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포토에세이 #80 _ Cesky Krumlov, Czech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프라하를 떠난 기차는 체코의 남쪽으로 고요하게 이동하고 있다. 늘 채광 좋은 창문에 기대어 풍경을 구경하고, 사진도 찍고, 따스함에 못 이겨 잠들었다 일어나는 것을 반복하는 여행이다. 유럽여행 통틀어 기차를 대략 100번은 탄 것 같다. 이제는 기차 안이 제법 집처럼 느껴질 만큼 편안한 공간으로 다가왔다. 기차 안에서 마주하는 낯선 이들도 어느 순간부터는 불편하거나 의식하지 않게 되었다. 여행에 제법 익숙해진 나는 진정한 여행자가 되어 유럽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너는 꿈이 뭐니?' '저는 나쁜 사람들 잡는 경찰이 될 거예요.' '저는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의사요.' '저는 대통령이 꿈이에요!' '저는 멋진 과학자가 돼서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고 싶어요.' '저는 축구하는 게 좋아서 축구선수할래요.'
'예담아, 너는?' '네? 음.. 저는.. 저는요..'
깜빡 잠에 들었다. 꿈을 꾼 모양이다. 어릴 적 실제 겪었던 기억이 머리 한 구석 숨어있다 꿈으로 보인 걸까, 인생의 여러 순간들이 재구성되어 꿈의 형태로 나타난 걸까, 아니면 한 편의 영화처럼 없었던 일이 상상과 꿈이 혼합되어 상영된 걸까. 꿈.. 꿈..? 맞아. 기억났다. 꿈이 없어서 머뭇거렸던 것이 아닌,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머뭇거렸던 기억. 다른 친구들처럼 어떤 직업을 딱 잘라서 말할 수 없었던 기억. 꿈이란 꼭 무언가 되어야 하는 걸까 고민했던 기억. 불편한 감정이 들었던 그때의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해마 어딘가에 저장했다 필요한 순간 튀어나온 듯했다.
평생 잊고 지냈던 그때의 기억이 번뜩 떠올랐을 때, 그때 피부로 느껴진 온도와 습도, 교실과 친구들에게서 나던 학교 특유의 냄새, 책상과 의자에서 느껴지던 오래된 나무의 촉감, 눈을 감았을 뿐이지만 시간을 여행하듯 마치 과거 그 장면에 잠깐 머물게 되었다.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아이들을 보면 너무나도 앳된 순수한 친구들로 보이지만, 눈을 감은 그 장면의 내 시선은 키 138cm 아이가 보는 시야에 고정되어 있다. 너무나 거대했던 나무, 발이 작아 맞지 않던 실내화, 쉬는 시간 놀 궁리만 하던 개구쟁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절대 돌아올 수 없는 그때의 따뜻하고 아련한,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먹먹한 감정이 너무 좋았다.
추억을 회상하던 것도 잠시,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아직 대낮 환한 햇빛이 지나가는 나뭇잎 사이사이로 반짝이며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아직 꿈 속인지 착각 들만큼 따스한 분위기에 눈을 뜨기 싫었지만 '지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체스키 크룸로프'라는 기관사의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3시간을 달려 목적지인 체스키 크룸로프에 도착한 것이다. 추억에 젖기 위해, 와보지도 않은 이곳에서 추억을 느껴보기 위해, 없는 시간을 만들어 방문하게 된 곳이다.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현실과 회상이 뒤섞이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기차역을 벗어나 '체스키 크룸로프'라는 도시를 맞이한 첫인상은 '시골'이었다. 인구가 많지 않아 집들이 쭉 이어진 한적한 동네였다. 주황 빛깔의 깔끔한 지붕들이 자연과 잘 어우러진 유럽 마을의 모습이었다. 또 다른 한 편으로는 흡사 미국의 어느 작은 시골동네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유명 관광지인 체스키 크룸로프 구시가지에 가기 위해 이 마을을 지나 30분은 걸어가야 했다. 많은 여행자들이 버스를 이용했지만, 나는 늘 그랬듯 뜨거운 여름햇빛을 즐기며 미련하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구시가지로 향하는 거리 중간중간 마주하는 체코사람들의 일상이 너무 좋았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버스를 이용해 구시가지로 들어가던 탓일까, 거리에는 체코사람들이 삶을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슈퍼에서 장을 본 뒤 열기에 빵이 그을리는지도 모른 채 담소를 나누는 할머니들, 집 앞 정원과 꽃을 가꾸는 할아버지, 식당 안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식당 주인아저씨까지. 이들의 평범한 일상에 자연스럽지 못한 이방인인 내가 꿈처럼 갑작스럽게 등장한 것 같았다. 평화로운 삶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쉼터가 되어주는 꿈의 형태로 말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를 지나 녹음이 우거진 공원을 지나게 되었다. 지도상에는 분명 '공원'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실제 걸어가는 여행자의 입장에는 산길이나 다름없었다. 풀과 나무 사이에 형성된 오솔길을 굽이굽이 지나 한참 걸어 어느덧 평지에 다다르니 저 멀리 나무 위로 주황빛을 내는 웅장한 건물이 시선에 닿기 시작했다. 내가 기대했던 체스키 크룸로프였다.
체스키 크룸로프는 체코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체코를 여행할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듣게 되는 체코의 대표 관광명소다. 프라하를 여행함에 있어 여유시간이 있다면 당일 잠깐 다녀올 수 있는 근교며, 도시가 아담해 반나절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잠깐이라도 반나절만이라도 꼭 시간을 내어 방문하기를 추천하는 것에 이제 나도 가담하기로 했다.
숲 속을 지나 저 멀리 체스키 크룸로프를 마주한 순간 동화 속 공간이 현실에 그대로 나타난 듯했다. 동화의 소재로 종종 사용되는 숲 속에 숨겨진 거대한 저택 혹은 화려한 성의 모습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과 신비로운 분위기에 적응되기까지 오랜 시간 꿈과 현실의 인지 부조화를 겪어야 했다. 조금씩 체스키 크룸로프의 풍경이 눈에 익자 지금껏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작은 귀퉁이들 또한 보이기 시작했고, 도시 속 모든 공간의 단면과 연이은 우연의 흐름은 지속적인 감탄을 자아냈다.
다사다난한 유럽 역사의 굴곡 속 체스키 크룸로프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체코 안에서도 독일과 오스트리아 국경에 인접해 있어 당시 영향력에 따라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숱한 합병과 분할을 겪었다. 게다가 근대에 들어 소련의 공산주의 영향력 아래 있기도 했으며, 체코와 슬로바키아의 분리 등 강대국 틈사이 체코의 국경지대는 한시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나름 오랜 시간 평화의 시기를 즐기고 있었으나 최근 동유럽의 정세가 다시 한번 또 불안해지며 역사의 과오를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넓은 공원을 지나 가까이에서 처음 마주한 장소는 체스키 크룸로프 성과 자메츠카 정원의 절벽을 이어주는 '망토 다리'였다. 아치모양을 띈 석조다리는 흡사 스페인 세고비아의 수도교 혹은 론다의 누에보 다리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높은 층고의 웅장한 건물이 주는 위압감에 짓눌려 한동안 넋을 놓고 다리 위를 쳐다보았다. 아마 왕족들이 대중에게 노출되지 않고 지나다닐 수 있게 지어진 상층부의 가려진 회랑과 신하들이 다녔을 것 같은 노출된 회랑을 보았다. 과거 체스키 크룸로프 시민들은 낮은 지상에서 저 위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망토 다리'가 나에게는 진정한 체스키 크룸로프의 첫인상이었다. 기대가 없었던 여행 장소에서 마주한 뜻밖의 감동을 얻는 곳이었으며, 이제 겨우 여행의 시작점이었지만, 앞으로 마주할 여행의 모든 과정이 설레기 시작했다. 왜 체스키 크룸로프가 체코를 대표하는 여행지인지 이 건축물 하나를 통해 벌써 납득하게 되었다.
언덕을 올라 '망토 다리' 위에 다다랐다. 왼쪽으로는 체스키 크룸로프 성, 오른쪽으로는 자메츠카 정원,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한 치의 고민도 없이 오른쪽 방향으로 갈 것을 택했다. 저 멀리 잘 가꾸어진 정원 속 자연이 만들어낸 화려한 색채가 보란 듯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꽃들이었다. 파랑, 노랑, 보라 등 다양한 색상의 꽃들이 조화롭게 모여 이곳이 귀족의 정원임을 뽐내고 있었다. 특히 내가 가장 애정하는 강렬한 분홍빛 꽃이 시선을 끌었다. 나는 내 인생에 있어 분홍꽃의 상징을 잘 알고 있다.
잔잔한 발걸음으로 정원을 거닐었다. 시원한 산들바람이 피부를 스치며 부드럽게 몸의 열기를 식혀주었다. 이곳을 거닐었을 사람들을 상상했다. 아니 어쩌면 아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시간을 초월해 바람처럼 이곳을 스쳐 지나갔을 사람들을 회상했다.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될 추억이었지만, 스스로를 이 공간 속에 던져 억지로 회상되길 의도했던 것 같다. 꽃들은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행복했겠지. 행복했으면.
갑자기 감상적으로 변해버린 마음 상태를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여기서 행복할 '여행'에 감수성 풍부한 순간은 경험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꽃들이 알려주는 방향으로 그리고 바람이 이끌어주는 대로 한 걸음씩 나아가 정원에서 내려왔다. 다시 마주한 '망토 다리'. 이번에는 '체스키 크룸로프 성'으로 향했다. 뻥 뚫린 '망토 다리'를 건너며 아까는 무심코 외면한 다리 아래 펼쳐진 전망을 내려다보았다. 이곳은 꿈속 장소가 분명했다. 아직 채광 좋은 기차 속 잠들어있을게 분명했다. 믿기지 않는 풍경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정갈하고 단조로운 색채 그리고 과하지 않은 정제된 색감.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동화적인 분위기는 숲 속 숨겨진 아름다운 마을을 찾는 세상의 모든 여행자를 유혹하기에 충분한 매력이었다. 왜 그렇게 많은 여행자들의 입에서 오르내렸는지 이곳을 직접 방문해서야 드디어 알 수 있었다. 비록 나는 괴상한 사유로 이곳을 찾았지만, 혹여나 이곳을 그냥 지나쳤다면 인생의 행복한 기억을 놓칠 뻔했다는 사실에 아찔해졌다.
동화 속 주인공, 어쩌면 로빈후드와 같은 상상 속 인물이 되어 체스키 크룸로프를 누볐다. 유치해 보일지라도 여행 중 적당한 상상력은 장소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체스키 크룸로프 성을 내려와 일반 사람들이 살아간 삶의 터전까지 천천히 눈으로 음미했다. 알록달록한 색채로 채색된 건물들은 어딘가 달짝지근한 맛을 내는 것 같았다. 블록 하나하나, 타일 하나하나 눈길을 주며, 혹여나 같은 흔적에 닿았을까 흩어져버린 파편들 속 잠시나마 잊힌 사람들과의 연결감을 찾았다.
심금을 울리는 마을, 체스키 크룸로프. 나에게는 행복하고 아련한 감정을 주었던 장소지만, 이곳을 여행하는 모든 사람들은 영원한 사랑과 낭만의 기억이 마치 앨범 속 한 장의 사진처럼 길이길이 남기를.
모두가 서툴러서 아름다웠던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당시에는 뭐가 그렇게 힘들었던 건지. 뭐가 그렇게 아팠던 건지. 성숙하지 못했기에 완전한, 부족했기에 완벽한. 우리는 모두 아련한 기억을 마음 한편 다시 파헤치지 않을 구석 자리 어딘가 담담히 묻어두고 살아간다.
사진을 사랑하는 나는 '필름' 사진을 매우 좋아한다. 필름 사진에서만 느껴지는 특유의 입자와 질감, 색감은 언제 다시 펼쳐보아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몇 안 되는 감성적인 도구다. 사진에 담긴 그 사람의 형체는 실제 그 사람이 반사한 빛이 필름종이와 반응해 형상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과거 처음 필름사진이 등장했던 시기, 사람들은 사진에 영혼이 갇힌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영혼이 있다면 일부 조각이 사진에 깃드는 것도 썩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사진을 볼 때 마음이 가장 울적해지는 순간은 아마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사람의 모습을 마주했을 때다. 환한 웃음을 내비치며 가장 행복한 순간을 담은 사진, 그 사람을 담고픈 가장 빛났던 순간, 실제로 그 빛이 필름지 혹은 카메라 센서에 닿아 기록된다. 어쩌면 다시는 볼 수 없는, 다시는 눈을 마주칠 수 없는, 다시는 오지 않을 그 행복한 순간을 사진으로 담아 평생 마음속 간직하게 된다. 굳이 들추지 않아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내 인생의 장면들은 듬성듬성 이어진다.
유달리 체스키 크룸로프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스쳐갔던 장소다. 그래서 마음속 깊은 곳 묻어둔 기억을 굳이 파헤쳐보고자, 회상하고자 방문한 도시다. 과거 가장 행복했던 어느 순간의 나를 되돌아보기도, 서로 성숙하지 못했을 때의 관계를 반추하기도, 그리고 여태껏 꾹꾹 눌러 담아 덮어두었던 복잡한 감정들을 모두 흩날려 보내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쌓인 감정의 무게를 한 겹씩 천천히 벗겨냈다.
타인과의 연결감, 특히 서로에게 본능적인 이끌림은 사람으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강렬한 감정 중 하나다. 매력적인 이성을 본 순간 스스로 인지할 겨를도 없이 사랑이라는 아득한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다. 쿵쾅거리는 심장과 경직된 몸, 얼굴에 올라오는 열기, 온 시선과 집중이 한 사람에게 쏠리는 현상. 세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공허 속 나와 상대방만 존재하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한 번 불타올랐던 감정은 그 규모와 범위가 대단해 완전히 식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특히, 사랑이 더욱 활활 타도록 스스로 아낌없이 땔감을 계속 집어넣었던 사랑은 지나고 나서 그 후유증이 더욱 크게 남는다. 식어버린 마음에 쌓인 재를 도려내고 다시 새로운 마음의 토양이 쌓일 때까지 마음의 상처와 고통이 지속된다. 나와 동일시했던,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소중히 여겼던, 평생 영원히 함께할 거라 믿었던 당연한 존재가 홀연히 사라지고 나면, 그 빈 공간이 주는 아리고 시린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시간은 약이다. 다행히 방법이 있었다. 사라졌던 존재만큼의 행복 혹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다른 무언가가 빈 공간을 서서히 채워가면 그 고통 또한 서서히 사라진다. 그 무언가는 사람이든, 꿈이든, 일이든 뭐든 될 수 있다. 뜨겁게 불타올랐고, 한 순간 식어버렸으며, 그 사랑을 끄려 온몸으로 열기를 덮었고, 그 잿더미가 사라질 때까지 모든 과정을 경험했던 청춘의 기억. 이 글은 어떻게 보면 찌질했던 과거에 대한 간증이자, 아팠던 이별에 대한 회고이며, 무엇보다 사랑에 있어 성숙해진 한 개인의 철학이다.
이별을 맞이한 사람은 고통스럽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별을 준비해 왔다고 해도 말이다. 웬만큼 나쁜 감정이 곪아있지 않는 한, 오랜 시간 정과 추억을 쌓은 사람이 사라질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상대방이 없는 삶에, 혼자가 된 삶에 적응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이는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상대방을 붙잡고자 노력하기도, 혹은 새로운 다른 사람을 만나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나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
나는 모든 이별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는 내가 어떻게든 상황을 바꿔보려 안간힘을 썼지만, 숱한 이별을 겪은 후에 상황과 그 상황 속 변하는 감정을 다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켜질 사랑이었다면 자연스럽게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은 누군가는 여기까지라 판단했다는 것이고, 관계를 지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감정과 상황을 어떻게 해보려는 나름의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누가 더 마음이 컸냐에 따라 그렇지 못했던 상대방을 책망할 수 있다. 상처받은 마음을 알기에 충분히 들 수 있는 감정이지만, 지나고 보니 다 부질없는 행동이었다. 그 당시 나도, 상대방도 모두 부족한 사람이었고, 그저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범위 내 최선을 다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감정이 다 사라지고 나니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다. 이별한 순간에는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게 되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결론이 대부분이고, 다시 돌아간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에 있어 진정한 승리자는 '최선을 다한 사람'이다.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아낌없이 표현하고 노력한 사람은 모든 상황에 있어 할만큼 다했기 때문에 미련이나 후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안 좋은 감정이 사라지고 나면, 지나간 연애를 담담히 직시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분명 스스로에 대해, 상대방에 대해, 그리고 관계에 대해 깨닫고 배우는 것들이 있으며, 이러한 과정을 겪어야만 사랑에 성숙해질 수 있다.
체스키 크룸로프를 걸으며 이렇게 지나간 인연들을 회상하고 그때의 관계를 직시하니, 나의 부족한 모습도 그리고 상대방의 미성숙했던 모습도 다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게 되었다. 그때의 아픔, 불안정했던 관계, 혼자 끙끙 앓았던 것, 후회했던 순간 등 오히려 어릴 때만 할 수 있는 이런 다양한 감정과 경험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고맙기도 또 미안하기도 한 묘한 감정이 들었다.
삶 속에서 인연이 닿아 좋은 감정이 생겨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 서로 우연으로 만난 만큼 또 우연으로 일어나는 어려운 상황 속 이별을 택하고 이제는 가장 멀리하는 사람이 되었다. 굳이 서로의 소식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대신 그냥 믿는다. 서로의 가장 솔직하고 연약한 모습도 알지만, 가장 강인하고 멋진 모습도 잘 알기에, 이 험난한 세상을 잘 헤쳐나갈 것으로 믿는다. 또 그저 묵묵히 응원하고 있다.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란다.
행복노트 #77
인생이라는 앨범 속 한 페이지, 어느 아름다운 한 장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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