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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는 만큼만 일한다는 궤변

by 예일맨

"돈 받는 만큼만 일한다"


과거 일했던 부서의 옆자리에 앉았던 동료가 밥 먹듯 했던 이야기이다. 어찌 생각해 보면, 아주 합리적이고 쿨해 보이는 MZ의 말인 것 같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궤변이 없다.


저 말을 하는 사람의 속내를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분명 지금 자신이 얻는 경제적 소득에 비해 일을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면, 이제 따져봐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일하는 양"과 "소득의 기준"일 것이다. 일을 많이 한다 혹은 적게 한다의 기준은 뭘까? 당연히 그런 것은 없다.


일단은 일의 양은 단지 시간으로만 계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집중해서 8시간이면 충분히 마칠 수 있는 일을 11시간 동안 한다면? 그게 일을 더 많이 한 것인가?


그렇다면 생산한 결과물의 개수나 양으로 일의 양을 판단할 수 있을까? 그것도 어렵다. 100페이지짜리 1건과 1페이지짜리 100건은 건수로만 보면 말도 안 되는 차이가 생기고, 똑같이 100페이지라도 분명 들인 노력의 양은 결코 같지 않을 것이다.


물론 평행한 비교를 하기 어렵겠으나, 백 개 만들어 본 사람과 이제 처음 만들어 보는 사람에게 동일한 과업을 하도록 했다고 하자. 과연 일한 양이 동일할까? 답은 당연히 "아니요"이다.


이 문제는 "성과의 질"과도 연결된다.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같은 일을 같은 시간 동안 하도록 맡긴다면 누구에게 비용을 더 많이 지급할까? 답은 모두가 알고 있다.


소득의 기준도 역시 애매하다. 물론, 이것은 뛰어난 성과를 낸 직원에게 그만큼의 인센티브를 주는 시스템 하에서는 그렇지 않을지 모르나, 정해진 급여를 받는 직장이라면? 일의 양만큼의 소득은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 걸까?


결과적으로 그 말이 좋은 뜻을 가지려면 성과에 따라 급여의 차등을 주는 곳이어야 하고 정해진 급여를 주는 곳에선 아주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밖에는 없다.


본인은 급여에 비해 일을 많이 한다고 믿는다면, 그래서 일을 지금보다 적게 하려 노력한다면, 그곳은 그런 사람들로 넘쳐나 결국 하향평준화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보통 허덕일 정도로, 건강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일을 많이 하는 곳이라면, 그것을 알고도 그곳에 남아있으려 하는 것은 몇 가지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곳이 자기 발전(승진 등의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되는 곳이거나 그곳에 있지 않으면 일할 곳이 없기 때문이거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은 그곳을 최대한 빠르게 떠나는 선택을 내리면 된다. 받는 만큼만 일한다는 이상한 소리를 해서 동료의 사기마저 꺾는 것이 아니라…


또한, 받는 만큼 일하려 하는 사람은 그것이 자신을 위하고 아끼는 일이라 생각할지 모르나 결국 그것은 자신의 발전을 가로막는 삶의 태도가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돈도 많이 안 주는데, 쓸데없이 고퀄리티의 결과를 내기 위해 일하는 사람은 그것이 사장이나 회사 좋은 일만 한다고 여겨질지 모르나 결국 자기 인생의 성장을 도울 것이다.


어쩌다 이런 글을 이렇게 썼는진 모르겠지만, 받는 만큼만 일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혹시 한 번 되돌아보았으면 좋겠다. 내가 하는 것에 비해 그 정도라도 받는 것을 감사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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