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는 이제 산업스파이의 주 대상국이다.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김상국
2024년 2월 14일 서울고법 행정10부(재판장 성수제·양진수·하태한 부장판사)는 용인시를 상대로 낸 『주민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주민소송단이 용인경전철 사업의 책임자들에게 제기한 총 1조 32억 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한 소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사업을 시작한 전(前) 용인시장과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원들에게 총 214억 6천여만 원을 용인시에 지급하도록 현 용인시장이 청구하라고 판결이었다.
“경전철을 결정한 당시, 시장은 교통연구원의 과도한 수요예측에 대해 최소한의 타당성 검토도 하지 않고, 사업시행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실시협약을 2004년 맺어 중대한 과실이 인정된다.” 또한 "사업시행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이 포함되도록 실시협약 안을 체결한 것은 시장으로서 '선량한 관리자에게 요구되는 일반적인 주의'를 게을리한 것"이라고 밝혔다.
더욱이 "실시협약 안을 검토한 기획예산처 장관이 '30년간 90% 운영 수입 보장은 축소할 필요가 있다'는 심의 결과를 통보했지만, 용인 전(前) 시장은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며, "거액의 재정 지출을 수반함에도 용인시의회의 사전 의결 절차 등 법령상 필요한 절차도 준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용인경전철 개통 후 실제 탑승 인원은 예상치의 5~13% 수준에 불과했다"며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원들도 수요예측 결과를 잘못해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물론 이번 고등법원의 판결에 대해 당사자들은 재상고할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 돈을 받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벌금 회수의 기간이나 금액과는 무관하게 이번 판결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첫 번째는 지금까지 비교적 소극적이었던 행정적 의사결정에 대해서 기존 판례와 달리 손해배상 책임을 정면으로 인정하였다는 점,
두 번째는 재임 기간뿐 아니라 퇴임『후(後)』에도 지나치게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행정 행위에 대해서는 그것이 위법인 경우에는 책임을 물었지만, 비합리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그렇게 크게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많은 경우에, 누가 보아도 불합리한 결정을 지자체장이 하여도, 뇌물수수 등의 불법적 요소가 밝혀지지 않는 한 그 책임을 묻지 않았다. 특히 퇴임 후에는 유야무야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퇴임 후에도 임기 중의 지나치게 불합리한 행위나 중요한 필요 절차를 밟지 않았을 때는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법원의 태도 변화다.
이전 글에서 용인경전철과 함께, 부산-김해경전철, 의정부경전철 그리고 4대강사업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하였으므로 이번 글에서는 주로 최근 문제가 되는 산업스파이와 징벌적 처벌에 대해 주로 설명하겠다.
징벌적 처벌(배상)의 법적인 정의는 “가해자에게 특히 고의 등의 주관적인 악사정이 있는 경우에 보상적 손해배상에 덧붙여 위법행위에 대한 징벌과 동종행위의 억지를 주목적으로 하여 과하여지는 손해배상으로서, 보통법(common law)상 인정되고 있는 구제 방법의 일종인바, 이는 불법행위의 효과로서 손해전보만을 인정하는 우리의 민사법 체계에서는 인정되지 아니하는 형벌적 성질을 갖는 배상 형태”라고 한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긴 설명을 가슴에 와닿게 짧게 설명하면 ①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자가 ② 상식에 크게 어긋나는 행위를 했을 때 ③ 일반적인 처벌을 훨씬 뛰어넘는 처벌을 하는 행위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이전에도 소개했지만 포드(Ford) 자동차의 핀토(Pinto) 케이스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포드는 대중적인 차인 핀토에 설계상의 결함이 있어 충돌 시 화재가 나기 쉽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 상식적 수준에서 일을 처리한다면, 사건이 나기 전에 자동차를 리콜하여 수리하여야 했다. 그러나 포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영악’한 계산하였다. 즉 실제 화재 사건이 나면 보상액은 약 4,950억 달러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리콜하여 모든 차를 고치는 데 드는 비용은 1억3,700백만 달러다. 즉 고치는 데 드는 비용이 보상비용보다 훨씬 더 많다. 그러니 ‘리콜하지 않고, 실제로 사고가 나면 그때 보상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다.’라고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고가 실제로 터졌고, 포드 입장에서는 안타깝게도 포드의 이런 영악한 계산 내용이 그만 법정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하였다. 피해 당사자에게 포드자동차는 피해보상금으로 500만 달러를 지급해라(당시 발생한 사건은 한 건이었음). 그리고 징벌적 벌금으로 1억 2천500만달러를 『추가로』 납부하라고 판결하였다. 결국 ① 사회적으로 책임이 있는 대형 기업인 포드는 ② 상식에 크게 어긋나는 영악한 계산을 한 책임으로 ③ 법적인 책임이 있는 500만달러 이외에 ④ 징벌적 벌금 1억2천5백만달러를 추가로 납부하게 된 것이다. 결국 내부적으로 계산한 모든 금액을 내야만 하였다.
결국 징벌적 처벌이란 사회적으로 책임이 있는 당사자가 그 책임을 고의로 크게 어긋나는 행위를 했을 때, 불법적으로 얻은 모든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라는 판결인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미래에도 계속해서 불법적 행위로 이득을 얻는 행위를 지속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서도 우리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내게 하는 행위들이 있었다. 다음과 같은 사건들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생각된다. 얼마 전 일이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리라고 생각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 대형 유통업체인 홈ㅇㅇㅇ의 고객 개인자료 판매사건, 개별상품보다 더 비싼 모둠 상품(번들 상품)의 판매, 폭스바겐과 일본 도요타의 배기가스 성분 조작, 마일리지 조작 사건, BMW 화재 사건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열거된 기업들은 사회적으로 충분히 책임 있는 기업들이었고, 당연히 국민들이 공분을 일으킬 만한 사건들이었다. 그리고 사건의 내용도 국민들의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생필품과 관련된 일이었고, 집 다음으로 가장 비싼 재산인 자동차를 살 때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주행거리와 배기가스 문제였다.
특히 나에게는 독일과 일본의 대표적인 자동차 브랜드가 그랬다고 하여 정말 의외였다. 일본이야 자기에게 불리하면 언제나 역사도 왜곡하고, 거짓말도 잘하는 나라이니 그랬을 수 있지만, 독일 자동차 회사가 그랬다는 것은 나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이런 악의적이고 의도적인 불법행위가 발생할 때마다 그간 우리나라 사법제도는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즉 포드자동차의 계산대로 그저 500만달러의 보상 이외에는 징벌적 벌금 1억2천5백만달러를 추가로 납부하게 하는 조치를 하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이번 용인경전철 사건에 대한 고등법원의 판결은 미래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비록 징벌적 처벌은 없었지만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막기 위해 환경보건법이 개정되었고, 제2의 BMW 사건을 막기 위해 자동차관리법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발표는 아쉽지만 그래도 보기 좋은 결과였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징벌적 처벌의 대상은 매우 광범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포드자동차의 경우처럼 제조업도 해당되지만, 고의적으로 지하수를 오염시킨 기업에 대한 파산 처벌, 원자탄 기밀을 누설한 부부에 대한 사형 선고, 군사기밀을 돈을 받고 판매한 연구원에 대한 32년의 형, 도덕적 패륜 행위에 대한 중징계 등 징벌적 처벌의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즉 징벌적 처벌은 감각적으로 설명한 것처럼 ① 사회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생각되는 자가 ② 상식에 『크게 어긋나는 행위』를 했을 때 가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면 그 대상은 매우 광범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기업이 그 기업 크기에 어울리지 않는 비도덕적인 행위를 했을 때, 공무원들이 국민들의 이익에 크게 어긋나는 행위를 했을 때, 군인들이 자국 국방에 관련되는 중요 기밀을 누설했을 때, 기업의 직원이나 연구자가 기업의 귀중한 기술을 사익(私益)을 위해 경쟁사나 다른 국가에 제공할 때, 그리고 일반 개인도 사회적 통념에 크게 어긋나는 행위를 할 때, 예를 들어 존속상해 행위 등을 할 때 징벌적 처벌이 내려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① 산업스파이와 ② 군사기밀 관련 사항이다. 우선 과거에 있었던 재미있는 산업스파이 사건을 소개해 보겠다. 국가 경제가 크게 흔들릴 만큼의 큰 사건들만 소개하겠다.
(1) 베르사 이유 궁전 유리의 방과 이탈리아의 유리공업
지금은 너무 흔한 유리지만 과거에는 매우 비싼 제품이 유리였다. 로마 시대에도 유리로 병과 장식품을 만들었지만, 그 크기는 별로 크지 않았다. 우리나라 신라 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리병들도 크기는 손가락 정도로 매우 작고, 품질도 불순물이 많이 썩어 있다. 골동품이 아니라면 지금 어린아이 구술보다도 품질이 더 나쁘다. 그러나 당시에는 왕가 무덤의 부장품이 될 만큼 값비싼 물건이 유리였다.
그림 1. 베르사유 궁전의 유리의 방. 지금 보면 너무 평범한 유리 거울들
유럽의 왕 중에서도 허영의 대명사라면 베르사유 궁전을 건설한 루이 14세다. 그는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고 싶어 가장 최고의 궁전에 가장 화려한 장식을 하고 싶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궁전 내 『유리의 방』이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 가장 비싼 재료인 유리를 사용하여 그 방 모든 벽면을 꾸미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유리는 이탈리아 특산품이었고, 가격도 너무너무 비쌌다. 그래서 아무리 재정이 풍부한 불란서였지만, 길고 긴 무도회장인 큰 방을 유리로 꾸민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루이 14세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바로 산업스파이를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당시 유리는 베네치아의 독점품이었고, 독점상품은 당연히 비싼 가격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비싼 제품을 만드는 기술은 많은 다른 나라들이 탐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베네치아 정부는 모든 유리장인들을 베네치아 섬 중의 하나인 무라노(Murano)섬으로 강제 이주시켰고, 거기에서 특별한 허가를 받지 않으면 나갈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자유를 제한하는 대신에 유능한 장인에게는 귀족 작위를 주고, 면세 특권까지 제공하였다. 그 대신 엄격한 비밀 유지를 요구하였으며 위반 시에는 사형까지 집행하였다.
이런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던 루이 14세는 묘책을 꺼냈다. 비밀리에 엄청난 거금을 주고 무라노 유리장인 18명을 파리로 이주시켰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베르사유 궁전 건설에 필요한 모든 유리를 제작하게 하였다.
당연히 유리의 독점가격은 급락하였고, 베네치아의 세수는 급감하였다.
지금 보면 베르사유 유리의 방은 그리 감격적이지 않다. 더욱이 우리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방의 다른 장식품이지, 가로세로 한자 정도의 검으틱틱한 유리는 현대의 우리에게 전혀 감동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방은 그런 매우 흥미로운 산업스파이 역사가 있는 방이다. 더욱이 그 방에서 1, 2차세계대전의 항복조인식까지 행해졌으니 더욱 흥미로운 방이 되었다. 그래서 유리로서의 가치는 떨어졌지만, 역사적 가치는 더욱 커진 방이 되었다.
(2) 중국의 차 산업스파이
무라노섬의 유리 산업스파이 사건은 영국인 로버트 포츈(Robert Fortune)이 벌린 중국 차 산업스파이 사건에 비하면 어린아이 수준이다. 중국의 차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에 의해 유럽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므로 차 산업에 있어서는 영국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비해 후발 주자다. 그러나 “늦게 배운 도둑이 더 무섭다.”는 우리 속담이 있듯이 영국인들의 차사랑은 지나칠 정도였다. 왕이나 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영국인들조차 ‘애프터 눈 티’를 마시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그리고 애프터 눈 티를 마실 때 얼마나 좋은 차, 얼마나 좋은 중국 도자기(차이나)에 담아 대접하느냐가 그 왕과 집안의 부(富)를 평가하는 기준이었다. 영국인의 차 사랑이 오죽 심했으면 1, 2차세계대전 시 영국군의 사기는 군인들에게 공급되는 차의 량과 비례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림 2. 참호밖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 영국군인들
하여튼 동양이나 서양이나 자랑하는 것은 양보할 수 없는 최고의 취미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대량의 차를 중국으로부터 수입하였다. 그 양이 얼마나 많았으면 당시 영국 GDP의 10%를 차 수입에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국에 비해 중국은 자국에서 필요한 것은 모두 자국 내(內)에서 생산하는 자급자족의 국가였다. 그래서 외국과의 무역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았다. 유명한 일화로 무역을 청하는 영국 사신에게 건륭제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우리는 모두 가지고 있소.”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영국은 자기들이 필요한 차를 수입하기 위해 영국제 공산품을 수출하지 못하고, 경화인 은(銀)을 중국에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중국은 은(銀) 본위국가였다. 그러나 땅에서 나오는 은은 공급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은의 수요를 채울 수 없었던 영국은 차(茶) 대금으로 은 대신 제공한 것이 아편이었다. 그래서 그 유명한 『아편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은 이 아편전쟁에 패함으로써, 나라가 망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영국이 아편전쟁에서는 비록 이겼지만, 중국으로부터 차를 대량으로 수입하는 것은 엄청난 국부(國富) 손실이었다. 그래서 영국은 직접 차를 재배하기로 하였다. 영국의 동인도회사를 통해 차를 중국 운남성과 기후가 비슷한 인도의 북부 아쌈지방에서 차를 재배하기로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쌈홍차’의 기원이다. 그러나 베네치아처럼 중국도 차 산지에 대해서는 외국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문익점 선생님과 같은 사람이 바로 영국인 로버트 포츈이었다.
로버트 포츈은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생물학자 겸 식물채취자였고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을 딴 식물명이 14개나 있을 만큼 그는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동인도회사를 위해 2년 반 동안 중국 차 재배 기술과 차 만드는 기술을 훔쳐 왔다. 그는 북방에서 온 중국 고위 관리 행세를 하면서 산업스파이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다. 현재의 동무관(桐木關, 퉁무관)에서 그는 차나무 묘목 2만 그루와 종자를 구해 상하이로 보냈다. 또한 차나무 재배 기술과 제조기술을 스님으로부터 직접 배우기도 하고, 무엇보다 홍차 제조기술자 6인을 포섭하여 묘목과 함께 1851년 인도로 보냈다.
이러한 포츈의 맹활약으로 인도에서 차를 대량으로 재배함으로써, 전혀 차가 생산되지 않은 영국은 차 종주국인 중국을 제치고 전 세계 홍차 문화의 선두 주자가 되었고, 차 생산량 면에서도 중국을 추월하게 되었다. 중국의 차 독점시장은 이렇게 해서 깨지게 된 것이다. 중국의 경제적 손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림 3. 중국의 고위관리로 위장한 로버트 포츈
그림 4. 로버트 포츈
그림 5. 로버트 포츈이 블렌딩한 위타드 57
가. 원자폭탄 투하로 일본 군부가 항복을 결정하였을까?
약간 주제와 다른 이야기지만 우리가 정확하게 알아야 할 사항이 있다. 그것은 곧 ‘원자폭탄이 일본 군부를 항복하게 만들었는가?’이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낸 전쟁이었다. 과거 수나라, 당나라의 100만 대병이나, 유럽에서의 100년전쟁, 30년전쟁과 비교하면 2차세계대전은 7년간으로 비교적 짧은 전쟁이었다. 하지만 사상자(死傷者)가 아니라 사망자(死亡者)의 수가 인류역사상 가장 많은 약 7,500만명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것도 원자폭탄의 투하로 비교적 일찍 전쟁이 끝난 결과일 뿐이다. 당시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일본을 점령하려면 미국인 100만 명과 영국인 50만 명이 전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한다.
당시 독일의 항복으로 유럽에서는 전쟁이 끝났지만 일본은 끝까지 전쟁을 지속하려고 하였다. 일본의 항복은 일본 군부의 항복이 아니었다. 일본 히로히토 왕의 개인적 결정이었다. 이를 눈치챈 일본 젊은 장교 ‘하타나카’ 소좌가 주동이 되어 만든 ‘젊은 호랑이’ 그룹은 그들이 신이라고까지 추앙한 천왕의 녹음테이프를 찾아 없애려고 혈안이 되었었고, 일본 장성 중 유일하게 항복을 주장했던 ‘모리장군’을 하극상을 벌려 살해까지 하였다.
그리고 일본 군부에서는 당시 일본 국민 7,000만명 중에서 2,000만명이 희생되면 미국의 일본 본토 상륙을 저지할 수 있다는 『결호작전』계획까지 새우고 있었다. 원자폭탄 투하가 과잉 처사인지 아닌지를 아직도 논의하는 사람들이 정말 일본 군부의 이런 작전계획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직후에 일본 고위장성들의 회의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회의록을 보면 놀라웁게도, 히로시마 원폭 사실이 전혀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다만 본토 수호 작전만을 심각하게 논의했을 뿐이다. 나가사키에 제2 원자폭탄이 낙하된 후에야 고위 장성회의에서 원폭투하 피해가 논의되었다. 하지만 그때도 그들이 내린 결론은 1억 총옥쇄설의 지속과 2,000만명이 희생되더라도 본토 수호를 해야 한다는 결호작전이었다.
나. 일본은 원자폭탄 개발과 무관할까? 일본의 맹랑하기 짝이 없는 피해자 코스플레이
우리는 미국이 맨하탄 프로젝트를 먼저 실행하여 원자폭탄을 개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최초 원자폭탄의 완성은 미국이다. 그러나 원자폭탄의 개발 시작은 독일이었다. 최근에 방영된 “오펜하이머” 영화로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미국 과학자들은 매우 놀랐다. 그래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직접 편지를 보내게 되었고, 화들짝 놀란 미국은 24억 불이 소요되는 『맨하탄 프로젝트』를 곧바로 시작하였다.
당시 독일이 시작한 원폭 개발계획 명칭은 『Uranprojekt』였다. 일본도 독자적으로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를 ‘니시나 요시오’를 중심으로 시행하여, 이미 1936년과 37년 두 번에 걸쳐 사이클로트론을 완성하였다.
그 이후에도 사업명칭을 ‘B-리서치’, ‘니고 프로젝트’, ‘F-Go 프로젝트’로 바꿔가면서 핵 연구를 지속하였었다. 더욱이 일본은 나치 독일에게 우라늄과 원폭 개발 연구자료를 요청하였고, 독일은 560kg의 가공되지 않은 산화우라늄을 1945년 3월 말 잠수함 U-234에 실어 일본으로 향하게 하였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일본을 향해가던 U-234는 항해 도중 독일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에게 항복하였다.
자국민 2,000만명을 희생하더라도 전쟁을 지속하겠다는 일본 군부가 미국보다 먼저 핵 개발을 하였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었을까? 정말로 모골이 송연할 뿐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면 일본인 자기들이 원폭 피해자라는 코스플레이가 얼마나 허무맹랑하고, 그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표리부동한 사람들인가를 알 수 있다.
다. 당황한 소련과 미국의 스파이에 대한 징벌적 처벌
맨하탄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미국이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을 개발하여 2차세계대전은 종결되었다. 그러나 종결 후 가장 당황스러운 나라는 소련이었다. 왜냐면 냉전시대가 되면서 소련은 미국과 대등한 국가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원자폭탄의 위력을 너무 실감나게 느꼈다. 그래서 소련도 핵개발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 소련은 능력이 부족하였다. 그래서 산업스파이전을 벌였다. 그 결과 소련에 포섭되어 원자폭탄 비밀을 팔아넘긴 부부는 둘 다 모두 징벌적 처벌을 받아 사형에 처해졌다. 그런데 이런 원폭 기술을 훔친 사람은 이 부부 이외에도 있었다. 바로 개발 연구원들이었다.
라. 독일 이론물리학자 클라우스 푹스의 사례
핵폭탄을 최초로 완성한 미국은 맨해튼 계획을 통해 핵폭탄 4발을 완성하였다. 맨하탄 프로젝트는 총 24억 달러가 투입되었으며, 2020년 화폐가치로는 275억 달러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여 개발한 핵무기 개발 정보를 대놓고 ‘훔친’ 스파이들이 있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입수한 정보를 소련에 넘긴 ‘원자탄 스파이’들이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이론물리학자이고 우라늄 농축기술 개발에 참여한 클라우스 푹스(1911~88년)였다. 그는 종전 후 14년 형을 받았는데, 사형에 처해지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당시 소련이 2차세계대전 동맹국이어서 간첩죄가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리고 종전 후 소련은 부족한 자신의 능력을 보충하려고,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관련 정보를 빼내려고 시도했다.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공산주의자 과학자를 활용한 것은 물론이고, 미국에 파견한 스파이를 핵 개발 시설에 심으려고 혈안이 됐었다. 이러한 그들의 노력은 핵폭탄뿐만 아니라, 미국 우주 개발계획, 장거리 폭격기, 스텔스 비행기 개발 등 거의 대부분의 국방 프로젝트에 매우 깊숙이 작용하였다.
미국이 신무기를 개발하면 몇 년 후에는 소련도 개발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그리고 개발된 무기들의 모습이 매우 유사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된 이유의 배경에는 바로 이런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외국의 징벌적 처벌에서 산업스파이와 군사기밀 스파이 예를 든 이유는 다른 이유가 아니다. 이제는 우리나라가 바로 산업스파이의 대상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의 일부는 아직도 약간은 우리보다는 미국이나 일본 또는 독일이 더 낫지 않은가?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그리고 상당 부분에서는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의 예상과는 달리 우리나라가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분야가 상당히 많다. 특히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 반도체, 2차전지 분야 그리고 최근에는 방산 무기분야에서 우리나라의 기술력은 뛰어나다.
가전분야는 거의 대부분 우리나라 상품이 세계 최고이니 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미국 ‘콘슈머 레포트’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제네시스나 그랜져의 비교 대상은 놀라웁게도 벤츠나 BMW 그리고 렉서스다. 그러나 그런 차들은 제네시스 보다 최소 50% 또는 두배 이상 비싼 자동차다. 즉 우리나라 자동차의 품질은 비슷한 가격의 외제 자동차가 아니라 두배 이상 비싼 자동차와 비교된다는 것이다.
그럼 이것이 무엇을 뜻할까? 우리나라 자동차는 이미 비슷한 가격의 차와는 비교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주요 비교 항목인 신차의 결함 수 그리고 5년 이내 고장 건수에서도 우리나라 차는 벤츠나 BMW, 렉서스 모두를 추월하고 있다. 특히 렉서스에 대해서는 모든 면에서 추월한다. 다만 독일차에 비해서는 우리나라 차가 명성과 장기적 내구성에서 떨어진다. 그러나 내구성이라고 해도, 10년 이상 타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가 생각하건데 우리나라 차가 가장 대접 받지 못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아닌가 한다.
더욱이 전기자동차의 경우에는 중국의 BYD가 일등이고, 테슬러가 다음이며 그 다음이 우리나라 현대기아다. 그러나 BYD는 자국 내 소비가 95%이고 수출은 5% 밖에 안된다. 그리고 혹한으로 밧데리의 성능이 쉽게 떨어지는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에서는 테슬러보다도 압도적으로 우리나라 현대기아차가 훨씬 더 많이 판매된다.
다음의 충격적인 사진을 참고하기 바란다. 정부 보조를 받기위해 무리하게 생산된 중국 전기 자동차의 잘 보이지 않는 뒷 모습이다.
그림 6. 카씨트 비닐도 벗겨지지 않은채 버려진 중국 BYD 전기 자동차
그런 자동차와 가전제품에서 산업스파이의 밝혀지지 않은 사례가 많다. 삼성 LED TV가 유럽 가전제품 전시회로 향하던 중 실종된 사건, 삼성, LG 직원들의 갑작스런 사표 제출과 중국 본토 기업으로의 취직, 그리고 몇 년 후 기술 제공이 끝난 후 가차없이 버려지는 불쌍한 사연들을 우리는 너무 많이 보고 있다. 물론 직업선택의 자유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기술을 개발하려고 소요된 기업들의 재정지출, 그리고 타 연구원들의 피땀 흘린 노력들을 생각하면, 그러한 지식과 노하우는 절대로 그 개인의 자산이라고 할 수 없다. 중국의 빠른 LED TV 제작기술은 그들의 노력만이라고 절대 생각되지 않는다. 이런 기업정보를 불법유출한 사람들의 행위는 무라노의 유리 기술자와 중국의 차재배 기술자들과 같은 엄중한 국가적 배신행위이고 배임행위라고 생각한다.
가전제품 이외에 신기술 분야의 불법 기술 유출의 가장 심각한 사례는 방산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바로 코앞의 문제다. 인도네시아와의 KF-21전투기 합작개발은 더 말할 나위없는 폐착 중의 폐착이다. 지금이라도 작은 이유에 매달리지 말고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문제는 얼마 전 발생한 USB에 담겨진 KF-21 설계 관련 기밀이다. 물론 KAI에서 유출 전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USB에 담겨진 내용은 인도네시아 기술자들이 출입할 수 없는 분야에서 개발된 내용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것은 분명히 우리나라 기술자가 빼내 준 것이다.
설령 그 기술적 내용이 인도네시아로 건너갔다고 해서 인도네시아가 그 자료를 이용하여 전투기를 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그 자료는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기술자가 우리나라 기술자에게 만약 금품 등을 주었다면, 그것은 중국 돈일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다고 본다. 인도네시아는 돈도 없고, 자국에서 전투기를 만들 염려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국으로 그 기술이 넘어가면 우리나라 안보에는 심각한 영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중국의 J-20 스텔스 전투기는 비행기에 대한 상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 보면 카나드까지 달린 스텔스 비행기가 아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길쭉한 형태를 보면 높은 스텔스 성능을 갖기가 쉽지 않게 보인다. 그리고 2만 파운드를 약간 넘는 엔진추력을 보면 마하 2 이상으로 도저히 날 수 있는 비행기가 아니다. 더욱이 비오는 날에는 스텔스 도료가 벗겨질까봐 출동하지도 못하고, 중국이 자랑하는(?) 산동(山東) 항공모함에서는 이착륙도 버겁다. 당연히 폭장량도 이륙을 위해서는 형편없이 줄어들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KF-21의 날렵한 모양과 스텔스 기술, 도료(塗料)기술이 전해진다면 그것은 우리나라 안보에 심각하고 또 심각한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대만과의 전쟁 발발 가능성이 있고, 우리나라의 참전도 불가피해지는 현 상황에서 중국 스텔스 비행기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우리나라를 공격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내가 보기에 이런 행위를 한 자는 국가적 차원에서의 배신이고, 징벌적 처벌의 전형적인 대상이 된다고 생각한다. 늦춰도 될 일이 아니고, 슬그머니 넘어 갈 일은 더더욱 아니다. 빠른 조사와 빠른 징벌적 처벌은 그야말로 1벌100계의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방산은 우리나라 주요 미래 먹거리다. 반도체 다음의 우리나라 먹거리는 방산무기사업과 2차밧데리 그리고 인공지능 관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만큼 앞서있는 우리기술을 탐내는 나라는 있을 수밖에 없고, 그 나라가 어느나라인지는 불을 보는 듯이 뻔하다.
당국의 확실하고 빠른 조사와 엄중한 징벌적 처벌을 심각하게 요구한다. 그냥 쉽게 넘어 갈 일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는 “제비 한쌍이 오는 것을 보고, 천하에 봄이 왔음을 안다.”라는 속담이 있다.
작은 일이지만 큰 일이 있고, 큰 일처럼 보이지만 작은 일이 있다. 호미로 막을 것을 잠깐 시간을 늦춤으로써, 가래로 막는 것이 아니라, 트랙터로 막아야 할 일이 벌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