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톤먼트>
atonement : 속죄하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유한 집안의 '세실리아'와 가정부의 아들이자 세실리아 집안의 도움으로 대학을 졸업한 '로비'는 어릴 때부터 서로에게 감정을 느꼈지만, 신분 차이 때문에 마음을 부정하며 지내왔다. 하지만 마침내 사랑을 확인하게 된 그 해 여름. 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세실리아의 동생 '브라이오니'의 오해로 로비는 누명을 쓴 채 전쟁터로, 세실리아는 집안을 떠나 그를 기다리며 간호사로 일하게 된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세실리아'와 '로비'가 주인공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이 영화의 진짜 주체는 '브라이오니'이다. 대부분의 사춘기 청소년들이 그렇듯 그녀 역시 자신은 이미 다 컸다고 착각하고,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 상상조차 못 하면서 말이다. <어톤먼트>는 장면 전환을 통해 이를 잘 표현했다. 로비와 세실리아의 상황을 브라이오니 시선으로 보여주고, 관객이 그녀가 느끼는 감정에 공감하도록 만든다. 하지만 이내 제 3자의 시선으로 사건을 다시 보여준다. 이러한 장면 전환은 후반에 갈수록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브라이오니는 시간이 흐른 뒤, 그 해 여름 자신의 상상력과 질투심으로 인한 잘못된 증언이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알게 된다. 그리고 세실리아와 로비에게 속죄하겠다는 의미로 간호사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세실리아는 그녀를 만나주지도, 편지에 답장을 하지도 않았다. 그녀를 용서하기에는 로비와 세실리아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기 때문이다. 로비는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대가로 목숨을 걸고 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고,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땅히 누려야 할 시간도 잃었다.
브라이오니는 용서를 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세실리아의 집주소를 알아내어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침내 자신의 입으로 과거의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에 대해 고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녀는 아직도 그 해 여름에 머물러 있었다. 세실리아에게 용서를 구하며 "난 열세 살이었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세실리아는 "사리 판단하는데 몇 살이 필요하니?"라 답한다. 그녀는 용기를 낸 순간마저 자기변명을 하고 있던 것이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브라이오니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한 티비쇼에 출연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마지막 소설이자 첫 작품을 소개한다. 물론 그 책의 내용은 그 해 여름에 있었던 사건이다. 책을 소개하며 그녀는 이 소설은 모두 사실이지만, 세실리아를 찾아가 용서를 구한 것과 로비와 세실리아가 비로소 마땅히 누렸어야 할 삶을 되찾은 내용은 거짓이라 말한다. 로비는 후송작전의 마지막 날 패혈증으로 사망하고, 세실리아는 폭격에 의해 사망하여 둘은 끝내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새로 쓴 그들의 결말을 통해 그들에게 속죄를 구한다 말하고, 로비와 세실리아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며 이 영화는 끝이 난다.
로비와 세실리아에게 그들이 삶에서 잃은 것을 주고 싶었다는 그녀의 말에 나는 공감할 수 없었다. 특히 자신의 마지막 친절이라는, 그들에게 행복을 선사한 것이라는 말은 더더욱. 오히려 곧 기억을 잃고, 서서히 죽어갈 자신의 운명 속에서 짐을 덜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생각됐다. 정말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행복을 주고 싶었다면 그녀는 잘못을 깨달은 순간 하루라도 빨리 행동했어야 했다. 돌이킬 기회는 충분히 많았다.
이 영화는 주인공들의 이야기 말고도 할 얘기가 많다. 앞서 이야기했듯 한 가지 사건을 두 시선으로 보여주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디올의 스타킹을 카메라에 씌운 채 촬영했다는 이야기는 워낙 유명하고, 세실리아의 초록색 드레스와 로비의 연청자켓과 멜빵은 너무 아름답고 잘 어울려서 잊히지가 않았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대단했다. '키이라 나이틀리'는 <오만과 편견>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었는데, <어톤먼트>에서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결의 연기를 보여줬다. 나이틀리는 참 우아하게 연기를 하는 것 같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사람이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나? 싶었다. 그 미모에 연기력이 가려지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놀라운 점이기도 하다. 패혈증으로 사망하기 전 엄마의 환영을 보던 장면과 그 해 여름 누구보다 진솔했던 감정들과 어린아이처럼 순수했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시얼샤 로넌'. 로넌은 어린 브라이오니를 연기했다. 하지만 아역의 연기라고 생각할 수 없는 표정을 보여줬다. 특히 로비 앞에서 일부러 강에 몸을 던진 뒤 그가 구해주자, "내 목숨을 구해줘서 고마워. 영원히 잊지 않을게"라 말하며 짓던 그 표정이 너무 잔인해 잔상처럼 남았다. 너무나 순수하기에 잔혹한 그런 감정 말이다.
<어톤먼트>는 우리에게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는 바로 지금이다.라는 것을 알려줌과 동시에 용서를 구하는 행위 자체가 누군가에겐 속죄가, 누군가에겐 그저 이기심과 변명에 불가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것 같다. 잊지 말자. 우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