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자면 난 한국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학사 박사를 했고, 미국에서 포닥으로 4년 정도의 경험이 있다. 미국에서 지내면서 한국의 대학원과 미국의 대학원의 차이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봤고, 무엇보다 인터넷에서도 해외 박사, 국내 박사의 차이에 대한 글을 많이 보았다. 나는 내가 겪고 느낀 것에 대해서 공유해보려고 한다. 내 개인의 경험과 주변 지인들에게 들은 것이라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1. 행정의 차이
우선 한국 대학원은 잡무가 많다. 이것 전반적인 한국 사회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학생은 공부를, 대학원생을 연구를, 교수는 지도를 해야 하지만 시스템적으로 저것들에게만 몰두하기엔 방해 요소가 너무 많았다.
미국 대학원의 학비는 매우 비싸다. 아마 한국 대학원 학비의 최소 3~5배는 차이가 날 것 같다. 그 학비 차이는 단순히 물가 차이가 아닌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 이는 연구자들이 연구하는데 시간을 더 투자할 수 있게 해 준다. 내가 있는 한국 대학의 학과 학부생이 거의 천명, 대학원생은 수백 명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과사무실에 4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한 명의 선생님한테 질문을 했고, 그분의 상황, 기분에 따라서 일처리가 달랐다. 미국은 연구시설을 유지하기 위한 사람이 많았다. 담당이 모두 달랐고 그들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한국의 장점도 있다. 미국은 담당자가 없는 일을 처리하려면 너무 어렵다. 한국은 간곡히 부탁하면 대부분 해결이 되었었다.)
한 예로 한국에서는 실험 용품을 시키면 택배 아저씨에게 종종 전화가 왔다. 물건 어디 어디에 두고 간다고. 내가 미국에서 일하고 있는 기관은 Receiving 부서에서 대부분은 택배를 받고 정해진 시간에 내 벤치 옆에 가져다준다.
2. 실험 장비 Centralization의 차이
연구장비, 시설유지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한국의 경우 장비의 Centralization이 매우 부족했었던 같다. 한국에 있을 때는 어떤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장비 때문에 못해본 경우가 많았다. 주변 다른 랩에 교수님을 통해서 빌려야 했고, 장비를 쓰려면 그 랩에 가서 써야 하기 때문에 매우 눈치가 보였다. 연구재단에서는 비싼 장비(1억 이상?)는 랩 단위로 못 사게 막으려는 것 같긴 했는데 교수님들은 보통 과제비가 있으면 장비를 구매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비싼 장비이지만 실제로 사용은 많이 안 하거나, 주기적이지만 일주일, 한 달에 에 한번 매우 가끔 쓰는 장비들도 있었다. 교수님들만 비난할 수 없는 건 필요한 공용장비가 공용기기센터에 없거나 쓰기에 매우 까다로운 경우가 많았다.
내가 속한 학교/기관은 Centralization에 있어서 한국의 내 모교와는 상대가 안될 정도로 잘되어 있었다. 먼저 교육을 받아 액세스를 받아야 하지만, 필요한 장비를 24시간 원하는 시간에 쓸 수 있었다. (인기가 많은 장비의 경우 2주 정도 뒤에나 예약이 가능한 경우도 많긴 했다.) 각 장비마다 operator가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도움을 받을 수가 있고, 책임을 지고 고쳐놓는다. 유지보수가 잘되기 때문에 장비를 오래 쓰는 경향도 있는 것 같고, 유저가 많기 때문에 처음 살 때 시장에서 제일 좋은 장비로 구매한다. 인기가 많아 대기시간이 길어지면 추가 구매를 해 유저의 편의를 제공하는 시스템이었다.
3. 학생들 자세의 차이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하는 많은 학생들이 박사과정을 하면 뭔가 더 많이 배우게 되고 더 좋은 직업을 갖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 같은데, 기대비용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취직하더라도 아무것도 안 배우게 되는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박사를 하게 되면 본인의 커리어의 길을 좁히게 되는 것이다. 박사를 시작할 때는 유망한 직종이었으나 박사를 받고 나서, 미래에 사양산업이 된다면 전공을 잘못 선택하며 심하게 말해 수년간의 시간을 날리게 되는 게 되는 것이고 학계에 있던 회사에 가던 인생이 꼬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학부를 졸업하고 회사에 가 일을 배우게 되면 엔지니어로서 전공지식은 부족할지 모르나 좋은 "샐러리맨"이 될 경험을 쌓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도 그랬고 내 주변의 박사과정에 있었던 학생들은 열심히 할 자세는 되어있었다. 일을 주어지면 열심히 하지만 누가 시키지 않으면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난 이게 우리나라 교육의 폐해라고 생각하는데, 고등학생 때 까진 수능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었고, 대학원생들은 교수님이나 선배가 본인에게 어떤 형태는 문제를 주기를 기다린다.
박사과정을 길고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시작할 때와 2년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의 마음가짐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은 도중에 박사과정을 그만두는 학생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한국도 물론 그렇지만 한국과는 양상이 좀 다른 것 같다. 한국의 경우 박사과정을 들어가게 되면 수년 동안 일단 있어본다. 3~4년 차가 되어서야 내가 졸업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 좀 더 해보다가 안되면 그때 포기하거나 시간이 걸리 걸리더라도 박사를 받아낸다. 포기하는 경우는 너무 늦게 결정하게 된다. 학생들은 실패자가 되기 싫어하고 내가 그만두게 되었을 때의 교수님의 힐난을 걱정하는 것 같다.
미국 학생들은 좀 다르다. 어떻게 보면 이기적일 수 있는데 본인의 미래를 최우선에 둔다. 1~2년 정도 연구실 생활을 하다가 뜻이 맞지 않으면 과감히 나가서 회사로 간다. 회사에서는 랩 생활을 좀 본 사람을 뽑는 걸 좋아한다. 오히려 박사과정을 끝낸 사람과 지식적인 큰 차이는 없지만 연봉은 조금 덜 줄 수 있으니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 학생들도 커리어에 있어서 이기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아시아 문화 특유의 선생과 제자 사이가 주는 의리감 때문에 선택을 미룬다. 본인과 랩, 교수님이 맞다면 열심히 해서 연구를 열심히 하면 되지만, 연구실이 맞지 않으면 떠날 생각도 해야 한다. 그래야 썩은 물이 정화된다. 경직된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
4. 문화의 차이
나도 그랬지만 한국 대학원생들은 기술 자체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디어가 있어도 환경적인 문제로 진행을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연구 아이디어를 만들었다. 이런 식의 연구의 문제는 이미 비슷한 연구가 있어도 진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수와 학생 모두 논문이 필요하기에 일단 진행한다. 연구의 질은 나중의 문제가 된다.
반면에 미국의 교육 시스템은 콘텐츠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에 스킬을 가진 사람이 많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현실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특유의 실용주의적 생각에 입각해 임팩트 있는 연구를 위해 계속 디스커션 하고 아이디어 정립되면 실험을 시작한다.
미국은 도움을 받기에 상대적으로 쉬운 구조이다. 이는 앞서 말한 실험장비 때문이기도 하고, 서로에게 나이스 하게 보이려는 문화일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험을 하다 막히는 게 있으면 주변 랩이나 지인을 총동원하여 기술적인 면을 해결한다. 연구의 질 차이는 이런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게 아닌가 싶다.
5. 코스웍의 차이
한국에서의 코스웍은 꽤나 쉬웠다. 학부 때는 교수님들이 수업을 비교적 열심히 하셨지만, 대학원 때는 뭐랄까 학생도 그렇고 교수님들도 그렇고 대부분의 수업이 쉽게 쉽게 진행되었던 것 같았고, 이는 "연구"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그래도 내가 들은 수업 중 30% 정도의 수업은 지금 생각해도 교수님들이 열심히 수업하셨던 것 같다.)
내가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가족 중에 다니는 사람도 있고, 친구나 주변의 미국에서 학위를 하거나 했던 사람들에게 자주 대학원 생활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미국은 학교의 유명세(?) 흔히들 말하는 순위랑 상관없이 코스웍이 매우 힘들게 진행되는 것으로 보였다. 박사과정 1~2년은 보통 연구에 시간을 많이 쓰지 못하고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는 데 사용한다고 했다. 강의실 수업 말고도 실험 같은 수업이 있는 경우가 있어서 굉장히 실용적인 실험수업을 하는 경우도 있어 보였다.
나는 소위 말하는 spk 출신 박사는 아니지만 그곳에서 다닌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한국에서의 코스웍은 대부분 내가 다녔던 학교랑 비슷하게 진행되었던 것 같다. 왜 한국의 코스웍은 이렇게 진행되는 걸까? 내가 추측해보기엔 (1) 교수님들은 편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싶어 함. (2) 교수님들은 과도한 과제 로드를 주어 타 교수님들의 원망을 듣기 싫어함. (3) 학생들은 당장 본인의 업무, 논문과 관련된 일에 시간을 쓰기 싫어함. (4) 교수님이 수업을 대충 해도 학생들이 그것을 제재할 수단이 별로 없음. 등등 복합적인 원인과 한국 특유의 유교 문화가 얽혀서 만들어진 것 같다.
6. 연구지도의 차이
연구 자체에 있어서는 비교가 어렵다. 아무래도 내가 한국에서 유명 랩 출신도 아니고, 운이 좋아 미국에 오게 된 케이스이기 때문에 한국의 랩들이 일반적으로 미국의 랩들 보다 연구를 못한다고 이야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국의 유명 랩들에서 쓰는 논문들은 세계 어느 기관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다시 한번 말하는 거지만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괴변일지도 모른다. 그냥 내 경험에 근거하여 수년간에 걸쳐서 든 생각들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