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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 bam Oct 08. 2024

6개월 간 하나의 정상에 오르다.

고산봉

철학을 배우기로 결심하면서 6개월간 매주 주말 전라남도 함평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최진석 교수님을 통해 철학을 접했고, 수업이 끝난 후에는 고산봉에 오르며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갔다. 철학에서 파생되는 넓은 세상과 순리에 비해 내적 함양이 터무니없이 부족하지만, 가끔씩 고산봉 정상을 기억하며 다시 정진하고자 마음을 다잡곤 한다.


고산봉은 높이가 359m로 상당히 낮아 보이지만, 대동면사무소에서 출발하면 3,727m 길이의 코스이기에 쉽지만은 않다. 또한, 오르락내리락 반복되는 능선은 등산 난이도를 한층 높인다. 하지만 힘들게 투덜대며 만난 정상의 자태는 매번 나를 반성케 했다.


겨울 고산봉

고작 300m 높이의 봉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절경을 뽐낼 수 있을까 싶다. 가끔 다시 고산봉 사진을 볼 때면 '그저 꿈만 같다'라는 표현이 이때 사용하는 것이구나 생각이 든다. 한 곳을 이렇게 주기적으로 여러 번 올라와본 경험은 없었다. 처음에는 등산의 목적이 철학을 심적으로 훈련한 후 등산이라는 육적인 행위를 통해 철학을 체화시키는 과정인가 싶었다. 물론 앞서 말한 것이 의도된 효과 중 하나일 수 있다. 허나 내게는 정상을 오른 그 강렬한 순간이 가슴속에 깊게 맺혀,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과거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준다.



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내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시즌은 한겨울 고산봉이었다. 어느 산이든 눈이 내리면 등산이 1.5배 힘들어진다고 말하지만, 눈꽃으로 가득 차 천국을 연상케 하는 산의 기풍은 힘듦마저 잊히게 한다.


고산봉 정상

전라남도는 우리나라 기준 서쪽에 있기에 위 사진에서 바라보는 일출은 저 멀리 동쪽을 바라본 것이다. 수많은 산봉우리를 지나쳐 떠오르는 태양은 우리에게 새 삶의 기회를 전해주는 듯한 전율을 선사한다.


6개월간 한 곳에 오르며 느낄 수 있었던 감정들이 이 하나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먼 시골의 작은 산이 누군가의 꿈의 발판이 될 수 있다. 고산봉을 향했던 등정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거기에는 서사가 있으며, 각자 꿈을 꾸게 만드는 강력한 스토리가 있다.



고산봉을 내려와도 함평의 아름다움은 어김없이 지속된다. 함평 초등학교 인근 거리는 깊은 사유를 품을 수 있도록 묵연의 길을 우리에게 내어준다. 특히 사계절 중 가을이 오면 수많은 낙엽이 홍해를 가르듯 펼쳐진다. 이 길을 걸을 때면 빨간 머리 앤이 친구 다이애나를 만나러 가는 장면이 연상되기도 한다.


함평 초등학교 옆 사유의 길


시간이 지나면 어떤 것이든 잊히기 마련이다. 6개월간 올랐던 함평의 기억은 다시 행해질 수 없지만, 시절의 인연이 있듯이 기억은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이 오히려 더 아름답다. 고산봉에서 경험한 고요는 결코 멈추어져 있지 않았다. 그것은 성찰이자, 꿈의 파동이었다.


최진석, <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에서

고요는 정지된 상태가 아니다. 찰나의 순간이다.
운동 방향을 달리하는 찰나의 순간, 그 순간의 충격이다.


Photo by B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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