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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땡선녀 May 22. 2024

음식 못 하는 정님 씨


어릴 적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제대로 못 먹고 자란 울 엄마 정님 씨는 음식에 취미가 없다.

입에 풀칠하기 급급했다던 정님 씨의 성장기를 듣다 보면

음식을 잘 못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엄마는 평생 아버지의 음식 잔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했다.

한번은 풀떼기밖에 없다며 밥상을 뒤엎은 적도 있었다.

그런 정님 씨의 음식을 먹고 자란 나와 동생들은 아무런 불만도 없었지만,

사실 아버지 입맛이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는 것을 성장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정님 씨는 거의 모든 레시피를 무시했다.

당신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이다.

심지어 대가족 음식 만들던  습관이 아직도 손에 남아 양은 어마 무시하다.

가족 모두가 인정하는 엄마의 맛없는 ‘미역국(심지어 엄마도 싫어해서 안 만든다.)’ 조리법은,

미역을 많이 불려서 물 붓고 간해서 푹 끓이는 방식으로

물보다 미역이 더 많아 연한 초록빛을 강하게 뿜어내는 특징이 있다.

하여 정님 씨조차 미역국은 절대 금기 메뉴다


정님 씨의 삼계탕 또한 정성 가득 영양 만점이다.

커다란 닭 두세 마리에 일 년 동안 보관한 수삼 반 근을 넣어 압력밥솥에 푹 익힌 정님 씨 표 삼계탕은

이미 탕이 아닌지 오래다.

정님 씨가 삼계탕 국물을 싫어하는 관계로 물은 조금만 넣고 익혔기에 삼계닭이 누렇게 탔다.

거기에 인삼이 많이 들어가 인삼 향이 진한데 약간 쓴맛도 난다고 하겠다.

찹쌀도 풀어 국물이 누런 죽 덩어리다.

고기 반, 인삼 반인 이름 그대로 삼계 찜이다.

매년 정님 씨는 사위들을 위해 여름 보양식 삼계탕을 한 솥 가득 끓여  두신다.

우리는 늘 먹고 남은 삼계탕은 서로 싸 가라며 양보하는 미담을 남긴다.


요즘 정님 씨와 함께 사는 손녀딸이 이래저래 고생이다.

한번은  "엄마표 파전 먹고 싶다" 한 마디 했다가 낭패를 봤다.

그 말 듣고 마음 동한 정님 씨가 '할머니표 파전'을 손수 만든 것이다.





"내가 말한 건 엄마가 만든 오징어, 바지락, 계란 들어가고 파는 조금 들어간 건데...

정말 파만 많이 들어간 파전이야.

거기다 할머니 좋아하는 치즈 듬뿍 얹어 주셨어.

엄마 이거 어떡해?

정말 못 먹겠어."



음식 잘 못하는 정님 씨는 손에 물 한 번 안 묻힌 큰딸이 뚝딱뚝딱 요리하는 걸 보면 무척 신기해하신다.  

그러고는 신신당부하신다.


"대충대충 해먹고살아.

너무 힘들게 요리하느라 애쓰지 말고.

왜 그러고 살아. 힘들게.

대충대충 해 먹어."


엄마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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