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젠가 로또에 당첨될 것이다.
로또를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기대를 하겠지만, 내게는 남보다 더 큰 확률로 당첨될 거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믿음이 있다.
다만, 그 시기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흠이다.
장담할 수 없기에 로또를 자주 사는 것도 아니고, 많은 액수를 구입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20여 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약속을 생각하면 언젠가는 꼭 당첨될 것은 분명하다.
하늘나라에서 로또가 뭔지 알아내셨다면 말이다.
20여 년 전, 나는 종종 치매 걸린 외할머니를 목욕시켜 드렸다. 시골집은 욕조가 없어 통목욕이 어려웠던 데다 목욕탕을 가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는 등의 문제가 있어 친정집 가까이 살던 내가 그 역할을 맡게 된 거였다.
외할머니는 당신이 치매라는 사실을 증명하듯 매일같이 만나는 내게도, 처음 보는 사람처럼 항상 누구냐고 묻거나 새댁 또는 아줌마라고 부를 때가 많았다.
특히, 목욕하러 오실 땐 낯설어서 그런지 평소엔 반말을 하셨음에도 높임말을 쓰며 어쩔 줄을 몰라 하셨다.
"대체 누군데 내게 이렇게 잘해 주는 거요?"
"저는 할머니 딸이랑 친한 동네 아줌마예요."
"아이고, 모르는 아줌마가 왜 이렇게 친절하실까?"
"할머니가 좋아서요. 제가 깨끗이 씻겨 드릴게요."
"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런 친절을 받았으니 나도 아줌마한테 뭘 좀 주고 싶은데 나는 주머니에 아무것도 없어요."
"할머니는 예쁘셔서 아무것도 안 주셔도 괜찮아요."
"그래도 사람이 받기만 하면 못써요. 미안해서 어쩌나."
"할머니, 그렇게도 저에게 뭔가 주고 싶으시면 나중에 하늘나라 가셨을 때 로또 번호나 알려주세요."
"로또가 뭔지 나는 모르는데 어쩌나."
"할머니 그건 복권 같은 건데요. 당첨되면 아주 큰 부자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로또가 뭔지도 거기선 다 저절로 알게 될걸요."
"그럼 약속할게요. 알기만 하면 내가 꼭 가르쳐 줄게요."
"그런데 할머니, 로또는 엄청 좋은 거라서 하늘나라에서도 경쟁자가 많을 거예요. 갑자기 달리기를 시킬지도 몰라요. 거기서 일등 해야 가르쳐 줄 텐데 일등 하실 수 있겠어요?"
나는 할머니를 놀리는 게 재미있어서 정말 그래야 하는 것처럼 말했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나보다 한술 더 뜨신다.
"달리기 일등 해야 가르쳐 준다고 하면 일등 해야지요!"
라고 말씀 하셨다.
"우와, 할머니 정말 약속하신 거예요! 저는 그럼 할머니 덕분에 완전 부자가 되겠네요."
계속해서 뭘 주고 싶다는 할머니는 이렇게 해서 내게 로또 번호를 약속하셨다.
"그런데 아줌마는 누군데 나한테 이렇게 친절해요?"
"네, 할머니 딸이랑 잘 아는 아줌마네요."
할머니는 이렇게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로또가 뭔지도 모르시면서 약속하시는 거였다.
그리고 이 약속은 목욕할 때마다 하시게 되었다.
(치매 때문인지 매번 비슷한 대화였다.)
"로또가 뭔지는 몰라도 꼭 가르쳐 줄게요."
"할머니, 꼭이에요. 그럼 저는 엄청 큰 부자가 되는 거예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며칠이 지나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할머니는 높은 산 고갯길을 당신을 업고 넘어가 달라고 부탁하셨다.
할머니는 가방처럼 내 등에 업혀서 아무 말도 없다가
평지가 나타나고서야 내려 달라고 하시더니 업어 준 수고비라며 내 손에 천 원을 쥐여 주셨다.
그런데 그 꿈을 꾼 후부터는 다시 꿈에 나오시질 않는다.
'할머니 로또번호는 아직도 못 알아내셨어요?
설마 천 원으로 끝내시는 건 아니죠?'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었어도 나는 로또 당첨을 기대한다.
치매였던 할머니가 오늘 밤에라도 꿈에 나와
"아줌마, 내가 로또 번호 알아냈어!"라고 말하며 번호를 알려줄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