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 그렇게 되었다.
아진은 둘째 며느리다.
아진에게는 윗동서가 한 명 있다. 그녀의 이름은 달하.
결혼 전부터 달하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들어와 선입견은 있었지만 그래도 가족이 될 사람이니 잘 보이고 싶었고, 잘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아진의 욕심이었다. 달하는 원치 않았던 듯 싶다.
그리고 그 둘이 가족이 된 지 6년이 지난 지금, 아진과 달하는 서로 쌩까는 사이가 되었다.
시작은 아진의 상견례날이었다.
상견례를 마친 후 아진의 부모님이 물었다.
"아진아, 네 형님될 사람은 어디가 아프냐? 표정이 너무 안좋던데."
그럴만도 하다. 달하는 식사 내내 화난 얼굴에 가까운 무표정을 하고는 앉아있었으니 말이다.
"아, 아니야. 원래 그렇대."
그러면서 아진은 상견례 자리를 회상해본다.
아진은 달하와 그의 딸 쪽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달하와 눈 마주칠 기회를 엿봤으나 기어이 단 한 번의 눈맞춤도 하지 못하고 상견례를 마쳤다. 아진에게 달하의 첫인상은 그렇게 남았다. 화난 태도. 가히 듣던대로구나 싶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날의 달하에게는 명분이 있었다.
아진의 아버지가 실례가 될 언사로 달하를 불편하게 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들이 하나 있어야 할 건데."
딸만 둘 있는 달하 내외에게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한 것이다.
그 말에 아진의 아주버니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아들 없어도 괜찮다는 말과 함께.
아진은 아버지의 말이 충분히 달하의 맘을 상하게 했을 수 있다고 생각해 그녀의 태도를 이해했다.
분명 자신의 아버지가 실례를 한 것이라 생각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사과할 수는 없었다. 그 일은 그렇게 흘려보냈다.
그 해 겨울, 아진의 결혼식 날이었다.
예식은 1시였지만 양가 가족은 사진 촬영을 위해 11시까지 도착해있는 상황이었다.
어쩌다 한복을 차려입은 아진의 어머니와 정장차림을 한 달하가 한 엘리베이터에 타게 되었다. 그 때는 달하도 아진의 어머니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결혼식을 마친 후 아진의 어머니가 아진에게 말했다.
"아까 너네 윗동서랑 같은 엘리베이터 타고 같이 내렸는데 몰랐어, 그 때 그 사람인지. 근데 너네 동서도 인사 안하더라."
"당연하지, 엄마 얼굴을 어떻게 기억하겠어. 하객인 줄 알았겠지."
"딱 봐도 신부엄마 한복에 코사지까지 하고 있는데 몰랐을까? 결혼도 해 본 사람이?"
아진이 결혼한 예식장은 다섯시간 간격으로 하루에 두 번만 예식이 진행되는 곳이었다. 즉, 신부의 어머니가 여러명일 리는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는 엄마는 왜 인사 안했어, 엄마가 먼저 해도 되잖아."
"몰랐지. 하객이겠거니 했어."
아진의 윗동서는 한복이 아닌 정장차림을 했었기에 엄마가 신랑 측 가족이라고 생각지 못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진의 어머니가 덧붙인 한마디.
"너 잘해야겠다. 사람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아휴, 너 앞으로 피곤깨나 하겠어."
아진은 달하에게 서운하긴했다. 자신의 부모라는 걸 알고도 인사를 안한 게 맞다면 화가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고, 나름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안 한 것이 아니라 못 한 것일 것이다.
달하는 낯을 가리는 데다가 싹싹한 편도 못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아무생각 없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아진은 아진의 엄마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먼저 인사를 건넸어도 됐을텐데, 그러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객이어도 어차피 우리 하객일텐데 혼주가 먼저 인사 했어도 됐지 않나 싶었다. 아진은 달하를 이해하기위해 엄마를 꼰대로 치부했다.
결혼식 일주일 전, 아진 부부는 달하 부부의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갔었고 그때 분위기는 굉장히 좋았다.
그래서 아진은 달하가 알면서도 그랬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 일 또한 확인하지 못한 채 그렇게 지나갔다.
결혼 후 아진은 달하의 두 딸과 친해지고 싶어했고, 조카들을 만날 때마다 소소한 선물로 환심을 사려 애썼다. 조카들에게 사랑받고 싶었고, 이야기 나누기 편한 작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다.
달하에게는 싹싹하고 부지런한 아랫동서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명절 아침에 커피를 살 때면 꼭 달하의 것을 챙겼고, 만나고 헤어질 때면 꼭 장문의 메시지로 감사와 존경을 좋아하는 마음과 함께 전했다. 명절 준비기간에도 요령 피우는 것 없이 조금이라도 더 하려고 열심히 정말 열심히 움직였다. 그래야한다고 생각했다. 아진이 시집오기 6년전부터 큰며느리로서 최선을 다했을 달하를 위해 아진은 자신이 더 잘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3년을 보냈을까.
서서히 조금씩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낄 즈음이었다.
어느 해 겨울, 명절 아침이었다.
시댁에 다다르니 달하네가 먼저 도착해 주차를 하는 중이었다. 달하와 두 조카가 먼저 내려 아주버니를 기다리는 듯 했다. 아진도 얼른 내려 달하에게 언제나처럼 애교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형님~~안녕하세요오오오오^^"
"동서 왔어?^^"
를 기대했다. 늘 들어왔던 인사였다.
아니면 "응, 왔어?" 였어도 괜찮았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코트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고개만 까딱. 그게 전부였다.
겨울 새벽이라 손이 시려우니 손은 주머니 속에 있어도 됐다. 그런데 고개만 까딱이라니.
달하의 냉랭한 태도에 당황한 나머지 조카들에게 얼른 인사를 하고 먼저 올라와버렸다.
그날 아진은 자신의 상견례에서 봤던 달하를 다시 마주했고, 그날의 칼바람은 달하에 비하면 차가운 것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