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아가씨가 되다.

우체국은 아날로그 감성이다.

by analogue fox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수습직원으로 근무하게 된 이여우라고 합니다."


언제나 새로운 곳은 설렘과 함께 긴장감이 따라온다.

내가 과연 잘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일 것이다.


공무원도 수습기간이 있다.

수습하는 기간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결원이 생겨야 보직을 받고 정식 주무관이 되는 것이다.

내 인생 첫 직장 생활로 발을 디디게 된 곳은 바로 우체국이다.

내가 근무하는 우체국은 입구로 들어서면 바로보이는 맨 앞줄에 고객을 맞이하는 창구(1선)가 있는데 우편업무를 보는 직원 다섯 명과 금융업무를 보는 직원 다섯 명이 일렬로 앉아있다.

뒤로(2선)는 우편팀의 주임 그리고 팀장과 실장이 이렇게 세명 있다. 금융팀도 같은 구성이다.

그리고 맨 뒤 안쪽에 마련된 방에 영업과장이 있다.

내가 있는 1층이 영업과, 2층에는 집배원들이 주로 근무하는 물류과다. 그리고 3층에는 국 전체를 총괄하는 국장님이 지원과라는 곳에 계신다.

나는 컴퓨터나 만지며 제자리에 앉아 문서나 작성하는 공무원이 될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우체국에 들어와 창구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업무도 잘 모르는데 누가 누구를 돕는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하나씩 배워가며 고객을 맞이해 본다.

교육원 교육을 받고 왔지만 이론과 실전에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아주 많이 동떨어진 건 아니지만 나는 머리에 필터를 한 번 거쳐야 했기에 응대 속도가 빠를 수는 없었다. 그래도 조금 큰 우체국에 들어와 업무를 물어볼 직원들이 많다는 것은 복이다. 바쁠 때는 굉장히 눈치를 보며 물어보기도 하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고객은 병아리 그림에 신입이라 적힌 목걸이를 달고 있으니 조금 서툴러도 이해해 주신다.

하지만 자비란 없다고 말하는 듯한 눈빛을 가지고 노려보는 고객을 응대할 때는 표 나지 않게 식은땀을 흘리곤 했다.


우편물을 보낼 때 접수를 받고 나면 라벨지라는 것을 출력해서 붙인다.

바코드 모양이 있는 스티커인데 우표와 비슷하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우편요금이 지불된 금전적 가치가 들어있는 스티커이기 때문이다.

(편지에 우표를 붙여서 우체통에 넣는 것이 창구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편지를 보내는 것과 같다.)

그런데 내가 접수 중 실수로 700장을 한 번에 출력해 버렸다. 가끔 접수할 때 스티커 출력 없이 이미 라벨이 인쇄되어 제작된 봉투를 가져오는 고객이 있는데 잘 몰랐던 내가 그런 실수를 한 것이다. 그런데 그 700장은 그냥 쓰레기통에 찢어 버리는 것이 아니었다.

금전적 가치가 있는 스티커이기에 A4용지 같은 것에 잘 붙여서 도장으로 꾹꾹 찍어 보관해놔야 한다. 그럼 후에 감사가 살펴보고 횡령여부를 확인할 수 있단다.

나는 계속 오는 고객의 우편물 접수를 받아야 했기에 팀장님이 내가 싼 똥을 치우느라 뒤에 서서 작업을 하신다. 그럴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말이 700장이지 시간이 꾀 소요되는 아날로그식 스티커 붙이기와 도장 찍기라는 수제 작업을 하고 계신 거였다.

부끄럽고 죄송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중에 커피 한잔 사드리고 앞으로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뿐이다. 그 뒤로 같은 실수는 없었다. 물론 또 새로운 종류의 실수를 만들어 내기는 했으나 실수는 아주 강력한 기억력과 신중함을 만들어 내기에 꼭 자책만 할 필요는 없다. 주변의 좋은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배우기에 또 이때는 새내기가 아니면 절대 보낼 수 없는 시간임을 이제는 안다. 누구나 실수는 한다. 하지만 반복하지 않도록 신경 쓰고 노력하는 것에는 사람마다 차이를 보인다. 일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신규 때 앞뒤 없이 무조건 열심히 했다는 생각이 든다. 몸이 아파도 저절로 그렇게 한 듯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는 것이 더 많아질수록 효율을 따지게 되고 주변의 다양한 모습의 직원들의 영향으로 어쩔 수 없이 약아져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조금이라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내 모습보다 열심히 했을 때의 내 모습이 나는 훨씬 더 좋다. 그래서 이제는 다시 일어나 처음의 그 마음을 생각하며 열심히 해보려 한다.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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