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 하고 케이지를 분해해 관을 청소하고 있는모습이 안돼 보였는지, 남편이 햄스터 케이지 사진을 하나 보여주며, 이동관에 배변을 하더라도 처리가 편할 것이라며 교체를 권유했다. 땅콩이가 우리 집에 온 지도 그새 2년이 넘은 터라 바꿔준다 한들 얼마나 더 쓸 수 있을까 싶었지만, 하루를 쓰더라도 조금이라도 불편을 덜어준다면 사는 게 맞다는 남편의 의견에 따라 새로운 케이지를 주문하게 됐다.
햄스터 집은 벽돌집 모양에 굴뚝까지 있고 이동관은 미끄럼틀 형태여서 대소변을 봐도 간단히 닦으면 될 거 같았다. 정말 하루, 이틀, 사흘까지는 사길 잘했다면서 좋아했던 거 같다. 그런데 땅콩이는 집이 영 낯설은지 이동관을 타고 올라가지 않고 며칠간은 모래가 있는 화장실에 들어앉아 꼼짝을 하지 않았다. 이제야 제대로 된 배변 습관이 생기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나흘쯤 되던 날 아침, 주방 앞에 둔 햄스터 케이지쪽에서 “따다닥 따다닥”, 아침부터 열심히 이갈이를 하고 있는 땅콩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땅콩이가 케이지 2층에 있는 ‘집’ 안에 들어가 굴뚝 형태의 창에 얼굴을 밀어 넣고 이갈이를 하는 거 같았다.
“얘들아, 나와서 이것 좀 봐봐”
“땅콩이가 이제 이 집에 적응을 했나 봐”
”그런데 얘 왜 이렇게 웃기게 굴뚝에 얼굴을 끼우고 이갈이를 한다니“
”엄마, 얘 진짜 웃긴다.“
아이들을 각각 학교로 유치원으로 보내고 집안 정리를 하는데, 갑자기 아까 봤던 장면이 뭔가 이상하게 느껴져 다시 햄스터 케이지를 들여다보았다.
“땅콩아, 너 왜 계속 이러고 있어? 내려와”
얼굴을 톡 쳐 보지만, 땅콩이를 굴뚝 안쪽으로 얼굴을 들여놓지 않았다.
‘혹시… 얼굴이 굴뚝에 끼여서 계속 저러고 있었던 걸까? 튀어나온 이빨이 굴뚝 모서리에 걸린 채 매달려 있는 듯한 모습, 땅콩이가 까치발을 하고 바둥거리고 있었다. 급히 케이지를 분해해 땅콩이를 굴뚝에서 빼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땅콩아 미안해… 아파도 조금만 참아”
땅콩이 이빨이 걸린 창틀모양 플라스틱을 도구로 잘라내고 땅콩이를 잡아당겼다. 마침내 굴뚝에서 땅콩이 얼굴을 잡아 뺀 순간, 얼마나 오랜 시간 그 상태로 있었던 것인지 땅콩이 얼굴은 반이 찌그러져 있었다. 일그러져 있었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한쪽 눈은 감겨 있었고 코와 입이 형태를 알 수 없게 일그러져 있었다.
“땅콩아.. 아.. 어떡해… 어떡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아침에 벌어진 일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똥오줌 아무 데나 싼다고 구박하고, 치우기 힘들다고 투덜거렸는데, 그래서산 새 케이지인데, 그 케이지가 땅콩이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다. 애당초 치우기 힘들다고 투덜대지만 않았어도....
땅콩이는 케이지 한쪽 구석에 엎드려 안정을 취하는 거 같았다. 그 상태로 며칠간 잠시 일어나서 물만 먹을 뿐, 맥없이 웅크리고 있었다. 사고가 있은 후 3일째 되는 날 땅콩이가 기척을 냈다. 아직 음식을 먹는 거 같지는 않았지만 얼굴은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이 된 듯했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7일째 되는 날 땅콩이는 조용히 잠자 듯한 모습으로 영원히 깨어나지 못했다.
2천 원어치의 책임
사고 후유증이 분명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이가 많고 비만이기는 했지만, 그 일이 아니었다면 몇 달은 더 살았을 거라는 생각에 아쉬움과 미안함, 원망의 감정들이 나를 괴롭혔다. 누군가에게는 화를 내고 책임을 물어야 할 거 같았다.
00몰에서 해당 제품을 판 판매자에게 전화를 했다.
”제 햄스터가 여기서 판 제품을 이용하던 중에 굴뚝에 얼굴과 이빨이 끼여 오랜 시간 방치됐고 그로 인해 얼굴이 일그러졌습니다. 그리고 며칠 만에 죽었어요.“
”아.. 네.. ”
“그렇다구요.. 그 제품이 문제가 있다구요”
“그런 위험한 제품을 팔면 안 된다고요”
“네 알겠습니다.”
위로는커녕 화가 치밀어 올랐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 사무적인 말투, 그래서 어쩌라고, 뭘 바라는 거냐는 듯한 표정이 전화기 너머로 보이는 듯했다. 판매자의 무성의한 대응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소비자 보호원에 민원을 넣기로 했다.
“반려동물이 인터넷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케이지를 이용하던 중에 제품의 결함으로 인해 사고를 입었다”는 내용으로 민원을 접수하고 며칠이 지나 쇼핑몰 고객센터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00고객님, 소비자보호원에 민원 접수하셔서 전화드렸습니다. 자세한 내용 확인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제가 0월 0일 날 햄스터 케이지를 구매했는데요. 사용한 지 3일 만에 저희 집 햄스터가 집모양 은신처를 이용하던 중 굴뚝에 얼굴과 이가 끼어 얼굴이…….“
“고객님, 먼저 고객님의 소중한 반려동물이 그렇게 돼서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굴뚝 부분은 개선되어 판매하도록 조치를 취하겠습니다…위로의 의미로 2천 원의 포인트를 적립해 드리겠습니다. ”
결과적으로 나는 땅콩이를 잃고 2천 포인트를 받았다. 금액만 놓고 보면 그거 받자고 소비자보호원에 민원 넣고 난리를 쳤나 싶지만 내가 원했던 건 안전하지 않은 제품을 판매한 것에 대한 책임 있는 사과였다. 그래봤자 담당 상담원이 써진 매뉴얼대로 읽는 것이 전부였겠지만, 제품을 개선하겠다는 답을 들었으니 그걸로 됐다 싶었다. 이미 땅콩이가 하늘나라로 간 마당에 무슨 보상인들 의미가 있었겠는가.
그때의 민원 덕분일까? 그 이후로 동일한 디자인의 햄스터 케이지는 더 이상 판매되지 않는 거 같다. 비슷한 디자인에 집 모양 구조물이 있는 케이지라 하더라도 굴뚝은 막혀 있다. 땅콩이에 대한 사랑과 그를 잃은 슬픔과 분노가 나를 행동하게 했던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절대 다시는 햄스터를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는 그 이듬해에 두 마리의 갓 태어난 햄스터를 분양받았고 이 햄스터들은 큰 리빙박스에서 키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