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론에서 가장 큰 화두 중에 하나가 악의 존재의 이유이다. 많은 신학자들이 여러 이론과 해석을 통해 설명을 하였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인간의 지혜로는 명확한 답을 내리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나도 크리스찬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런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였다. 우연히 최근 한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의 인터뷰를 보고서 한가지 깨달은 점을 이야기해 보겠다.
이 농부는 5년 넘게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자연농법 이라 함은 땅을 갈지 않으며 전혀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농법을 말한다. (1) 이 농부는 처음 몇 년 간은 미생물 농법도 해보고 여러 친환경적인 농법을 많이 해보았다고 한다. 그렇게 몇 년 동안의 연구 끝에 지금의 자연농법을 고집하게 되었다. 자연농법을 시작한지 몇 년간은 잡초와의 전쟁이었다. 하지만 잡초가 작물 주위에 자라도 잡초를 뽑지 않고 베었다고 한다. 뽑으면 더욱 많은 씨가 뿌려져서 잡초가 왕성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초기에 베어주고 작물이 자라게 되면 어느 정도의 선이 지나면 더이상 잡초가 작물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된다고 한다.
이런 식의 농법을 완성해서 땅에 적용해서 성과를 내기까지 몇 년간의 연구와 실행이 필요했다. 이런 농법을 하면서 깨달은 점은 잡초는 뿌리가 깊게 내려가기 때문에 땅 안에 있는 필요한 영양분과 무기질을 더욱 효율적으로 땅 밖으로 끄집어내서 쓴다는 것이다. 이런 잡초가 베어져서 땅에서 발효가 되면 작물에 좋은 영양분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경험적으로 잡초와 작물이 균형을 맞추면서 자란다면 오히려 병충해에 강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악인을 변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왜 악이 세상에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탐구를 해보려고 한다. 욥기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삼상 16:13,14)
나는 이 구절을 믿기 시작할 때 보고서 궁금증이 일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악도 만든 것일까? 하나님은 빛이시고 사랑이시라고 했는데 왜 악이 생겼을까?
설명하자면 너무나 긴 이야기가 되겠지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악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는 천사들이 타락해서 악이 생겼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그들의 교만과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죄가 생겼고 그에 따른 악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에게 원죄를 가지고 왔다.
즉 악은 선한 것이 왜곡되어 생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분론적인 신앙(선과 악이 대립한다는 믿음)은 성립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성(Sex)은 터부시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서 내린 좋은 것이다. 하지만 성을 목적으로만 여기기 시작한다면 성충동장애라는 질병으로 변할 수 있다. 돈 역시 아름답게 쓰일 수 있는 도구이다. 하지만 돈을 목적 즉 하나님 자리에 우상으로 삼는 즉시 문제가 생기게 된다. 관계가, 영이 전부 타락하게 된다.
C.S 루이스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고 우리는 그분에 대항해서 반란을 자행한 상태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또는 천사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을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을 꼭두각시가 아니라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자유의지를 주는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이 더욱 가치있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악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겠다.
성경을 가만히 보면 하나님은 이런 악조차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쓰신다. 하나님은 사울을 통해 다윗이 왕으로서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 훈련시키셨다. 욥은 직접적으로 악에게 재앙을 겪었고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과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었다. 예수님조차 악에게 시험을 당하셨다. 이처럼 악을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은 아니지만 그것조차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통치하신다.
이처럼, 악인의 존재조차 세상의 균형을 유지하고 하나님의 섭리 섭리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쓰인다. 잡초가 처음에는 농작물을 방해하고, 악인 또한 사회적 질서와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은 우리 사회가 오히려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자극을 줄 수 있다. 우리는 악인으로부터 배우고 성장하며, 이러한 도전을 통해 더 기독교적인 사회로 발전할 수 있다.
많은 교인들이 좋아하는 다니엘은 자세히 공부를 해보면 엄청난 고난을 겪은 인물이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은 아마도 유대인 중에서 높은 직위의 자제들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정재계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부모였을 것이고 촉망받은 청년들이었다. 그런데 나라가 한순간에 망하고 자신들은 노예로 잡혀간 것이다. 그리고 한 주석에 의하면 다니엘과 그 청년들은 내시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 증거로 환관장이 언급되며 다른 어디에도 다니엘과 친구들의 가족들이 나오지 않는다. 다니엘은 자신의 나라가 망하는 고통과 함께 아마도 그의 가족이 살해당했을 수 있다. 또한 자신은 강제로 성적인 능력을 잃었다. 이런 악의 상황에서 그는 많은 교육을 받는 아이들 중에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따라 성장해서 총리에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 당시 왕의 이름은 잊혀질 지 언정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의 이름은 존경받고 있다. 이처럼 다니엘은 바빌론의 왕의 통치하에 세상을 다스렸고 요셉 역시 악한 왕의 아래에서 통치를 하였다.
또한 악인은 자신들의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잡초가 땅에 뿌리를 깊이 내리면서 양분을 흡수하고, 다른 작물들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는 것처럼, 악인 역시 우리 사회의 취약한 부분을 드러내고 개선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사회적 문제와 갈등을 다루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나은 솔루션을 찾고 성장할 수 있다.
악인의 존재는 우리의 강함을 시험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잡초가 병충해에 강한 땅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악인은 우리의 도덕적 가치와 행동을 검토하고 개선하도록 도울 수 있다. 악인을 통해 우리는 어떤 가치가 중요하며 어떻게 미래를 더 나아지게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잡초는 생태계의 일부로서 필요한 역할을 한다. 비록 농부에게는 골칫거리일 수 있지만, 자연의 균형을 유지하고 생태계를 다양하게 유지하는데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악인도 우리 사회의 한 부분이며, 그들의 존재는 우리 사회를 더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 수 있다(그렇다고 내가 악인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악인을 잡초에 비유함으로써 우리는 그들의 존재에는 의미가 있다는 점을 감안할 수 있다. 악인은 도전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며, 우리가 더 나은 사회를 구축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완전히 배척하는 대신, 그들의 쓰임새를 고민하고 어떻게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한다.
참고자료
(1)한국민속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