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뷰이노 Feb 21. 2024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월 천 못 버는데, 월 천 쓸 수 있을까? 2

어릴 때 나는 우리 집이 잘 사는 줄 알았다. 찐부자인 친구들과 함께 추첨제 사립 초등학교에 다니며 비록 우리 집에는 별장도 없고 휴대폰도 중학교 입학해서야 샀지만, 우리 부모님이 돈에 있어서 엄격하고 검소하실 뿐이지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생각은 안 했다. 그러다 중학교 때쯤인가, 우리 집에 빚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빚이란 게 전세 살다가 주택 구입을 위해 받은 대출이었으니 이제와 생각하면 귀여운 오해일 뿐이지만, 당시에 내가 받은 충격은 심각했다. 우리 집에 그런 큰 빚이 있다니.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으면 금방 다 써버리고 다시 부모님께 손을 벌려서, 용돈 대신 돈이 필요할 때마다 부모님에게 말씀드려서 받아 썼는데 그럴 때마다 괜스레 죄송한 마음이 들곤 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 좋은 기회로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후 적극적으로 돈을 벌었다. 적은 돈이어도 내가 번 내 돈을 내 마음대로 쓰는 게 정말 행복했다. 어느새 부모님도 대출을 다 갚고, 사교육비 부담이 덜어지니 전보다는 여유가 있으신 것 같았다. 그동안 내가 받았던 세뱃돈도 차곡차곡 통장에 다 모아서 주셨다. 그 후로도 나는 열심히 돈을 모으기도 하고, 또 엄청 써버리기도 하고 엎치락뒤치락하며 나만의 자산을 꾸려나가고 있다.



돈이 너무 없으면 불행하다.


가난 때문에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좋은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있다. 그곳에서는 건강, 사업, 가족사 등 인생의 중요한 부분에서 큰 불행을 당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공감 능력이 꽤 뛰어난 나는 그들을 보며 눈물 흘리고 또 그들이 행복해지기를 진정으로 기도했다. 한편으로는 불의의 사고로 불행해진 사람들을 보며 내 인생에 대한 대비를 더욱더 철저하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좋지 않은 상황에 놓였을 때 누군가가 선의로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희망도 갖고 싶었다.


그래서 가끔 여건이 되면 기부도 한다. 가난으로 고통받는 부모님들의 심정도 오죽하겠냐만은, 너무 어린 나이에 몰라도 될 것들을 알아버린 아이들을 보면 차마 외면할 수가 없다. 학생의 신분으로 당장 경제적으로 도움 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 때의 무력감을 나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이 많다고 무조건 행복한 것도 아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알게 되어 지금까지도 종종 구경하는 블로그 두 곳이 있다. 편의상 각 블로거를 A와 B로 칭하겠다.

A는 쇼퍼홀릭이자 골드미스다. 옷, 화장품, 그릇, 가방, 식재료 등 다양한 분야의 고급 제품을 구입하고 그 후기를 공유해 주는 사람이어서 블로그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고급 레스토랑과 클래식 공연에도 일가견이 있는 분이다. 요즘에야 찐 다이아몬드수저가 유튜브도 하는 세상이니 신기할 것도 없겠지만, 그 당시 버킨백 실물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분은 그분이 유일무이했을 것이다. 그분이 먹는 것부터 입는 것, 쓰는 것, 사는 것 모두가 흥미로운 콘텐츠였다.


B는 적금 만기 후 수령한 수표 실물 사진으로 처음 알게 된 블로거다. 저축만으로 모은 1천만 원짜리 수표, 1백만 원짜리 수표 여러 장이 정말 멋있었다. 생산직으로 일을 하시는데 월급이 정말 세서 최근에는 혼자 1년에 1억 원을 모으시는 분이다. 돈은 정말 안 쓰신다. 한 달 지출이라 봐야 5만 원에서 15만 원 사이. 아마도 회사에서 주는 복지 포인트, 상품권, 의료비 환급 혜택 등을 활용하시는 것 같고, 월세와 적금, 예금 이자로 월급 + α 를 저축하신다. 원래 목표는 10년 근속 후 퇴사로, 원조 파이어족이라고 할 수 있다.



1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며 두 분은 어떻게 변해갔을까? 먼저 A는 1인 가구를 주제로 한 책을 쓰셨다. 본업인 영화, 드라마 작품 활동도 활발하다. 소비는 예전보다 덜 하시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신 것은 확실하다.


B는 자살 시도 위험 때문에 몇 달간 휴직을 하셨다. 분명 처음 봤을 때 그분은 작은 것에 기쁨을 느끼는 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블로그에 적나라한 욕과 아슬아슬한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온갖 강박과 혐오와 분노와 우울과 불안. 그리고 이제 그분은 1년에 1억을 모으지 못하면 불행한 사람이 되었다. 10년만 일하고 자유롭게 살겠다던 다짐은 사라져 버리고, 이제는 쓰러질 때까지 멈출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아는 두 분의 공통점은 독신 여성이라는 것밖에 없다. 너무나 양극단에 있는 분들이라 우리는 A가 되기도 힘들고 B가 되기도 힘들다. A와 B 둘 중에 누가 더 자산이 많은지도 알 수 없다. 그저 A에게는 감가 상각되는 물건이 많을 것이고, B에게는 부동산 및 현금 자산이 많다는 것만이 확실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B가 A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A가 지금껏 쌓아온 행복의 크기와 B의 자산 크기를 내가 감히 비교할 수 있을까?



여기 C도 있다. 20년 동안 10억 원을 모은 절대퇴사맨보다 더한 절약 정신으로 반찬 없는 맨밥을 먹기도 하고, 5만 원짜리 중국 요리조차 자기 돈으로 사 먹는 법이 없었던 사람이다.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저축하고, 주식 투자로도 1억 원 이상을 벌었던 사람. 비행기는 안 타보았지만, 그래도 회사 경비로 좋은 곳 가고 좋은 것 먹은 적이 많다고 한다.


그런 C는 주식과 코인을 도박처럼 하다가 투자 실패로 거의 7억 원에 가까운 돈을 잃었다. 결국 치열하게 돈을 모았던 그 소중한 순간들까지 다 빛이 바랬다. 두 손에 움켜쥐었던 파이어족의 꿈마저 멀어졌다.



삶에 있어 돈은 행복을 위해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특히 나이 들어 돈 없는 것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

하지만 돈을 잘 모으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지겹고, 지치고, 때로는 불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매달 50만 원만 써보려고 발버둥 치는 나는 요즈음 대부분 행복하지만 가끔 괴롭다.

그럴 때마다 A도 B도 C도 아닌 나에게 묻는다.

"돈 많이 쓸 때는 지금보다 행복했니?"

확신에 차 대답한다.

"아니!"



우리 모두에게 돈을 잘 버는 것, 돈을 잘 지키는 것, 또 돈을 잘 쓰는 것 어느 하나 뺄 것 없이 중요하다.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도, 돈으로 살 수 없는 행복도 많~~~이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오늘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월 10만 원 쉽게 버는 법.zip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