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은 뭐든 곧잘 했었다. 달리기는 전교 여학우 사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다. 배구, 농구 등의 구기 종목에서도 체육 시험 점수는 대부분 만점을 받았다. 운동회를 하면 늘 반 대표가 되었다. 선수를 할 정도로 재능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일반인 수준에서는 평균 이상은 해왔다. 생각한 대로 몸이 잘 움직여준다고 생각했고, 덕분에 운동과 체육시간은 늘 즐거웠다.
교수, 교사이신 부모님이셨기에 공부를 놓을 수는 없었지만 크게 재능이나 흥미가 있지는 않았다. 전형적으로 좋아하는 과목만 잘하는 편이었는데 고등학교 수업 중에는 애석하게도 애정이 가는 과목이 음악과 체육 외에는 없었다. 대학 뭐 어디든 가겠지, 성적 맞춰서 전공도 정해야지 라며 막연하게 생각했었고 내신이나 모의고사 성적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학교 자체 모의고사를 봤는데 한 과목에서 50점 만점에 8점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무슨 생각으로 살았는지 알 수가 없는 시절이다.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중반이 지나고 문과, 이과를 선택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당시 지구과학에 조금 흥미를 느끼고 있어 이과를 선택할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모르는 선생님이 교실에 찾아와서 누군가를 찾는다고 하시는데, 반 친구들이 나를 가리켰다. 선생님은 날 보더니 따라오라고 하셨다. 따라간 곳은 학교 체육관에 있던 선생님의 자리였다.
자리에 앉으시며 선생님은 대뜸 나에게 50m 달리기 몇 초나 나오냐고 물으셨다. 그 선생님은 3학년의 체육대학 입시반 담당 교사셨고, 1학년 중에서 다음 목표물(?)을 찾기 위해 반마다 방문하며 '이 반에서 달리기 제일 빠른 학생'을 찾아다니신 것이었다. 우리 반에선 내가 당첨이 되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체육학도'의 길을 처음 마주한 날이었다.
'체육대학이라. 가는 건 둘째치고 가서 뭘 배우며, 졸업하면 무슨 직업을 갖게 되는 거지? 내 몸 하나 잘 뛴다고 해서 공부가 되는 것도 아닐 테고, 모든 강의가 다 체육 수업도 아닐 텐데?'
체육대학에 진학한다는 것에 대한 내 첫 번째 인상은 딱 이랬다. '가서 뭐 해?'
부모님께 슬쩍 말씀을 드렸지만 역시나 생각해보신 적이 없으셨던지 단번에 'NO'를 외치셨다. 예상했던 반응이었고 나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아버지가 물으셨다.
"체육 대학 준비해 볼래?"
음? 뭘 한다고요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