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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크라쿠프,
"일상과 여행"

유럽여행 포토에세이 #81 _ Krakaw, Poland

by 김예담

25 국가 107일의 여행 기록:

폴란드 크라쿠프,

첫 번째 이야기: 일상과 여행.



나는 어릴 때부터 탐험가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꿈을 찾아 더 큰 세상으로 멀리 모험을 떠나는 소년만화에 열광했으며, 낯선 곳에 대한 호기심, 여행에 대한 갈망,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 미지의 세계로 훌쩍 떠나버릴 준비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장소가 답답했던 것일까, 시간이 답답했던 것일까, 객관화된 시선에서 암묵적인 정답과 주류에 속하지 못했던 것일까. 어딘가에는 내가 찾는 세상이 있을 것이라고, 그 어딘가에는 내가 머물 수 있는 장소가 있을 것이라고, 그렇게 늘 모험을 꿈꿨다.


새로운 곳으로의 탐험이 늘 만족감만 전해주진 않는다. 긴 여정 중 때로는 고통도, 후회도, 권태도 느꼈지만, 그 끝에 다다라 모든 여행이 끝나고 나면 경험의 두께가 점차 두터워지는 것을 느낀다. 여행 중 마주하는 뜻밖의 사유로부터 깨달음을 얻기도, 편견을 부숴 사고의 폭이 넓어지기도, 시련을 마주해 공감의 깊이가 깊어지기도, 그리고 여행이 주는 고유의 경험과 기억으로 인해 다음 여행을 향한 초대장을 심어두기도 한다. 쇼펜하우어가 그랬다.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의 시계추와 같다고. 어쩌면 나의 인생은 여행과 일상 사이의 시계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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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동유럽 여행의 마지막 국가, 폴란드에 도달했다. 유럽의 서쪽 끝단, 포르투갈에서 시작한 여행이 벌써 반시계 방향으로 정반대 쪽인 동쪽 끝단 폴란드에 다다랐다. 아침해를 바라보며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는 것도 여기까지다. 좌우로 그린 여행지도 중 오른쪽 부분, 그중에서도 가장 끝부분에서의 탐험이 시작됐다.


폴란드 여행의 첫 시작점은 크라쿠프였다. 체코 프라하로부터 기차로 약 6시간 달려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낮은 산들 사이 굽이굽이 지나 어느덧 끝이 안 보이는 넓은 평야지대를 마주하자 갑작스럽게 그 모습이 드러난 도시였다. 동유럽 여행 중 깨달았던 부분은 지금껏 여행한 남유럽, 중유럽과 달리 도시와 도시 사이를 이동할 때 기차 이동시간이 점점 길어져간다는 것이다. 이는 유럽 서쪽의 도시들은 촘촘하고 빼곡히 이어져있다는 뜻이며 반대로 동유럽은 광활한 자연 속 크고 작은 도시들이 드문드문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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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를 여행하기 전까지 폴란드에 대해 왠지 모를 무채색의 차가운 느낌이 연상되고는 했다. 아마도 유럽 동쪽이자 북쪽 회색지대에 위치한 지리적 이유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국경을 넘어 폴란드에 입성하자 다가온 느낌은 지금껏 생각이 편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폴란드의 여름은 따뜻했다. 그리고 또 아름다웠다. 크라쿠프 역에 도착해 창문 밖으로 보이는 따뜻한 색감은 여행자를 보듬어주듯 아주 포근했다. 동유럽 여행의 마지막 국가, 폴란드 크라쿠프역에 도착한 기차는 나를 내려두고는 또 굉음을 내며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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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쿠프, 폴란드



폴란드 크라쿠프는 유럽여행을 세울 초기 단계 거의 일 순위로 떠오른 도시들 중 하나였다. 초창기 계획했던 도시들에는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등 있으며, 이 거대하고 유명한 도시들과 크라쿠프는 사실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체급 차이가 있는 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를 가장 우선적으로 선정한 이유, 그 이유는 이곳 근처 입에 담기도 어려운 인류 역사상 중요한 대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싶었다. 살면서 꼭 방문해야 할 곳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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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웬만큼 여행한 사람이 아니라면 크라쿠프라는 도시는 생소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설령 폴란드를 여행한다 하더라도 대체적으로 수도인 바르샤바나 북쪽 항구도시인 그단스크, 그드니아를 방문하기 때문이다. 그 영향으로 인해 여타 유럽의 도시들에 비해 크라쿠프에는 같은 유럽인들을 제외하고는 상대적으로 관광객이 적어 보였으며, 관광지와는 사뭇 다른 이런 한적한 분위기 덕분에 나의 여행 성향과는 잘 부합하는 도시였다.


크라쿠프는 한 때 폴란드의 중심이자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다. 공식적인 기록에 의하면 도시가 처음 세워진 기원전 4세기부터 도시의 형태를 점차 갖춰가며 조금씩 성장했다. 중세시대 폴란드 역사상 가장 전성기라 할 수 있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왕조에서 서유럽과 러시아 사이를 이으며, 500년 넘도록 폴란드의 수도 역할을 했던 곳이다. 그에 걸맞게 크라쿠프 구시가지 곳곳에는 각종 역사의 흔적들과 문화재들이 남아있으며, 폴란드 민족 정체성의 중심지가 되는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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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쿠프라는 도시에 대해 조사할 무렵 알게 됐던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는 과거 몽골제국이 세력을 넓히던 당시 이곳 크라쿠프까지 진출해 침공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폴란드가 유럽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지만 중앙아시아의 험준한 대자연을 넘고, 우크라이나 대평원을 건너 이 먼 곳까지 세력을 펼쳤음에 몽골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새삼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폴란드는 넓은 영토를 보유했지만, 영토 대부분이 평지로 이루어진 탓에 자연으로 이루어진 장벽이 없어 늘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고통받았다. 지리적으로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뜻은 슬픈 민족 정서를 유추해 볼 수 있고, 또 다른 한편으로 다양한 문화가 만날 수 있는 접점이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는 사실 예술학문이 독창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더해주는 요소다. 이 덕분에 르네상스 당시 크라쿠프는 폴란드의 문화적 중심지였고, 수많은 젊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도시였다. 또한 학문적으로도 지동설을 제시한 코페르니쿠스를 배출하는 등 역사의 흐름과 현장 속 존재한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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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동유럽 그리고 폴란드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받았던 크라쿠프였다. 그리고 이 도시 또한 역사와 종교가 맥락을 함께했다. 유대인의 터전이었던 예루살렘이 과거 로마제국에 의해 점령당하자 고향을 잃어 갈 곳 잃은 유대인들은 전 세계 각국으로 멀리 퍼져나가게 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디아스포라'라고 부르며, 고향을 벗어난 유대인들을 '이슈나케짐'이라 일컬었다. 다만, 자신들을 선택받은 민족이라 여기며 종교적인 결속력이 강했던 유대인들은 몇 천년이 지나 인종적으로는 그 특징이 옅어졌어도, 민족적으로는 그 정체성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 폴란드 크라쿠프에는 동유럽 최고 유대인 공동체 지구 '카지미에슈'가 있었다.


가톨릭에서 유대인은 그리스도를 박해한 민족으로 낙인찍히며 미움을 받았다. 또한 현재 금융업을 발전시킨 장본인들이지만 과거 가톨릭에서는 금기시됐던 고리대금업을 운영하여 탐욕적이고 늘 모종의 음모를 꾸미는 음흉한 사람들로 여겨졌다. 훗날 이 지역에서 큰 비극이 일어나기 전까지 유대인들은 그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유대인 공동체를 포용했던 크라쿠프, 이곳에서는 폴란드 민족을 포함한 다양한 민족들의 애환과 정서가 한데 혼합된 인류의 역사가 담긴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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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에서 새벽까지



폴란드 크라쿠프에 도착하기 며칠 전, 체코 프라하를 여행하다 만난 대만 친구가 있었다. 이른 아침 프라하의 카펠교 위, 새벽 산책과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프라하를 서성이다 우연히 만난 인연이었다. 그 순간이 나에게는 프라하의 여행을 시작하는 아침이었지만, 그 친구에게는 프라하 여행을 조용히 마무리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그 친구가 떠나는 버스 탑승 시간까지 약 두어 시간 동안 우리는 체코 프라하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헤어질 무렵, 우리의 다음 종착지가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친구는 사실 여행자는 아니었고,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홀로 유학하고 있는 친구였다. 나의 다음 여행지가 크라쿠프라는 사실에 우리는 순간 들떴고, 이 기회를 놓칠세라 한 치의 고민도 없이 나는 그 친구에게 크라쿠프 여행의 가이드가 되어줄 수 있는지 공손히 요청했다. 현지에 사는 친구에게 직접 도시에 대한 설명과 현지에서 유명한 식당, 음식, 장소 등을 소개받는 등 훨씬 더 흥미로운 여행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다행히 흔쾌히 응해주었고, 우리는 그렇게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재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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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쿠프에 일찍 도착해 해가 떠있는 오후 동안은 궁금한 장소들을 혼자서 탐색하며 돌아다녔고, 그 친구의 개인일정이 끝나는 저녁 무렵 우리는 크라쿠프 '리넥 광장'에서 만났다. 지평선에 걸쳐진 해는 하늘 속 어스름한 바닐라색을 내비치며 비를 잠깐 흩뿌리고 간 낮은 먹구름과 높은 나무들에 가려진 마지막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은은한 불빛만이 짙은 그림자를 밝혀주던 광장의 군중 속 유일한 아시안이었던 우린 서로를 단번에 알아봤다.


크라쿠프 구시가지의 오래된 장소들과 얕은 빗방울이 주는 몽롱한 느낌은 이 도시 전체의 분위기를 조금 더 차분하고 감성적인 느낌을 주었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이 친구가 이끌어주는 대로, 발걸음이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장소도 장소지만, 먼 타지에서 낯선 이와의 대화가 통하는 게 큰 여행의 재미로 다가왔다. 생각보다 깊은 대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생각과 인생관, 계획과 꿈 등 지루할 틈 없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해가 지고 밤이 깊어가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계속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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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아파올 무렵 우리는 마지막으로 구시가지 남쪽을 굽이 흐르는 '비스와' 강에 도착했다. 비스와 강에는 일과를 마친 크라쿠프 시민들이 하루의 남은 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마무리하는 곳이었다. 어떤 이는 맥주와 함께, 어떤 이는 러닝, 어떤 이는 강아지와 산책, 또 어떤 이는 친구와 담소를 나누며, 7월 여름 각자만의 추억을 이곳 비스와 강에서 만들고 있었다.


비스와 강은 크라쿠프 여행의 종착점이자 여행의 추억이 생겨난 또 다른 시작점이었다. 노을 지던 풍경, 강변 벤치에 앉아 마시던 폴란드 '티스키에' 지역맥주, 그리고 간헐적으로 내리는 작은 빗방울을 그냥 맞으며 나눴던 대화. 그냥 대화하며 놀다가 맥주가 부족하면 주변에서 더 사 오기도, 그러다 심심하면 또 걷기도, 이런 식으로 반복된 하루는 밤이 깊어 어느덧 새벽 3시가 되었고, 우리는 아쉽지만 다음 일정을 위해 마지막 맥주를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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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크라쿠프 속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 인해 도시 곳곳에 나만의 추억이 서려있다. 이곳에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그 모든 과정이 생생하게 기억날 만큼 아름다운 도시로 남아있다. 그날의 날씨, 그날의 빛, 그날의 온도, 그날의 대화, 그날의 생각 등 행복은 거창한 게 아님을, 행복은 그저 좋은 사람들과 보내는 좋은 시간이었음을, 행복은 끝없는 자유가 발끝아래 펼쳐질 것만 같은 기분임을, 그리고 행복은 사소한 발견임을.






일상과 여행



일상은 답답하다. 일상이 그립다.


글 서두 쇼펜하우어의 말을 빌려 '여행일상 사이의 시계추'라는 표현을 썼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권태를 느끼고,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 같을 때 나는 변화를 기대한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익숙한 일정 속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가고, 오늘 하루를 뒤돌아보고 마무리하기도 전 피로에 의해 잠에 드는 일. 이런 하루가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리고 나의 존재 가치와 자아를 의심하게 된다.


그렇게 삶의 방향성을 다시 찾고자 가장 쉽게 일상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이 훌쩍 떠나버리는 것이다. 누군가는 여행으로, 또 누군가는 도피로 여길지 몰라도 뭐가 어찌 됐든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경험과 지금껏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는 여정은 그것만으로도 소중한 것은 사실이다. 다만, 미지에서 오는 자극과 불편함 그리고 사회적 동물인 사람에게 소속된 곳이 없다는 두려움은 또다시 나를 평안과 안정, 익숙한 감각과 주변을 그립게 만들어 다시금 일상의 가치를 깨닫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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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침우울증에 꽤 심하게 시달리는 편이다. 어린 학생일 때부터 겪어온 심리적 불안이었으며, 아침에 눈 뜬 순간 공황처럼 왠지 모를 중압감이 온몸을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생각과 그런 삶을 살아갈 자신이 없는 것, 수없이 반복될 이런 일상에 숨이 막히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그저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심리상태를 자주 그리고 오래 겪다 보니까 다행히 지금은 어느 정도 쉽게 훌훌 털어낼 수 있을 정도로 극복한 상태다. 아침우울증이 비단 피로에 의해 발생한다는 점, 그리고 머리를 감고 옷을 입고 밖을 나서 일상을 시작하는 순간 우울감은 사라지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은 것은 다행이지만 종종 아침에 죽을 것만 같은 공황감을 느끼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힘들지만 그저 버티는 것이다.


폴란드 크라쿠프를 여행하며 내가 노트에 남겨둔 작은 메모를 발견했다. 이 유럽여행의 시작과 끝이 나만의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이기에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여행 중 중요한 과업이었다.

나를 불행하게 하는 게 무엇인가
- 기대와 다른 현실
-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 부도덕하고 비양심적인 인간들


보통 이 세 가지 요소로 인해 일상 중 불안과 걱정의 구렁텅이에 자주 빠진다. 애석하게도 내면에 이상적이고 복잡한 생각들이 머리를 꽉꽉 채우는 동시에 마구 얽혀 하루 종일 먼 세상 홀로 존재하는 듯한 나의 공상성향에 있어 치명적인 단점이다. 늘 이상적인 삶의 형태를 그리고 꿈꾸지만 현실이 그만큼 따라와 주지 못할 때, 그리고 이런 현실로 인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득 찰 때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버린다. 이런 연약한 상태에서 혹시나 타인으로부터 불편한 자극을 받게 될 경우, 내면의 평온은 그대로 무너지게 된다.


그렇게 권태로운 일상이 지루하기도, 또 다른 한편으론 두려웠던 것 같다. 이대로 바닥이 안 보이는 심연 속 매몰될까 봐, 꿈을 잃고 눈에 초점이 없는 영혼이 될까 봐,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아니 세상을 바꾸겠다는 나의 호기롭고 야심 찬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힘을 잃어갈까 봐.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관점과 넓은 시야를 제공할 어떤 장소에 머물면 혹시라도 이와 관련된 영감, 깨달음, 혹은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여행길에 올라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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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좋아. 최고로 좋아.

네모바지 스폰지밥


직장인과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월요일이 좋다는 한 긍정적인 노란 덩어리 캐릭터가 있다. 만화 속 '월요일 좋아 (원제: Thank Gosh It's Monday)'라는 노래를 부르며, 현실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마음에 불을 크게 지폈다. 물론 안 좋은 쪽으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태도가 사실 삶을 살아감에 있어 정말 중요한 자세라는 생각도 든다. 불교의 가르침에 부정적인 감정은 그저 환상에 불가하다는 말처럼 사람의 마음가짐 하나로 행복과 불행이 갈린다면, 당연히 긍정적인 태도의 끝에는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 삶에서 매일 아침 눈이 저절로 번쩍 뜨이며, 즐거운 기대감과 함께 하루를 시작하는 날들도 물론 있다. 주로 연애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거나, 소풍이라던지 여행이라던지 하루의 일정이 기대되는 날, 그리고 인생의 설레는 목표방향성이 뚜렷한 순간들이었다.


권태로운 일상 속 지루함과 공허함을 채워줄 행복은 가까이 있다. 공허한 마음의 방향성은 철학이, 그 마음을 채워주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내면의 사유가, 그리고 행복을 담을 그 마음의 그릇을 키우는 것은 주변을 둘러싼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물일 것이다.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나의 가치관이 점점 짙어질수록 꽉 찬 내면으로 인해 어떠한 풍파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며,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나만의 즐거운 취미를 가질수록 그 행복의 크기는 증가한다.


불안한 일상 속 무섭게 찾아오는 불행은 사실 양날의 검과 같다.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있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불행이 되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행복이 되는 것이다. 통제에 대한 욕구가 강한 사람일수록 미래에 대한 많은 시나리오와 가능성을 두고 움직이게 된다. 이때 이상적인 사람들은 현실의 범위에서 벗어난 미래를 꿈꾸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이 목표한 이상향으로 다가갈 때는 누구보다 큰 성장과 행복감을 느끼지만, 반대로 그대로 흘러가지 않을 경우 그 격차만큼의 불행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미래에 대한 행복불행은 동시에 가는 경우가 많으나, '불행'에 대한 리스크를 현저히 줄인 행복에 숨겨진 하나의 치트키가 존재한다. 바로 '뜻밖의'다. 기대하지 않았고, 기대한 적 없으며, 기대할 생각도 못했던 어떤 한 지점에서 뜻밖의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이는 기대하지 않았기에 불안에 대한 불행을 느낀 적이 없으나, 나를 행복이라는 지점으로 데려다주게 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 '뜻밖의 행복'을 가장 쉽고 빈번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여행이다.


물론 '뜻밖의 불행'도 있다. 길 걷다 우연히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던가, 학수고대하던 여행이 날씨로 인해 취소되는 일처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난 불행 말이다. 마주하기 싫은 불쾌한 일이지만, 그래도 나은 점은 실제로 현실에서 발생한 문제이기에 문제해결에 집중하면 된다. 불안처럼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문제에 벌써부터 정신적인 에너지 소모와 의미 없는 불행과는 그 결이 다르다. 어쩌면 실제 일어난 불행이 더욱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문제의 본질을 파헤쳐본다면 그 속에는 분명 불안이 숨어있을 것이다. 이는 내면의 사유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일상을 벗어나는 것. 여행을 떠나는 것. 뜻밖의 행복을 느끼는 것. 그리고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


멀리 떠남에 있어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내면을 채우며, 행복을 느끼는 것에 조금 더 유리할 수 있지만, 굳이 꼭 멀리 갈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일상 속에서도 의식적으로 여행을 경험할 수 있다. 평소 다니던 길에서 일부러 다른 길로 돌아간다던지, 날아가는 새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등 새로운 관점으로 주위를 본다던지, 평소 자주 마주하던 지인에게 마음을 열고 색다른 대화주제로 말을 걸어보는 등 방법은 다양하다.


일상 속 녹아든 행복, 그 행복을 발견하고 재조합하며 다시 만들어내는 일. 여행이 지닌 의미와 가치만큼이나 삶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라 나는 생각한다.


행복노트 #78

일상은 결과 없는 행복에 대한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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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인스타그램: @domkim.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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