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연비를 높이는 기술 #1 "욕구가 사라질 시간을 만들어라"
안녕하세요. 브랜드와 소비자에 대해 연구하는 연세대 김병규입니다. 저는 브런치와 같은 [긴 글 공간]이 가진 가치와 힘을 믿습니다. 이곳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서 - #호모 아딕투스 #노 브랜드 시대의 브랜드 전략 #플랫폼 제국의 탄생과 브랜드의 미래 #플라스틱은 어떻게 브랜드의 무기가 되는가 #감각을 디자인하라)
#욕구를 반드시 충족시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가지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물건을 구입하기 전에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구입을 하고 난 후에는 물건의 필요성을 못 느끼거나 구입을 후회하는 일이 자주 생기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욕구가 저절로 사라질 틈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욕구란 무엇인가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을 말합니다. 욕구가 발생하면 사람의 몸에는 긴장감과 불편함이 생겨나고, 뇌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서 빨리 욕구를 충족시키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욕구가 충족되면 긴장감과 불편함이 사라지고 마음에 안도감과 만족감이 밀려옵니다. 욕구가 마음속에 불편함을 만들고,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만족감을 주는 것은 사실 우리의 생존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나 에너지가 부족해지면 사람은 먹을 것이 필요합니다. 영양소가 풍부하거나 칼로리가 높은 음식이라면 더 좋겠죠. 이런 음식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만약 배고픔이 불편함을 주지도 않고, 배고픔이 충족되어도 행복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먹을 것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있고, 그러면 영양 결핍으로 건강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인간의 뇌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존하는 것을 돕기 위해서 ‘욕구’라는 시스템을 만들어낸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사람의 뇌는 그대로인데 세상은 크게 변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시대에 우리가 가지는 대부분의 욕구는 생존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하다가 광고에 노출이 되거나 갑자기 할인을 받게 되어서 물건을 가지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는 일이 많습니다. 이런 욕구들은 생존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충족시켜야 하는 욕구가 아니며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의 뇌는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게 되면 수렵 생활을 하는 원시인이 먹을 것을 발견했을 때처럼 강한 욕구를 가지게 만들고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큰 불편함과 긴장감이 만들어냅니다. 여기에 더해 쇼핑 플랫폼은 간편 결제 시스템을 제공해서 손가락 한번 움직이는 것만으로 쉽게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욕구가 사라질 틈을 전혀 주지 않는 것입니다.
소비 연비를 높이기 위해서는 욕구가 원하는 데로 소비하는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람의 뇌는 욕구의 대상이 자신의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겠지만 이 신호가 뇌의 착각에 의해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뇌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뇌는 사람의 머릿속을 제품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채우고, 사람들로 하여금 제품을 소유한 자신의 멋진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죠. 제품을 얻는 순간 큰 행복감이 느껴지고, 이 행복감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욕구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욕구의 힘을 억지로 누를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자유가 억압된다고 생각할수록 반발심이 생겨서 하지 못하는 행동을 오히려 더 하고 싶어 집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심리적 반발(psychological reactance)이라고 부릅니다. 아이들에게 게임을 하지 못하게 하면 아이들이 게임을 더 하게 되는 것이 심리적 반발의 작용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제품에 대한 욕구가 발생했을 때 자신의 욕구를 억제하려고 하면 제품이 더 가지고 싶어질 뿐입니다. 욕구의 힘에서 벗어나는 보다 현실적인 방법은 욕구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욕구의 힘이 약해질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욕구가 자연스럽게 약해지게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생존과 관련이 없는 소비 욕구는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자연스럽게 약해지거나 사라집니다. 그런데 이 시간이 어떤 시간인지가 아주 중요합니다. 욕구와 구매 사이에 충분한 시간을 만들더라도 그 시간 동안 제품 사진이나 정보에 자주 노출되면 욕구는 사라지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더 커질 위험이 있죠.
한 심리학 연구에서는 실험진행자가 어린 아이들에게 마슈멜로 하나를 보여주고서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마슈멜로를 먹지 않으면 돌아와서 두 개를 주겠다고 말합니다. 어떤 아이들에게는 접시 위에 마슈멜로가 보이도록 놓았고, 어떤 아이들에게는 봉지 안에 넣어서 보이지 않게 했습니다. 눈앞에 마슈멜로가 있는 아이들은 실험진행자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눈앞에 있는 하나의 마슈멜로를 먹었고, 봉지에 들어있는 마슈멜로 앞에 있는 아이들은 실험진행자가 돌아올 때까지 참을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제품에 대한 욕구가 생겼을 때 제품에 대한 사진이나 정보에 자주 노출되면 욕구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욕구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제품에 대한 사진이나 정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위시리스트를 작성하라
어떻게 하면 욕구가 사라질 시간을 만들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요? 한 가지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제품에 대한 욕구가 생기면 우선 이 욕구를 억누르려고 하는 대신에 이 제품을 사겠다고 마음을 먹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면 심리적 반발이 생기지 않습니다. 또한 제품을 사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욕구는 어느 정도 해소될 수가 합니다.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구입하기로 결정한 제품을 바로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노트에 메모를 해놓는 것입니다. 노트장에 위시리스트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이죠. 이때 중요한 것은 쉽게 볼 수 있는 곳에 노트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쇼핑몰의 장바구니에 넣어 놓아서도 안됩니다. 평소 눈에 잘 띄는 곳에 구매 목록을 붙여놓거나 쇼핑몰 장바구니에 제품을 넣어놓으면 제품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기 어렵습니다. 일단 구매 목록에 제품을 적어놓으면 제품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는 일도 중단해야 합니다. 구매 목록에 적는 순간에 이 제품에 대한 구매 결정이 끝난 것으로 간주하고 더 이상 제품에 대한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스마트폰의 세팅을 변경해서 광고가 자신을 추적하지 않게 해 놓는 것도 필요합니다. 스마트폰의 디지털 광고 시스템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제품을 배너 광고 형태로 계속 보여주게 됩니다. 한번 제품에 관심을 보이면 신문 기사를 보거나 메신저를 확인하거나 심지어 그날의 미세먼지를 확인하는 순간에도 제품에 대한 광고가 자신을 따라다니게 됩니다.
이처럼 구매 목록을 만드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지만 그 힘은 강력합니다. 이런 습관이 잘 정착되면 자연스럽게 욕구와 구매 사이에 충분한 시간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노트를 열어야만 자신이 구매하고 싶은 제품이 보이기 때문에 한동안 자신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전환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제품을 구매하기로 마음을 먹고 구매 목록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구매 목록을 만드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욕구를 충족시키는 효과도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제품에 대한 욕구가 생길 때마다 노트에 기록을 하길 바랍니다. 며칠 또는 몇 주의 시간이 흐른 뒤에 노트를 열어서 자신이 적어놓은 제품에 대해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제품에 대해서 욕구가 크게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왜 이 제품을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품을 가지고 싶다는 욕구는 생존과 관련된 욕구가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고 관심이 차단되면 자연스럽게 약해지게 됩니다. 욕구를 그때그때 충족시키지 않게 하는 작은 습관만 만들어도 끊임없이 소비하는 삶에서 쉽게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물론 충분한 시간을 기다린 후에도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 제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이런 제품이 있다면 이 제품은 자신에게 정말 필요하고 큰 기쁨과 행복을 줄 수 있는 제품일 수도 있겠죠. 오랜 시간 기다리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도 욕구가 사라지지 않는 제품이라면 큰 할인을 받을 수 있을 때 구입하면 됩니다. 구매 목록을 작성해서 욕구가 사라질 기회를 주는 것은 무조건 소비를 안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수많은 욕구들 중에서 금세 사라지게 될 욕구를 걸러내기 위한 것이죠. 자신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는 제품을 찾아내기 위한 장치인 것입니다.
(*이 글을 브런치에 올리기 시작한 2022년 12월 기준으로 "소비 연비", "돈의 연비"라는 단어는 구글, 네이버, 다음 등에서 전혀 검색이 되지 않습니다. 이 글이 "소비 연비", "돈의 연비"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곳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