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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프라하,
"부조리한 인생과 자유"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76 _ Prague, Czech Republic

by 김예담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체코 프라하,

첫 번째 이야기: 부조리한 인생과 자유.



뮌헨에서 출발한 기차는 북쪽으로 그리고 동쪽으로 서서히 레일을 이동하며 체코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빛의 질감이 따스하고 부드럽게 바뀌며 기차의 그림자는 길고 점점 짙어져 갔다. 오스트리아, 헝가리를 이어 동유럽 여행의 방점이라 할 수 있는 체코 여행이 시작됐다. 그 첫 출발지는 체코 프라하였다.


오후 다섯 시쯤 늦오후가 되어 프라하에 도착했다. 언제 잠에 들었는지도 모른 채 한참을 달려온 것 같다. 창 밖을 바라보니 해는 벌써 지평선에 걸쳐져 있었고, 온 세상이 금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다행히 프라하 중앙역을 놓치지 않고 내렸다. 만일 깨어나지 않았다면 칠흑같이 어두운 밤 폴란드에서 눈을 떴을 것 같다. 세상이 가장 아름다울 시간, 하루 중 태양이 주는 마지막 선물인 프라하의 노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었다.






기대했던 유럽



프라하는 내가 상상하고 기대한 유럽과 가장 닮아 있었다. 정돈된 색채와 화려한 예술장식으로 한껏 꾸며진 옹기종기 붙어있는 오래된 건물들, 차가 아닌 사람이 중심 된 거리들, 그리고 그 거리를 걷는 깔끔하고 차분한 행색의 여유 가득한 사람들, 거리를 채우는 바이올린 소리까지 지금껏 내가 상상한 모든 유럽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는 장소였다.



유럽여행을 시작하기 전 유럽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고즈넉한 분위기 속 고급진 도시 경관과 불어, 이태리어가 들려오는 낭만적인 분위기,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미술관에서 감상하는 유명 예술 작품, 그리고 그 속을 거닐고 있는 나. 그저 황홀에 가득 찬 이미지를 상상하곤 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 환상은 유럽여행 첫날부터 산산조각 났다. 어디를 가도 관광객을 포함한 수많은 인파가 장소를 채우고 있었고, 그들이 만드는 소음과 쓰레기, 거리에서 풍기는 정체 모를 불쾌한 냄새, 종종 마주하는 불친절한 사람들, 혹여나 방심한 사이 당할 수 있는 소매치기에 대한 경계, 한여름 에어컨이 없는 숙소 등 모든 스트레스 가득한 요소들이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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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두 달 가까운 시간까지 유럽여행을 잘 이어왔다. 여행에 대한 기억과 배움은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또 여행 중간 아주 행복한 기억들을 가져왔기에, 여행의 모든 부분이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즐겁게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여행 중 여태껏 했던 고생의 보상을 프라하에서 모두 돌려받는 것 같았다. 바로 그토록 내가 찾고 기대하던 유럽의 모습을 지닌 곳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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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기대와 늘 다르다. 상상했던 그대로 현실이 일어나는 경우는 드물다.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부분이 늘 있기 마련이다. 그런 현실을 극복하고 버텨나가는 것이, 내가 기대했던 대로 현실을 최대한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니면 갖가지 선택과 노력으로 이루어진 결과에 맞춰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라 생각이 든다. 현실은 당연히 기대와 다르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럼에도 꾸준히 한 발자국씩 나아가는 삶, 그러다 보면 내가 기대했던 유럽을 우연히 만난 것처럼 현실에서도 내가 원하고 기대한 삶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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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 방황하기



노을이 짙게 낀 프라하에 매혹당해 한동한 이 황홀한 감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친 여행의 피로를 풀기 위해 저녁에는 휴식하기로 계획했음에도 지금의 이 아름다운 순간을 놓치기 싫어 무작정 프라하를 방향과 목적 없이 거닐기 시작했다. 이곳은 나에게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또 어떤 영감과 추억을 선사할지 기대감이 솟구쳐 올랐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튼튼한 두 다리와 강인한 자아 그리고 카메라였기에 내가 가진 유용한 도구들을 활용해 프라하를 천천히 탐미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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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에는 'Flâneur'라는 단어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단어이자 내가 추구하는 삶과 닮아있는 단어다. 19세기 파리 거리 한구석에는 한가로이 배회하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철학자이자 때론 예술가였고, 또 학자였다. 도시 곳곳에 자신의 정체성과 색깔을 숨긴 채 사람들을 관찰하며 인간과 사회 본질에 대한 사유를 이어나갔고, 때로는 반대로 그들로부터 영감을 얻기도 했다. 그 영감을 활용해 문학과 시, 그림과 연구 등 인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그들의 명확한 특징은 호기심을 가진 채 자유로이 어쩌면 한가해 보일 정도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저 관찰하는 것이었다.


나 또한 한 명의 'Flâneur'가 되어 프라하 곳곳을 정처 없이 방황하고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들을 감시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닌, 열린 시선으로 사람에 대한 탐구로 그들을 바라봤다. 군중 속 숨어들어 눈에 띄지 않게끔, 그들에게 절대 내가 의식되지 않게끔, 아주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그들이 지닌 이야기들을 기록해 갔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각기 다른 성향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교류하고 섞이는 과정에서 갖가지 구성과 장면이 거리에 형성된다. 그 미묘한 흐름을 따라가고 담아내는 것. 스트릿 사진작가의 의무이자 예술 표현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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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는 내가 지금껏 여행했던 유럽도시 중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도시다. 이곳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나에게 행복을 줄 도시라는 것을 직감했던 것 같다. 내가 추구한 좋은 여행의 모든 요소를 만족시킨 프라하는 유럽에서 좋았던 도시를 한 손으로 꼽을 때 늘 손가락 하나를 차지하는 도시가 되었다.


프라하에서 만들었던 행복한 기억, 추억, 사람들에게 받았던 영감 등 모든 부분이 지금까지도 나에게 영향을 주어 살아 움직이게 만들었고, 인생을 자유로이 방황하고 관찰하는 'Flâneur'의 삶을 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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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인생과 자유



프라하의 상징이자 프라하 여행의 중심점이라 할 수 있는 '카를교(Charles Bridge)'를 건너 남쪽 방향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프라하 도시 중앙 세로로 흐르는 블타바 강을 따라 유유히 걸어가던 중 처음 들어보는 청명한 타악기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신기한 소리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고 점점 소리와 가까워지는 듯했다. 저 멀리 노을 속 사람들을 등진 채 해와 강을 향해 노래하는 듯한 현란한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뒷모습부터 행복해 보이던 그에게 호기심을 느낀 나는 천천히 다가갔다.


생전 처음 보는 악기였다. 그가 가진 아시아인의 외모와 행색으로 마치 네팔이나 티베트 혹은 주변 어디에서 가져온 한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것 같았다. 그는 두드리기도, 문지르기도, 스쳐 치기도 하며 악기가 낼 수 있는 모든 다양한 소리로 연주하고 있었다. (여행 후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로 그가 연주하던 악기는 '행드럼'이라는 비교적 최근 스위스에서 개발된 악기였다.)


악기의 생김새와 소리가 특별한 것도 있었지만 얼마 안 가 내가 그 소리에 이끌렸던 것은 악기가 아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족감과 행복을 담은 듯한 그의 표정과 몸짓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그를 조우했을 때, 그는 현실의 고통과 슬픔 따위는 모두 잊고 단순히 현재 이 순간의 따뜻한 햇빛과 아름다운 풍경, 흥겨운 연주를 즐기고 있는 존재였다. 그의 몰입이 흐트러질까 봐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리고 간접적으로 느껴지되 그는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을 즐기고 있는 존재임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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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일까. 그의 삶을 상상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가는 자유로운 영혼일 것 같았다. 자유 속에서 자신의 행복을 따라가는 사람 같았다. 그가 가진 삶의 이면을 보지 않은 내가 함부로 판단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렇게 느껴졌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가는 삶은 어떤 삶일까. 고뇌가 시작됐다.


난 늘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에서 타인의 개입과 주변의 영향을 받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것 같다.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었어도, 적어도 스스로가 주도적인 삶을 살았음은 확신한다. 그에 따른 후회도 없고, 나는 내가 살아온 인생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사랑한다.


하지만 이런 삶을 산 것도 점점 한계에 부딪히는 것 같다. 지금껏 자유롭고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잃을 것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하던 젊음의 패기가 있었던 점과 주변인들의 많은 도움 덕분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짊어지는 책임이 많아지고, 그런 현실에 묶이다 보면 나의 삶보다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순간이 많아지는 것 같다. 직장을 다니는 지금은 타인의 사업과 번영을 위해 그리고 그 속에서 타인의 성과를 위해 시간을 보내게 된다. 또한 추후 가정이 생기고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생긴다면 나만을 위한 선택이 아닌, 모두를 위한 선택을 고려하게 된다. 그 속에서 혹여나 나를 잃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까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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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았다. 운동도 좋아했고, 악기 연주도 좋아했으며, 글 쓰고 사진 찍는 것도 매우 좋아했다. 그때 조금 더 집중했던 것에 매번 꿈이 바뀌었으며, 한때는 작곡가 또 한때는 영화감독, 사회운동가 등 많은 꿈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지금 이 모든 꿈들을 돌이켜볼 때 직업과 일은 달랐어도 그 본질은 동일한 것 같다. 나의 신념과 감정을 표현하여 고취시키는 것이다. 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들의 숙명인 것 같다.


그러나 현실은 매일 아침 회사에 가기 위해 서류가방을 들고 지옥철로 향한다. 어릴 때는 30살이 되면 전망 좋은 넓은 집에서 전 세계를 무대로 명예롭게 살아갈 것 같았다. 경제적인 여유도 있고, 가정도 꾸리며,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삶을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넓은 집에 살고 있지 않으며, 경제적 여유도 가정도 아직 없다. 나름 전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나 그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은 아니며, 매일 실적 압박과 직장상사의 통제 속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 '나'를 지우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일상 속 내 인생의 주도권을 찾기 위한 나만의 저항은 지속되고 있다. 사진을 찍으며 사진작가를 꿈꾸는 일, 글을 쓰며 출판작가를 꿈꾸는 일, 그렇게 내가 표현한 가치와 작품이 세상에 인정받고 음미되는 일, 이런 꿈과 희망을 가지고 운명과 일상에 저항해 살아가는 중이다. 아니 어쩌면 그런 운명을 개척하는 과정 속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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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지 못한 세상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당신의 존재 자체가 반항이 될 정도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


'이방인'으로 유명한 프랑스 문학작가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 신화'를 예로 들며 나에게 삶을 대하는 새로운 태도와 관점을 제시해 주었다. 그는 인생에 의미 혹은 목적 따위는 없으며, 인생 자체가 부조리라고 주장했다. 사람은 태어나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죽음으로 향하는 과정 속에는 고통이 가득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차피 자신의 운명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이 고통을 이겨내고 지속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부조리라 주장했다.


사람들이 부조리한 인생과 운명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카뮈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고통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고, 두 번째는 종교와 같은 사후세계 혹은 초월적 의미를 스스로 부여해 삶을 살아갈 긍정적인 희망과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자신이 죽어가는 운명과 고통을 마주할 운명을 알지만 이런 운명을 그저 받아들이고 고통을 이겨내며 현실을 살아가는 삶이다.


그는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선택지에 있어 사실상 운명을 회피하는 방법이라 여겼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사실인지 아닌지 모를 허황된 믿음을 가지는 것도 모두 인생의 부조리를 피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마지막 세 번째 선택이야 말로 인생의 부조리를 정면으로 맞서며 주어진 운명에 저항하는 방식이라 주장했다. 그리고 시지프(시시푸스) 일화를 예로 들며 삶을 대하는 태도에 영감을 주었다.


'시지프'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한 인물이다. 그는 신과의 약속을 어겨 산 꼭대기를 향해 계속해서 바위를 굴리는 형벌을 받았다. 다만, 바위가 꼭대기에 닿으면 다시 땅으로 굴러 떨어지고, 시지프는 바위가 다시 아래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바위를 미는 일을 계속 반복해야 한다. 알베르 카뮈는 우리 인생이 이런 시지프의 형벌과 닮아있다고 이야기한다. 인생은 바위를 미는 고통이 가득하고, 바위가 아래로 떨어지면 다시 그 고통을 느낄 걸 알면서도 반복하는 삶. 부조리 그 자체인 삶이다. 그러나 카뮈는 말한다. 행복한 시지프를 상상해 보라. 고통이 반복될 걸 알면서도,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일이 의미 없음을 알면서도, 운명을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사는 삶을 말이다. 이것은 이런 부조리한 인생에 정면으로 부딪혀 저항하는 일이자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자유라고 이야기한다. 부조리에 부조리로 대응하는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 속 고통이 찾아올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일상을 열심히 살아나간다. 가끔은 무얼 위해 사는지 모를 만큼 인생이 의미 없고 허무하게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럼에도 이런 운명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초연한 태도로 지금 여기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도 행복하게 말이다. 알베르 카뮈는 철학 근본에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의 질문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시지프처럼 고통 속에서도 스스로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행복하게 살아나가는 것이 부조리에 저항하고 운명을 거스르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지금 당장 원치 않는 고통의 삶을 살고 있더라도 항상 불행만 가득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 속에 분명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행복과 삶의 의지가 생기는 가치들이 존재함을 믿는다. 인생에서 마주할 고통도 희망도 부정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삶을 천천히 작게나마 일궈나가며 내일 마주할 고통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가방을 메고 출근길에 오른다.


행복노트 #73

부조리 속에서도 삶을 사랑할 때, 행복은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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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스타그램: @domkim.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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