠다. 아무리 작고 힘없는 생명체라 하더라도 우리보다 나은 훨씬 훌륭한 점이 무조건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부분을 적극 배우고 닮아갈 필요가 있다. 고양이가 엉뚱하고 괴랄한 성격을 가진 데에는 다양한 진화론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극히 인간 중심적 사고와 신학적 관점으로 바라볼 때, 신이 세상에 다양한 생명체를 창조한 이유는 어쩌면 각 생명체가 지닌 습성과 본능으로부터 인간이 영감을 얻고, 생명체가 지닌 삶의 태도를 배우라는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솔직히 고양이처럼 태평하게 살고 싶은 심정에서 글의 초입부를 쓰게 됐다. 모든 사람들의 꿈이지만, 돈 많은 한량이 삶의 목표다. 깊은 숙면을 취한 뒤 기분 좋게 일어나 글도 쓰고, 사진도 찍고, 여행도 다니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챙기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영감을 얻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가끔 악당이 나타나면 냥펀치도 좀 때리는 삶. 나에게 너무 완벽한 삶이다.
그러나 이런 삶이 거저 살아가는 안일하고 게으른 삶은 아니다. 고양이도 분명한 자신의 일과와 원칙이 있다. 자신의 영역을 순찰 다니며 자신이 모르던 변화가 생겼는지, 수상한 존재는 없는지, 새로운 탐험지를 물색하는 등 깨어있는 시간에 나름 바쁜 일과를 가진다. 때로는 꽃구경을 가기도 하며, 또 때로는 높은 곳에 올라가 자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면밀하게 감시하고 있다. 물건만 안 떨어뜨리면 좋겠지만.
이렇듯 나는 고양이의 삶을 꿈꾼다.
도도한 겁쟁이, 게으른 욕심쟁이, 경계하는 외톨이, 행복한 모순 덩어리.
행복노트 #69
인생은 고양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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