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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이 Sep 01. 2023

만약이라는 말

5년 전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뜨거운 태양볕이 적당히 바래지고 옅어져 바깥활동을 하기에 제법 선선해진 늦여름, 가을의 초입쯤. 주일 오전 미사가 끝난 성당의 앞마당은 정오를 향해가는 태양 아래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낸 채 환했다. 성모마리아상 옆, 넝쿨식물에 감긴 철제울타리와 소담한 꽃밭을 등지고 오래된 나무 의자 하나가 놓였다. 가늘고 길게 다듬어진 원통형의 나무대가 일렬로 놓여 등받이가 되는 클래식한 디자인의 의자였다. 맞은편엔 사진촬영을 위한 카메라가 삼각대 위에 설치되어 작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 영정사진 촬영이 한 아마추어 사진동호회의 자원봉사로 시작될 예정이었다. 뒤늦게 이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을 발견한 엄마는 당신께 주어진 과제 하나를 서둘러 끝내고 싶다는 듯한 얼굴로 사진이 찍고 싶다고 하셨다. 영정사진이 일반적인 기념이나 보관용도가 아니란 걸 알기에 무겁게 가라앉는 마음을 어쩔 수 없었지만, 사진을 미리 찍어두는 편이 엄마의 마음을 가볍게 해 드리는 일일 것이었다.  

    

성당사무실에 들어가 촬영자 명단에 엄마의 이름을 올리고 나오면서 나는 부러 밝은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했다.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두면 장수한대.”

 “그래?”

엄마는 나의 말에 호응해 주려는 듯 밝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응, 그래서 장수사진이라고도 한다자나.”

엄마의 수척한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사라졌다.      


사진촬영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어르신들은 본당 안쪽의 의자에 앉아 대기하다가 봉사자들이 호명하면 앞마당에 나가 촬영을 하는 식이었다. 나무의자에 앉아 자세를 가다듬고 옷매무새를 다듬은 후 단 한 번의 찰칵. 엄마 앞으로 길게 늘어선 대기자 명단은 금세 줄어들어 기다리던 엄마의 차례가 돌아왔다.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는 엄마를 부축했지만 엄마는 당신을 붙드는 나의 손을 슬그머니 무르시고는 아픈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씩씩하게 앞마당을 향해 걸었다. 엄마의 뒷모습에서 긴장감이 묻어났다. 생경한 그 모습을 잠시 넋을 잃고 바라보다 황급히 엄마의 뒤를 쫓았다.    

 

나는 두어 발짝 떨어진 곳에서 사진을 찍는 엄마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속이 살짝 비치는 꽃무늬 시스루 블라우스와 밤갈색 기지바지가 투병으로 졸아든 엄마의 몸을 간신히 가려주고 있었다. 의사의 진단대로라면 엄마에게는 고작 6개월 내외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모든 게 거짓말 같았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영정사진을 찍는 엄마의 옆모습을 찍었다.

    

그 후 한 달 여쯤 흘렀을까. 사진을 찾으러 성당사무실을 방문하니 실망스러운 소식이 돌아왔다. 영정사진 촬영 당시 필름에 햇볕이 과하게 들어가 사진이 제대로 인화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자원봉사활동이고 아마추어 동호회라지만 무슨 일을 이렇게 허술하게 하는가 싶어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무어라고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엄마의 사진은 환한 빛 속에 백화白化 되어 사그라졌고 무료 영정 사진촬영은 ‘사진’이 사라진 허탈한 이벤트로 끝나버렸다. 그것이 복선이었을까. 그 일이 있은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엄마의 영정사진으로 사용할 적당한 사진을 찾아야만 했다.


핸드폰에서 추석에 찍었던 엄마의 사진을 골라내 얼굴만 확대해 출력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엄마의 얼굴은 확대대며 흐릿해졌고 그래서인지 아득하게 느껴졌다. 액자에 담긴 엄마의 눈은 웃고 있는 것 같기도 울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장례식 내내 몇 번이고 그 얼굴을 보고 또 보았다. 무어라 한마디 건네주면 좋으련만 말이 없는 엄마가 야속했다.


장례식을 치루고 집으로 돌아와 방문해준 지인들에게 문자를 돌리고 침대에 누웠다. 몸은 곤한데 잠이 오지 않았다. 맥없이 누워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넘기던 손이 한 사진 앞에서 멈추었다. 그날 성당 앞마당에서 찍었던 엄마의 옆모습 사진이었다. 기억이 하나하나 차례차례 살아났다.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표정과 목소리. 손의 촉감과 온기까지도.


만약, 그때 그날에 엄마의 영정사진이 제대로 인화되어 나왔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더라면 지금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을 텐데. 장수사진이라는 영정사진의 또 다른 명칭처럼 엄마는 기적처럼 조금 더 살 수 있었을지도, 내 곁에 더 머무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안다. 터무니 없는 생각이라는 걸. 그렇지만 엄마를 보내고 수없이 되뇌어 보았던 만약이라는 가정,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던 문장들. 나는 엄마의 사진을 보며 또 다시 만약, 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만든다. 사진 속 엄마의 모습을 검지와 중지 사이에 품고 쓰다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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