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10 "한 번에 하나의 제품만 구매하라"
안녕하세요. 브랜드와 소비자에 대해 연구하는 연세대 김병규입니다. 저는 브런치와 같은 [긴 글 공간]이 가진 가치와 힘을 믿습니다. 이곳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서 - #호모 아딕투스 #노 브랜드 시대의 브랜드 전략 #플랫폼 제국의 탄생과 브랜드의 미래 #플라스틱은 어떻게 브랜드의 무기가 되는가 #감각을 디자인하라)
옷이나 식품을 구입할 때 한 번에 하나의 제품이 아니라 여러 개의 제품을 함께 구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티셔츠를 살 때 하나만 사는 것이 아니라 번갈아가면서 입을 티셔츠를 여러 벌 구입하고, 가방이나 신발도 세일 기간이나 아웃렛 매장에서 여러 개를 구입하는 일이 있죠. 식품의 경우에는 앞으로 먹을 것들을 쟁여놓기 위해서 여러 가지 제품을 한 번에 구입하게 됩니다. 배송비를 내지 않기 위해서 또는 1+1 행사 혜택을 얻기 위해서 복수의 제품을 구매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제품을 복수로 구매하는 일은 너무 일상적인 것이어서 이런 소비 자체에 뭔가 독특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잘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사람들이 복수로 제품을 구매할 때에는 늘 발생하는 하나의 패턴이 존재합니다. 사람들이 이 패턴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죠.
우선 제 경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검정 색의 상의를 좋아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티셔츠, 셔츠, 외투는 대부분 검은색입니다. 제가 지금 필요한 티셔츠 하나를 구입한다면 저는 무조건 검은색을 구입할 것입니다. 그런데 세일 기간에 하나가 아니라 두 장의 티셔츠를 구입한다면 저는 어떤 색상의 티셔츠를 구입할까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검은색이지만 검은색 티셔츠를 두 장 구입하기보다는 검은색 하나와 제가 덜 좋아하는 다른 색상, 예컨대 남색이나 녹색 하나를 구입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막상 남색이나 녹색 티셔츠를 입으려고 하면 ‘내가 왜 이런 색상의 티셔츠를 구입했지?’라며 속으로 후회를 하게 됩니다. 이런 경험이 왠지 낯설지 않게 느껴지죠?
식품을 구입할 때도 이런 일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을 요거트나 아이스크림, 빵 등을 구입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과 더불어 덜 좋아하는 것을 함께 구입하게 됩니다. 가령, 단팥 아이스바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아이스바를 다섯 개 구입한다면 단팥은 두 개 정도 고르고, 나머지 세 개는 커피맛, 우유맛, 멜론맛 등 자신이 덜 좋아하는 맛으로 고르게 됩니다. 그리고 단팥 아이스바를 모두 먹어버린 후에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바가 이제 없다는 사실에 실망하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한 번에 여러 개의 제품을 구매할 때 자신이 덜 좋아하는 것을 포함하여 구입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미 30년도 더 전에 스탠포드 대학교의 경영학자인 이타마 사이몬슨 Itamar Simonson이 실험을 통해 이런 현상의 존재를 증명한 바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현상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이 덜 좋아하는 것들을 구매하면서 살게 됩니다. 이 현상만큼이나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는 자신이 덜 좋아하는 것을 구매해서 나중에 후회하는 일이 생겨도 이런 습관이 고쳐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앞서 예로 사용한 아이스바로 돌아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단팥 아이스바가 아니라 멜론맛 아이스바를 먹는 사람은 그 순간에는 실망감을 느끼지만 다음에 아이스바를 구매할 때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인간은 뛰어난 학습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실망스러운 경험을 해도 자신의 습관을 고치지 않는 것일까요?
사람들이 실수를 통해 배우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실수가 반복되는 패턴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덜 좋아하는 제품을 선택한 것이 반복되는 패턴이 아니라 개별 사건이라고 인식하게 되면, 사람들은 자신의 소비 습관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구매 안에 패턴이 존재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자신이 실망하는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소비에 패턴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해도 왜 이런 패턴이 나타나는 지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습관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그저 자기 자신의 독특한 성향이나 잘못으로 치부해버리기 쉽죠. 그래서 자신의 소비 패턴의 원인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행동경제학과 경영학 연구자들에 따르면, 복수의 제품을 구입할 때 자신이 덜 좋아하는 제품을 구입하고 후회하는 소비 패턴이 발생하는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시간에 대한 뇌의 오류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1주일 후와 2주일 후에 아이스바 하나씩을 먹을 계획을 가진 사람을 상상해 보겠습니다. 이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바는 단팥입니다. 이 사람은 1주일 후에 단팥 아이스바를 먹고, 2주일 후에 단팥 아이스바를 먹으면 자신의 만족도가 어떨지 상상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는 1주일이라는 시간 간격이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은 2주일 후에 단팥 아이스바를 먹어도 전혀 질리지 않고 큰 만족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뇌는 1주일이라는 시간 간격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습니다. 머릿속에서는 마치 단팥 아이스바 하나를 먹자마자 바로 단팥 아이스바 하나를 더 먹는 것처럼 상상이 됩니다. 그러면 뇌는 2주일 후 단팥에 대한 만족도가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단팥이 아닌 다른 맛을 고르라고 명령하게 됩니다. 뇌가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제품을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죠.
두 번째는 포트폴리오 효과라고 불리는 현상과 관련됩니다. 사람들은 여러 개의 옵션을 한꺼번에 고려할 때 자동적으로 옵션들 사이의 보완성을 고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령, 매운맛의 식품이 있으면 순한 맛의 식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어두운 색의 옷이 있으면 밝은 색의 옷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자신의 선호나 취향과 관계없이, 함께 고려하는 제품들이 서로 보완성을 가지도록 구성하게 되는 것이죠. 어느 하나에 편중되지 않도록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입니다.
제 경우에도 옷을 구입할 때 하나를 보수적인 스타일로 구입하면 다른 하나는 저도 모르게(즉, 제 취향이나 사용 목적은 고려하지 못하고) 다른 하나는 독특하거나 화려한 스타일로 구입하려고 하게 됩니다. 마치 의류 회사들이 계절 신상품을 출시할 때 다양한 스타일의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처럼, 저도 본능적으로 마음속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죠.
이 두 가지 설명을 통해서 왜 우리가 여러 개의 제품을 한 번에 구입할 때 자신이 가장 좋아하지 않는 제품을 포함시키는 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소비 습관은 어떤 한 사람에게만 발생하는 독특한 현상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발생하는 일반적 현상이며, 그 원인은 뇌의 오류와 관련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뇌의 오류는 고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해결책은 뇌가 오류를 범할 기회를 애초에 차단시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소비를 할 때 가급적 여러 개의 제품을 한 번에 구입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여러 개의 제품을 미리 구입해야 하는 경우라면 밤보다는 아침에 쇼핑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아침보다는 밤에 다양하게 제품을 고르려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합니다. 밤이 되면 사람의 뇌는 각성 수준이 높아져서 자신의 각성 수준에 맞는 자극, 즉 좀 더 자극적인 자극을 선호하게 됩니다. 한 바구니 안에 다양한 제품들이 들어가 있으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재미있게 느껴지기 때문에 밤의 뇌는 이런 바구니에 만족감을 느끼게 됩니다. 반면 아침의 뇌는 자극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다양한 제품들이 들어가 있는 제품보다 다양성이 없는 바구니에 편안함을 느끼게 됩니다.
주식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흔하게 듣는 조언 중에서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 종목에 집중해서 투자하지 말고 다양한 종목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서 위험을 줄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 조언은 경제학의 포트폴리오 이론을 반영하는 것으로 많은 투자자들에게 주식 투자의 기본 중의 기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비에 있어서 만큼은 반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의 바구니에는 반드시 하나의 달걀만 담아라.”가 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이 글을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한 2022년 12월 기준으로 "소비 연비", "돈의 연비"라는 단어는 구글, 네이버, 다음 등에서 전혀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이 글이 "소비 연비", "돈의 연비"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곳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