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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킴이 Nov 28. 2023

5장 코아의 발견. 보상은 없다

보상은 없다     


  나는 교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적이 없었다. 좋아하는 문학을 강의하고 연구하고 싶어서 공부했을 뿐이었다. 박사 논문을 쓰면서도 교수가 되겠다는 꿈이나 야망이 생기지 않았다. 함께 공부하는 유학생들은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대부분 교수가 되기 위해 학위를 따려는 게 뻔히 보였다. 왜 나는 남들처럼 교수가 되겠다는 야심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 기를 쓰고 노력하고 경쟁해도 될까 말까인 현실에서 나 같은 태도로는 아예 경기장에 들어설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고질적인 비교 의식과 경쟁심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페테르부르크의 문학 연구소에서 함께 공부하던 서울대 출신 종철이라는 유학생이 있었다. 그가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저명한 문학 연구잡지인 『러시아 문학』에 논문을 게재했다. 종철의 주변에 서울대 후배들이 빙 둘러싸고 그를 축하하는 모습을 먼발치서 보았다. 종철의 얼굴에는 승리자의 웃음이 만연해 있었다. 내 속에서 시기의 벌레가 심장을 갉아 먹었다. 종철에게 딱히 경쟁심을 가진 적도 없는데 내가 패배자가 된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후 나도 그 잡지에 내 논문을 싣게 되었다. 그제야 패배자라는 의식에서 해방됐다.

  우울증을 겪을 때 좋았던 것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비교 의식과 경쟁심이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남과 비교한다는 건 우울증 환자인 나에게는 사치 중의 사치였다. 남들이 어떤 성취를 해도, 무슨 찬사를 들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세상사가 관심의 영역에서 물러나 버렸기 때문에,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자극받지 않았다. 그런 마음 상태가 계속 유지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우울증에서 벗어난 후 여지없이 다시 주위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무려 삼 년 동안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날려버린 셈이었다. 그동안 어떤 후배는 교수가 되고 다른 동료나 후배들은 최소한 논문을 쓰고 번역서를 출간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마흔한 살이 되어 나는 인생에서 처음 내가 꼴찌라는 씁쓸한 자괴감을 맛보았다. 늘 일등을 놓칠까 봐 전전긍긍했던 학창 시절에는 올라갈 일만 있는 꼴찌가 부러운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막상 꼴찌라는 생각이 드니 그 비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흔이면 이미 인생에서 성공을 맛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자신의 분야에서 입지를 굳히기 충분한 나이였다. 그러나 그때까지 한 게 공부밖에 없는 나는 이제 갓 첫발을 내디딘 사회 초년생이었다. 학위를 딴 것 말고는 아무것도 이룬 게 없었다. 최소한 중간은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당시에는 취직이 잘됐다. 같은 과를 졸업한 남학생들은 모두 사회의 어디선가 자리를 잡았다. 그 물결을 타지 못한 나는 이천년대 이십 대 청년들과 같은 시대의 흐름 속에 표류했다. 대학을 나와도, 스펙을 쌓아도 취업이 되지 않는 청년들의 비애와 좌절은 나의 것이기도 했다. 기회를 잃은 세대였다. 나는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다. 문학을 비롯해 인문학이 죽은 시대에 내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진다는 건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바다에서 익사하지 않기 위해 튜브에 의지해 발버둥을 치는 것과 같았다.

  내가 어린 시절 꿈꾸었던 보상은 없었다.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 큰일을 해내면 어린 시절에 겪은 고통이 보상될 거라는 생각은 그 시절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에 불과했다. 나는 보상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억울했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이 다 부정당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게 인생이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보상받았는지도 몰랐다. 어린 시절 내게 필요했던 건 안전하고 두려움 없는 가정이었다. 지금 그런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자체가 이미 보상받은 셈이었다. 성공이 곧 보상이라는 세상의 기준에는 맞지 않지만 말이다. 뭔가 되어야 하고 더 해야 하고 대단한 성취를 이뤄야 하는 강박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됐음을 깨달아갔다. 흔들리며 왔지만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한 나를 인정해줘야 했다. 이제는 내게 가혹했던 삶을 용서하고 있는 그대로 삶을 수용하는 것을 배워야 했다.

  오십이 넘어서야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일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뭘까를 고민하게 됐다. 어릴 적 꾸었던 작가의 꿈이 다시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재능이 부족하다고 대학 시절 포기했던 그 꿈. 그래도 언젠가 되살아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로 마음 한구석에 조심스럽게 접어두었던 꿈을 다시 꺼내 살포시 펼쳐보았다. 용기가 없어서 미뤄두고 실패가 두려워 밀쳐두었던 그 꿈을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었다. 실패하더라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죽음이 찾아올 때 가장 후회할 일이 되지 않을까. 내 삶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언젠가는 글쓰기의 재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제 그 재료는 쌓일 만큼 쌓였다. 나는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삶이 내게 쓰라린 레몬을 주었다면 이제 나도 그것으로 레모네이드를 만들 시간이 됐다. 그 첫걸음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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