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취업을 목표로 했지만, 생각보다 좋은 기회를 찾지 못해 내년 1월로 계획을 연기했다. 원하는 조건에 맞는 직장을 찾지 못했고, 무리하게 취업하는 것보다 조금 더 기다려서 적합한 곳에 들어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리하며 계획했던 것보다 4개월을 더 놀게 되었다.
백수지만 더 찐 백수가 되어 버린 것이다.
벌어둔 돈이 있어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은 덜하지만,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불안했다. 난 바쁠 때가 제일 행복하다. 바쁘게 움직일 때 비로소 내가 살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일을 통해 내 삶에 활력을 얻고 존재감을 느끼곤 한다. 집에만 있으니 우울감이 찾아와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 뭐라도 하면서 몸을 움직이자.
집에서 버스로 20분 거리에 있는 영어학원에서 보조 강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면접을 보러 갔다. 하루 4시간 정도의 짧은 근무 시간에 최저시급을 받는 조건이었는데, 학생 출석 체크, 숙제 검사, 자율 학습 감독 등은 이미 내가 어학원에서 오랫동안 일하며 익숙해진 업무라 부담 없이 지원했다. 2년 가까이 쉬면서 학원 업무 감각이 좀 떨어졌을까 걱정이 되어, 다시 한번 학원 현장에 발을 들여놓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면접을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업무를 요구했다. 원장은 내 이력서를 보고는 다른 욕심을 내는 것 같았다. 처음엔 보조 강사라 했는데, 갑자기 보충 수업도 하고, 선생님이 없을 때는 대타로 수업을 맡아야 한다고 한다. 심지어 특강까지 해야 할 것 같다고. 최저시급으로 중학생 영어 수업을 시키려는 원장의 속셈이 너무 보여 얄미웠다. 설거지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는데 요리를 해서 손님한테 나가라는 사장의 심보랑 뭐가 다른가. 에라이 나쁜 놈아. 부자 되시것소.
찝찝한 면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 들렸다. 어떤 놈을 읽어볼까 쭈욱 훑다가 눈에 한 권이 딱 꼿혔다. '월급은 150만 원이지만 연봉은 블로그로 1억입니다'라는 제목에 솔깃해서 자리를 뜨지 못했다. 1억이라니. 그것도 블로그로.
요즘 부업으로 돈 버는 사람들 이야기가 여기저기 많이 들린다. 인스타그램으로 하루 10분 투자해서 월급의 2배를 버는 사람도 있고, 블로그 수익으로 매 달 통장으로 몇 백씩 들어온다는 사람도 있다. 정말 대단하다. 나는 매일 죽어라 일했는데, 세상은 왜 이렇게 쉽게 돈 버는 방법이 많은 걸까. 물론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은 극소수겠지만, 내가 그 극소수에 속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나도 블로그 수익으로 부자가 되어 보겠습니다.
예전에 잠깐 해보다 만 블로그 계정이 있는데, '연봉 1억'이라는 글자에 다시 솔깃해서 로그인했다. 나는 어떤 컨셉으로 블로그를 하면 좋을까. 어떤 종류의 부자가 되어 볼까. 여기저기 블로그를 둘러보다 보니 음식 리뷰하는 사람들이 협찬도 많이 받고 수입이 괜찮아 보였다. 그러다 문득 예전 소개팅했던 블로그에 미친 남자가 생각났다. 나는 그 남자처럼 화장실 찍고, 현관 찍고, 메뉴판 찍고, 숟가락 찍고, 젓가락 찍고, 소파 찍고, 조명 찍고 항공샷 찍고 모서리샷 찍고 바닥샷을 찍을 자신 없다. 디스패치 수준의 치밀한 사진들을 업데이트해야 하는 맛집 소개 블로그는 내 취향에 안 맞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나는 음식 사진을 잘 못 찍는다.
그냥
진짜 못 찍는다.
재료보다 한강 국물에 초점을 두었어요
지옥에서 배달 온 스파게티
폭탄아닙니다
음식물 쓰레기 아닙니다
사진 찍을 땐 마치 미슐랭 가이드에 실릴 듯했는데, 막상 찍고 보니 음식물 쓰레기 같았다. 이런 사진으로 맛집 후기를 올렸다간 사장님이 고소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맛집 블로거가 되는 건 포기해야겠다. 나는 풍경이랑 사람은 잘 찍는데 음식 사진은 유난히 못 찍는다. 병신인가.
그래서 내가 가장 잘하는 분야인 독서를 활용해 도서 인플루언서를 목표로 삼았다. 평소에도 책 읽는 걸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즐기니 지치지 않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책도 열심히 읽고, 굳이 왜 하는지 모르겠지만 남들처럼 갬성적인 문장이 나온 페이지 몇 컷 찍어 올리고, 최선을 다해 후기를 남겼다. 서평단에 당첨되어 책도 선물 받고, 일상이 좀 더 풍요로워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이대로라면 나도 충분히 인플루언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고, 블로그로 수입을 얻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열심히
더 열심히 책 읽고 후기를 올렸다.
뭐지, 고장 났나.
왜 조회수가 0일까.
혹시 블로그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궁금해서 친구에게 부탁해서 한번 들어가 봐 달라고 했다.
몇 일째 방문자 수가 늘지 않은 걸 보니, 네이버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친구에게 실시간으로 내 글 중 하나를 클릭해 보라고 했다. 그래도 방문자 수에 변화가 없다면 네이버 고객센터에 문의해 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