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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따라가기만 해야할까?

타인의 시선에 민감한 한국인

by 부엉


전현무 썸네일.jpg © Youtube '엠뚜루마뚜루 : MBC 공식 종합 채널'

'나 혼자 산다'에서 전현무가 러닝을 시작하는 이유를 말한다. '주변을 보니 나만 빼고 다 뛰고 있다.' 방송에서 트민남(트렌드에 민감한 남자)을 자처하는 그는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러닝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가 방송에서 구매한 러닝용품이 무려 100만 원어치.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전현무 러닝 용품'에 관한 정보가 오고 간다.


마라톤 자료1.jpg ©국민일보


러닝 열풍이 거센 만큼 마라톤 대회 수도 늘어났다. 올해 개최한 마라톤이 약 500회 가까이 된다. 이는 작년 대비 새로 생긴 대회가 100개 이상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후죽순 늘어난 대회들로 많은 잡음이 들려오고 있다. 운영 미숙으로 인해 짐 보관부터 코스 이탈, 심지어는 사망 사고까지, 많은 문제가 생겨난 것이다.

셀럽의 소비를 따라 하는 사람들, 무분별하게 증가하는 대회. 양쪽 모두 그렇게 유쾌한 현상은 아니다. 이런 현상들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희화화되기도 한다. 우리는 왜 그렇게 트렌드 좇지 못해 안달인 걸까?


<나 센스 없나?>

매트릭스.jpg ©Matrix

직장에서 "00 씨는 센스 있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으면 당연히 기분 좋다. 이 말은 곧 '눈치가 빠르다'고도 해석된다. 트렌드에 민감한 업계에서는 '흐름을 잘 파악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누구나 센스 있는 사람이고 싶다. 이런 욕구는 일상에서도 이어져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나 센스 없나?'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허겁지겁 유행을 쫓아가는 것이다. 그 트렌드가, 그 패션이 나에게 어울리는지 어떤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유행은 빠르게 지나가니 자칫하다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특정 시점부터 눈치를 보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것인데, 남들을 의식해 따라 하던 행위를 어느 순간부터 피하기 시작한다. 매트릭스에서 스미스 요원을 보면 도망가는 것처럼 말이다. 일례로 러닝 열풍과 함께 살로몬, 호카가 유행하다 어느 순간 '영포티 패션'으로 분류되어 기피되는 현상이 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들>

핫이슈지.jpg © Youtube '핫이슈지'

이수지가 유튜브에서 대치동 맘을 풍자한 것이 화제가 되었고, 그녀가 입은 몽클레어 패딩이 아이 교육에 극성인 강남 엄마들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몽클레어 패딩을 중고 거래 사이트에 내놓으며 못 입겠다고 하소연한다.

그중에는 정말 브랜드를 좋아해 입고 있던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강남 학부모가 아닌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걸 입는 자신을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그 시선이 신경 쓰여 입지 못하는 것이다. 순수하게 브랜드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타인의 눈치를 보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인은 눈치의 민족?>

빡빡한 사회.png ©KBS -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4337425


미국의 문화 심리학자이자 문화 규범 연구의 권위자인 미셸 겔팬드(Michele Gelfand)는 '빡빡한(tight) 사회', '느슨한(loose) 사회'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에게 강요되는 규범들을 이야기한다.


빡빡한 사회와 느슨한 사회의 기준은 '사회규범(social norms)'과 '일탈에 대한 관용(tolerance of deviant behavior)', 두 가지로 나뉘는데, 사회규범이 강하고 일탈에 대한 관용이 낮을수록 빡빡한 사회, 반대의 경우에 느슨한 사회로 정의된다. 즉, 빡빡한 사회일수록 개인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강하고 자유도가 낮은, 눈치를 보게 되는 사회라고 해석이 될 수 있다.

©KBS -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4337425

겔팬드 교수가 33개 나라 국민들을 상대로 진행한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빡빡한 사회를 지닌 나라 5위에 올랐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문화적 규범을 통해 받는 압력이 높다고 느끼는 것이다. 위 조사를 통해 한국인이 눈치를 많이 보는 이유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 검은색을 좋아하는 한국인>

검정 패딩.jpg ©Yonhap news

그래서일까? 한국인은 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려면 무리 안으로 숨어들어가야 하는데, 이는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고 싫어하는 걸 피하는 방법으로 해결된다. 그리고 무리 속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것이다.

겨울의 길거리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검정 패딩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고, 유행이었던 나이키 범고래, 살로몬 XT-6 신발 모두 검은색이 제일 많이 보였다. 이걸 보면 유행하는 아이템을 구매하되, 튀지 않도록 무채색을 선택하는 한국인의 재밌는 점을 알 수 있다.


< 나에게 어울리는 건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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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agram 'billieeilish', 'kimkibangbang', 'nickwooster'

하지만 성별, 체형, 분위기 등에 따라 우리의 개성은 천차만별이다. 와이드 핏의 팬츠가 유행이어도 그것이 어울리는 사람이 있고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다. 조롱받는 이유는 결국 멋있지 않기 때문인데, 개인의 소화력을 무시한 채 유행이라는 이유로 좇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옷을 잘 입는 사람은 본인의 소화력을 이해하고 있다. 나에게 무엇이 어울리는지 알고, 그렇기에 남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나를 이해한다는 건 곧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덩치가 크지만, 옷을 잘 입기로 유명한 배우 김기방. 그를 패셔니스타라고 하는 이유는 유행을 잘 소화하기 때문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본인이 빛나는지 알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그가 스냅백에 슈프림을 입는다 한들, 우리는 그에게 영포티라고 하지 않는다. 혹여나 말이 나오더라도 그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 나를 탐구하는 과정>

보헤미안.jpg ©Noblesse

이처럼 우리는 자신을 탐구하고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패션 사춘기'의 시절을 지나올 것이다. 그 시기의 우리는 빈티지나 난해한 보헤미안 패턴에 빠지기도 하고 특정 브랜드에 집착하기도 한다. 그 당시의 내 모습이 부끄러울 수는 있어도 의미 있는 시간이다. 그 과정을 지나 보니 비로소 개성을 구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며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없다. 시행착오는 필요하다.


트렌드를 주시한다는 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는 사회와 문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이고, 내 '패션 사춘기'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도 필요한 행동이다. 눈치는 '한강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던 원동력이었고 세계 어디에서도 한국인은 '일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비결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것을 수용하는 자세다. 트렌드가 나보다 우선시되는, 주객전도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유행이라고 다 옳은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이를 다방면으로 바라보고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이는 곧, 나를 지키는 동시에 발전시키는 방법이 될 것이며, 언젠가 정말 멋지게 완성된 나를 마주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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