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노인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위하여

by 프리맨

장노인의 하루 일과는 골목에서 시작하여 골목으로 끝났다. 구순을 바라보는 장노인은 1킬로미터 밖으로 안 나가본 지 벌써 이태는 되었다. 굳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돌아 다닐 수는 있으나, 가고 싶은 의욕도 없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다. 아침은 대충 국에 밥을 말아먹든지, 아니면 정 먹을 것이 없으면 물에 말아 한두 번 먹으면 그만이다. 늘 혼자 밥을 먹다 보니 죽지 못해 살기 위해 먹는 정도다. 반찬이라야 무장아찌나 멸치볶음처럼 마른반찬이 전부다. 마른반찬은 오래 두고 먹을 수 있고, 시장에서 한번 사면 며칠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사 먹는 김치는 비싸기도 하거니와 조금만 매운 것을 먹으면 속이 안 좋아 먹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다.

반찬을 냉장고에 넣고 밥그릇과 국그릇을 닦으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공기를 맡아본다. 밖을 내다보며 하루 날씨를 상상해본다. 반지하 단칸방에 살기 때문에 땅의 기운을 더 느껴서인지 일기 예보를 보지 않아도 대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장노인에게 이 시간이 가장 설레는 시간이다. 날씨만큼 변화가 많고 얘깃거리가 많은 게 세상에 어디 있을까. 365일 날씨는 늘 새로워서 매일 똑같지 않다는 것을 항변한다. 맑은 날도 눈이 부실 정도로 화창한 날이 있고, 그냥 햇볕이 은은하게 좋은 날이 있고, 구름이 희롱하는 날이 있다. 또 핸드폰에서 알려주는 날씨 뉴스와 진짜 현실을 비교하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예보대로 날씨가 흘러가면 장노인은 집으로 들어오며 마치 자신이 맞춘 것처럼 으쓱해진다. 못 맞추는 날은 부하직원을 나무라듯 혼잣말로 마구 불만을 쏟아낸다. 늘 아침을 먹으면 집 앞 전봇대 옆에 낡은 의자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게 전부라 날씨만큼 중요한 게 없다. 비라도 오거나 춥고 더운 날은 나올 수도 없으니, 감옥에서 탈출시켜 주는 것은 좋은 날씨밖에 없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식탁에 놓인 약상자를 열었다. 혈압약부터 치매 예방약, 소화제 등 한 움큼 손에 담아 입에 털어 넣는다. 약의 가짓수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만큼 활동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약 덕택인지 모른다. 현관 신발장을 열고 오래 사용하여 손잡이가 번들거리는 등산용 지팡이를 꺼내 출근 준비를 한다. 옷이라고 해봐야 계절별로 두세 벌이라 계절이 바뀌지 않으면 매일 거의 똑같다. 겨울이 되면 해가 짧아 일어나서 한참을 서성이다 나가니 다른 계절보다 더 답답하다. 초겨울만 지나도 한참 앉아 있으면 오금이 저리고 춥다. 날씨는 더워도 새벽부터 환하고 따뜻한 여름이 좋다. 일어서는 데 저절로 아이고 소리가 나온다.


다행히 아직 허리는 굽지 않아 똑바로 걸을 수 있다. 집에 들어오기만 하면 켜 놓는 라디오 FM음악 방송을 껐다. 장노인은 적적한 공기를 음파로 감싸주는 음악이 있어서 늘 감사한 마음이다. 밥벌이 일이 없어지고 시간이 많아진 이후부터 쭉 클래식 음악만 들었으니, 족히 이십여 년은 되었다. 거의 모르는 음악이 없고, 진행자의 스타일이나 사연 등이 훤하게 보일 정도로 친숙해졌다. 클래식은 ‘나 좀 바라봐 줘’ 하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무심히 흘러나오는 게 좋다. 장노인은 클래식 중에서도 피아노가 나오는 음악을 좋아한다. 피아노의 맑은 음을 듣고 있으면 잡념이 가시고 천국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피아노가 건반을 두드려 소리를 내는 북과 같은 타악기라는데, 이론적으로 알겠으나 왜 타악기인지 동의할 수 없다. 피아노는 크기로 보나 다양한 음계로 보나 악기 중의 으뜸이고 귀족이다. 피아노곡 중에서 쇼팽을 가장 좋아한다. 쇼팽이 태어난 폴란드가 우리나라와 같이 외세의 침입을 많이 받아서인지 쇼팽의 곡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고 따뜻하다.

철로 된 묵직한 현관문을 열고 나와 장노인음 구석에 나란히 놓여있는 집게와 주둥이를 살짝 동여맨 쓰레기봉투를 집어 들었다. 쓰레기봉투 주둥이를 열자 매캐한 담배 냄새가 코를 찌른다. 몇 개 계단을 오르면 일 차선 도로가 바로 나온다. 길 양옆으로 노란 실선이 그려져 있고, 서쪽으로 완만한 경사가 진 도로이다. 한쪽에서 차가 오면 반대쪽 차는 뒤로 후진해야 할 정도로 좁은 도로인 데다 길가에 전신주가 드문드문 박혀있고 오 층높이 빌라가 쭈욱 늘어서 있다. 골목 입구에서 길을 바라다보면 자주 다닌 사람도 옹색함에 멈칫하게 한다. 장노인은 길을 따라 두리번거리며 담배꽁초가 보이면 잽싸게 주어 담았다. 60센티미터 정도 되는 집게는 담배꽁초를 줍기에 딱 안성맞춤이었다. 장노인이 사는 집이 속한 블록을 다 돌았지만, 담배꽁초는 겨우 열 개 정도밖에 줍지 못했다. 장노인이 하루일과를 담배꽁초 줍는 것으로 시작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운동 삼아 시작한 일인데 이제는 일과가 되어버렸다. 장노인이 아침마다 담배꽁초를 줍고, 담배를 피우는 젊은이들을 만날 때마다 버리지 말 것을 당부했더니 그 많던 담배꽁초가 이제 거의 볼 수가 없다. 좋은 일을 한다는 것도 나쁜 사람이 있을 때 성립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래서 세상은 좋은 사람만 있으면 안 되고 나쁜 사람도 있는 것인가. 그게 세상의 이치인가.

담배꽁초를 줍는데 겨우 일이십 분이면 족하다. 집게와 쓰레기봉투를 정리하고 길가 나무의자에 앉았다. 길이 좁아 차가 지나다닐 때면 위험하여 건물 앞 주차구역에 차가 비면 안전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골목 위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래인지 혼잣말인지 중얼거리는 초등학생이 내려온다. 팔과 다리는 춤을 추듯 제멋대로 움직이고 옆에 어머니는 한 발짝 뒤에서 인상을 쓰고 따라왔다.


“안뇽하-세-오”


어눌한 목소리로 초등학생이 장노인에게 인사하며 미소를 짓고 고개를 두어 번 젓는다. 엄마도 장노인을 보고 미소를 보내며 초등학생 손을 잡는다. 장노인이 하루 종일 골목에 있지만 인사를 하는 친구는 이 초등학생이 유일하다. 장노인은 반갑다는 듯이 지팡이를 좌우로 흔들며 한쪽 손을 경례하듯 들었다.

골목 아래쪽에서 트럭 엔진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장노인은 틀림없이 택배차임을 직감했다. 택배차는 장노인을 조금 지나 멈추더니 이십 대 건강한 처녀가 차 문을 뛰어내려 차뒤쪽 문을 열고 물건을 꺼내기 시작했다. 작은 박스 몇 개를 집어 들고 자기 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맞은편 건물 비밀번호를 누르더니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골목 위에서 자동차 엔진음이 들리더니 택배차를 보고 옆 골목으로 조심스럽게 돌아가는 것이 보였다. 유치원생이 엄마 손에 이끌려 두서너 명 지나갔다. 하루 중 가장 사람과 차가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시간이다. 장노인은 아이들을 보자 미국에 있는 증손녀가 생각이 났다. 만나지도 못하고 동영상으로 본 증손녀가 방금 지나간 아이 정도 되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장노인은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미국으로 이민 간 지 삼십 년이 넘었다. 혈육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었지만, 아들은 미국에서 유학을 한 탓인지 미국에서 살기를 원했다. 장노인은 그때만 해도 동네에서 건물도 있고, 삶이 풍족하여 아낌없이 건물을 증여하였다. 따로 4층짜리 빌라가 있어서 장노인은 맨 위층에 살고 나머지 원룸과 투룸 월세만으로 충분히 노후가 해결되었다.

그런데 이십여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쓰러지고 뇌출혈로 일부가 마비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아내는 십 년 넘게 반송장으로 병원 신세를 지며 야금야금 장노인이 노후로 생각했던 것들을 앗아갔다. 처음에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 지극정성으로 병간호를 하였으나, 시간이 갈수록 장노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대화도 되지 않는 아내에게 점점 정이 떨어졌다. 아내가 병원에 있는 십 년 동안 미국에 있는 아들은 가족들을 데려오지 않고 혼자 병문안을 왔다. 아들은 자식도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 아내 손을 잡고 팔을 주무르고 얼굴도 만져보았지만, 아내는 초점 없는 눈으로 아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들은 어떻게 기억했는지 장노인이 좋아하는 불고기집으로 데리고 갔다. 아들은 자리도 안내하고, 반찬도 집어주며 시답지 않은 대화를 이어갔으나, 장노인의 대답이 짧아지면서 대화가 뚝뚝 끊겼다. 장노인은 가족이 셋이 앉아 밥을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거렸다. 아내가 이 자리에서 같이 식사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자, 장노인은 마음 깊숙이 쓸쓸함이 밀물처럼 몰려들어 목이 메었다.


아내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드라마를 볼 때도 장노인이 옆에 있으면 연신 웃었다 한숨을 내 쉬었다 하며 말을 건넸다. 장노인은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데다 별 대꾸할 말이 없어 혼자 거실에서 다른 방송을 보기 일쑤였다. 장노인이 나가면 안방에서 말소리가 사라지고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아내가 건강할 때 드라마라도 보며 얘기나 실컷 나눌걸이란 생각이 스치자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장노인은 밥그릇을 채 반도 비우지 못하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아들은 장노인의 마음을 조금 알아차렸는지 실없이 오래전 장노인하고 포장마차에서 소주 마신 얘기를 꺼내며 장노인의 눈치를 살폈다. 장노인도 아들의 태도에 마음이 누그러져 오랜만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지나간 세월이 꿈을 꾼 듯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대신 아직 젊은 아들이 떡 버티고 있으니,

이것이 인생인가 보다.

그 아들은 또 자식을 낳아 이어지겠지.

다시 오겠다던 아들은 아내가 십여 년 전에 죽자 며느리와 함께 나타났다. 아들은 아내의 영정 사진 앞에서 슬프게 울었다. 아내는 병상에 있을 때 장노인에게 영정 사진을 자신이 고른 것으로 해달라고 했다. 아프기 전에 장노인과 함께 일본 삿포로로 여행을 갔을 때, 죽은 자작나무가 줄지어 심겨있고 물 색깔이 신비로운 어느 호수 앞에서 해맑게 웃으며 찍은 사진이었다. 어디서 알았는지 아내는 그 호수에 꼭 가보고 싶다고 졸라 큰마음먹고 떠난 여행이었다. 젊었을 때 아내와 함께 안 가본 대륙이 없을 정도로 여행을 다녔으나, 아내가 아프기 몇 년 전부터 여행을 다니는 게 힘들기도 하고 재미도 못 느껴 다니지 않았다. 그러던 중 아내는 뜬금없이 그 호수를 가자고 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아내는 몸에 병이 자라고 있는 것을 느껴서일까. 아내는 그 여행을 다녀온 후 그때 찍은 사진을 침대 옆 탁자에 놓고 자주 들여다보았다. 그때마다 아내는 장노인에게 그때 여행 얘기를 꺼냈다. 장노인은 노망 난 사람처럼 반복하는 얘기에 짜증을 내기도 하였다. 삼일 내내 상가를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들은 장례가 끝나고 삼우제를 보고 미국으로 돌아갔고, 다시 오지 않았다. 아들은 장가가면 남이라고 하지만, 멀리 미국에 사니 더욱더 정을 나누기가 힘들었다. 동영상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얼굴 보고 연락을 할 수 있으나, 왠지 장노인은 기미가 잔뜩 낀 얼굴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싫었다. 할 말도 딱히 없어 언제부터인가 해가 바뀌거나 명절이 되거나 생일 때 정례적으로 의례적 통화가 전부였다. 보고 싶음도 기다림도 건강하고 활발하게 지낼 때 액세서리인가. 마음도 몸도 쪼그라들 때는 감정도 메마르나 보다.

어느 때보다 매서운 겨울이 가고,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봄이 왔지만, 장노인은 더 이상 골목길에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 중에 장노인이 사라진 걸 기억하는 이는 없었다. 장노인은 추운 겨울이나 폭염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언제든 사라진다는 게 어색하지 않고 큰 관심도 없다. 그나마 장애인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의자를 보며 잠깐 걸음을 멈추었다가 지나갔다. 여전히 전봇대 위에 까치집에서 새끼 까치는 어미를 기다리며 울었고, 택배를 나르는 아가씨의 카트 끄는 소리가 소란스럽게 울렸고, 예약 손님을 태우러 가는 택시의 엔진소리가 골목이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 장노인의 부존재를 아무도 기억하지 않겠지만, 세월이 흐른 후 언젠가는 또 다른 장노인이 이 골목을 지키겠지. 그리고 또 다른 장노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