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이 만드는 '더 나은 세상' 정의하기
어느덧 일을 한 지 2주 하고도 절반정도가 지났네요. 이번에는 업무 성과 공유보다는 조금 더 본질적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아직 고민하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저번 주에는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좋은 비즈니스’란 무엇인지, 본질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장 프로덕트를 만들어야지, 당장 고객을 만들어야지,라고 아무것도 없이 덤비려고 했던 생각에서 물러나 한 뼘 뒤에서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느낌입니다.
제가 당장 나무를 베어서 무언가를 만든다고 생각해 봅시다. 저는 지금까지 나무로 ‘당장 무엇을 만들지’에 집중했을 뿐, ‘어떤 숲에서, 어떤 나무를 가져와야 좋을까?’라는 고민은 하지 않은 거죠. 물론 나무를 베고 가공하여 무엇을 만들지 익히는 것은 중요합니다. 지금까지는 학교에서, 그리고 여러 사이드프로젝트를 하면서 이 부분을 중점적으로 배웠던 것 같습니다. 경영학과에서 주로 가르쳐 주는 건 고객은 어떻게 만드는가, 유지하는가, 어떻게 전략적으로 회사를 관리할 것인가의 문제죠.
그러나 한 발 더 물러나서 ‘좋은 비즈니스’란 무엇인지 저에게 묻는 수업은 없었습니다. (제가 못 찾은 걸 수도 있지만요.) 지금 일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 질문을 받았을 때, 제가 얼마나 좁은 시각으로 살아왔는지 새삼 느껴졌습니다. 각자가 생각하는 ‘좋음’, ‘선’의 벡터는 다를 겁니다. 지금까지의 성공한 비즈니스는 모두 좋은 세상을 만들었는지, 내가 생각하는 더 좋은 세상의 방향은 어느 방향인지, 깊게 고민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제가 최근에 가장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저만의 엣지 있는 생각’입니다. 보통 성공한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만의 의견, 저만의 뾰족한 시각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됩니다. 비즈니스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배웠는데, 가장 해결하고 싶은 저만의 줏대 있는 생각이 없는 거죠. 주객이 전도된 느낌입니다.
이것이 비단 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친구들과 대화를 해 봐도, 사회 문제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해 자신만의 시각으로 정의를 하고자 하는 친구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소비하며 살아갑니다. 아마 사회 구조의 문제일 수도 있겠죠. 대한민국에서 좋은 대학에 오기 위해서는 ‘정해진 과목’의 ‘답’이 무엇인지 잘 찾아내는 연습만 하면 되었으니까요. ‘답을 쓴 사람의 의도’가 아니라 ‘출제자의 의도’가 중요한 삶을 20년간 살았으니까요.
프랑스에서는 <바칼로레아>라는 수능 시험을 칩니다. 한 질문에 대해서 네 시간 동안 답을 쓴다는군요. 저는 심심할 때마다 검색해서 기출 질문에 대해 답을 해보곤 하는데요, 질문 예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생각만 해도 답을 쓰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리지 않나요?
이런 것을 볼 때마다, 우리나라는 인문학과 철학 공부가 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철학과’라고 하면 ‘뭐 먹고살래’부터 나오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죠. 그러나 정작 세상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각은 철학적 질문에서 나옵니다. 철학과에게 ‘뭐 먹고살래’ 하기 전에, ‘나는 어떤 가치를 주고 싶은지, 어떤 가치가 중요한지’ 제대로 정의해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왜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질문은 모른 체하고 살아가는 걸까요?
결국 ‘좋은 비즈니스의 본질’은 정해진 답이 없고, 본인 안에 답이 있습니다. ‘비즈니스를 해야지, 창업을 해야지’를 목적으로 삼으면 절대로 좋은 기업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그리는 더 좋은 세상이 확실히 있어야 합니다. 비즈니스는 그에 다가가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그 수단은 글쓰기가 될 수도, 디자인이 될 수도, 건축이 될 수도 있죠. 목적과 수단을 헷갈리지 마세요. 한 발 물러나서 숲을 보세요. 이제는 더 본질적인 질문에 답할 때입니다. 당신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나요? 얼마나 간절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