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십여 년 전, 오성식의 굿모닝 팝스를 들으며 출근하던 어느 아침이었다. 그날의 팝은 Jay Z의 <Empire State of Mind>였다. 후렴에서 Alicia Keys가 “뉴우요옥~” 하고 매력적인 목소리를 뽐낼 때마다 음악의 비트와 지하철의 흔들림에 맞춰 덩달아 쿠궁거리던 마음을 기억한다. 오성식 아저씨가 풀이해 준 노랫말처럼 콘크리트 정글 뉴욕에 가면 꿈이 이루어지고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늘 궁금했다. <섹스 앤 더시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속 열정적이고 치열한 여성들을 보며 막연히 뉴요커를 꿈꾸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매력적이고 트렌디한 도시에서 살 수 있다면?’ 하지만 20대의 환상은 30대가 되면서 점차 사그라들었고, 꿈에 그리던 그곳, 뉴욕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설렘보다는 안전에 대한 우려가 더 앞섰다.
걱정을 안고 도착한 뉴욕의 중심 맨해튼. 무더운 7월의 열기 속에서 오랜만에 사람들로 밀도 높게 채워진 거리를 걸었다. 모든 것이 빠르고 혼잡하게 지나갔다.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자동차들과 그런 차들을 향해 분풀이하듯 울려대는 클락션 소음, 가까워지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사이렌 소리까지. 잇따른 시청각적 자극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경계 모드로 긴장했기 때문이었을까. 잠시 어지러움을 느낀 나는 심신의 안정을 좇아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홀린 듯 들어간 곳, 바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다.
지나간 여행 기억을 떠올리게 된 건, 얼마 전《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읽고 나서였다. 여행 전에 이 책을 미리 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울 만큼, 작가는 당시의 내가 미처 누리지 못하고 지나쳤던 예술 작품들에 대해 깊이 있는 지식과 감상을 전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술사적 정보 전달에 집중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픔에 압도된 한 남자가 예술 작품을 감상하며 아픔을 치유하고 내면의 삶을 성숙시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2008년 6월, 형이 세상을 떠나고 나자 나는 내가 아는 공간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일자리에 지원했다.
-패트릭 브링리, 2023,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eBook〕, 1장.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
패트릭 브링리는 대학 졸업 후 《뉴요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데스크에 앉아 매주 잡지를 마감하고, 잡지사의 행사를 주관하며 여러 유명 인사들을 만났다. 승승장구를 꿈꾸던 그에게 형인 톰의 죽음은 삶의 반환점이 된다. 고층 빌딩에서 소위 ‘대단한 사람들’과 화려하게 직장 생활을 했지만 정작 자신에게 의미가 되어준 공간은 형이 입원해 있던 조용한 병실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형의 죽음 후 그는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저 가만히 서 있고” 싶었던 그는 자신이 아는 가장 아름다운 장소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된다.
책을 통해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은 메트 미술관의 경비원들이 매일 다른 구역으로 배치된다는 것이다. 덕분에 패트릭은 시대별, 나라별 전시관을 주기적으로 순찰하며 낯선 시공간에 닿는 여행자의 기분으로 고요히 작품 속에 빠져든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자신만의 방식을 갖추고 내면을 풍성하게 채워나간다.
어느 예술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자신의 눈에게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건 좋다’, ‘이건 나쁘다’ 또는 ‘이건 가, 나, 다를 의미하는 바로크 시대 그림이다’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상적으로 처음 1분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해선 안 된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위의 책, 5장. 입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드문 순간
나 역시 예술이 내 안에서 힘을 발휘하던 첫 순간을 잊지 못한다. 이십 대 초반, 프랑스 파리 여행을 하던 때였다. 갑작스러운 비 때문에 계획에도 없던 로댕 미술관에 들어갔다. 비를 피할 요량으로 입장권을 끊었지만 가장 먼저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아름다운 정원과 그곳에 우두커니 놓인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이었다. ‘아니 이런 유명한 조각품을 이렇게 밖에 둔다고?’ 흩날리는 빗방울 속에서 내 쪽을 굽어보는 조각상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이삼 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져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내가 만난 것은 모진 비바람 속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동시에, 이름을 찾을 수 없는 아름답고 강인한 무언가가 내 안에서 일렁였다. ‘이런 것이 예술이 주는 힘일까’ 그 후로, 힘들고 고민스러운 일이 있을 때면 그날의 장면을 떠올린다. 먹구름 속에서 아랑곳 않고 마치 숙명처럼, 혹은 운명을 거부하듯 근엄하게 생각에 잠겨 있던 로댕의 조각상을. 이것은 내가 미술에 박학다식하지 않음에도 미술관을 자주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패트릭이 메트의 경비원으로 일하는 10년 동안 그의 삶에 예술 작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매일 만나는 수만 명의 방문객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빼놓을 수 없다. 먼 거리에서 작품에 빠져있다가도, “이거 진짜예요?” 진품인지 궁금해하는 관람객이나 휴대전화 벨소리를 꺼놓지 않은 규칙 위반자들, 작품 앞에 너무 가까이 다가서는 사람들을 보면 얼른 본분으로 돌아와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책의 페이지를 넘길수록 주위 사람들을 향한 패트릭의 시선이 다정하게 바뀌어가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닫혀 있던 그의 마음이 세상을 향해 조금씩 열리는 것만 같아서 다음과 같은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된다.
한 노인이 감상에 지쳐서 보행기에 몸을 엎드리면 그의 아내는 고개를 숙여 그의 귀에 속삭인다. 몇 분 동안 그녀는 그가 체력이 모자라 놓치게 될 중세의 유물들을 자세히 묘사해 준다. 설명이 끝나면 그녀는 그를 일으켜 세우고 그들은 다시 조금씩 나아간다. 아메리카 전시관의 분수대 앞에서 한 어머니가 아이에게 동전 두 닢을 건네며 말한다.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 이런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나는 듣자마자 언젠가 내 아이들에게 똑같이 말해주리라 결심한다.
-위의 책, 6장. 예술가들도 메트에서는 길을 잃을 것이다
슬픔 속에 가두어두었던 시선을 서서히 주위로 돌리고 방문객, 동료들과 작은 소통들을 나누면서 패트릭의 일상에도 다시 리듬이 깃든다. 스스로 영원히 외롭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은 패트릭은 “애도의 끝을 애도해야 할 날”이 왔음을 인정하며 메트를 그만두고, 맨해튼 도보 여행 가이드로서의 새 인생을 시작한다. 열두 시간 동안 가만히 서 있어야 하는 경비원에서 계속 움직이며 이야기하는 가이드로의 변신이라니. 그 놀랍고도 기쁜 반전에 나는 속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이어질 패트릭의 삶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어떤 일이든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감으로.
패트릭에게 미술 작품이 위로가 되었듯, 나만의 고요한 도피처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큰 고민 없이 ‘책’이라는 한 글자가 머릿속에 선명히 새겨진다. 무엇에도 자신 없고 그저 남들이 부럽기만 할 때,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방향을 잃었을 때, 책을 펼치면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나마 길이 보였다. 그 길을 따라 책 속 깊이 파고들수록 신기하게도 책 밖으로 홀연히 나와 일상을 알차게 꾸릴 힘이 생겼다. 나 역시 패트릭처럼 사유하고 주변을 관찰하며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법을 터득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고 표지를 다시 보니, ‘가장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강렬히 다가온다. 당신의 경이로운 세계는 무엇인지.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다시 뉴욕 여행기로 돌아오자면, 그날 나는 고흐의 초상화 앞에 잠시 머물렀다가 밀레의 작품을 모작한 <첫 걸음마> 앞에 오래 머무르며 소진된 에너지를 채웠다. 지금까지도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넓디넓은 메트의 구석구석을 전부 둘러보겠다고 욕심내지 않았던 것. 언젠가 다시 뉴욕에 갈 일이 생긴다면 패트릭 브링리의 책을 손에 쥐고 메트를 방문할 것이다. 그는 더 이상 메트에 없지만 그의 이야기는 메트의 작품들과 함께 여전히 남아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