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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itebook Feb 01. 2023

친한 친구와 절교

반성 그리고 사과

나에게는 2살 터울 남동생이 한 명 있다. 볼은 통통하고 얼굴은 둥글며 호섭이 머리다. 동생 '상준'이는 내가 학교를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항상 함께 했다. 잠을 잘 때도 내가 팔베개를 해주고 상준이는 나를 안고 잤다. 나는 밥 먹을 때 엄마 흉내를 내면서 '힘 쌔지는 거니깐 먹어, 형처럼 키 커야지'하며 반찬을 먹여주고 다독인다. 내가 입던 허름한 옷을 물려받아 입는데도 이 녀석은 형 옷을 입는다고 좋아한다. 부모님의 가르침보다 동생의 어리숙함이 나를 더욱 철들게 했다.


동네친구들과 만나서 놀 때면 상준이는 형하고 같이 놀겠다고 항상 날 따라다녔다. 우리 동네에는 상준이 또래가 없다. 그래서 항상 나와 내 친구들과 어울렸다. 덕분에 기준이와 동진이도 부려먹을 녀석이 생겨서 좋은 눈치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동생에 대한 과잉보호가 좀 지나친 편이다. 가령 '숨바꼭질' 놀이를 할 때 동생이 길을 잃어버리거나 다칠까 봐 동생과 같이 숨었고, 내가 술래가 되면 동생은 특별히 나와 함께 친구들을 찾게끔 했다. 놀이를 하다 보면 어리숙한 동생이 답답해서 친구들은 간혹 짜증도 낸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동생 편을 들며 친구들과 대립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분위기를 익혔는지 친구들도 자기 동생같이 보호하고 챙기기 시작했다.


형이 돼서 동생을 챙기는 건 당연하지만 좀 더 직접적인 이유는 부모님의 잔소리 때문이다. 밭이나 산에서 뛰어놀다 보면 아픈지도 모르게 다치는 경우가 많다. 자주 넘어져서 그런지 상준이는 보이지 않는 상처가 많았다. 어머니께서 씻길 때마다 그런 상처를 보고 '형이 돼서 동생하나 못 챙기고 다니냐며' 나를 혼내며 한숨을 쉰다. 그럴 때마다 반성을 많이 한다. 상준이가 다치는 건 모두 내 잘못이 맞다. 그런 사상 때문에 나는 항상 동생을 과잉 보호 하게 된다. 


어머니는 내가 국민학교 가기 전부터 동네 슈퍼에서 '전등, 소금, 간장, 설탕, 두부'등 여러 가지 심부름을 자주 시켰다. 쌀을 사 오는 것도 흔치 않았다. 6살부터 심부름 다녀서 무거운 것 빼고는 뭐든 사 올 수 있었다. 상준이 입장은 다르다. 부모님은 상준이가 나이를 먹었는데도 심부름을 한 번도 시킨 적이 없다. 심부름은 내가 하면 되는 거니 굳이 상준이에게 시킬 필요는 없었을 테다. 그래서 상준이는 7살인데도 라면하나 사 오질 못한다. 


우리는 동네 밭에서 '배추나 고구마'를 피해서 뛰어놀거나 뒷산에 자주 간다. 산에 올라가면 도토리도 줍고, 산딸기도 따고, 개구리도 잡고 놀 것이 너무 많다. 상준이는 우리보다 나이가 어려서 항상 느렸다. 그래서 산에 갈 때는 상준이와 함께 맨뒤에서 같이 올라간다. 다행인 건 동진이와 기준이는 나와 동생에게는 '빨리 오라고' 재촉 같은 건 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느 날처럼 산에 올라가서 놀기로 했다. 등산로 초입에서 동진이와 막대기로 '삼총사의 달타냥' 흉내를 내면서 칼싸움을 했다. 나는 동진이를 잡으려 달려가고 그 녀석은 멀리 도망가면서 나를 놀린다. 그렇게 잡고 도망가는 놀이를 하며 먼저 산에 뛰어올랐다. 장난치며 오르다 보니 너무 빨리 올라가 버렸다. 그래서 기준이와 상준이를 기다리기로 했다. 동네가 훤히 보이는 팔각정에 입구 계단에 앉아 막대기로 땅바닥을 끄적이며 기준이와 상준이를 기다렸다. 몇 분 후에 저 밑으로 기준이가 보인다. 나는 또 장난을 치고 싶은 건지 근처에 널브러진 솔방울 몇 개를 집어던지면서 '하여간 느려가지고는, 빨리 좀 와'라는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는 몇 초 뒤, 상준이가 보이질 않아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기준아, 상준이는?'

'저 밑에 올라오고 있을 거야'

'야, 같이 데리고 와야지, 혼자 오면 어떻게 하냐. 에휴'


나는 상준이를 데리러 들고 있던 막대기를 버리고 터벅터벅 내려갔다. 등산로 초입 정도까지 한참을 내려가보니 상준이가 보였다. 상준이는 과자 부스러기 하나에 개미가 떼 지어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쭈그려 앉아 있었다. 계속 개미를 구경하고 싶다는 상준이를 억지로 끌고 다시 산에 올랐다. 우리가 거의 도착할 즈음에 동진이와 기준이는 정상에 먼저 도착해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기준에게 나는 조금 화를 냈다.


'야 기준. 너 동생 좀 챙겨주면 어디 덧나냐. 하... 네 동생 아니다고 내팽겨 치는 거야? 아, 짜증 나네'

'........'


기준이는 아무 말이 없이 눈하나 깜박이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한 5초 정도 그렇게 빤히 쳐다보더니 이윽고  고개를 돌려 상준이를 쳐다봤다. 순식간이었다. 기준이를 상준이에게 달려가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발로 배를 힘껏 차 밀었다. 


'내가 빨리 올라가자고 했지. 네가 말을 안 들으니깐 이러잖아. 짜증 나게 하지 마라고 좀!.'


상준이는 기준이 발길질에 내리막 길로 서너 바퀴 굴러 내려갔다. 나는 당황에서 상준이에게 달려가 괜찮냐고 물으며 일으켜 세웠다. 내리막 길에는 크고 작은 돌과 잡초들이 섞여있었다. 구르다가 돌에 얼굴을 찍혔는지 상준이 얼굴에 피가 났다. 나는 심장이 두근 대며 다리가 풀릴 것 같은 긴장감이 생겼다. 오르막에 있는 기준이에게 '야 이 새끼야, 이게 뭐 하는 거야 너 미쳤어' 따지면서 달려갔다. 기준이는 내가 다가오자 나에게도 발길질로 가슴을 찼다. 그런 반응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내리막길로 굴러 내려갔고 벌떡 일어났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그 녀석에게 달렸다. 머리끄덩이를 잡고 얼굴을 마구 때렸다. 그 녀석도 내 얼굴을 마구 때렸다. 서로의 머리를 잡고 몸싸움을 하다가 부둥킨 채 아래로 구르기 시작했다. 두세 바퀴 구른 후에 난 그 녀석 발밑에 깔렸다. 그리고는 눈과 코를 정신없이 맞았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맞다 보니 아픈 줄도 몰랐다. 한참을 때리다가 그 녀석은 힘들었는지 하늘을 향해 악을 지르면서 잠시 주먹을 멈췄다. 이때다 싶어서 그 녀석의 팔목을 있는 힘껏 물고 손으로 밀 처냈다. 그리고 뒤로 넘어진 녀석의 얼굴 위로 올라탔다. 땅바닥을 때린 건지 얼굴을 때린 건지 모를 정도로 흥분해서 마구 주먹질을 해댔다. 그러다가 옆에 머리만 한 짱돌을 집고 두 손 높이 들어 올렸다. 정말로 얼굴에 찍을 생각이었다. 그때 동진이가 달려와 말렸다. 기준이는 짱돌을 쳐다보면서 두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다. 그 녀석은 너무 겁을 먹어 싸울 의지가 없어 보였다. 나도 동진이가 말린 잠깐사이에 온몸에 힘이 풀려 더 이상 싸우질 못했다. 그렇게 그 녀석과의 끝이 났다. 


흥분이 조금 가라앉히고 짱돌을 버렸다. 윗옷은 찢어지고 코와 입술은 흙과 피가 묻어 있었다. 기준이 녀석도 털고 일어났다. 나는 손에 떨림이 멈추지 않는 상태에서 그 녀석에게 한마디 했다.


'너는 친구도 아니야. 네 동생 아니라고 챙기지도 않고, 이제는 때리기까지 하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정말 생각도 못했다. 넌 정말 나쁜 새끼야 알아?. 앞으로 절대 너랑 안 놀 거니깐 저리 꺼져버려'

'너는 항상 너 동생만 그렇게 챙기지. 너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아. 네가 더 나쁜 새끼야. 네가 무슨 왕이라도 되는지 아는 거야?. 나도 이제 너랑 놀기 싫어. 걱정하지 마 꺼질 테니까'


기준이는 울먹이면서 한마디 하고 돌아서서 내려가 버렸다. 그 녀석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서 대꾸하지 못했다. 기준이와 그렇게 싸우고 나서 나는 동진이에게 그 녀석과 놀지 말라며 편 가르기를 했다. 기준이 녀석이 너무 미웠다. 그래서 동네 담벼락과 길바닥에 스프레이나 크레파스, 물감 같은 것으로 낙서를 했다. '기준이는 멍청한 놈, 기준이는 덜 떨어진 놈, 기준이는 돌대가리'등 적으며 놀리고 괴롭혔다. 간혹 기준이가 동네 슈퍼를 들렸다가 골목길로 지나갈 때 동진이와 대놓고 놀렸다. 그럴 때마다 그 녀석은 고개를 숙이고 재빨리 뛰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기준이와 관계를 나는 더욱 악화시키며 1년 남짓 보낸 것 같다. 기준이는 더욱 소심해지고 우리와는 다시는 안 볼 것 같았다. 그러다 기준이 친형인 기석이 형을 만나게 되었다. 기석이 형은 딱히 기준이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지만 우리에게 감정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야, 기준이가 너희들하고 다시 놀고 싶은데 너희들이 무섭다고 하더라. 무서워서 먼저 말을 못 걸겠다고. 적당히 좀 해라. 난 너희들이 진짜 짜증 나고 맘에 안 들어. 기준이를 괴롭히고 낙서한 것만 생각하면 때려죽일까 생각도 했는데, 기준이가 때리지 마라고 해서 참는 거야. 알았어?'


그 말을 듣고 나와 동진이는 서로의 눈치를 보다가 내가 먼저 말했다.


'동진아, 기준이한테 사과할까..?'

'그럴까? 우리 정말 나쁜 놈들 같아. 기준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좀 심한 것 같긴 해. 낙서한 것들 다 지우고 내일 사과하러 가볼까?'


기준가 우리랑 다시 놀고 싶었다는 말을 듣고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정말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사과를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이모 든 것이 내 동생 상준이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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