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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narie Jun 03. 2024

<퍼니 게임>,악인을 무한리필해 드립니다

[신이 훔친 웹툰] <머니게임><파이게임><퍼니게임> : 의인 색출하기

* 주의 : 웹툰 <퍼니 게임>의 줄거리 스포가 포함되어 있어요!


The two angels visitng Lot's house in Sodom,  Hoet Gerard(1648-1733)


집 밖은 아수라장이다. 바닥에 엎어지고, 눈을 비비고, 더듬거리고, 벽 붙잡고 늘어지고, 쓰러지고, 얽히고설킨 무리들의 모양새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려준다. 문을 붙잡고 있는 세 사람은 문밖의 아수라장을 긴장한 표정으로 주시하고 있다. 


이곳은 타락한 도시 '소돔'이며, 정착한 이방인 '롯'의 집 앞이다. 마을에 '낯선 방문객들'이 나타났고 롯이 그들을 집으로 들였다는 소문이 퍼지자 마을의 모든 남자들이 몰려와 '방문객들'을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방문객들의 안전을 지키고자 여러 제안을 하지만 소용이 없다. 그런데 순간, 성난 폭도들이 하나 둘 픽 픽 쓰러지는데…….


과연 낯선 방문객들은 누구이며, 그들이 소돔에 온 목적은 무엇일까? 소돔의 최후를 다루기 전에 함께 꼭 짚어 봐야 할 텍스트가 있다. 웹툰 작가 배진수의 게임 3부작 <머니 게임><파이 게임>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편 <퍼니 게임>이다.  


배진수 작가의 웹툰 <머니 게임> <파이 게임>을 원작으로 제작된 넷플릭스 드라마 <더 에이트 쇼> 포스터


'머니 게임' '파이 게임' 그리고 너를 위한 '퍼니 게임'


얼마 전 넷플릭스 드라마 <더 에이트 쇼 The 8 show>(한재림 감독)가 공개되었다(2024. 5. 17) . <더 에이트 쇼>는 배진수 작가의 웹툰 <머니 게임>과 <파이 게임>을 원작으로 삼아 제작된 실사 드라마이다. 개봉 2주 차를 넘긴 긴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1위, 비영어권 글로벌 1위를 차지하며 K 콘텐츠의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퍼니 게임>은 전작 '머니 게임'과 '파이 게임'을 통해 살아남고 진화한 주인공의 마지막 출전이기 때문에, 이전 게임들의 룰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먼저 게임 3부작의 포문을 연 첫 번째 웹툰 <머니 게임>은 2018년 11월 23일에 연재를 시작, 2020년 1월 10일까지 총 60화로 완결되었다. 


머니 게임 : We invite you.


주인공은 갚을 수 없이 불어난 사채에 몰려 한강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려다가 이상한 제안을 받고 눈이 가려진 채 어디론가 실려간다. 극장처럼 생긴 곳에 도착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머니게임의 안내장과 교통비 천만 원. 8인이 참가하는 '머니게임'의 상금은 448억. 스튜디오에서 100일을 버티면  참가자들에게 균등 분배된다. 참가자들은 자기 방에서 인터폰으로 (흉기를 제외한) 모든 것을 구매할 수 있으며, 무엇에 얼마를 썼는지는 철저히 비공개다. 주인공은 상금을 타기 위해 게임에 참여한다. 그러나 이내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배진수의 게임 3부작의 첫 번째 <머니 게임>


이 게임의 진정한 복병은 사회기반시설이 없다는 것. 방은 암실이고, 화장실과 욕실도 없으며 배설물은 갖고 있어야 한다. 설상가상으로 스튜디오의 환율은 사회의 1000배. 즉 천오백 원짜리 랜턴이 스튜디오에서는 백오십만 원이다. 아프면 약을 살 수 있지만, 희귀병 치료제는 차라리 사지 말라는 가격이다. 8인의 참여자들이 서로에게 동의 받지 못할 생필품들을 사 대면서 대폭 줄어든 총상금에 불신과 반목이 증폭되고 감염과 폭력사태까지 번지면서 스튜디오는 약육강식의 생지옥으로 변해간다. 


게임 3부작의 두 번째 작품 <파이 게임>은 2020년 7월 5일부터 2021년 11월 7일까지 매주 월요일에 네이버 웹툰에 연재되었고, 총 75화로 완결되었다.  연재 당시 전작 '머니 게임'의 설정을 딴 웹 예능 <머니 게임>이 당시 백만 유튜버 진용진의 채널을 통해 실사로 제작되었고, 방영 전에는 유튜버 이여름의 '진용진 폭로'와 '반전', 방영하자마는 참가자들 사이에 '파벌 짓기'와 '집단 퇴소', '승부조작' 등 어마어마한 바이럴이 숨 가쁘게 터져 나와 역시 <머니 게임>의 파급력을 여실히 입증했다. 각설하고, <파이 게임>의 룰을 알아보자.


파이 게임 : We invite you.


살아 나온 주인공이 '머니 게임'에서 획득한 상금은 마이너스 5억이지만 딱히 누가 추징하러 오지는 않는다. 그냥 그런 일상을 보내는 주인공에게 어느 날 신호가 오고, 주최측이 도착, 그때처럼 어디론가 실려간다. 다시 익숙한 풍경을 마주하게 된 주인공. 안내장과 교통비 2천만 원. '파이 게임'의 룰은 단순해서 '룰 북'조차 없다. 식음료는 매일 제공되며, 식음료를 제외한 모든 물품은 구매 가능하고, 게임이 끝나는 조건은 두 가지, '잔여 시간이 0이 되었을 경우'와 '참가자가 사망하였을 경우'이다. 그러니까 게임 기간도 상금도 미정이다.  


배진수의 게임 3부작의 두 번째 <파이 게임>


한 층에 8개의 방이 있던 머니 게임과는 달리, 파이 게임의 스튜디오는 1층부터 7층까지이다. 주인공의 방은 3층, 역시 암실이며 아무것도 없다. 주인공은 전광판 숫자를 통해 1분마다 만 원이 적립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만히만 있어도 만 원씩 적립된다면 최대한 시간을 확보해야겠지? 시행착오 끝에 알게 된 시간 적립의 비밀은 너무도 잔인했고, 스튜디오 층간 설정의 숨은 의도 또한 경악스럽다. 식음료 배급권은 7층에게 있었고, 고층일수록 시급이 높아지고 저층일수록 시급이 낮아지는 철저한 계급사회였던 것. 그러나 참여자 모두 절실했기에 무리하게 폭주하다가 통제불능의 사태로 치닫는다. 


게임 3부작을 종결하는 세 번째 웹툰 <퍼니 게임>은 2022년 10월 9일부터 2024년 2월 4일까지 매주 월요일에 네이버 웹툰에 연재되었고, 총 72화로 완결되었다. 이로써 작가의 게임 트릴로지도 막을 내리게 된다. 이전부터 차기작은 '선과 악'에 대해 다루겠다고 배진수 작가가 공언한 것이 바로 이 <퍼니 게임>이다. 


퍼니 게임 : You Invite Us


주인공은 '파이 게임'을 통해 상금 7억을 획득했다. '머니 게임'의 마이너스 상금 5억을 치르고, 2억을 송금 받지만, 사채를 청산하고 월세 보증금을 치르고 나니 0원이 된다. 영혼을 팔고 죽다 살아왔지만, 겨우 '부채 없는 삶'을 획득했을 뿐이다. 다만 게임을 종료시키기 위해 했던 도발 때문인지 주인공은 주최측의 초대장이 올 것을 예측하고, 이를 대비해 격투기로 체력을 단련하기 시작한다. 1년 후 그날이 왔다.    


배진수의 게임 3부작의 마지막 <퍼니 게임>


'퍼니 게임'의 안내장과 교통비 3천만 원. 전보다 천만 원이 올랐으니 더 잔인할 것을 짐작게 하지만, 항상 그렇듯 룰은 안전해 보인다. 적립 총상금이 777억 원이 되면 게임은 끝나고, 상금은 7인의 참가자에게 균등분배. 111억 원이다. 필요한 물품은 방 배송구를 통해 구매 가능. 무엇보다 독특한 규정은 '언제든 게임을 그만둘 수 있다', 즉  출입문은 열려 있으니, 그냥 나가면 된다는 것이다. 퇴장 많이 하면 '개꿀'? 이때 눈치를 챘어야 했다. 이 게임의 함정을.


낯선 방문객의 미션, "소돔에서 의인 10명을 찾아라"


자, 이제 소돔으로 돌아오자. 당시 죄악의 도시로 유명했던 '소돔'에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거류민 자격으로 살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 앉아 있던 롯은 낯선 두 나그네를 보고 집으로 모신다. 항상 나그네 대접에 극진했던 삼촌 아브라함의 삶의 자세가 떠올랐나 보다. 사실 두 방문객은 하나님의 명을 받아 파견된 천사(혹은 친히 천사의 외양으)로서, 그들의 임무는 타락한 도시 '소돔'에 의인이 최소한 10명이 있는지 보러 온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할 운명이었으나, 함께 멸할 의인들을 걱정한 아브라함의 중재로 용서에 필요한 최소 의인을 50명,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으로까지 줄인 것이다. 천사를 제일 먼저 맞이한 사람이 롯이었고, 그 극진한 환대에 롯이 의인임은 알 수 있었지만, 나그네를 내놓으라고 롯의 집을 포위한 폭도들의 시위가 격해지자, 잠시 그들의 눈을 멀게 한 후, 롯의 가족을 대피시킨다. 결국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불에 타 사라진다. 그 후 롯이 겪게 되는 비극을 통해 어차피 소돔의 의인은 롯 한 명이었던 것 아닌가 생각해 본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장면', 요하임 파티니르 작품 (목판 유화, 1520)


의인이 사라질 때까지 악인을 무한리필해 드립니다


주인공의 방은 1호다. <퍼니 게임>에서의 생존은 막상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상금이 1원부터 시작해서 매일 더블로 적립되기 때문에 물 한 병 살 수 있는 천 원이 적립될 때까지 11일 동안 참가자 전원이 하루에 100ml의 물만 먹으며 무지출로 버텨야 한다. 시드머니가 커질수록 소비의 부담이 줄어드니 초반에는 무조건 목돈을 적립해야 한다. 유일한 유경험자인 주인공은 참가자들을 설득하여 주어진 소량의 식량을 한데 모아 일 배급제를 실시하고 10일차까지 잘 끌어오지만, 11일차에 드디어 빌런이 탄생한다.  


그러나 주최 측이 세팅한 <퍼니 게임>의 진정한 필살기는 바로 "언제든 게임을 그만둘 수 있다"는 규정에 있었다. 참가자가 퇴소하면, 그 방에 새로운 참가자가 리필된다. 즉 참가자는 항상 7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전광판에 777억 원이 적립되는 날'과 '언제든 나갈 수 있는 출입문', 그리고 '참가자의 무한리필'이라는 최강 조합으로, 스튜디오에 상상도 못한 지옥도가 펼쳐진다. 


아니, 당신이 악인이 될 때까지 악인을 무한리필해 드립니다  


의인 10인이 없어 멸망한 도시 소돔. 그 지리적 도시는 사라졌지만, 소돔은 다른 곳에 다른 이름으로 언제나 존재해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웹툰 <퍼니 게임>에서는 '참가자들이 겪는 지옥도'가 맥거핀처럼 우리의 시선을 빼앗아가는 동안, 이 게임이 다국적의 게스트들에게 비밀스럽게 생중계되는 '리얼 버라이어티쇼'라는 사실을 쉽게 간과하게 된다. 


참가자들이 돈에 몰린 극한 상황 속에서 도덕, 양심, 인간성을 버리고 흑화 되어 가는 과정을 주최측은 어딘가에서 관찰하고 있다. 상금을 올리거나 시간을 적립하고, 때로 협상에 응하는 등, 참가자들이 악마가 되어 가는 과정, 심성이 누더기가 되어가는 과정, 주최측과 동화되어 가는 과정을, 도대체 언제부터 몇 회나 열렸는지 알 수도 없는 이 잔인한 게임 개최에 중독되어 이 악마적인 실험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거액의 상금을 내걸었지만, 상금은 마치 도박판의 판돈처럼 주인 없이 돌고 돈다. 


'퍼니 게임'의 흑화를 피할 수 있는 의인의 최소 숫자는 7명이다. 7명 전원이 룰을 지키면 모두 111억을 가져갈 수 있다. 아니, 의인이 아니어도 좋으니, 악인 1명만 없어도 모두 111억을 가지고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전광판에 777억이 적립되는 날 아침이 되면 여지없이 악인은 탈주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참가자들이 '퍼니 게임'의 상금은 선착순 빌런에게 주어진다는 잔인한 이치를 깨닫게 되자, 스튜디오는 일촉즉발의 먹튀 레이스 전운이 감돈다. 


현대사회의 멸종위기종 '의인'


주인공은 이 게임에서 승리했을까? 주인공은 결국 게임 도중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구매하고 제 발로 나왔다. 그리고 시드 머니를 한 푼도 건들지 않았기에 참가자들에게 피해를 끼친 것은 아니다. 최소한 흑화 탈주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주최측이 원하는 '주최측처럼 동화되기'는 면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의인인 것은 아니다.


주인공이 탈주하기 전까지 스튜디오에는 한 명의 의인이 있었다. 7호. 장애인이었고, 항상 아픈 사람, 핍박 당하는 자의 편이었고, 스튜디오 내 폭력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누구의 말이든 끝까지 믿어주고, 나쁜 사람도 변호해 주며, 자신보다 남을 돌봐주는 사람이었다. 리필에 리필까지 사라지는 마당에, 마지막 남은 오리지널 멤버. 


1호의 퇴장 이후 스튜디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모른다. 주최측은 아마 7호가 '의인이기'를 포기할 때까지, '악인이 될 때까지', 무한대의 악인을 리필할 것이다. '조물주의 심판을 막기 위한 의인 찾기'가 지금 여기서는 '타락을 방해하는 의인 색출'로 뒤틀렸다. 색출된 7호는 시드 머니 적립에 동원되어 영원히 착취당하거나, 폭발해서 악인이 되거나. 또 무슨 선택지가 있을까. 오늘날 멸종 위기종인 '의인' 7호의 선택이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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