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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읍 Jul 08. 2023

3-1_창업

(창업)뽕이 차오른다, 가자.


매출 없으면 백수지 뭐, 근데 난 백수 오래 하고 싶진 않아. 대표 놀이는 더더욱 그렇고.

by 현 게임회사 대표(지인)


창업 이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는 **루틴이 하나 있다. 하루 중 점심 혹은 저녁은 반드시 외부인과 먹는 것.

혼자 먹는 것이 어려워서는 아니었다. 혼밥, 혼술의 개념이 자리 잡기 이전부터 혼자서 줄곧 해왔었다(타인의 속도나 감정에 맞추는 수고로움 없이,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일정에 지친 나에게 선물하는 시간이었기에 지금도 애정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루틴 | 주말(토, 일) 중 하루만 외부인과 식사를 한다면, 1년(52주)에 약 50건에 추가 미팅을 확보할 수 있다. 욕심을 내서 주말 내내라면 약 100건, 평일 내내라면 약 240건의 미팅을 확보할 수 있다.


외부인(업체 담당자)와 식사 미팅을 진행하며 초반에는 숫자를 채우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중반에는 각 포지션에 따른 문제 해결 방식을 배우게 됐고, 후반에는 관점이 확장되는 것 그로 인해 통찰력이 조금씩 성장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더 여우 같아진 현재는 식사에 집중하는 척하며 상대방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기를 만들어내는 것 같기도 하다.


업무 관련 얘기는 텍스트 커뮤니케이션(주로 메일)을 선호하는 편인 것도 있지만, 온전히 식사에 집중했을 때 양쪽 모두에게 즐거웠던 자리로 마무리됐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상대방이 편하게 개인사를 얘기할 수 있게 만드는 노력도 여전하지만 'Sorry to cut you off'(끊어서 죄송해요)라는 대사를 치며 대화를 가로채는 습관도 여전하긴 하다.



"끊어서 죄송해요, 전 에피소드가 터져 나오는 병이 있어요"


작게는 n만 원부터 크게는 n 억 원에 달하는 계약도 경험하며 자신감이 붙은 것 까지는 좋았다. 평일 주말 구분 없이 미팅을 이어간 것까지도 좋았다.

그러나, 명함에 새겨진 '이사'라는 단어에 지배당하며 본격적으로 멍청해지기 시작했다(좀 더 정확히는 이사라는 '타이틀'에 본격적으로 취하다 못해 맛이 가기 시작했다).


또래 친구들 중 취준생인 경우도 상당수였기에 들뜨는 것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내가 아닌 타인의 입을 통해 나왔을 때만 용서(이해) 받을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 여전히 '그럴 수도 있지' 단계에서 외부요인 탓만 늘어놓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매주/매월 복기를 통해 살벌한 자기 객관화에 성공한 것에 대해서는 한 번쯤은 칭찬해 주고 싶다.


정신없이 쏟아내다 보니, 어떤 서비스였는지 소개조차 하지 않고 여기까지 흘러왔기에 지금 바로 소개하고자 한다.

당시 중고나라에서 10대부터 60대까지 가장 많이 거래하는 품목이 도서라는 것을 확인한 뒤 1:1로 중고도서를 교환하는 서비스를 론칭했다.

중기청에서 1억 원의 보조금을 받은 뒤 마음속에서 '이제 나는 됐다 성공하러 가보자'를 외쳐댔지만,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투자금이었다.

실행력을 제외한 모든 역량이 부족했던 내 첫 경험은, 흥분을 느낄 새도 없이 찝찝함만을 간직한 채로 마무리됐다.



1 - 문제의 그 명함 | 2 - 웹사이트 화면 | 3 - IR 자료 중 일부



다시 돌아와서, 문제는 명함 속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시작됐다. 첫 번째, 결정권자라는 타이틀이 미팅에서 전혀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타이틀을 활용하는 방법을 몰랐고, 이사라는 단어에만 빠져있던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최초 사용자로부터 추출할 수 있는 데이터 활용에 대한 개념 자체가 빈약했던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과정을 겪었다 보니, 이 부분은 대표 혹은 결정권자의 **역량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하고 싶다.


**역량 | 여기서 표현한 역량은, 최초 사용자(고객)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서비스에 대한 강/약점을 파악 후 가정 - 가설 - 검증 단계를 반복하는 과정이다. 

(최근, 세일즈 코칭을 하며 만났던 팀 중 이 과정을 기가 막히게 해내서 투자 빙하기에 투자유치에 성공한 팀(페어리 | 세일즈클루)을 보니, 대표자 역량이 전부는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들과 비슷한 연차였을 때 나는 그들만큼 시도하지 못했었기에, 다시 한번 존경심을 담아 축하한다)


두 번째, 최초 사용자가 서비스를 사용'해준다'라는 개념을 꼬아서 들었다. '내가 지금 여기 이사인디? 만족하면 거래하는 거지, 뭐 누가 도와달랬나?'

그때의 나에게 한 마디만 할 수 있다면, 말없이 다가서서 로우킥으로 시선 뺏고 원투 콤비네이션을 건네고 돌아오고 싶네요.

(고등학교 때 같은 학원 친구가 돈 뺏기고 왔길래, 근처 게임방에 있던 친구들 모아서 3:3 주먹싸움 후 승리와 함께 빼앗긴 돈을 찾아다 준 적이 있는데, 오 이런 병이 도졌네요 - 이만 줄입니다)

생소한 기업의 서비스를 사용하는 행동은, 단순하게 보면 호기심이 많아서 일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의 시간(한정적인 시간 = 한정적인 삶 = 생명)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감사함을 기본값으로 두고 행동했어야 했다. 물론, 미성숙한 덕분에 조져지고 난 후에야 배우게 됐다(응애응애).


세 번째, 명함을 뿌리는 것(미팅 횟수) 즉, 숫자만 채우고 만족하는 무능함 하이패스 티켓을 끊어버렸다. 이후, 오늘 하루를 꽉 채웠다 = 뿌듯하게 보냈다 = 난 성실맨이다 = 맨파워 난리 나는 듯� 이라는 이상한 프레임에 갇히게 됐다. 하루를 꽉 채우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더라도, 단 한 명의 사용자의 정확한 피드백(어떤 것을 원하는지, 어떤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지 등)을 수집하는 것이 서비스 성장에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네 번째, 위 항목과 비슷한데 대표나 C 레벨이 들어야 하는 ~ 등의 강의를 듣고 바로바로 실행(적용) 해버렸다. 실행력 그 자체는 높게 살만하나, 자사 서비스나 투자 단계 등에 대한 고려는 배제한 채로 그냥 실행했다. 그 결과, 새로운 방법은 4주도 못 채우고 멈추고 또 새로운 방법의 시도가 반복됐다.


C 레벨이 들어야 하는 강의가 아니라 신입사원이 들어야 하는 강의부터 하나씩 파고들어서 적용했으면 결말이 다르진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여전하다. 이 또한 나의 빈곤한 판단력 덕분이다(쓰다 보니 회고록보다 반성문에 가까운 느낌까지 드네요). 한 마디로 요약하면, 멋진 걸 하고 싶어 했다. 멋진 걸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멋진 것만 하고 싶어 한다는 게 문제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길어져서, 2개로 쪼개서 업로드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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