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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천재라 불린 사람들"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73 _ Salzburg, Austria

by 김예담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첫 번째 이야기: 천재라 불린 사람들.



오전의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여행을 마치고 다시 기차를 타기 위해 페리를 탔다. 산과 절벽, 호수가 만나는 끝자락에 지어진 할슈타트는 마을 안쪽으로 기찻길이 들어설 공간이 없어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이는 마치 섬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을 주며, 할슈타트 역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꿈에서 현실로 되돌아온 기분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하루 일정을 시작한 나는 더더욱 꿈을 꾼 기분이 들었다. 시간은 이제 오후 한 시를 막 지난 시점이지만, 이미 몸은 피로에 가득 휩싸여 있다.


다음 행선지는 오스트리아 여행의 마지막 도시 '잘츠부르크'다. 잘츠부르크는 알프스 산맥의 북동쪽 끝자락 할슈타트에서 기차로 약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독일 바이에른주 국경과 맞닿아 오스트리아 서쪽 독일로 나가는 관문 같은 곳이다. 기차밖 아름다운 풍경을 보겠다는 다짐과 달리 졸음에 곯아떨어진 나는 우르르 사람들이 짐을 챙기는 소리에 깜짝 눈을 떴고, 창 밖으로는 도시의 풍경이 지나갔다. 잘츠부르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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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



오후 4시 잘츠부르크는 햇빛 한 줄기 볼 수 없이 하늘 전체가 회색 먹구름에 덮여 있었다. 이른 아침 빈에서 출발할 때부터 오전 할슈타트 그리고 오후 잘츠부르크에 도달할 때까지 짙은 먹구름이 하루 일정을 함께 했다. 지중해에서 생성된 고온다습한 공기는 알프스 산맥을 만나 저기압으로 변해 오스트리아 전역에 차가운 공기와 빗방울을 흩뿌리는 것 같다. 나는 동쪽 평지에서 서쪽으로 구름이 이동하는 방향과 반대로 이동했기에 자연을 거스르는 역류의 방향이었다.


잘츠부르크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 이곳이 매우 세련된 도시임을 알 수 있었다. 잘츠부르크를 둘러싼 산과 깔끔하게 정돈된 도로 및 건물들을 보며 이곳이 마치 산속에 숨겨진 부자들의 도시인 것처럼 다가왔다. 스위스 도시들도 그렇고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도시들은 대체적으로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문화권, 건물 양식 등 세부적인 부분은 달라도 자연과 잘 융화된 알프스의 도시들은 신비로운 공간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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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 도시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과거 고대 로마 시대 '이우바붐'이라는 지명으로 불리며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했다. 해당 지명은 '기병의 도시'라는 뜻을 지녔는데, 해당 인근지역의 모든 도로가 잘츠부르크 중심으로 형성되었기에 교통의 중심지이자 군사 거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의 잘츠부르크 지명에서 '잘츠(Salz)'와 '부르크(Burg)'는 각각 독일어로 '소금'과 '성'이라는 뜻을 지녔다. 이는 잘츠부르크 도시 인근에 위치한 암염 광산 때문인데, 소금이 귀했던 과거 이곳에서 생산된 소금은 유럽 전역으로 퍼지며 잘츠부르크가 부를 축적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이처럼 군사와 무역 중심지 역할을 했던 잘츠부르크는 지속적으로 성장해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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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reidegasse, Salzburg


여행 2년 전 유럽여행을 해야겠다는 다짐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대략적인 일정을 잡던 시기, 주변 유럽여행 경험 있는 지인들에게 많은 조언을 구하고 있었다. 어느 도시를 방문하면 좋을지, 이동 루트는 어떻게 계획할지, 위험하지는 않은지 등등 다양한 의견을 물으며 여행의 큰 흐름을 잡았다. 오스트리아 일정에 있어서도 수도인 빈 외에 할슈타트, 잘츠부르크, 인스부르크, 린츠 등 도시 리스트가 있었지만, 시간적 한계로 인해 도시들 전부 여행은 어려웠고 선택을 해야 했다.


오스트리아 빈의 경우, 수도이기도 하며 내가 사랑하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배경이었기에 여행함에 있어 필수 도시로 포함시켰다. 또한 할슈타트의 경우, 주변 지인들로부터 호평이 자자해 이곳 또한 계획에 포함했다. 그러나 잘츠부르크는 꽤나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곳이었다. 어떤 이들은 아름다운 풍경과 여유로운 소도시적 매력이 가득해 추천했지만, 또 어떤 이들은 하루면 둘러볼 수 있고 지루했다는 평이 있었다. 이에 잘츠부르크를 여행할지 거듭 고민하던 끝에 결국 이동 루트와 겹쳐 일정에 포함시켰고, 그렇게 잠깐이나마 방문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잘츠부르크를 방문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개인적 취향으로 수도인 '빈'보다 더 좋은 여행지였으며, 잘츠부르크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가히 인생의 행복한 기억을 하나 놓칠 뻔한 곳이었다. 이곳이 지닌 평화롭고 신비로운 분위기는 여행 내내 행복하다는 생각에 잠기게 해 주었다. 오랜 여행으로 피로에 지친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잘츠부르크 구석구석 숨겨진 곳을 탐험하는 재미로 인해 온종일 걷게 만든 곳이었다. 여행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주관적 감정의 영역이기에 다른 이의 이야기는 참고할 뿐, 역시 직접 방문하고 느끼는 것이 정답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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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bell Garden, Salzburg



잘츠부르크가 유명한 데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하나는 고전 명작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영화에 등장했던 '미라벨 정원'을 직접 방문했을 때, 1965년 개봉 당시와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주인공들이 노래하고 춤췄던 정원 곳곳의 장소들은 영화의 큰 명성에 따라 많은 사람들의 스쳐간 손 떼만 묻어있을 뿐, 모든 것이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60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마치 과거 그때의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고 있는 듯한 묘한 공간적 연결감을 느꼈다.


이렇게 보니 내가 방문한 오스트리아의 모든 도시가 영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이는 그만큼 오스트리아 도시들이 전부 영화 배경지로 사용될 만큼 아름답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며, 실제 나조차도 오스트리아 여행에 있어 그 어떤 도시도 호불호 없이 모두 만족감을 크게 느꼈었다. 소도시의 여유와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세련된 문화에 매력을 느끼는 여행자라면 단연코 오스트리아는 최고의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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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고향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가 유명한 또 다른 이유는 음악의 천재 모차르트 덕분이다.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가 태어난 도시이자, 연주를 위해 유럽 각지를 여행한 것을 제외하고 그의 젊은 생애 많은 시간을 보냈던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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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zartplatz, Salzburg


1756년 한 음악가 집안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난 모차르트는 아주 어린 나이에서부터 특출 난 재능을 발휘해 유럽 전역에서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음악교육이라고는 자신의 누나가 바이올린 켜는 모습을 본 것이 다인 어린 모차르트에게 악기를 쥐어주자 연주는 물론 작곡까지 하는 말 그대로 '천재'였던 것이다. 어린 모차르트의 소질을 알아본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이런 모차르트의 손을 잡고 적극적으로 유럽 왕가들을 방문해 그를 더욱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모차르트가 6살이던 당시, 오스트리아의 전신인 합스부르크 왕가 쇤부른 궁전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한 것은 전설로 회자될 만큼 그의 천재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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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모차르트가 연주를 위해 유럽 전역을 여행하던 기간 외 그는 잘츠부르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어릴 때부터 세상의 다양한 곳들을 구경해 시야가 넓어지고, 상대했던 사람들이 왕가나 부유층 귀족이었기에 그는 잘츠부르크를 늘 답답하게 여겨왔다. 그는 잘츠부르크를 벗어나 더 넓은 세상에서 살기 원하는 자유로운 영혼이었으며, 특히 그가 1781년 빈으로 이주하기 직전에는 잘츠부르크를 싫어할 정도였다.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연주자로 음악가 삶을 이어오던 모차르트는 대주교와의 지속적인 마찰과 통제로 인해 잘츠부르크를 하루빨리 탈출하는 것이 꿈이었다. 대주교는 그가 종교적인 곡을 작곡하고 연주하길 강요했고, 모차르트가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음악적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또한 거친 언행을 통해 모차르트에게 모욕감을 주어 그의 천재성을 앗아가는 독 같은 존재였다. 이런 잘츠부르크 삶에 지친 모차르트는 결국 막연히 자신의 재능과 실력만 믿은 채 잘츠부르크를 떠나 빈으로 향했으며, 그는 그런 빈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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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보았을 때 모차르트잘츠부르크를 싫어했던 이유가 충분이 납득된다. 마치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된 것 마냥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빈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기에 그는 옳은 선택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재능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스스로 극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만약 그가 끝까지 잘츠부르크에 남아있었다면, 아마 우리가 아는 그의 소나타, 교향곡, 터키행진곡 등 숱한 걸작들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고전주의 음악이 발전함에 있어 많은 지장이 있었을 것이다.


모차르트잘츠부르크의 삶을 부정하고 싫어했던 것과는 달리, 현재 잘츠부르크에서는 모차르트의 생가를 복원하고 그의 동상까지 세우며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 사람이었던 것에 대한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세기의 천재를 배출하고도 그의 재능을 억압했던 잘츠부르크와 비록 고향은 아니었지만 그의 재능이 만개하게 도왔던 사이 어디가 더 '음악적 도시'인지에 대해 서로 라이벌 의식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비록 그는 생전 잘츠부르크를 혐오했어도 만약 현재 잘츠부르크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이 그임을 스스로가 안다면, 이제는 잘츠부르크를 용서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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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라 불린 사람들



모차르트의 삶을 보며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에게도 환경과 기회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조금 더 일찍 잘츠부르크를 벗어났다면, 더욱 훌륭한 명곡들을 세상에 남겼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를 대표하는 여러 수식어들 중에는 단연 '천재'와 '신동'이라는 단어가 붙는다. 두 단어가 종종 혼용되지만, 나는 이 두 단어가 엄연히 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보통 신동이라 함은 그 능력이 너무 탁월해 어릴 때부터 재능이 빛을 발해 앞으로의 장래가 기대되는 '예비 천재' 같은 느낌이다. 반면, 천재는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 두 단어의 근본적 차이는 재능통찰이다.


재능 있는 사람은 남들이 맞히지 못하는 과녁을 맞히고,
천재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과녁을 맞힌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보통 우리나라에서 천재라 함은 똑똑한 사람을 지칭한다. 예를 들어, 원주율의 소수점 10,000자리 숫자까지 외우는 초등학생이라던지, 또래보다 몇 년이나 앞서 수석으로 대학교에 입학한 학생이라던지, 외국어를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하는 사람들 말이다. 분명 이런 분들이 뛰어난 것은 맞지만, '천재'라는 수식어는 조금 다른 결을 지닌 것 같다. 내가 정의하는 천재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람들이다.


역사적으로 남은 위인들을 볼 때 대체적으로 하나같이 패러다임을 바꾼 사람들이다. 창의력과 새로운 관점을 통해 기존의 틀을 부수고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거나 새로운 장르를 창조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제시한 수많은 새로운 개념과 방식은 우리의 역사와 삶에 직간접적으로 변화를 만든다. 음악을 예로 들면, 당대 실력이 뛰어난 연주자들은 수없이 많았을 것이다. 다만 연주 실력만 뛰어났다면 그 시대가 지나 쉽게 잊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연주자는 길이 오래 남았다. 모차르트가 35살의 나이로 단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세기의 음악가로 남은 이유는 그가 고전주의라는 음악사의 큰 변화를 일으킨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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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스콧 배리 카우프만, 캐롤린 그레고어 작가의 '천재보고서' 책을 읽게 되었다. 처음에는 왠지 모르게 제목이 싸구려틱하게 느껴져 흔히 그냥 가르치려고 하는 자기계발서 혹은 한국의 교육열을 자극하는 상업적인 책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그러나 책갈피를 넘기며 내용을 훑어보던 중 이 책이 이론과 연구를 상세히 조사하며 쓰인 '논문'같은 책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천재가 되는 법'같은 싸구려 주제가 아닌 진실로 세기의 천재들을 분석하며 그들이 지닌 특징들에 대해 서술해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는 그런 책이었다. 해당 제목이 책 내용에 가장 적합한 제목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천재들이 보유한 총 열 가지의 특징을 각 챕터로 녹여냈다. 서로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각 챕터마다 다양한 관점으로 천재라 불린 사람들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했다. 내용에 공감하고 깊은 영감을 얻어 밑과 같이 하나하나 정리했다.


첫 번째로 '상상놀이'에 대한 중요성을 언급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린 시절 상상력을 동원해 놀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소꿉놀이를 통해 각자의 역할과 상황을 부여해 놀았던 경험부터, 장난감 블록을 이용해 성을 짓고 형체 없는 악당과 싸우는 등 다양한 상상을 통해 성장해 왔다. 이는 창의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그 누구도, 그 어떤 지식도 사고의 틀을 제한하지 않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세계관을 구축한다. 이런 창의성과 머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상상들은 천재의 가장 원초적인 요소라 볼 수 있다.

"많은 예술가들, 특히 작가들에게 이처럼 중요한 '원초적인 경험'은 어린 시절에서 비롯되며, 어린 시절의 기억과 감정의 깊은 우물에 접근하는 능력은 그들의 창작을 촉진할 수 있다.", 천재보고서 p.63


두 번째로 '열정' 즉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이 추구하는 하나의 꿈을 설정한 뒤 그에 따른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실력이 늘고 발전하는 과정 중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시도할 기회가 많아지는 게 사실이다. 특히,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그 열정의 근본이 외부적 요인이 아닌 내부적 요인이 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외부적 요인은 상황이 바뀌면 쉽게 지치거나 포기할 수 있지만, 내적 요인은 자신의 이상적 염원의 연장선에서 과정을 즐기게 되고, 본인과 그 꿈이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즉, 정체성이 된다. 그리고 할 수 있다는 낙관적이고 희망적 사고를 통해 그 정체성을 계속 지켜나갈 수 있다.

"일단 열정의 불이 한번 붙으면 그 시작이 인생의 초반이든 후반이든 절대 꺼지지 않는다.", 천재보고서 p.76
"꿈과 사랑에 빠지면, 그리고 그 꿈을 성취한 자신의 미래 모습과 사랑에 빠지면 그 비전을 실현하려는 엄청난 힘이 솟아난다.", 천재보고서 p.91
"어떤 분야에 진정으로 탁월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을 수행하는 과정과 사랑에 빠져야 한다.", 천재보고서 p.91


세 번째로 '공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책에서는 '마음 방랑'이라고 표현했지만, 쉽게 풀이하자면 백일몽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 예를 들어 버스를 타거나 그저 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거나 우리가 생각하기에 대수롭지 않은 시간 동안 많은 창의적인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이를 '무의식과 연결되는 법'이라 주장했고, 무의식 속 다양한 생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번뜩이게끔 도와준다. 철학자들은 의식적으로 이 과정을 수행하기 위해 걸었으며, 이에 세계 유수 대학에는 '철학자의 길'이라는 곳이 많다. 또한 어떠 이들은 샤워를 오래 한다던지 각자만의 방식으로 공상을 활용했다.

"내적인 의식 흐름을 자주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세계를 개인적으로 성찰하고 미래의 자아상을 그려본다. ... 내면 성찰은 삶에서 의미를 찾게 해주거나, 적어도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생각과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 천재보고서 p.103


네 번째로 '고독'할 줄 알아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각종 자극으로부터 멀어진 고독의 시간을 통해 자신 내면을 성찰할 수 있다. 고독 속에서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으며, 공상 속 떠오르는 생각을 아무 방해 없이 집중할 수 있다. 실제로 쇼펜하우어, 니체와 같은 유수 철학자들, 예술가들, 천재라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고독을 아는 사람들이었고 고독 속에서 천재성이 깊어졌다. 괴테는 "인간은 사회 속에서 가르침을 받고, 고독 속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주장했다. 고독을 통해 내부 세계를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는 것, 외로움이 천재들에게 더 많은 가능성을 주었다.

"고독은 자기 발견, 정서적 성숙의 필수적인 요소이며, 고독 속에서 이루어지는 성찰은 가장 심오한 개인적, 창의적 통찰을 가능하게 한다.", 천재보고서 p.120


다섯 번째로 발달된 '직관' 능력을 주장한다. 이는 통찰과 깊게 맞물려 있다. 직관은 보통 어떤 현상과 사물, 사람을 보고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말한다. 직접 대상을 경험하지 않고 분석해 버려 비판도 존재하지만, 사실 이미 했던 다른 경험을 토대로 깨달은 것을 무의식적으로 가져와 위험을 미리 예측하고 직접 경험하기 전 판단하려는 생존본능과도 같다. 경험하지 않았기에 앞으로 다가올 일들은 이제 통찰로 풀어가야 한다. 최대한 본질을 꿰뚫고 그에 상응하는 행동양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보통 직관이 뛰어난 사람이 통찰도 뛰어난 경우가 많으며, 통찰의 과정 속 다양한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 번외로 통찰은 타고난다는 이론이 흥미로웠다. 후천적으로 통찰력을 기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선천적인 재능이라는 연구가 있다.

"기억과 예측 간의 연결이 추상적일수록 창의적인 사고는 더 능숙하고 정교해진다.", 천재보고서 p.146


여섯 번째로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다. 다른 관점을 보기 위해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자신이 아는 지식이 언제나 진리가 아닐 수 있다는 열린 태도이며, 다른 방식을 사고할 수 있는 가능성이기도 하다. 또한 경험적으로 깨달은 다양한 지식과 관념들을 쌓고, 그 점들을 새롭고 다양하게 연결하는 과정 속 창의적인 결과물이 생겨날 수 있다. 이는 애플의 창립자 스티븐 잡스가 과거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연설에서 한 말과 일맥상통하며, 다양한 생각에는 다양한 경험이 필수인 것을 지적한다. 여행도 자신을 스스로 낯선 곳에 던져 평소 할 수 없었던 생각과 경험을 얻는 과정이기에 고귀한 것이다.

"경험에 대한 개방성은 생각과 감정에 관여하려는 욕구와 동기를 불러일으켜 진리와 아름다움, 새로움, 참신함을 추구하게 된다. 아울러 탐색 행위는 위대한 예술적, 과학적 혁신의 원재료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천재보고서 p.170
"경험에 대한 개방성이 높은 사람들은 욕구를 보상받을 가능성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발견할 가능성을 통해 활력을 얻는다.", 천재보고서 p.172
"새로운 경험에 열려 있고, 세상을 적극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함으로써 익숙함의 악영향에 대응하고, 인지적 유연성을 높일 수 있다. 경험에 대한 개방성은 새로운 패턴을 인식하고 서로 무관해 보이는 정보들에서 연결 고리를 찾으려는 능력과 욕구인 통합적 복합성과 일맥상통한다.", 천재보고서 p.185


일곱 번째로 '마음 챙김'으로 번역된 순간을 집중하는 것이다. 최근 살아가며 '오늘 하루 내가 뭐했지?'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분명 하루를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돌이켜봤을 때 하루 종일 어떤 일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것과 같다. 순간순간 주어진 일과를 해결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내 속 시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 내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때 의식적으로 삶을 한 번 멈춰 주위 혹은 내면을 주의 깊게 집중하고 관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순간의 어떤 한 가지에 집중하므로 평소에 생각지 못한 흘려보낸 것에 있어 다양한 관점 혹은 본질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마음 챙김은 새로운 것을 적극적으로 알아차리는 단순한 과정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항상 깨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 마음 챙김은 '지금, 여기'에 마음을 단단히 고정하고, 진기함과 놀라움에 마음을 열고, 주변 환경에 민감해지는 것이다.", 천재보고서 p.198


여덟 번째로 '민감성'이다. 민감한 사람들은 창의적인 경우가 많다. 이유인즉슨, 작은 자극도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낄 수 있으며, 하나의 자극에도 다양한 통찰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풍부한 자극은 더 많은 경험과 연관 있는 듯하며, 민감하기에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있으면 자연스레 공상, 내면 성찰의 시간을 가지는 등 모든 천재가 가진 성향이 얽혀있는 듯하다. 민감하기에 미세한 변화도 알아채고 또 미세한 변화를 만들 수도 있다.

"고도로 민감하게 세상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곤경이면서도 자산이 될 수 있으며, 종종 홀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수도 있다.", 천재보고서 p.226
"고도로 민감한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더 다채롭고 극적이며 비극적이고 아름답게 보인다. 민감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주변 환경에서 놓치는 사소한 것들을 포착하고, 다른 이들에게 그저 무질서해 보이는 것에서 패턴을 보고, 일상생활의 자질구레한 것에서 의미와 은유를 찾아낸다.", 천재보고서 p. 227
"민감한 사람들은 창의적 작업을 통해 자신의 에너지와 감정을 쏟아부어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창출할 수 있다. 민감한 사람들의 날카로운 지각력은 우리 삶의 실존을 볼 수 있는 창문 역할을 하는 예술 작품으로 전환된다.", 천재보고서 p.232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자신 안에 혼돈을 품고 있어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


아홉 번째로 '역경을 유익한 기회로 바꾸기'다. 책에서는 역사적 위대한 인물들이 역경을 통해 위대한 작품을 창조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역경을 대하는 자세와 관련 있다. 의도치 않게 마주한 역경 속에서 그들은 역경을 반추하고 분석하며 의미를 찾았다. 즉, 어떤 상황이라도 그들은 극복하고 배우는 것에 초점을 맞췄으며, 이는 성장에 필요한 가장 본질적인 부분인 것이다. 전 세계 어느 지역을 가든 영웅서사에는 기승전결이 필수다. 기승전결 중 '전'에는 보통 갈등이 심화되는 역경을 담고 있으며, 이 역경을 이겨낸 자들만이 영웅이 된다. 모든 역경이 사람을 성장시키며, 역경에 대한 면역력과 자신감을 얻는 동시에 기존 순류에 저항하는 역류를 만든다.

"예술은 인생의 가장 작은 슬픔의 순간에서부터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비극까지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한다. 우리는 고통을 경험하고 이를 해결하려고 씨름한다.", 천재보고서 p.256
"역경을 겪는 사람들은 창의적인 배출구를 추구할 가능성이 더 크고, 다른 한편으로 창의적인 성향의 사람들(경험에 대한 개방성이 높고 민감한 성격)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일을 하는 탓에 상처받기 쉬워 살면서 더 많은 역경을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 천재보고서 p.261


마지막으로 '다르게 생각하기'다. 이것이 천재의 본질이다. 전통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난 사고를 하는 것, 곧 당연한 것에 의문을 던지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것, 변화를 일으키는 시작점이 된다. 사람들은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는 생각을 싫어한다. 깊게 생각하기 싫은 이유일수도 있고, 사회적인 통념과 반하는 것이 싫은 것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기득권 혹은 사회주류와 같은 방향으로 갈 경우 그렇지 않은 삶보다 평온할 확률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천재와 같이 남들이 쉽게 볼 수 없는 또 다른 진리를 발견하거나, 또 다른 정답을 발견한 사람은 달랐다. 그들은 사회의 아니꼬운 시선과 정면으로 부딪혔고,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추후 그들이 인정받았을 때 그들은 비로소 천재 아니 위인이 됐다. 늘 숲을 보고, 숲에서도 다양한 모습을 보고, 다양한 모습 속에서도 새로운 관점을 살펴보는 것. 천재의 가장 기본이자 본질적인 요소다.

"전위적으로 평가되는 모든 작품은 초기에 배척당하다가 그 후 비평가들의 인정을 받고, 주류가 되고, 다시 새로운 어떤 것에 자리를 빼앗기는 과정을 피할 수 없다.", 천재보고서 p.290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은 창의적 사고를 인정할 능력을 떨어뜨린다.", 천재보고서 p.292
"다양한 해결책과 사고방식을 자유롭게 시도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변화하는 세상의 불확실성과 새로운 도전에 대처할 준비를 하지 못할 것이다.", 천재보고서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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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나의 견해를 하나 더 얹어 천재는 '자신이 주도권을 쥐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지닌 삶의 방식과 태도, 신념과 사회에 대한 도전이 통할 경우 그들은 천재가 된다. 사건의 소용돌이에 정처 없이 끌려가는 인생이 있는 반면, 어떻게든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 끝의 결과가 늘 좋다는 보장은 없다. 분명 단명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비웃음거리가 된 사람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천재들 그 누구도 자신이 천재라 불릴 것을 계획하고 산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삶을 살다 보니 추후 천재라 불린 것이다.


행복노트 #70

a piac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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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스타그램: @domkim.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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