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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Dec 22. 2022

회사가 망했다.

망해라 망해라 했다고 진짜 망하면 어떡해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월급날. 통장에 돈이 안 들어온다.


회사에 사정이 생겨 월급이 며칠 늦는다고 한다. 대표는 장문의 메일로 회사 사정을 설명했다. 순간 사무실은 숨이 막히게 조용해졌다가 갑자기 키보드 소리가 엄청 빠르고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중에는 내가 내는 소리도 포함이다. 메일을 확인하자마자 친한 동료에게 바로 메신저를 보냈다. '이게 무슨 일 이래?', '쪽팔려서 어디 가서 말도 못 해.'


처음엔 그저 월급이 살짝 밀리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놈의 회사는 왜 맨날 분위기가 이상한 거야? 팀장님들끼리 회의가 눈에 띄게 잦아지고, 팀장님은 우리 팀을 모두 회의실로 호출했다. 심장이 아메리카노 쓰리샷을 먹은 것 마냥 떨렸다. 난 꽤나 눈치가 없는 편인지, 떨면서도 팀장님이 "분위기가 요상하지만 다들 힘내서 일해봐요!"라고 말씀하실 줄 알았다. 그렇지만 이 회사 상상 이상이다.


일단 월급이 밀린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오케이, 이건 예상했어. 급여가 지연 지급되기로 한 날에도 입금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 오케이, 당연히 이것도 예상했지! 약속한 날 돈이 입금되지 않으면 소송에 들어갈 거라고 한다. 협조해 달란다. 조금 당황했지만 오케이. 노동은 봉사가 아니니까. 지난달 직원들 월급도 돈이 없어 카드론으로 메꿨다고 한다. 오, 생각보다 더 돈이 없는데? 4대 보험이랑 무슨 생소한 세금이 잔뜩 체납된 상태란다. 오케이. 여기서부턴 전혀 예상 못했어! 이번 달 월급을 대출받아 직원들에게 지급할 계획인 것 같은데 대출이 안 나올 확률이 높다고 한다. 대표가 파산을 알아봤다고 한다. 정말 곤란하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회사의 재무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아니, 내가 매일같이 야근하면서 열심히 돈을 벌어왔잖아. 그 돈은 다 어디간건데? 우리 팀, 우리 본부는 돈을 많이 벌었다. 그 돈 다 어디 간 거냐고.


이상한 사업에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는 이야긴 들었다. 저렇게나 공격적이었다고? 공격적으로 말아먹는 건 답도 없다. 팀장님이 최대한 빨리 이직하라고 한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다. 그 어느 때보다 머리가 빨리 돌아간다. 이렇게 돈이 없으면 내 퇴직금은? 연차수당은? 그러고 보니 연말정산 환급금도 아직 안 줬잖아? 주기로 약속한 성과급은 왜 다섯 달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지? 내 나이 28, 머리엔 돈 생각뿐이다. 아씨, 이번 달 카드값 많이 나왔는데.


막막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웃음이 난다. 왠지 현실감이 없다. 옆자리 팀원분에게 기업 파산에 대해 찾아봐야 되겠다고 했더니 그걸 찾을 시간에 사람인에 다른 회사를 찾아보라고 한다. 현실적이다. 방금까지 현실감이 하나도 없었는데. 이와 중에도 틈틈이 일을 하고, 집중이 안된다며 웃었다. 회사에는 간식이 많은 편이었는데, 요즘 구하기 힘들다는 과자까지 구비되어 있는 꼴을 보니 화가 치밀었다. 저거 살 돈은 있나 보네 싶은 마음이 들면서 욕이 나왔다. 분조장 생긴 것 같은데, 이거 산재되나요?


신나게 회사 욕을 하며 집으로 가는 길. 이 시국에 이직할 수 있을까, 요즘 일자리가 없다던데.. 내 수준엔 이런 회사가 딱 맞았던 걸까.. 왠지 서글퍼져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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