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에서 둘째 날
I'm living my dream
난데없이 봄날 같은 따뜻한 날씨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전혀 기대하지 않던 행운이 찾아오면 우왕좌왕 어찌할 줄 모르는 것처럼, 오늘의 이 포근한 날씨를 최대한 만끽하기 위해 조바심이 난 관광객처럼 하루에만 서너 개의 일정을 뒤죽박죽 끼워 넣었다.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한 사랑스러운 날씨였다.
그저 얌전한 모범생인 줄 알았던 친구가 사실은 엄청난 랩 실력은 지닌 것을 알게 된 것 마냥, 강릉이란 동네는 여행 이틀 차인 내겐 아직 알다가도 모를 구석을 지닌 곳이다.
길을 걷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의 희끗한 머리는 그녀가 입고 있는 짙은 녹색 바지, 그리고 나이키 스니커즈와 조화를 이루어 이 동네 풍경에 예술가적 인상을 더해 준다.
이곳 주변 골목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폐공장 마냥 녹슨 건물들과 콘크리트 질감의 벽돌담들은 내가 도시를 떠나와 교외 지역에 있다는 것을 실감 나게 해준다. 동시에 그 바로 옆에 갤러리라도 되는 양 도시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카페들이 그런 환상을 깨어나게 해준다. 강릉은 이런 동네다.
자유를 갈망하여 한 달이라는 시간을 만들어 냈고, 이젠 자유를 얻었기에 그동안 포기하고 살던 것들을 살펴보려고 강릉으로 왔다.
이제 내게 하루는 노동과 퇴근 후에는 기진맥진해져버려 허송세월 보내 듯 놓쳐버리는 6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이 아니다. 나는 지금 자유롭고,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살펴보고 즐기며 24시간 하루를 온전히 내 것으로 보내고 있다.
오전에 아쿠아리움에서 나는 물고기들이 아닌 내 딸아이가 얼마나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는지 감상했다. 웃고, 소리 지르고, 뛰고, 무서워하고, 상상하는 표정을 보며 가슴속에 충만한 만족감을 느낀다.
해변에서 손잡고 파도 피하기 놀이를 하며 우리 발을 적시기 위해 사납게 달려드는 파도를 피하기 위해 딸아이를 안아 들었을 때, 딸아이를 안고 있는 내 손끝으로 아이가 느끼는 짜릿한 즐거움이 전해지는 생경한 경험을 한다.
모든 것이 늘 내 주변에 있던 것들이지만, 어느 것 하나 내게 자유가 없을 땐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것들이다. 이런 새로운 세상을 자유를 얻은지 고작 이틀 만에 나는 맛보고 있다.
지금 강릉 집에는 Chet Baker의 재즈 음악이 잔잔하면서도 따뜻하게 내리 깔리고 있고, 노란 조명 불빛이 방구석에서 따뜻하게 빛나고 있으며 식탁에는 아내가 앉아서 손을 턱에 괴고 뭔가를 보고 있다.
시간은 벌써 자정을 향해 흘러간다. 딱 지금이다. 딱 지금 이 순간이 내가 늘 원하고 바라던 모습의 시간이다. 난 지금 내 꿈속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