겔의 지붕 중앙 부분이 열려있기는 했지만, 방사형 서까래가 천정의 양가죽 그늘막을 지탱하고 있다. 겔의 바깥쪽 둥그런 벽체의 부분은 흰색의 양가죽을 팽팽하게 둘렀는가 하면 겔 안쪽의 벽 부분은 흰색 천으로 된 휘장을 쳐서 이중벽을 만들고 있다. 이런 이중의 차단장치는 여름이라면 몰라도 겨울의 모진 추위를 조금이라도 더 막아내려면 필요한 최소한의 구조가 아닐까 싶었다. 실내의 바닥에는 그 집의 품위를 나타낸다는 양탄자가 깔려 있다. 겔 속에서 가장 이색적인 정취를 느끼게 해주는 것은 바로 그 화려한 색깔의 양탄자였다.
우리의 저녁을 준비하고 있던 사람은 우리가 겔 속으로 짐을 밀어 넣을 때 침대를 매만지고 있던 아줌마였다. 손동작이 매우 날래고 야무져 보였는데, 장작을 날라다 불도 피우고 난로 옆에 마련된 탁자 위에 저녁상을 차리는 솜씨도 무척이나 민첩해 보였다. 마치 깔끔한 우리의 이웃집 아줌마가 숙달된 솜씨로 집안일을 서두르는 듯 보였다.
9시 반이 넘어서 시작된 저녁 식사는 다소 현대화된 몽골의 전통 방식이었다. 우선 한 잔의 보드카로 몸을 덥히고 나서 야채샐러드와 이곳에서 생산된 밀가루로 만든 중국식 만두인 ‘만토(MaHmyy)’를 먹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만토는 만두라고는 하지만 밀가루로 만든 일종의 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곳의 토산 밀가루로 만든 때문인지 신선한 밀 내음을 강하게 맡을 수 있었다.
메인 디쉬라고 할 수 있는 ‘허드헉(Xopxot)’이라는 양고기찜과 그들이 ‘셔를럭(Wopaoz)’이라고 부르는 돼지고기 바베큐를 들기 전 나는 한 차례 그들의 전통적인 식사 절차를 배워야만 했다. 저녁 시중을 들어주고 있던 아주머니가 양고기 찜을 하는 찜통에 넣어두었던 검은색의 주먹만 한 크기의 돌멩이를 헝겊으로 닦은 뒤, 이것을 내게 주는 것이 아닌가. 엉겁결에 그 돌멩이를 받아들기는 했지만 뜨거워서 이것을 양쪽의 이 손 저 손으로 되받아가며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문양은 내가 제대로 하는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주었다. 이 뜨거운 돌멩이가 다 식기까지 식탁에 둘러앉은 여러 사람이 이를 돌려가며 손바닥으로 되받아 몸을 녹인 뒤 양고기 찜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것이 건강에 매주 좋다는 것이었다. 특히 추운 겨울에는 그런 돌로 몸을 따스하게 풀어주는 것이 아주 좋다고도 했다.
투박한 찜통 속에서 꺼낸 양고기는 역시 투박한 모양이었지만 부드러운 데다가 맛도 좋았다. 양고기는 익히 호주에서 많이 먹어보았기 때문에 사실 나도 어느새 좋아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독특한 방식으로 만든 허드헉 양고기 요리는 맛도 맛이지만, 그들의 식사관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셔를럭이라는 돼지고기 바비큐를 들면서는 쌀밥을 먹을 수 있었다. 이른바 안남미라고 하는 멥쌀밥이었다. 다소 기름기가 있는 음식과 함께 먹기에는 훨씬 더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밥을 먹은 뒤 그들이 후식으로 먹는 것은 그들이 ‘수테체’라고 부르는 그들 고유의 우유였다. 쉽게 말하면 우유 차라고 할 수 있었다. 지방을 빼지 않은 때문이지 보통의 우유보다는 농도가 짙었고, 빛깔도 갈색의 기운이 묻어있었다. 또 발효를 시킨 탓인지 약간은 시큼한 냄새가 느껴지기도 했다. 색깔이 암시해주는 것과는 달리 그저 맹맹한 맛이 났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마시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저녁 식사를 들면서는 우리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즐겁게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말로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서 가장 많은 소재가 되는 것은 역시 그들이 기르는 가축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즉, 그들의 대화에서 언제나 빠지지 않는 것은 그들의 생활, 그들의 생존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낙타, 말, 소, 양, 염소 등 다섯 가지의 가축이라고 했다. 알라스카 인디언들이 그들의 삶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사슴에 대해 한 가족처럼 생각하듯이 그들도 이들 다섯 가지의 가축들을 거의 한 가족이나 같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알래스카의 인디언들도 사슴의 나이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을 붙여주듯이 그곳의 몽골사람들도 말이나 소의 이름을 나이에 따라 각각 다르게 붙여준다고 했다.
인구는 250만 명에 불과한 몽골이라는 나라. 지난 몇 년 동안의 심한 겨울 추위 때문에 가축들이 많이 얼어 죽었지만, 몽골에는 사람의 숫자보다도 더 많은 약 300만 마리의 가축이 있다고 했다. 여러 가축 중에서도 역시 제일 상징적인 몽골의 가축은 말. 7월 중순에 개최되는 이 나라 최대의 민속 축제인 ‘나담(Naadam)’에서도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는 행사는 말달리기라고 했다. 두 살부터 여섯 살까지의 나이별로 말달리기 경주가 벌어진다는 것이었다. 여러 차례의 말달리기 행사의 절정을 이루는 것은 맨 마지막으로 펼쳐지는 여섯 살 먹은 말들의 경주 ‘이흐나스’라고 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전국의 쟁쟁한 마수들이 모여들어 그들의 명예를 걸고 경주를 벌이는 행사 최대의 이벤트가 바로 이 여섯 살짜리 말들의 경주라고 했다. 출발지에서 사람을 태우고 떠난 말은 28Km 거리에 있는 반환점을 돌아서 먼저 출발했던 곳까지 모두 56Km의 거리를 제일 빨리 되돌아오는 말과 그 말의 기수가 우승하는 것이었다. 한때 세계를 평정했던 용맹한 기마민족의 기상을 그들의 드넓은 평원에서 마음껏 펼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경주에서 우승하는 말은 몽골에서 최고의 명마라는 영광이 주어진다고 했다.
사막과 목초지, 숲과 산악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몽골의 모습은 나의 극히 짧은 여행 동안에는 비행기 위에서 본 사막의 일부와 그곳 가쵸르트 평원의 목초지가 전부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몽골의 지리는 울란바토르를 중심으로 울란바토르를 포함하는 몽골 동부의 지역은 목초지, 남부지역은 사막, 서부는 산악과 구릉, 그리고 북부는 울창한 숲으로 되어있다고 했다. 몽골에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여건은 전반적으로 매우 열악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살만한 곳과 살기가 어려운 곳으로 나누어진다고 했다. 사실상 힘들지만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지역은 몰골 중부․북부지역의 목초지와 일부의 산림지대뿐이라고 라고 할 수가 있다. 그래서 ‘남부 고비(Gobi)의 사막 지역에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보다는 북부 항가이(Khanhgai)의 초원지대에 짐승으로 태어나는 것이 더 낫다’는 몽골의 옛말이 생겨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는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야 한다’는 우리의 옛말이 생각나기도 했다.
저녁을 들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때문에 저녁 식사를 마치고 겔 밖으로 나온 시간은 자정이 가까워질 무렵의 한밤중이었다. 훌륭한 양고기 안주와 함께 마신 몇 잔의 보드카로 인해서 다소의 취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결 더 차가워진 밤공기는 아주 신선했고 어두워진 밤하늘에는 숱한 별들이 떠올라 있었다.
별 별 별...
그 숱한 별들이 박혀있는 하늘에는 별 무리가 만들어놓은 은하수의 모습도 바라볼 수 있었다. 청량하고 투명한 대기의 덕분인지 하늘에 박혀있는 별들과의 거리가 무척이나 가깝게 느껴졌다. 이게 얼마 만이었던가. 이래로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밤하늘의 성근 별들과 은하수를 쳐다볼 수 있었던 것이 말이다. 상쾌한 밤바람에 남아있던 취기가 모두 날아간 듯 일순 내 머리는 한여름 몽골 밤하늘의 시린 별처럼 맑아지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많은 사람이 밤하늘에 별이 뜨는지, 지는지를 잊어버린 지 이미 오래. 잊히어진 슬픔과 외로움에 괴로워하는 마음 여린 별들은 아마도 하늘로 구멍이 뚫린 겔 안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위해 모다 이 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온 것은 아닌지 몰랐다. 겔 안에서 보이는 하늘엔 더 많은 별이 다투어 반짝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별들이 더 많이 솟아나려면 한 시간쯤은 더 기다려야만 한다고 했다. 그 시간이 12시쯤의 시간이었지만 아직 완전히 어두워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지금의 별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욕심을 낸다는 것은 거기에 아무런 여운이나 미련을 남겨놓지 않는 것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시 한번 나는 더 먼 어느 곳의 몽골 평원에 나아가 밤을 맞으며 오늘처럼 별이 가득히 뜬 하늘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곳은 아마도 이곳에서 50Km쯤이 떨어져 있는 ‘죤모트’라는 마을이 될 수도 있었다. ‘나무 100그루’라는 뜻을 가진 죤모트라는 이름의 마을이 이곳으로부터 크게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은 어떤 마을일까 하는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과도 같은 한 여름밤 그 마을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면 그것은 어떤 모습일까. 또 그 느낌은 어떤 것일까. 나는 무엇인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도 있는 아쉬움 하나를 그곳에 남겨두고 싶었다.
동행해주었던 사람들을 보내고 나서 침대에 누우니 휑하게 뚫린 겔의 천정 부분으로는 바로 전에 쳐다보았던 한여름 깊은 밤하늘을 올려볼 수 있었다. 그곳에도 조용히 명멸하는 별들이 있었다. 밤이 깊었지만 나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잠자리가 바뀐 때문 만은 아니었다. 이미 자정을 지난 야심한 시각, 나는 잠을 청해야만 했다. 눈을 좀 붙인 뒤, 아침 일찍 나는 울란바토르를 떠나는 비행기를 타고 몽골에의 짧은 여행을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또 나는 1999년의 어느 한여름 밤, 숱한 별이 무수하게 떠 있는 몽골 평원의 어느 겔에서 잠을 자면서 나는 그 많은 별의 하나처럼 꿈을 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2003.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