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lopenspirits Apr 15. 2024

하루x100

휴직 104일 차

     일기를 매일매일 쓴 지 100일이 넘어가고 있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어떤 일을 습관화하려면 100일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3개월 동안 24시간 중 일어나는 많은 일과 나를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자극들 중 하나를 선택하고 그것에 대해 짤막하게 100편의 글을 썼다. 처음에는 알람을 맞췄다. 매일 오후 10시. 알람이 울리면 그 순간 무엇을 하고 있던 지간에 중단하고 태블릿을 켰다.


     어느 순간부터는 알람이 필요 없어졌다. 일기를 쓰는 시간이 다양해졌다. 30분 일찍 또는 늦게 쓸 때도 있었고, 잠이 오지 않은 새벽, 24시간 중 20시간이 남았음에도 일기를 썼다. 기분이 너무 좋거나 나쁠 때는 그 즉시 휴대폰으로 쓰기도 했다. 쓰기 싫거나 귀찮을 때도 분명 있었다. 그럴 때도 솔직했다. 친구들이랑 노느라 바쁘다고, 지금은 취했다고, 오늘은 쓰기 싫다고 썼다. 브런치는 개인 블로그보다는 좀 더 Social 해서 가끔씩 의미 없는 일기들이 사람들에게 공해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그때는 나와의 약속이 중요했다.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단순한 이유였다. 부제목에 휴직 000일 차라고 쓰여있는 것처럼, 10년 넘게 지속되던 사이클이 부재하는 기간 동안 매일 밤 쓰는 일기 하나만큼은 루틴으로 가져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에게 쉼보다 오히려 하던 일을 계속하라고 권유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이유는 무기력과 무망감이 몰려오기 때문에 강제로라도 뭔갈 하지 않으면 아예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듯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된 일기 쓰기는 많은 걸 느끼게 해 줬다. 기록하지 않았으면 기억조차 안 날 것 같은 사소한 일들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브런치 초창기에 쓴 글 중 아이들에게 강요되는 일기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초등생을 키우는 직장동료의 말에 의하면 지금은 사생활과 학생인권에 대한 의식 수준이 높아져서 더 이상 일기를 제출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행인 것도 같지만, 어쩌면 어릴 때부터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법을 배우게 하려고 일기를 쓰라고 한 것 같기도 하다.


     인종차별을 당한 일화와 수영장 이야기, 간장계란 받은 일, 비싼 커피를 마신 경험, 싸구려 숙소에서 느낀 점, 그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 다른 일기들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 줬다. 항상 이유가 궁금했다. 정성을 다한 글은 찬밥 신세인데 비해 가벼운 일상 이야기는 왜 더 사랑을 받는지. 100일 간 일기를 써보니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거대한 행복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바쁘고 힘들어 죽겠는데 굳이 남 힘든 일을 읽을 필요가? 낯설고 동떨어진 세계의 이야기까지는 굳이... 싶어서이지 않을까? 대신 꽃, 커피, 친구와 같은 이야기들은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니까, 누군가가 나 대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해 주면 나의 일상도 한결 업그레이드되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그 기분은 비단 다른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적용됐다. 매일 빈 공백 앞에서 하루를 쭉 리마인드 하고 작은 껀덕지라도 건져서 그것에 대해 쓰는 시간은 하루하루를 생산성 있게 지속하게 하는 동력이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을 생산해 내는 일이 수월하지만은 않았는데 특히 아무리 그지 같은 하루를 보냈더라도 어떻게든 의미를 쥐어짜 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가끔은 억지스러웠다. 중단하지 않은 이유는 매일 쓰겠노라는 결. 심. 때문도 있지만 부정적인 경험과 현실에서도 만족과 배움을 끌어내는 연. 습. 을 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행복은 누가 떠먹여 주지 않으니까, 빌어먹든 훔쳐오든 어떻게든 스스로 찾아내야만 하니까.


     100개가 넘는 일기의 제목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면서 세어봤다. 좋은 날 40일 / 그저 그런 날 47일 / 안 좋은 날 12일 / 일기 쓰기 싫다고 한 날 4일이었다. 부정적인 글이 12개 밖에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우울증 환자에게 우울한 날이 12% 밖에 없었다니. 의외의 결과이지 않은가? 정말로 12%만 우울하고 40%가 행복해서가 아님은 예측할 수 있을 거다. 그냥 그날 많고 많은 시간들 중 긍정적인 사건을 떠올리려 애썼고, 키보드로 하루를 예쁘게 토닥토닥거린 결과일 뿐이다. 덕분에 2024년 1월 28일에 일어난 일 중 안 좋은 일들은 까맣게 잃어버리고 일기로 기록된 기억만 남게 되었다. 그런 날들을 여럿 모아보니 비록 조작과 과장과 생략이라도 지난 3개월간의 내 삶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성격이 급한 나는 예전에 100피스짜리 퍼즐을 한 번에 다 맞추다가 허리가 아픔은 물론, 완성하고 나니 다음에 할 게 없어져서 다시 심심해진 기억이 있다. 그림을 완성했는데도 별로 즐겁지가 않았다. 언젠간 행복에 겨울날이 올 거야, 언젠간 더 크게 보상받을 거야라는 생각을 버리고 하루에 한 조각씩 맞춘다면 허리도 안 아프고, 사는 것도 훨씬 수월하고, 더 많은 풍요로움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100일 동안 일기를 쓰면서 느낀 점이다.





표지사진출처: UnsplashJonny Gios

매거진의 이전글 Back to the Blac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