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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규 Jun 01. 2023

당신의 민낯을 보여드립니다_응급의학과

[초보 의사의 대학병원 스케치]_응급의학과

'선생님, 어레스트 (심장마비) 환자 10분 후에 도착한답니다!'

'선생님, 아파트 18층 fall down (추락) 환자 온다고 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응급실을 한 단어로 감히 나타내본다면 'dynamic' 일 것이다. 설날 전통시장 못지않은 인산인해를 이루는가 하면, 어떤 날 새벽에는 너무 조용해서 입원 환자들의 코 고는 소리만 들리기도 하며, 새벽 한 밤 중 발생한 아버지의 코피로 온 가족이 총출동하기도 하고, 저녁으로 먹은 낚지 볶음에 소금 대신 과산화수소를 넣은게 기억나서 가족 전체가 검사를 받으러 오기도 한다.


    119에 스스로 신고 후 목을 매달아 온 40대 젊은 남자, 소대장 손잡고 온 폐렴 걸린 훈련병,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고 충격으로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고 응급실을 찾은 20대 초반 여자, 오토바이 사고로 인한 뇌출혈에서 회복하고도 계곡에서 놀다가 척수를 다쳐 하지 마비가 된 20대 남자, 순서를 기다리다 지친 나머지 분에 못 이겨 간호사를 폭행하고 경찰에 형사 입건된 보호자, 응급실에서는 정말 형형색색 우리 삶의 솔직한 얼굴이 드러난다.


응급의학과 의사 워드 구역 뷰

    가장 기억에 남는 새벽 2시 반에 심장이 멎은 채로 119에 실려온 41세 남자, 응급실 방문 이유는 hanging (스스로 목맴)이었다. 1시 50분에 119에 스스로 자살 신고를 하고 주소가 불분명하여 119 대원들이 30분간 헤맨 끝에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어 그대로 응급실로 이송되어온 환자였다. 심정지 환자에 대한 대처에 맞추어 심압박 기계가 심장을 눌러주는 동안 옆에서 숨 쉴수 있게 공기를 짜주는 역할을 맡았다.

    약 10분 후,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젊은 나이인 덕에 ROSC(심폐 자발 순환) 되었기에 심장은 살아 있으나 환자는 죽은 바와 다름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 사이 부모님, 누나를 포함한 가족들이 오열하며 소생실로 찾아왔고, 가족들의 행렬은 새벽 5시까지 이어졌다. 젊은 나이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환자와, 그 만큼 힘들었을 환자의 상태를 알았음에도 극단적인 선택 이후에 슬퍼하는 가족들의 모습 간의 괴리감에 혼란스러웠다.


왜 먼저 손내밀어 주지 못했을까?

왜 먼저 그의 편에 있어주지 못했을까?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119 대신 가족에게 먼저 연락하지 못했을까?   


    감히 추측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나 역시도 바쁘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무관심으로, 넉넉하지 못함으로, 사랑하지 못함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을까 반성하게되었다. 특히, 몸과 마음이 지친다는 이유로 소홀히 하게되는 가족과, 소중한 친구들, 더 나아가는 환자들에게 까지 볼멘소리를 하는 나를 돌아보며 조금은 더 넉넉하게, 그저 사랑만 하며 지낼 수 있기를 간절히 또 간절히 소망한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누군가에게 넉넉한 품이 되어줄 수 있기를

  아직 용어도 낯설고 병원 체계도 어색한 초짜 인턴의 첫 근무가 응급실이다 보니, 교수님 표현을 빌리자면 환자에게, 동료 의료진, 교수님들 모두에게 '아직 똥 오줌 못 가리는' 민폐 그 자체였다. 하지만, 물 한 모금 못 마시면서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보내는 매일의 12시간 근무 덕분에 응급실 체계 안에서 내 위치에서 수행해야 하는 기능, 술기, 처방, 환자 및 보호자 상대하기, 노티 등을 부족하나마 빠르게 익힐 수 있었다. 전화너머로 들려오는 의사 선배들의 간담이 서늘한 따끔한 충고 (?!)는 느슨해질 뻔한 나의 기능 향상에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다소 매운 맛인 응급실에서 근무를 시작할 수 있어서, 부족함에도 포기하지 않고 도와주려고 애써주시는 교수님들, 전공의 선생님들, 간호사 선생님들, 그리고 끈끈한 동지애를 바탕으로 함께 버텼던 인턴 동기들, 이해해주시는 환자분들이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

혈뇨로 고생하시는 환자분의 요도, 방광을 30분 넘게 씻어 드리고 받은 첫 감사 선물 :)

     나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벅찬 상황이 닥치면 그제서야 보이지 않았던, 하지만 항상 함께 있었던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툭 치면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을 때, 엄청난 상실감이 나를 엄습해올 때, 사랑하며 살지 못하는 내가 너무 한심할 때, 전혀 기대하지 못한 방법과 상황들로, 사랑과 위로, 평안의 바람을 느끼며 딱 하루만큼 견뎌낼 힘을 공급받는다. 결국, 상실도, 어려움도 받을 자격없는 내게 주어진 값진 선물임에 감사하다.❤️


오늘의 이야기 세줄 감사

1. 정신없는응급실 환경 속에서 환자의 마음을 생각해 볼수 있음에 감사

2. 성장 중인 인턴 과정을 귀중한 동료들과 함께 헤쳐갈 수 있어 감사

3. 환자에게 받은 감동적인 첫 선물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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