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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 Jun 11. 2024

7년 차 열차 승무원을 그만두고 서비스 기획자로

조금 느려도 괜찮아요.

7년 차 열차 승무원을 그만두고 서비스 기획자가 된 사연.


2022년은 나에게 큰 변화를 준 한 해였다.

햇수로만 7년을 다닌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강철교의 하루


난 전국에 딱 500여 명 정도밖에 없는 열차 승무원이었다.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어 생소할 수 있는 직업인데, KTX나 새마을 열차에 타면 보이는 승차권을 확인하는 사람이다.

오래 걷고 서서 일하다 보니 하루 걸음수는 평균적으로 적게는 1200보, 많게는 1800보 까지 걸어봤던 것 같다.

그렇게 일하다 보니 결국 초반부터 안 좋았던 발과 발목에 무리가 왔고, 나는 족저근막염과 아킬레스건염을 달고 살게 되었다.


그러던 2020년 11월, 계단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결국 아킬레스건이 파열되었다.

처음엔 발목보다 엉덩이가 아파서 파열된 줄도 몰랐다. 그런데 뛰는 걸 못하고 발을 질질 끌고 다니게 되니

그제야 내 발목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인지했다.

처음엔 병원에서 50% 정도 파열이라 했는데 시간이 더 지난 후 다시 병원에 가니 80%는 파열이 되어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 놀랍지도 않았다. 그 당시 내 발목과 발 상태는 언젠가 그렇게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수술을 받게 되고 복직을 하던 3월 첫날부터 유난히 힘든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아직 무리였던 건지 너무 아파서 퇴근 후 울고 말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복직해서도 나는 1년 8개월을 더 버티다가 2022년 11월, 의원면직을 선택했다.

7년을 다닌 내 직업은 나를 울고 웃게 했고, 보람차고 자랑스럽게 만들기도 했으며 화나게도 하는 애증의 직업이었다.

그러나 회사를 나올 때쯤엔 그런 모든 마음은 다 털어내고 그저 시원섭섭했던 것 같다.




사실 회사를 그만두기 전부터 나는 무엇을 할지 미리 답을 정해두었다. 나는 무언가를 개선하고 바꿔서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과정을 좋아했다.

그리고 평소 사람을 좋아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런 내 적성에 맞는 사무직을 찾아 헤매다가 서비스 기획자를 알게 되었고 왠지 나와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당시 나름대로 치열한 경쟁률을 자랑하는 국비 지원 부트캠프가 있었는데 퇴사를 하고 지원했던 그 부트캠프에 합격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내 서비스 기획자로의 첫발은 내 예상대로 나에게 잘 맞는 일이었다.

물론 부트캠프와 실무는 달랐지만 기본적인 기조는 비슷했다.

나는 열정적으로 부트캠프를 수료했고 이후에도 쉬지 않고 공모전과 해커톤에 참가하고 역기획 프로젝트에 참가했다.


부트캠프가 끝나고 취업 전선에 내던져진 현실은 내 열정만큼 녹록지는 않았다.

먼저, 가장 큰 문제는 서비스 기획자를 신입으로 뽑는 회사가 많지 않았다.

기획이라는 일이 신입이 하기에는 프로젝트 관리라던가 커뮤니케이션 등 여러 방면에서 어려움이 따르는 일이라 그런 것 같았다.


다음으로 서류는 통과되어도 면접에서 자꾸만 미끄러졌다.

그래도 낙담하지 않고 이력서를 계속 수정하고, 포트폴리오도 신경 썼다.

자기소개서를 계속 다듬고 면접에서 포트폴리오에 대한 어떤 질문이 나와도 왜 그렇게 기획했는지 명확하게 답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그렇게 작은 회사라도 꾸준히 지원한 결과, 나의 열정을 알아봐 준 한 회사에 최종 합격하게 되고 서비스 기획자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보면 정말 형편없는 자소서와 이력서, 포트폴리오지만 내가 서류에 합격하고 면접에 합격한 이유는

어찌 보면 남들이 좋다 하는 직업을 그만두고 돌아오게 되면서도 성장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더불어 내 이력서와 포트폴리오에서 무엇을 물어봐도 막힘 없이 대답할 수 있도록 준비했던 것도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힘들게 서비스기획자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부모님의 건강 문제로 다시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지금 다음 커리어를 위해 도전하고 있는 중이다. 이야기는 차차 써보기로 하겠다.

실제로 예비 서비스 기획자 중에서는 다른 직무에서 서비스 기획자로 직무 전환을 하려는 분들이 종종 보인다.

그런 분들의 고민을 나도 알고 먼저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희망을 주고 싶다. 나도 해냈으니, 여러분도 할 수 있다고.


조금 느려도, 돌아왔어도 괜찮다.

삶이라는 마라톤에서는 길게 뛸 수 있는 호흡이 필요하다.



조금 느려도 괜찮아요. 그만큼 길게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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