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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분주 Aug 14. 2024

한 여름날의 까칠한 플러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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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날씨 탓에 집에만 있다 보니, 다리털이 자유를 만끽하며 무럭무럭 자라서 고슴도치 털이 되었다. 모기가 다리에 붙으면 밀림숲을 헤쳐나가는 기분이 들것이라며 혼자 샤프심같은 다리털을 보며 즐거워했다.

더위가 사람을 이렇게 만든다.


아빠의 부탁으로 급하게 은행 갈 일이 생겨 반바지만 대충 입고 집에서 뛰쳐나갔다. 땀이 비 오듯 쏟아져내려 온몸이 젖은 걸레처럼 축축하고 찝찝했다. 땡볕은 마치 오븐처럼 뜨거워서 이대로 햇볕아래 서 있다가 원형탈모가 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순간, 어떤 남자가 내 옆에 섰다. 땀에 흠뻑 젖은 나와는 달리 그는 깔끔하고 멋져보였다. 흰 티셔츠와 카키색 반바지를 입고선 백팩도 멋드려지게 맸다.  


아, 이럴때 이상형을 만나다니.


그는 나를 전어어어어어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지만, 나는 괜히 설레는 마음으로 그와 같은 버스를 타고 싶었다. 평일 오전에 그는 어디를 가는 걸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버스를 기다렸다. 아까와는 달리 버스가 천천히 와주길 바랬다. 그와 함께 서 있을수 있다면 대머리가 되도 좋다. 


마침 버스가 왔는데, 그는 나와 같은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안은 이미 사람들도 가득했고 마치 운명인 듯 그와 뒷자리에 나란히 앉게 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뒷자리에도 빈자리가 없어지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가까이 붙어 앉게 되었다. 혼자 심장이 쿵쾅거리며 5분을 보냈다. 


도로 위 상황은 잘 모르겠으나 버스가 갑자기 급하게 꺾이는 바람에 모든 승객들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고,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오른쪽 다리와 나의 왼쪽 다리가 맞닿게 되었다. 



부비부비 

오 - 우예 나이스



약간의 스킨쉽에 설레하는 나와는 달리 남자는 화들짝 놀래며,


짧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따 이게 뭐시여



반바지를 입은 그의 매끈한 다리가 나의 사포처럼 거친 다리를 스치자 순간 놀란 듯 하며 갑자기 손으로 본인의 다리를 경운기처럼 툭툭 털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벌레를 내쫒는 마냥 본인 오른쪽 다리, 왼쪽다리, 왼팔, 오른팔을 차레로 털어댔다. 나는 끝까지 모른척하며 앞만 주시하며 가만히 있었다.


그 후로 두어차례 더, 그의 다리와의 고슴도치 플러팅이 지속되었는데 그는 그럴때마다 계속해서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본인 무릎에 올려둔 백팩의 어깨끈 부분도 털고 반바지도 털고, 본인이 앉아 있던 버스 의자 밑부분도 털고, 멘탈도 탈탈 털었다. 닥터피쉬한테 각질을 뜯겨 버린 사람처럼 몸을 기우뚱 기우뚱 하며 뭔가를 찾아내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어떤 벌레를 상상했을까.

혹시 버스안에 빈대가 사람을 문다고 버스 회사에 민원을 넣지 않을까.



왠지 그 보다 먼저 내리면 내가 왠지 버스 속 벌레임을 그에게 들킬것 같아 그가 내린 다음에 내렸다. 원래 가야하는 정거장 보다 다섯 정거장을 더 갔다가 다시 은행으로 저벅저벅 걸어 돌아왔다.



유난히 더 더운 여름날이었다.





아빠가 오늘 고맙다며, 수고했다고 저녁으로 맛있는걸 시켜줬다.

오랜만에 외출하니 좋지 않았냐며 너무 집에만 있지 말고 종종 밖에 나가 사람 구경도 하고 콧바람도 쐬라고 했다.


아빠는 내 마음 모른다.









   

'제모는 나를 위해 하는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 하는것이니라'

김분주 제 1장 1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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