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하신 아버지는 평생 편찮으셨다.
큰 병은 없었지만 늘 잔병치레를 달고 사셨고 툭하면 응급실로 달려가곤 하셨다.
젊은 시절 허기를 술로 채우며 다니다 똥구덩이에 빠져 똥독이 오르는 등 몸을 허투루 써서 그렇다는 게 정님 씨의 두고두고 푸념이다.
아버지는 입도 짧아 많이 드시진 못하면서 소위 '요리'를 좋아하셨다.
엄마가 하는 집밥 말고 요리집 ‘요리’ 말이다.
평생 입 짧은 아버지와 요리 못하는 엄마가 투닥투닥 잘 사시더니 어느 날인가 대판 싸우셨다.
사건의 발단은 '카레라이스'였다.
TV 프로그램에서 또 어떤 의사가 카레가 몸에 좋다고 한 모양이다.
나의 엄마 정님 씨는 '카레라이스'에 꽂혀 몇 날 며칠을 카레라이스만 만들었다.
카레라이스 한 봉지를 사서 가루를 물에 풀어 양파와 감자만 넣어 만들면 그 양이 한 솥 가득하다.
엄마표 카레는 색도 희멀겋고 맛도 다채롭지 않았다.
두 분만 사는데 아침저녁으로 희멀건 카레라이스만 주니 아버지도 어지간히 참기 힘드셨던 모양이다.
TV를 즐겨 보시니 쟁반에 담아 소파에서 드시는 아버지.
그 날도 '맛없는 카레라이스'를 보고 벌컥 화를 냈던 모양이다.
이날은 정님 씨도 참지 않았다.
평생 음식 타령한다며 옛날 밥상 뒤엎은 이야기,
옆집에서 가져다준 반찬 맛없다고 불평하다 옆집 거라니까 "그래~?' 반색하며 아무 말 않고 먹더라는 이야기며,
그동안 켜켜이 쌓아 두었던 반찬 투정을 다 꺼내 펼치며 역공을 퍼부었다.
그러다 떡 하고 꺼내놓은 이혼 서류.
"나 당신 반찬 맛 없다고 타령하는 거 평생 참고 들어줬지만
나이 70 먹어서까지 더 이상은 못 견디겠으니 깨끗이 갈라섭시다.
이혼합시다. 여기 이혼장에 도장 찍으시오."
어느 틈엔가 동사무소에서 받아온 이혼장에 혼비백산한 아버지는 얼른 납작 엎드리셨다.
"이혼 안 해 줄 거면 각서 써요.
'나 이석준은 한 번만 더 반찬 투정을 하면 즉시 이혼장에 도장 찍겠습니다.'
하고. 각서 쓰고 지장 찍고.
내가 이거 잘 두고 지켜보겠어."
이렇게 카레라이스 사건은 아버지의 완패로 끝났다고 한다.
그날 저녁 남동생 집을 찾은 아버지가 넋두리를 하시더란다.
"내가 단무지라도 줬으면 그리 화 안 냈지.
어떻게 카레라이스만 맨날 주냐고.
단무지라도 좀 주라고 했다가 이혼당할 뻔했다, 야."
이 무슨 소설 같은 이야기냐 말이다.
나와 동생은 이야기를 듣고 낄낄 웃었지만,
밥상 뒤엎던 팔팔한 아버지는 더이상 안 계신다.
카레라이스를 두고 불평하던 아버지는 딱 80세 생일 뒤 쓰러지셨다.
3년 투병 기간 정님 씨는 알뜰살뜰 아버지를 챙기며 간병했고
간병 끝에 '천사 같은 여자'라는 수식어를 얻었으니
이번 생은 정님 씨의 완승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