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씬의 뉴 트렌드
2022년 하반기, 국내 스타트업 씬에는 '혹한기'가 도래했습니다. 예견된 추위라는 반응도 있지만, 이 시기가 스타트업과 벤처캐피탈 모두에게 살벌하게 춥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초기 스타트업을 관장하는 민/관 주도의 지원사업이나 Seed 단계의 투자 활동은 여전히 ing입니다. 미국 역시도 초기 투자가 줄지 않고 있습니다. '00년과 '08년 2번의 침체를 겪어보니 '리세션 때 투자한 기업은 유니콘/데카콘이 될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언급한 2번의 침체기와 달리, 스타트업 씬에는 또다른 방법론이 도입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바로 Startup Studio(또는 Venture Studio)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자리잡았고, 국내에서도 곧 흥하지 않을까 기대 중인 모델입니다. 제가 느끼는 벤처 투자의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특정 투자 라운드에 유동성이 몰린다.
2) 스타트업이 성장하긴 하는데, 밸류에이션 증가세를 따라잡지 못한다.
3) 유동성이든, 멀티플이든 뭐 하나가 삐걱대면 flat/down 라운드가 발생한다.
4) 대규모 구조조정, 청산 등 인재/투자자/자금의 3중 대탈출이 발생한다.
5) 더욱 초기로, 모험을 떠난다.
국내는 시리즈B 이상에서 4번 상황이 감지되어 초기 단계에서 투자 경쟁이 과열된 것으로 보입니다. 근 몇년새 금융 지주사/대형 투자사에서 시드투자를 하거나, 심지어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런칭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은 어떨까요? 이미 시드 라운드에서 1~5번 상황을 모두 겪었고, 또 겪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는 Sequoia capital, a16z 등에서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출범하였습니다.
https://a16z.com/programs-a16z-start/
아마 초기 단계에 투자하던 미국의 수많은 micro VC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지 않았을까요? 세계에서 제일 저명한 VC에서 이렇게 앞단까지 내려오다니! 그래서인지 시드보다 더욱 앞단의, 그야말로 사람만 덜렁 있는 상태의 (예비) 창업자를 모아오기 위한 방안을 생각합니다.
바로 위에서 설명한 형태의 벤처투자는 국내에도 존재합니다.
소위 '너만 오면 고' 형태의 배치 프로그램입니다. 좋은 '사람'을 뽑아놨으니 여기서 코파운더 구하고, 아이디어 검증해보자는, 창업자 입장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설명하고자 하는 모델과는 살짝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틀렸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미국에서 성행하고 있는 Startup Studio는 한마디로 '스타트업 공장'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스튜디오별로 정립한 체계적인 프로세스(=공정)를 거쳐 정말 빠르게 프로덕트를 산출해냅니다. 법인 설립? 랜딩페이지 제작? 이런 건 다 해줄테니까 아이디어 검증해봐! 와 같은 식입니다.
패스트트랙아시아의 '푸드플라이', 퓨처플레이의 '퓨처키친', 스파크랩의 '스파크펫' 등이 '컴퍼니빌딩'을 표방하며 상기 모델을 도입하고 있지만, 미국처럼 소위 '찍어내는' 수준의 속도를 보여주고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다만, 국내에서도 해당 모델이 성숙해지면 폭발적으로 그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다음과 같은 Startup Studio가 대표적입니다.
IdeaLab: 해당 개념의 선구자격인 곳입니다. 150개 이상의 기업을 설립하여 45개 이상을 Exit(IPO 또는 M&A)했습니다. GoTo(현 Overture, Yahoo!에 매각)와 Picasa(구글에 매각), Coinbase(IPO) 등이 대표적인 포트폴리오입니다.
Betaworks: B2C 프로덕트를 위주로 빠르게 뽑아내어 투자(by Betawork Ventures)까지 집행합니다. bit.ly, Giphy, Unsplash 등을 만들어내며 성공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eFounders by Hexa: B2B SaaS 전문 스튜디오를 표방합니다. Yousign, Swan 등을 성공적으로 런칭했습니다.
창업자에게 자신의 아이디어와 가설을 검증하는 일(유식한 말로 PoC)이 점점 쉬워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SaaS와 Startup Studio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보다 더욱 저렴한 비용(보통 자신의 젊음)으로 더욱 전문적인 프로덕트를 산출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지분 양도(1/3 수준)를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투자사 입장에서도 EIR(Entrepreneur In Residence) 제도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예비/초기 창업자를 서포트하는 체계가 고도화된다면, 역량과 경험이 충분한 창업자에게 '우리는 스타트업 런칭에 도가 트였다, 당신 창업 과정+투자까지 보장할테니까 발굴/육성 좀 도와달라'고 제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투자사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은 비단 EIR뿐만이 아닙니다. 행동력이 넘치고, 런칭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한 창업자들을 빠르게 모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안 그래도 바쁜 투자사 입장에서 많은 리소스를 투입해야 하는 일이 됩니다. 하지만 '명문 산후조리원 앞에서 심사역이 명함을 돌려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좋은 창업자 찾기에 골몰하는 투자사 입장에서는 고려해볼 수 있는 선택지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이드 프로젝트 애호가들에 대한 인식이 바뀔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하나에만 올인해도 성공할까 말까인데...'하며 다수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제시하는 창업자를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아직까지 경력이 일천하여 위와 같은 방식으로 성공한 창업자를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Startup Studio 내에서 다수의 저관여 아이디어를 재빠르게 검증해보고 하나의 결론을 내리는 성공 방정식이 정립된다면 이러한 편견을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Trends.vc, 'Startup Studios: Validating Ideas, Solopreneurs, Building Communities'
김영록의 테크인사이트, '스타트업투자, 더더욱 얼리 스테이지를 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