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년간 나의 도시락 반찬은 '김치볶음' 단 한 가지였다.
지금도 딱히 김치볶음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는걸 보면
나는 도시락 반찬에 대해 아무런 불만도, 생각도 없었다.
어느 날 동생들과 대화하다 자각한 '3년간 김치볶음 도시락 반찬'을 기억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30대 후반 명절 때였던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동생들과 맥주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런저런 어린 시절 이야기 끝에 도시락 반찬이 등장했다.
엄마가 볶아 준 '신 김치볶음'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도시락 반찬은 늘 김치볶음 한 가지였는데,
나는 나만 그랬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알고 보니 3남매가 모두 '김치볶음' 한 가지였던 것이다.
그랬다.
나의 엄마 정님 씨는 3남매 도시락 반찬을 모두 '김치볶음' 하나로 통일한 것이다.
정말 쌈박하고 고민이 일도 안 들어간 심플 메뉴였던 것이다.
절대 떨어지지 않는 재료인 김치,
신 김치와 기름, 설탕만 들어가는 간편한 재료와
물 짜고 썰어서 볶기만 하는 간편한 조리법!
게다가 한 번에 왕창 볶아두고 매일 싸줄 수 있으니
정님 씨에게는 그야말로 최상의 반찬이었다.
동생들은 점심때만 되면 김치볶음 반찬이 죽을 맛이었다고 한다.
그것만 싸온다고 놀리는 친구도 있었고
다른 반찬이 먹고 싶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반찬 투정이라도 하면 조미김 한 봉이 추가됐다고 한다.
아, 조미김이 그래서 들어갔던 거구나.
어느 날 엄마가 내게 물었던 것도 같다.
매일 김치볶음만 가져가는데 질리지 않냐고.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던 나는,
"괜찮은데요, 김치볶음은 안 질려, 엄마."
그렇게 말했던 것도 같다.
그 말을 들은 동생들은 나 때문이라고 했다.
누나때문에 3년간 내내 질리도록 김치볶음만 먹었다고.
그래서 나도 큰 소리 했다.
"야! 너네는 점심만 먹었잖아.
나는 점심, 저녁 두 번 다 김치볶음이었어."
박봉 공무원 월급만으로 다섯 식구가 먹고살기는 빠듯했다.
골골 병을 달고 사는 아버지는 늘 빚을 이었고
수입이 일정치 않은 고모네 여섯 식구가 한 가족처럼 이웃하고 있었다.
없는 살림에 어렵사리 가게를 꾸린 엄마는 이모저모 바쁜 와중에
최선의 가성비 반찬을 찾아낸 것이었으리라.
이제는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 김치볶음.
나는 여전히 김치볶음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