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동인천 답동에는 정원목욕탕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매주 일요일마다 할머니, 엄마, 나는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동네 목욕탕에 갔다.
목욕탕의 이름은 ‘정원목욕탕’ 무슨 의미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목욕탕 입구에서 대인 2명, 소인 1명 가격을 내면 빨간색 사물함 키를 3개 받는다.
신발을 들고 사물함 문을 열어서 가장 맨 밑에 신발을 넣고 입고 왔던 옷을 하나씩 벗어서 옷칸에 넣는다.
유치원생 때는 이 모든 과정을 엄마가 대신해 주었는데 초등학생이 되면서부터는 혼자 하기 시작했다.
꽤 능숙해졌을 때는 내가 계산까지 하고 거스름돈이 맞는지 확인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목욕탕 안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자리를 찾는다. 정원목욕탕은 열탕과 냉탕이 각각 1개씩 있었고 목욕탕 한가운데에 미지근한 물이 담긴 타원형의 목욕 수조가 있었다. 샤워기가 없었기 때문에 목욕탕 손님들은 목욕 수조에 빙 둘러앉아서 물을 바가지에 담아 몸에 끼얹어가며 씻었다. 우리 가족 세 명도 자리가 남은 곳에 쪼르르 앉아서 목욕 바구니를 한가운데 두고 작은 바가지 3개, 큰 바가지 2개를 가져와서 ‘우리 자리’라는 표시를 남겼다. 물을 바가지에 담아 몸에 끼얹고 사물함 키로 머리를 바짝 묶으면 공용탕에 들어갈 수 있는 준비가 끝난다.
나는 열탕에 들어가기 직전에 항상 ‘오늘의 컨셉’을 정했다.
래퍼 수퍼비의 <냉탕의 상어>를 처음 들었을 때 놀랐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었다니…!’
만약 그날의 나의 컨셉이 ‘강아지’라면 나는 털이 복슬복슬 난 강아지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열탕 속에서 개헤엄을 쳤다. 중간중간 강아지가 물을 마셔야 될 타이밍이라고 생각하면 열탕에서 나와 정수기로 뛰어가서 물을 손으로 받아 마셨다. 내가 가장 즐겨했던 컨셉은 시녀‘였는데, 이건 준비물이 필요했다. 집에서 미미인형을 갖고 와서 미미인형은 공주님, 나는 시녀가 되어 미미인형을 씻겨주었다. 열탕에서 깨끗하게 씻은 미미인형은 옆 나라 왕자님을 만나러 가기 위해 바가지 배를 타고 냉탕을 헤엄쳤다.
정원목욕탕은 나의 상상력을 모두 실현시킬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목욕탕 손님들 사이에서 조금 귀여움을 받는 존재였다.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목욕탕을 이용하는 어린아이가 재미있었는지 내가 목욕탕 탈의실 가운데 있는 마루 의자에 앉아 있으면 바나나우유와 깜찍이 소다를 사주시는 분이 몇 분 계셨다. 엄마는 내 손에 음료수가 들려있으면 사주신 분이 누구시냐, 감사하다고 인사는 드렸냐고 물어봤는데 눈치를 보며 대답을 못한 날에는 엄마에게 혼이 났다. 이 밖에도 어른을 보면 큰소리로 인사하기, 공공장소에서는 떠들지 않기와 같은 기본예절부터 혼자 오신 할머니 때 밀어 드리기, 샴푸 거품이 바닥에 떨어지면 물로 깨끗하게 처리하기까지 유치원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 공중목욕탕 예절을 배웠다.
정원목욕탕은 나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된 곳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가 큰마음을 먹고 생일파티를 열어주겠으니 친구들을 초대하라고 했다.
친구들에게 초대장을 주고 친구들을 기다리면서 그날도 어김없이 잠에서 깨자마자 정원목욕탕에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눈치 없이 아침 8시에 친구 한 명이 우리 집 앞으로 왔다. 당황한 엄마가 같이 목욕탕에 가자고 해서 그날 목욕탕에 4명이 가게 되었다. 친구랑 목욕탕에 간 것이 처음이었는데 그날도 미미인형을 한 개 더 가져가서 친구와 시녀 놀이를 했다. 둘이서 노니까 훨씬 재미있었다. 그런데 사실 그 친구는 생일파티에 초대하고 싶지 않은 친구였다. 초대장을 돌리기 전에 엄마에게 초대하고 싶지 않은 친구가 있다고 얘기하니, 엄마가 그 친구를 꼭 부르라고 해서 내키지 않는 초대장을 건넨 친구였다. 아침부터 생일파티가 끝날 때까지 그 친구와 함께 있었는데 그 시간이 굉장히 즐거웠다.
이래서 샤워를 같이 하면 비로소 진정한 친구가 된다고 하는 걸까? 그 친구와는 초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가장 친한 사이가 되었다.
정원목욕탕은 자연스럽게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 집이 이사를 가면서 정원목욕탕도 기억에서 잊혀 갔다.
그러다 23살, 벚꽃이 피었을 때 옛날 동네에 가보고 싶어서 엄마와 함께 버스를 타고 동인천에 갔다. 변한 것이 거의 없었다. 옛날 집을 구경하고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정원목욕탕으로 옮기게 되었다. 아직도 정원목욕탕이 있었다. 정말 반가웠다. 그날 정원목욕탕은 휴무일이었다. 엄마에게 그때 그 시절, 정원목욕탕에서의 추억을 재잘재잘 떠들었다. 엄마는 별 감흥이 없어 보이길래 말을 멈추었지만 엄마 몰래 마음속으로는 ‘맞아. 그때 그랬는데…’라며 혼자 정원목욕탕에서의 추억을 곱씹었다.
28살이 된 지금, 혼자 지하철을 타고 다시 옛날 동네에 갔다.
정원목욕탕 사진을 찍기 위해 목욕탕이 있던 곳으로 가보았다. 사진은 찍을 수 없었다. 정원목욕탕은 ‘롯데아파트’라는 오피스텔 건물로 바뀌어 있었다.
“아…”라는 작은 탄식이 자동으로 터져 나왔다.
헛걸음을 했다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탔다. 정원목욕탕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했다. 엄마에게도 우리의 추억이 담긴 동네 사진들을 전송하며 정원목욕탕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했다. 엄마의 기분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동네 주민들이 이른 아침에 모여 방앗간에서 가래떡을 뽑았다며 모두에게 가위로 잘라 나눠주던 당근마켓 같았던 그곳, 본인의 남편 또는 시어머니의 험담을 하며 소소한 위로를 얻고 가는 대나무숲 같았던 그곳, 왜 저번 주에는 안 나왔냐며 부산스럽게 근황을 묻던 작은 팬클럽 같았던 그곳이
나는 정말 그립다.
정말 많이 보고 싶다.
도 솔 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