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의 기록
~ 남의 밥에 콩이 굵어 보인다더니 어쩐 일인지 나는 이 반을 맡게 되는 첫 날부터 우리 반이 3학년 중에서도 제일 구질구질해 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안 계신 애가 여덟 명. 58명의 재적 중에선 퍽 큰 비중이다.
책을 못 읽는 애들을 조사해 나가다가 아예 입조차 못 떼는 두 명의 어린이에게 내 신경을 모은다.
김 순자, 이 순복. 하나같이 어쩜 옷차림도 기고만장이지만 왜 얼굴까지 그리도 지지리로 보일까? 아마 그 애들의 지치고 괴로운 표정일 때문일 게다.
“김 순자, 너는 왜 여태 책을 못 읽니? 일 학년에서부터 뭘 했길래 여태 글자라곤 한 자도 모른단 말이야. 응? 엄마한테라도 단 한 글자라도 배워. 물론 선생님도 가르치지만 집에서 엄마한테도 좀 가르쳐 달래 봐.”
나는 나의 그런 말이 효과가 없는 줄 잘 알면서 답답한 마음에 또 그런 말을 했다.
“순자야, 엄마 한 번 학교에 오시라고 해. 선생님과 좀 만나야겠어.”
내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뒷자리에 앉은 애가
“순자 엄마, 미쳤어요.”
발음조차 또렷이 하는 말이다.
이 뜻밖의 상황에 순간 나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자기를 야단을 치고 있는데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눈싸움이라도 하듯이 눈꺼플 하나 움직이지 않고 있던 순자의 눈. 그러나 강하고 쌀쌀하지는 않다. 겁먹은 눈도 아니고 매사가 시들하다는 것 같은 흐리멍텅한 그 눈.
그런데 자기 엄마가 미쳤다는 그 소리에 반사적으로 그 눈은 밑으로 깔려졌다. 그렁그렁 채워진 눈물이 책상 위에 뚝뚝 소리 내어 떨어졌다. 너무나 순간의 일들이었다.
“순자야, 이리 나와 봐.”
나는 작은 소리로 그 애의 코끝에 바싹 얼굴을 디밀고
“누구누구 사니?”
하고 물었다.
“아버지, 엄마, 할머니...”
“아버지가 뭐 하시니?”
“..................”
“아버지가 뭐 해서 돈 버니?”
“아버지 아파요.”
“어디가 아프시냐?”
“눈.”
눈? 왜. 눈이 안 보이시니?“
그 애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부터 안 보이셨어?”
“아니유.”
“그럼? 다치셨니?”
“일 하다가 다쳐서 다리도 한 쪽 부러지고 눈도 잘 안 보여유.”
“저런, 그럼 엄마는?”
“엄마는 방에 가둬놨어요. 나오면 이상한 말을 막 하고 돌아다녀서 동네 사람 창피하다고 방에서 잠만 자게 해유.”
아차 싶었다. 엄마가 미쳤다는 소릴 듣고도 엄마는 무얼 하느냐고 절박하게 물었던 나.
“그럼? 그럼 밥은 누가 하고?”
“할머니가.”
“할머니는 몇 살이신데?”
“칠십 몇 살이래유.”
“순자야, 순자야....”
나는 더 할 말이 없다. 정말 할 말이 없다. 이 애를 ....이 불쌍한 애를....어쩌라고 책을 못 읽는다고 나무랄까? 이만큼 커 준 것만도 대견한 이 애를.
내 서류 상자에 남아 있던 공책 네 권과 책받침, 그리고 스케치북과 크레파스, 연필 두 자루를 다른 아이들 몰래 순자에게 주었다. 그까짓 게 무슨 보탬이 될까만, 그래도 담임인 내가 관심 가져 준다는 걸 표현하고 싶다.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난 후에도 괜히 가슴이 저릿함은 아까의 그 때문이다. 빨리 잊고 싶기까지 하다.
왜 이렇게 가난하고 불쌍한 아이들이 내 반에 있어 이렇게 마음을 우울하게 할까?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무능하고 적극적이지도 못 한 나. 차라리 값싼 감정으로 동정심에서 이렇게 마음을 쥐어뜯기만 할 바엔 그냥 모르고 지내는 편이 더 나았을까?
순자에게 만은 따뜻이 해 줘야지. 그저 따뜻이 라도 해 줘야지.
하루 종일 나는 허둥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