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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 Aug 14. 2023

'무엇'이 되려면 뇌부터 갈아 끼우세요.

가장 빠르게 드러머, PM, 마케터로 불리는 법 

나는 드러머다. 8개월 전까지 베이시스트였지만.

 감각이란 참 신기하다. “청음”이라는 같은 행동 속에서도 노래 가사 위주로 인식하는 사람, 보컬의 멜로디를 듣는 사람, 둥둥 거리는 드럼 소리를 듣는 사람, 같은 음악을 듣는데도 저마다 듣고 받아들이는 대상이 조금씩은 다르다. 나의 경우엔 베이스였다. 어떤 노래를 듣던 베이스를 흥얼거릴 정도로 베이스가 음악 안에 녹아있는 방식을 사랑했고, 귀는 자꾸만 베이스를 따라갔다. 그때부터 나는 밴드 음악 매니아였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20만원짜리 싸구려 베이스를 장만했고 입부 사정이 널널해 오디션도 없이 입부 가능한 과 밴드를 들어갔다. 사실 나는 뮤지션보다는 리스너에 가까워서, 베이스 연습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합주 연습이 가까워져서야 바짝 밤늦게까지 앰프없이 베이스 연습을 했고, 악보도 채 못 외운 채로 귀가 기억하는 대로 미완성인 공연을 올렸다. 그렇게 몇 번의 공연 이후 펜데믹으로 흐지부지된 밴드를 뒤로하고 나는 더 철저한 베이스 리스너가 되었다. 그러다 인턴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베이스를 칠 기회가 생겨 다시 기타 줄을 조였다. 수려한 실력의 밴드원들과 달리 내 연주는 싸구려 기타에서 나는 싸구려였지만, 그래도 베이스 엠프 옆 자리가 꽤 행복했다. 

드럼 연습을 다니던 시절의 인증사진이다.

 갑작스레 드러머가 될 기회를 얻었다. 사실 사람들에게 말하진 못했지만, 천성 박치인 내가 드럼을 친다니 스스로도 우스웠지만 밴드 매니아인 내게 비밀스러운 로망이었기 때문에 도전해보기로 한다. 합주 2주를 남겨두고 숨고로 재빠르게 드럼 과외를 구해 드러머가 됐다. 물론 진짜 말 그대로 '급조'한 실력으로 합주에 임했고, 예상 외로 드럼에 상당한 재미를 붙이게 됐다. 2주만에 성공적 합주! 우하하. 내 딴의 자랑스러운 '업적'을 얻은 나는 무식(용감)하게도 더 빠른 곡도 해낼 수 있다는 약속을 해버린다.


드러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연습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동시에 변명이기도 했다. 나의 아름답고 수려한 밴드원들에게 누추한 밑바닥을 보여줬다. 박자는 계속해 밀리고, 악보는 채 외우지 못해 어지럽고, 두구둥- 하는 필인은 손에 익지 않아 곡 연주 중에 여러 번 드럼이 비었다. 다른 세션들에게까지 합주를 고난도로 만들고 있었다는 뜻이다. '시간'이라는 허울 좋은 변명이 있긴 했지만, 사실 내 머리로는 패닉 그 자체였다. 연습 시간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보다 드럼에 욕심을 내고 있었고, 이 실패에 대해 철저하게 고민했다. 그리고 나는 다음 합주곡이 정해지며 본질적인 이유를 발견한다. 


 나는 드럼 스틱을 잡고 있었지만, 선명하게 드러머가 아니었다. 손에 쥔 게 스틱이든, 기타든 관계 없이 나는 여전히 노래를 들을 때 베이스를 듣고 있었다. 의식해서 드럼을 들어보려는 시도에도 도저히 귀에 잡히지 않았다. 드럼이 노래에서 어떤 방식을 취하고, 어떤 소리를 내고, 어떤 역할을 하는 지엔 관심도 전혀 없이 스네어를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한 달 정도는 연습보다 “뇌 갈아끼우기”에 신경썼다. 원곡 대신 드럼 커버를 듣고, 헤드폰의 이퀄라이저를 조절하고, 악보 없이 연습을 했다. 새로 학습된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깔끔하게 친’ 드럼 커버들이 올라왔다. 드러머들이 보는 유머 드럼 영상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 드러머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생각, 미묘한 차이와 인식하는 디테일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연습하러 가는 길의 석양을 자랑해본다.

 연주를 이해하는 사고가 드러머들과 가까워질 수록, 연습하는 태도도 점차 변했다. 기본 자세가 틀리지 않았는지 쓸데없는 디테일에 자가검열하며 노력을 낭비하지 않았다. 악보에 매달리며 의미없는 필인을 치는 것을 그만두었다. 노래를 들었을 때의 감각과 기억하는 흐름대로 드럼을 쳤다. 비로소 리듬게임이 아닌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끝에 마주한 합주에서 나는 정말 행복했다고 할 수 있겠다.


무엇이 되려면 뇌부터 갈아 끼워야한다. 반드시.

 가끔은 ‘무엇’이 되고 싶은 마음, 또는 ‘무엇’을 하는 자신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때가 있다. ‘진정한 무엇’이 되기 위해서는 인식, 인지, 감각과 사고 회로를 의식적으로 ‘무엇’에 가깝게 돌려야 할 때가 있다. 무엇을 하는 것 후에는 반드시 무엇이 되는 것이 후행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지만 - 나의 경우에는 그러한 방식을 ‘느리다’고 정의한다. 그렇게 해서는 ‘무엇이 되려는 마음’, 간절한 마음까지는 충족할 수 없을 것이다.


 프로덕트를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전략 단에서 시작해 MECE적 접근, 로직트리 의사결정, 구조적 사고에 뇌를 절여놨던 나는 처음으로 프로덕트 팀에 합류한 이후로 진득한 소외감을 느낀다. (단지 나의 생각이지만) 프로덕트 팀은 포지션에 관계없이 ‘메이커적 정체성’으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What) 뭘 만들 건지 고민하는 것에 익숙한 이들 속의 (How) 어떻게 할 건지를 고민하는 내가 너무 머저리 같게 느껴졌다. 사실, 반대로 나는 논리적 사고가 많이 빠져있는 팀 내의 결정들에 의아함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모두에게 당연한 메이커적 접근 방식에 미숙했던 나는, 소외감을 점점 무능력으로 체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꽤 오랫동안 괴로워했고, 스스로에게 기획자적 아이덴티티가 간절해졌다. 비즈니스로 이해하는 방법엔 익숙했지만 프로덕트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몰랐다. 난 겨울 내내 PM들의 고전서, 아티클, 영상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스스로 기획자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프로덕트를 만드는 동아리에 입부했다. 마치 드럼을 듣기 위해 노력했던 요즘처럼. 이제 나는 PM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업무의 탁월성과 관계 없이 프로덕트로 생각하고, 프로덕트를 이해하는 방식에 익숙하다. 원래 가지고 있던 로지컬한 강점들을 PM으로서도 풀어낼 수 있게 되었다. 

중간의 시무룩한 석상이 올해 겨울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무엇이 되려면 뇌부터 갈아 끼워야 한다. 끊임없이 나를 무엇들에 노출하고, 있는 그대로 인지하고, 거부없이 학습하고, ‘무엇’처럼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감히 ‘무엇’이 되는 첫 번째 단계라고 단언할 수 있다.


최근에 마케터가 되었다. 마케팅을 해야 했고, 잘해내고 싶다. 나는 이번엔 가장 먼저 마케팅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무작정 마케팅 아티클 플랫폼을 들락날락 거리고 있다. 초면인 용어들과 어색한 사고 흐름을 내 것으로 만드는 중이다. 난 또 마케터가 될 것이다. 프로덕트팀이 된 것처럼, 드러머가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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