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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국 Jul 17. 2024

나의 홍천 한달살기 10락(2)

; 나의 자연 친화기

              나의 홍천 한달살기 10락(2)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김상국     

비가 내린다. 주룩주룩 내린다. 장맛비니까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 남쪽에서는 호우비가 내렸지만, 여기 홍천은 비가 매우 『얌전하게』 내렸었다. 얌전히 내리는 비가 ‘채곡채곡’ 쌓여가는 느낌으로 내렸었다. “홍천 사람들이 얌전한가?, 그 지역 사람들은 그 지역의 자연 특성을 닮아간다는데.”     

 

하지만 지금은 상당히 강하게 내린다. 이제는 제법 여름 장맛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의 장맛비와는 다르다. 홍천의 여름비는 장맛비까지도 얌전하다고 할까?     


1. 장마와 관련된 두 시인의 시     


천상병 시인의 『장마』라는 시다.     


“내 머리칼에 젖은 비

어깨에서 허리께로 줄달음치는 비     

맥없이 늘어진 손바닥에도

억수로 비가 내리지 않느냐, 

    

비여

나를 사랑해 다오.  

   

저녁이라 하긴 어둠 이슥한,

심야(深夜)라 하긴 무슨 빛 감도는, 

    

이 한밤의 골목 어귀를

온몸에 비를 맞으며 내가 가지 않느냐,

     

비여,

나를 용서해 다오.”

     

그 깨끗한 천상병 시인이 무엇을, 왜 용서해 달라는지는 모르겠다. 이승에 소풍을 와서 귀천(歸天)하는 동안 너무 많은 것을 욕심냈다는 말일까? 그러나 천상병 시인이 욕심을 냈다면, 나는 아마 스크루지일 것 같다.


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이해인 수녀님의 『장마 뒤의 햇볕』이라는 시다.   

  

비 오는 내내 나는 우울했어요.

사소한 일로 속상해

울기도 했어요.


날씨 탓이라고 원망도 했답니다.     

오랜만에 햇볕 드니 기뻐요.


고마워요.

내 마음도 밝아져요. 

    

"오, 해를 보니 살 것 같네!"

외치는 사람들 속에

나도 있어요.     


마음에 낀 곰팡이도 꺼내서

말려야겠어요.     


더 밝은 마음으로

사랑을 해야겠어요.   


푸른 하늘 아래 환히 웃고 있는

붉은 칸나와 같이.    

 

시인들의 마음은 왜 이리 고울까? 그래서 시인이겠지? 그래서 나 같은 속인들이 그 시를 읽으며 잠시라도 조금 멋진 생각을 하는 거겠지? 홍천은 나에게 이런 마음의 기쁨을 너무 자연스럽게 가져다준다.  

   

이것이 나의 홍천 한달살기 ‘5락’이다.     

((이전 나의 글 “나의 홍천 한달살기(1)” 글에서, 맑은 공기(1락), 시골의 고요함(2락), 청량한 풍경(3락) 그리고 잊어버렸던 소리 찾기(4락)를 말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5락부터 시작하였다.))     


2. 홍천에서 새롭게 느끼는 빗방울 소리   

  

나는 시골 출신이기 때문에 소낙비나 여름비를 촐촐 맞는 것은 매우 익숙한 편이다. 당연히 비 내리는 소리도 익숙하다. 그러나 여기 홍천에서 한달살기를 하며 듣는 빗소리는 조금 다른 것 같다.   


펜션 아주머니의 특별한 배려로 작은 수영장이 딸린 집을 절반도 안 되는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빌릴 수 있었다. 그것도 숲 바로 옆 건물이다. 위치가 가장 높은 집이기 때문에, 아랫녘에만 집이 보일 뿐, 하늘도 옆에 있는 숲도 다 나의 것이다.      


내 시골집에서도 비 내리는 것은 항상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높은 곳에서, 바로 옆에서 비 내리는 모습은 일반 시골집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시골집은 처마가 있고, 또 땅을 돋운 후 두세자 높이 위에 집을 짓기 때문에, 마당에 떨어지는 비는 볼 수 있다. 하지만 방 안에 앉아서, 빗방울이 가는 옷깃 안으로 파고드는 차가운 감촉은 느낄 수 없다.   

  

지금 내가 있는 펜션은 사각형의 수직 벽 집이다. 그러므로 비가 조금 경사져 내리면 유리창을 때리게 된다. 대부분 그런 경우 유리창을 닫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유리창을 열어 놓았다. 그러면 맨 밖의 모기장에 빗방울이 부딛힌 후, 가는 물방울로 부서져서 나에게 뛰어온다.    

 

그 감촉이 나는 좋다. 주위 온도보다 훨씬 더 차겁다. 비는 추운 하늘의 낮은 온도 때문에 수증기가 물방울이 되어 내리는 것이니, 비는 차가울 수밖에 없다. 옷을 파고드는 그 한기(寒氣)가 너무 좋아 나는 그렇게 앉아 있다. 때로는 가는 모기장 마저도 치우고 싶지만, 호의를 베푼 아주머니가 힘들어질 것 같아 그러하지는 않았다. 아침 저녁으로 느끼는 바람의 차거운 기운도 나를 사뭇 기분 좋게 한다. 여름 밤에 느끼는 열대야가 아닌 찬 기운이라니...    

      

한 여름에도 느낄 수 있는 이런 홍천의 한기(寒氣)가 나를 즐겁게 한다.  

   

이것이 나의 홍천 한달살기의 ‘6락’이다.    

   

3. 때 아닌 빨간 고추 잠자리     


그런데 요즈음은 자연에도 계절이 별로 합당하게 적용되는 것 같지 않다. 나도 과일을 좋아한다. 특히 딸기와 수박은 나의 최애 과일이다. 하지만 딸기와 수박은 요즈음에는 여름 과일이 아닌 것 같다. 일년 사시사철 나온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제철 과일이 아닌데도 제철 과일만큼 맛이 좋다는 사실이다.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이상한 일이 자연에서도 생기는가 보다. 가을이 오기는 아직도 한참 이른데, 벌써 코스모스가 피고, 빨간 고추잠자리가 날라 다닌다. 저 잠자리도 유전자 변이가 일어났나? 전혀 생활에 도움이 인되는 쓰잘데기 하나 없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때 이른 코스모스와 빨간 고추잠자리가 어찌 나의 기쁨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나의 홍천 한달살기의 ‘7락’이다.   

  

4. 강원도 꽃 색의 통랑함과 크기     


나는 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정도가 조금 지나칠 정도다. 내 차 트렁크에는 삽, 곡괭이, 도끼, 끈, 비닐봉지 그리고 큰 보자기가 상시 준비되어 있다. 옛날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다니던 지인이 “교수님이 아니었다면 의심을 해볼 정도인데요!”라는 농담을 들을 정도로 완비되어 있다. 목적은 단순하다. 시골길을 가다가 좋은 꽃이 있으면 수집하기 위해서다.      


좋은 꽃을 발견하면 우선 주인집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주인이 있으면 “꽃이 너무 예뻐 조금 분양받고 싶습니다. 제가 막걸리 값을 드리겠습니다.”하면 대부분 그냥 가져가라고 하거나, 막걸리 값을 드리고 가져온다.     

그러나 때로는 주인이 없을 때도 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나를 합리화시킨다. “책 도둑과 꽃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데.” 그리고 가져온다. 다행히 아직 까지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여기 홍천과 강원도에 오니, 옛날 우리나라 토종 꽃들이 많이 남아있다. 꽃 크기도 크고, 무엇보다 공기가 맑아서인지 꽃 색깔이 그렇게 맑고 깨끗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품격이 있고, 귀태가 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여기 강원도 홍천의 꽃이 그러하다.

     

이것이 나의 홍천 한달살기의 ‘8락’이다.


5. 까마귀 떼 이야기  


우리나라에서 까마귀는 그리 환영받는 동물은 아니다. 검은색도 그렇고 우는 소리도 그리 기분 좋은 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 세계가 꼭 그렇지는 않다. 길조라고 생각하는 나라도 있다. 조금 다른 이유지만 영국 왕실에서는 까마귀를 반드시 키우는 궁전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그 궁전에 까마귀가 몇 마리 있어야 영국 왕실이 유지된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궁전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하였다. 까마귀, 까치, 구관조, 앵무새는 영리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까마귀가 몇까지 셀 수 있는가를 실험한 것이다. 

    

그래서 까마귀가 자주 앉아있는 탑에 총을 맨 군인들을 한명, 두명, 세명 계속해서 입장시키고 또 퇴장시켰다. 그랬더니 까마귀가 일곱명의 군인이 들어가고 일곱명의 군인이 나올 때 까지는 탑에 돌아오지 않았지만, 여덟명이 들어가서 일곱명이 나오면, 자기들이 좋아하는 탑의 자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까마귀는 일곱까지 셀 수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하는 수치를 얻었다고 한다.  

   

나에게도 까마귀와 관련된 강력한 기억이 있다. 내가 살던 곳은 평야지대였다. 그래서 가을에는 벼 가을걷이를 한다. 그러면 논에는 많은 낙곡(落穀)이 떨어져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낙곡을 잘 줍지 않았다. 두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고, 다른 하나는 동물들을 위해서다.    

 

그런데 정확히 새벽 6가 되면 하늘이 까말 정도로 까마귀 떼가 날아왔다. 그런데 어느 때 부터인지 까마귀가 사라졌다. 도통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여기 홍천에서 그 까마귀들을 보았다. 한 마리가 아니다. 물경 5마리다. 옛날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지만, 그래도 자연이 살아난다는 명확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나에게는 매우 기분 좋은 사실이다.     


이것이 나의 홍천 한달살기의 ‘9락’이다.   

        

6. ‘개구리 구하기’와 ‘짝을 찾은 뻐꾸기’     


 홍천 한달살기를 하면서 ‘개구리 구하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글 첫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펜션 앞에는 푸른색 타일로 벽을 두른 아주 작은 풀장이 있다. 그런데 타일색이 푸른색이어서인지 개구리들이 가끔 떨어진다. 아마 물이라고 생각하고 뛰어든 것 같다.   

   

그러나 한번 빠진 개구리는 높은 타일 벽을 다시 올라갈 수가 없다. 그래서 수십번 노력하다 결국 죽어버린다. 처음에는 그런 줄 몰랐다. 왜냐하면 죽은 개구리의 색이 떨어져 있는 낙엽의 색과 거의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째기 힘겹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서야 개구리인 것을 알아차렸다. “애구, 저 불쌍힌 것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살아있는 개구리 옆에 죽은 다른 개구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네들이 부부인가? 그러나 아니라는 생각이 금방 들었다. 왜냐하면 양서류는 부부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짝짓기를 위한 그 순간의 암수일 뿐이다. 그러나 나란히 있는 두 마리의 모습이 왠지 애잔한 생각을 더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채집망으로 죽은 개구리를 먼저 꺼내놓고, 바로 옆에 살아있는 개구리를 꺼내 놓아주었다.      


나의 눈에 그렇게 보였는지 모르지만, 풀려난 개구리가 한참 동안 애도하는 듯이 가만히 앉아있었다. 나의 괜한 생각이겠지? 하면서도 나도 옆에서 계속 지켜보았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옆 죽은 개구리를 한번 쳐다보고 떠나갔다.     


그후로 매일 내가 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코딱지만한 풀장을 관찰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4마리의 개구리를 구해주었다. 네 개의 생명을 구한 것이다. 착한 일을 했을까? 기분이 나쁘지 않다.

     

홍천은 시골이라 아무래도 동물들이 많다. 멧돼지야 볼 수 없지만 개구리, 참새, 뻐꾸기, 어치 등 많은 새들이 있다. 이전 글에서도 뻐꾸기를 말했지만 뻐꾸기는 밤에 ① 외로이 ② 슬프게 ③ 계속해서 우는 새임으로 별명이 참 많다. 귀촉도(歸蜀途), 두견새(杜鵑), 소쩍새, 접동새, 자규(자귀,子規), 불여귀(不如歸) 등이다. 

             

나라를 잃은 촉나라 왕 두우가 돌아가지도 못하고 자기 아내까지도 빼앗긴 후  슬피 운다는 귀촉도, 두견새, 불여귀, 그리고 그 원한의 빨간 피가 진달래 꽃잎을 붉게 물들였다는 두견화(진달래 꽃의 다른 이름), 가난한 사람들이 쌀로 밥을 지을 솥이 적다는 ‘소쩍새’, 우는 소리가 ‘접동접동’한다고 하여 접동새 등등   

  

그런데 내가 올 때부터 외롭게 울던 접동새가 그만 짝을 찾았나 보다. 한곳에서만 계속 울던 접동이가 어느 땐가 우리 펜션 바로 옆 숲에서 울더니, 또다시 먼 산에서도 울기 시작한다. 그러나 울음소리가 한 마리가 아닌듯하다. “접동, 접동, 접접동”하는 사이에 “접동 접동” 하는 소리가 또 하나 들리기 시작하였다.  

    

“오, 해피데이!”다.      

 

이처럼 홍천 한달살기는 나에게 자연을 더 심도 있게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것이 나의 홍천 한달살기의 ‘10락’이다.     


아, 그러나 이 모든 좋은 것에는 ‘끝이 있는가 보다,’ 벌써 한 달의 끝이 거의 다가온다.    

  

서운하다. 

많이 섭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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